005화
악몽이란?
그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걱정거리에 현실감이 더해진 꿈이라고 생각한다.
즉,
‘악몽이 아니었다는 거지.’
이건 악몽이 아니라, 내게 곧 일어날 암울한 미래를 꿈으로 보여준 예지몽이었다.
...그것 말고 뭐가 있는데?
꿈이 아니라면 과학의 영역을 한참 벗어난 오컬트다.
“문수야.”
“네.”
“교무실까지 가는 내내 너무 조용해서. 선생님이 누구를 학교로 초청했는지 궁금하지 않니?”
“전혀- 안 궁금할 리 없잖아요! 당연히 궁금하죠!”
이미 누구인지 알기에 전혀 궁금하지 않았지만, 담임선생님의 장단에 맞추기로 했다.
“맞춰 볼래?”
“...유일암이요.”
“어머! 한 번에 맞췄네! 유일암 씨가 유명하긴 하구나.”
“이름만 알아요.”
여기까지 모든 상황이 똑같이 흘러갔다.
사명감 넘치는 담임선생님이 방황하는 나를 위해 무당 유일암을 학교로 초청했고, 그는 어김없이 행패를 부리며 생방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안 되지!’
나는 뒤따라오는 무당 유일암을 힐끔 확인한 후, 학교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자연스럽게 지나쳤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여학생에게 저 남자를 데려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기절한 사람을 발로 걷어찬다니?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내버려 두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흠. 이러면 괜찮겠지.”
스마트폰으로 담임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강문수: 선생님. 학교 옥상에 여학생이 쓰러져 있어요.」
“...좋아.”
무당 유일암이 무방비 상태의 여학생을 발로 걷어차는 엽기행각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완벽하다.
‘이 이상 어떻게 잘해?’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는 교실을 기웃거리며 한창 촬영 중인 무당 유일암을 불렀다.
“유일암 씨. 귀신을 못 찾겠어요.”
“좀 더 자세히 봐! 이 근처에 숨어있어.”
“무리인 것 같아요. 제 재능이 너무 부족해서. 그리고 곧 아르바이트 시간이라서 가봐야 해요.”
“......”
무당 유일암은 탈주하려는 낌새가 다분한 나를 지그시 노려봤다.
하지만 수많은 구독자가 지켜보는 생방송 중인 탓일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포기가 매우 빨랐다.
‘예상대로네.’
방송인들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토막 지식을 어렴풋이 들은 기억이 있다.
카메라가 없을 때의 모습.
카메라가 있을 때의 모습.
그리고 지금은 카메라가 버젓이 따라오고 있었다. 편집할 수 없는 생방송으로...
즉, 지금은 비협조적인 나를 상대하기보다는 학교에 숨은 귀신을 찾는 게 급선무이리라.
그러나,
“내 명함이다. 아무에게나 주는 게 아니니 잘 간직해.”
무당 유일암도 간단히 포기하진 않았다.
“네. 잘 간직할게요.”
나는 그가 내미는 황금색 명함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이따가 버스정류장 쓰레기통에 버려야지~♪’
더는 이 막무가내의 남자랑 엮이고 싶지 않으니까. 길거리에서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강문수 학생. 연락처를 내 제자에게 알려-”
“아르바이트로 바빠서 이만!”
유일암이 수작 부릴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바람처럼 달려서 학교 건물 밖으로 탈출했다.
‘내 연락처? 어림도 없지!’
개인신상정보이기 때문에 담임선생님도 외부인인 그에게 함부로 가르쳐주지 못하리라.
“좋았어!”
이걸로 해방이다!
지긋지긋한 아르바이트가 기다리고 있지만, 무당 유일암의 억지를 들어주는 것보다는-
툭!
“음?”
학교 본관 출입문 옆의 잔디밭 위로 커다란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내 얼굴에-
툭툭...
그리고 교복에 새빨간 액체가 사정없이 튀었다.
“이건 피 같은- 헉?!”
액체가 날아온 곳을 보자마자 내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 * *
“부처님...”
“주여...”
“아버지...”
