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4화 (5/232)
  • 004화

    [1장-1절] 적성검사를 받았습니다.

    내가 꿈을 꾸는 걸까?

    가장 먼저 이 생각부터 했다.

    조금 전까지 나는 학교 옥상에서 천재 무당 유일암이랑 몸싸움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긴 학교 운동장.

    죽을 각오로 옥상에서 뛰어내리지 않는 한, 이렇게 빨리 지상에 내려올 수 없다.

    게다가,

    “우주비행사를! 제발!”

    “신이시여! 저에게 기적을~!”

    “대통령이 됐으면...”

    종례를 마치고 진즉 집에 간 3학년 학생들이 운동장에 바글바글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혼란스러웠다.

    “다음 학생.”

    병원 버스 안쪽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다음 학생! 얼른 들어오세요!”

    하지만 아무도 버스 안으로 안 들어가자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문수야. 뭐해?”

    “야. 네 차례잖아.”

    “얼른 들어가!”

    “응?”

    짜증 섞인 친구들에게 등을 떠밀린 나는 병원 버스 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내 차례라고?’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받는 적성검사는 1회. 재검사를 받아도 결과가 뒤집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또?

    어리벙벙했다.

    “학생. 신발 벗고 오른쪽 침대에 누워요.”

    예전에 한 번 본 기억이 있는 여성 간호사가 간이침대를 가리켰다.

    “저기...”

    “학생. 시간 없어요. 질문은 나중에 의사 선생님께 하세요.”

    그녀의 명백한 거절 의사에도 나는 강행했다.

    “정말로 적성검사인가요?”

    “......”

    내 질문에 멈칫한 간호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가르쳐 주세요.”

    “학생. 저는 매우 바빠서 말장난할 시간이 없어요. 적성검사인 줄 모르고 여태 줄을 섰나요?”

    “...죄송합니다.”

    다른 질문을 또 했다가는 이 버스에서 쫓겨날 것 같다.

    “빨리 올라가요.”

    “네.”

    나는 입술을 다물고 침대 위에 누웠다. 수긍한 건 아니지만.

    ‘나는 적성검사를 받았는데?’

    어째서 재검사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학생. 검사를 시작하기 전에 간단한 확인 질문을 할 거예요.”

    “네.”

    “과거에 적성검사를 받아보신 적이 있나요?”

    “네.”

    “없으- 있다고요?”

    “네. 이틀 전에.”

    “잠시만요.”

    다닥, 탁, 다다닥-

    살짝 당황한 얼굴로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는 간호사.

    “......”

    나는 차분히 기다렸다.

    이 병원 버스에서 적성검사를 받았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기록이 분명 남아있으리라.

    “학생. 이름이?”

    “강문수요.”

    “이름은 맞는데... 이틀 전에 어느 병원에서 유료검사를 받았나요?”

    “무료검사를 받았습니다.”

    “이 학교의 학생이 무료로 검사받을 수 있는 지정병원은 저희밖에 없을 텐데요.”

    “이 병원 버스에서 받았어요.”

    “......”

    “확인해보세요.”

    “...학생. 그때는 검사를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어요. 또 장난치면 쫓겨날 줄 아세요.”

    “......”

    나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으름장을 놓는 간호사도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았다.

    ‘미치겠네!’

    이건 마치 과거로 돌아온 것 같지 않은가?

    내가 생각하고도 너무 어이없어서 실소가 절로 나왔다.

    “학생. 지금부터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요.”

    나를 말장난 좋아하는 거짓말쟁이로 단정한 간호사의 말투가 곱지 않았다.

    “네.”

    혼란스러운 머리를 잠시 내려놓고 적성검사를 ‘다시’ 받았다.

    * * *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적성검사기의 원리를 자세히는 모르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측정한 값으로 적성이 결정된다고 배웠다.

    뇌세포, 성대, 신장, 신체 비율, 모세혈관, 폐활량...

    심지어 생식기까지!

    “......”

    검사하는 동안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지만, 의료용 침대 밑에 깔린 특수한 합판의 방사선이 내 몸을 관통하는 중이다.

    “검사 끝났습니다. 일어나세요.”

    “네.”

    처음 검사받을 때는 얼떨떨하기만 했었는데,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까.

    이 짧은 시간에 내 인생이 결정된다는 게 섬뜩했다.

    ‘아! 아니지.’

    적성검사결과에서 ‘무당’이 나온 기억은 악몽이 아니었을까?

    그 증거로, 무당 유일암이 볼 수 있는 귀신을 나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다는 명백한 증거!

    꿈이라고 결론을 내리자마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만,

    “그 무당은 뭐지?”

    꿈은 경험을 토대로 재구성된다는 말이 있지만, 내가 ‘전혀 모르는 인물’인 무당 유일암을 만난 일련의 사건이 살짝 걸렸다.

    ‘아니, 어쩌면?’

    천재 무당 유일암은 내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 아닐까.

    적성검사를 기다리는 다음 학생을 위해 병원 버스에서 내린 후, 체육관 구석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톡톡-

    곧바로 검색엔진에 접속해서 그의 이름을 입력했다.

    ‘유, 일, 암... 헛?!’

    「천재 무당 유일암! 생방송」

    「무당 유일암의 상담소」

    「명탐정 무당 유일암! 귀신 검거!」

    「무당 유일암 vs 무당 송은영」

    “...실존인물이네.”

    존재하지 않길 바랐던 인간이랑 같은 하늘 아래에 살고 있어서 매우 유감이다.

    “검사가 금방 끝나네.”

    “그러게.”

    “검사를 받은 거 맞나...?”

    “대통령! 제발~!”

    적성검사를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섰던 줄도 차츰 줄어들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적성검사의 결과를 기다리는 아이들.

    “......”

    나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오늘’을 흐지부지 보냈던 것 같다.

    “문수야.”

    “응?”

    “어디 아파? 아까부터 말이 없네.”

    대통령을 꿈꾸는 친구의 물음에 고개를 살짝 저으며 부정했다.

    “아니. 생각할 게 많아서.”

    지나치게 현실감 넘쳤던 악몽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문수야. 너는 바라는 적성이 있어?”

    예전에도, 꿈에서도 이 질문을 받았었다.

    뭐라고 대답했더라?

    ‘...아! 맞아.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면 무엇이든 좋다고 했지.’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혼자 살게 된 이후부터 늘 돈에 쪼들려 살았다.

    돈! 그리고 돈! 또 돈!

    자본주의사회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가치.

    돈 걱정 없이 사는 게 ‘꿈’이다.

    그랬는데,

    “무당 같은 이상한 직업만 안 걸리면 만족해.”

    “무당? 아아, 유일암의 방송을 보면 싫어질 만도 하지.”

    “유일암을 알아?”

    “당연하지. 유명하니까. 사기꾼이란 말도 있지만, 그가 귀신을 퇴치하는 광경을 봤다는 증인이 많아.”

    “그렇군.”

    인성은 바닥이지만, 무당으로서 실력은 확실한 모양이다.

    “나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

    “안 물어봤다.”

    내 대답이랑 상관없이 이 친구의 소망은 변함없었다.

    “미래의 대통령이 될 거야!”

    “그래.”

    “...문수야.”

    “왜?”

    “너는 원치 않는 적성이 나오면 어떻게 할 거야?”

    “......”

    친구의 대사는 같았지만, 예전처럼 흘려들을 수 없었다.

    원치 않는 적성.

    이미 ‘꿈’으로 경험해봤던 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발버둥 쳐야지. 정체도 모르는 P가 만든 기계에 내 운명을 온전히 맡길 순 없잖아?”

    “그렇구나...”

    “너는 어떤데? 적성에서 대통령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할 거야?”

    “나는... 모르겠어. 적성검사결과를 본 뒤에 생각하려고.”

    “걱정하지 마. 너는 틀림없이 대통령이 될 거야.”

    “빈말이라도 고마워.”

    “정말인데.”

    꿈에서 봤으니까! 곧 다가올 미래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로 현실감 있었다.

    ‘그래서 걱정이지.’

    악몽에서처럼 또 ‘무당’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옥상에서 여학생을 발로 툭툭 걷어차던 무당 유일암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다음 학생!”

    “음?”

    “다음 학생 없나요? 홍선영 학생! 검사장으로 오세요!”

    “...뭐지?”

    병원 버스에서 나온 간호사가 피곤한 목소리로 학생을 찾고 있었다.

    ‘이상한걸.’

    이런 일이 없었는데?