간절한 소망을 담아서 신을 찾는 학생들이 보였다.
<적성검사장>
그리고 다시는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팻말도.
무신론자인 나도 그들처럼 신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이시여...”
이게 말이 됩니까?
학교 체육관에 세워진 지정병원 버스에서 적성검사를 받은 날로 또 돌아왔다.
‘이걸로 3번째...’
1번째는 예지몽이고 2번째는 현실이란 결론을 내렸었다. 그런데 2번째도 알고 보니 꿈이었다고?
혼란스러웠다.
“다음 학생.”
“...네.”
또 만난 간호사의 부름에 병원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말장난이란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입 다물고 얌전히 적성검사를 받기로 했다.
“학생. 검사를 시작하기 전에 간단한 확인 질문을 할 거예요.”
“네.”
“과거에 적성검사를 받아보신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최근 15일 안에 외국을 다녀온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영양제를 제외하고 주기적으로 복용하는 약은 있나요?”
“없습니다.”
“친구랑 싸웠나요?”
“...음?”
예전에는 이런 질문이 없었는데?
“미안해요. 표정이 너무 심각해서 무심코 물어봤네요. 방금 질문은 신경 쓰지 마세요.”
“아, 네.”
“지금부터 검사를 시작합니다. 아무런 느낌이 없다고 해서 뒤척이거나 일어서지 마세요.”
“네.”
내 표정의 변화로 간호사가 엉뚱한 질문을 하긴 했지만, 적성검사는 무난하게 끝났다.
거기까진 좋은데...
“이상한걸.”
적성검사가 너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내 기억이 왜곡된 게 아니라면, 적성검사를 받지 않고 이탈한 학생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다음 학생.”
“네.”
“다음 학생.”
“네.”
“다음...”
예전처럼 간호사를 기다리게 하는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적성검사가 끝날 때까지도.
‘이상한데...?’
내가 얌전히 검사를 받으면서 미래가 바뀐 걸까?
내 이해와 상식을 벗어난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길기도 하고.
아무튼,
“문수야. 오늘도 수고해라.”
“네. 사장님.”
미래가 조금 바뀌어도 내가 아르바이트하러 가는 건 변함없었다.
장소는 편의점.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은 폐기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내 위장 속으로 넣어서 식비를 절약하고 있다.
돈도 벌고, 밥도 해결하고.
매우 만족하고 있다.
다만,
“손님이 없는 시간에 바닥 왁스질 한 번 해놔. 대낮부터 술 처먹고 토한 손님이 있었거든. 냄새가 지워지질 않아.”
“네...”
반복되는 아르바이트가 문제다.
‘힘든 건 둘째 치고 공짜로 일하는 기분이잖아?!’
텅텅 빈 통장의 단비가 되어줄 월급을 30일에 받는데, 29일만 계속된다고 생각해보라.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슥슥-
캄캄한 새벽에 편의점 바닥을 닦으면서 결심했다.
“...받아들이자.”
나는 오컬트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직접 경험한 후에도 믿지 않을 만큼 꽉 막혀 있진 않다.
무당.
내 적성을 받아들이자.
‘귀신은 못 보고 과거로 돌아가는 힘인가?’
그 원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건 포기하고 현상만 보기로 했다.
‘총 3번.’
내가 과거로 회귀한 순간들을 차례차례 떠올려봤다.
첫 번째, 내가 여학생의 옆으로 넘어졌을 때.
두 번째, 여학생이 내 옆으로 떨어졌을 때.
공통점이 있었다.
‘그 여학생이랑 마주치지 않으면 회귀를 피할 수 있으려나?’
시도해봐서 나쁠 건 없었다.
딸랑~♪
“어서 오세요! 손님!”
“담배-”
“여기요.”
“...아직 주문도 안 했는데, 이걸 살 줄 어떻게 알았지?”
“전에도 이걸 사셨어요.”
“그랬었나? 이 편의점은 처음 온 것 같은데.”
“전에 오셨어요.”
내가 기억하는 것만 3번이다.
“치매인가...”