    꿈에서는 별 탈 없이 적성검사가 진행됐었기 때문이다.

    “선영이는 적성검사 안 받는데요.”

    “아프다고 보건실에 갔어요.”

    “나중에 따로 돈 내고 받겠데요.”

    여전히 검사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간호사에게 설명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홍선영 학생의 다음 학생, 들어오세요.”

    “네!”

    약간의 이변이 있긴 했지만, 적성검사는 그대로 진행됐다.

    “이상하네.”

    “그러게. 적성검사를 받기 3일 전부터 건강에 특히 신경 쓰는 건 상식이잖아.”

    “그렇지.”

    적성검사결과는 주민등록증에 기록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근거 없는 미신이지만, 천재지변이나 사고로 몸에 이상이 생겨서 결과가 시원찮게 나올 수도 있잖는가?

    그래서 꿈에서는 모든 학생이 몸을 사렸고, 건강상의 문제로 적성검사를 빠진 자가 없었다.

    “문수야.”

    “왜?”

    “다른 애들도 끝난 것 같아.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래.”

    꿈이랑 전개가 달라서 살짝 위화감이 들었지만, 별 탈 없으리라.

    * * *

    하루, 또 하루...

    처음에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서 잠시 방황했지만, 그 뒤로는 순탄한 나날들이었다.

    다만,

    ‘너무 똑같아.’

    꿈이랑 전개가 너무 똑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선생님들의 수업 방식, 전달할 보호자가 없는 가정통신문, 아르바이트, 뉴스...

    내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꿈이라고 하기에는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것은 정말 꿈이었을까?

    “이런. 내가 무슨 생각을...”

    헛웃음이 나왔다.

    꿈인 게 당연하지 않은가?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우주론을 응용해서 봤을 때, 팽창하는 우주의 시간을 멈추거나 되돌릴 수 없다.

    또 다른 근거로는-

    “헛!”

    “오셨다!”

    “모두 자리에 앉아!”

    나의 과학적 통찰은 소란스러워진 교실 분위기에 깨지고 말았다.

    ‘올 것이 왔나.’

    평생 따라다니는 주민등록증의 맨 상단에 새겨질 ‘적성’이 적힌 봉투를 양손 한가득 든 담임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이것도 꿈이랑 똑같은 전개.

    한 학생이 적성검사를 거부한 사건을 제외하고는 전부 같았다.

    “여러분, 오래 기다렸나요?”

    “......”

    “......”

    “네!”

    모두가 긴장으로 침묵했지만, 나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정말로 이 순간을 기다려왔기에.

    “1번, 강문수.”

    “네!”

    나는 적성검사결과가 든 봉투를 넘겨받자마자 깊게 심호흡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

    가족력을 포함해서 나랑 아무런 연고도 없는 오컬트 적성이 나온 기억은 틀림없이 악몽.

    현실은 다르리라.

    ‘좋아.’

    합리적인 분석과 통찰로 조금씩 마음이 인정됐다.

    이걸로 준비 끝.

    스윽-

    열어보기 무서웠던 봉투의 내용물을 조심스럽게 살펴봤다.

    “...어라?”

    탁!

    그리고 바로 덮었다.

    ‘어째서?!’

    내 눈이 잘못된 걸까? 눈에 들어간 먼지를 씻고 다시 봤다.

    “문수도 대통령이려나?”

    “과학을 좋아하니 기술자나 연구원이 아닐까.”

    “나까지 괜히 기대되네!”

    “우주비행사일지도...”

    이번에도 학우들은 두 눈을 반짝이면서 내 적성검사결과에 짙은 호기심을 보였다.

    “문수야. 알려줘.”

    “문수는 무슨 직업일까?”

    “야. 얼른 펼쳐봐.”

    남의 인생에 관심이 많은 그들이 어이없었다.

    ‘어떻게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말하냐.’

    꿈이랑 다르게 행동하는 나 때문에 미래도 바뀌어야 정상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말하기 힘드니?”

    사명감 투철한 담임선생님마저 똑같은 대사를 내뱉는 걸 보고는 생각하길 포기했다.

    “제 적성은...”

    같은 상황을 두 번째 겪는 탓에 충격이 덜한 걸까?

    탁.

    손바닥 뒤집듯 적성검사결과표를 공개하며 외쳤다.

    “무당입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