“또 오세요! 손님!”
‘어린 양이여, 두려워 말라. 니코틴과 타르에 찌든 그대의 기억력은 아직 멀쩡할지니.’
이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이 이상한 거다.
* * *
오늘은 매우 중요한 날이다.
왜냐?
‘이번에는 제발 넘어가자!’
체감상으로는 보름쯤 흘렀는데, 달력의 날짜는 철근 콘크리트처럼 꿈쩍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성검사결과가 나오고 발표 다음날을 못 넘기고 적성검사를 받은 과거로 되돌아가니까. 날짜가 바뀌지 않는다.
“침착해.”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보자마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운명의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였기에.
또한,
“또 자살하겠지?”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린 여학생의 죽음이 마음에 걸렸다.
‘선생님께 미리 알려서- 아...’
스마트폰으로 담임선생님께 문자를 보내려다가 멈칫했다. 그 여학생의 얼굴은커녕 이름조차 모르니까.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교복에 새겨진 명찰이라도 봐두는 건데...’
볼 기회가 두 차례나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녀가 옥상 바닥에 엎드려 있어서 명찰과 얼굴이 안 보였고, 두 번째에서도 참혹한 피투성이라서 볼 겨를이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스마트폰을 호주머니에 다시 넣으며 깔끔히 포기했다.
일단은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니까.
“야, 강문수. 언제까지 감출 거야?”
“맞아. 반에서 너만 적성검사결과를 감추고 있어.”
“괜히 기대되잖아!”
“정말로 우주비행사가 아닐까?”
“치사하다! 강문수!”
“야! 그렇게 살지 마라!”
자신의 적성검사결과표를 남들에게 떠벌린 ‘일부’ 학생들의 관심이 내게 집중됐다.
‘모두가 공개했다고?’
근거 없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많은 학생이 자신의 적성을 공개했다는 건 인정하지만.
“안 돼. 비밀이야.”
알려줘도 괜찮다고 생각한 과거의 나를 때려주고 싶다.
이 자리에서 내 적성을 공개하면 담임선생님이 또 ‘무당 유일암’을 학교로 초청할 테니까.
그것만은 사양하고 싶다.
‘선생님. 마음만 받을게요.’
뼛속까지 사명감과 열정이 넘치는 담임선생님께 찬사를!
하지만 무당보다 연예인이 어울릴 것 같은 유일암을 3번이나 만나고 싶진 않았다.
“진짜 대단한 직업인가?”
“강문수! 치사하다!”
“야! 이것만 가르쳐줘. 대통령보다 대단한 적성이야?”
“저러니 더 궁금하네!”
주위에서 가르쳐달라고 계속 보챘지만, 꿋꿋하게 버텼다.
“미안.”
지금은 이딴 적성보다 한 여학생의 생명이 우선이기에.
* * *
같은 과거를 3번째 겪어서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다.
“편하구먼~”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야, 강문수.”
“진짜로 안 가르쳐줄 거야?”
“우리 사이에 너무하네.”
“적성을 밝혀라!”
나는 ‘무당’을 숨긴다는 결정을 무척 잘했다고 자찬했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적성검사결과를 물어오는 친구들 탓에 조금 귀찮긴 했지만, 놀림거리가 되었던 이전보다는 나았다.
“후우….”
하지만 마음만은 편치 않았다. 문제의 여학생이 옥상에서 떨어져서 죽는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을 거야.’
대책을 짜뒀기 때문이다.
어떻게?
「강문수: 선생님. 옥상 난간에 위험하게 선 여학생을 봤어요.」
문제가 터지기 전에 스마트폰의 문자로 담임선생님께 연락해서 사건을 예방하는 것이다.
“...됐다. 이젠 괜찮겠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책가방을 등에 멨다.
적성검사결과를 담임선생님께도 숨긴 덕분에 무당 유일암은 학교에 오지 않았고, 나의 신속한 신고로 한 생명을 구했다.
만족스러운 귀갓길!
완벽하다.
‘내일의 태양이여! 거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라~!’
제가 그쪽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