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화
“좋아. 처음부터 예상하긴 했지만, 유명한 무당인 나를 안다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겠군.”
“......”
긴 설명이 필요한데요?
지금이라도 유명한 무당 유일암의 착각을 정정해줄지 고민하다가 그만뒀다. 안 해도 될 말로 분위기를 망칠 필요는 없으니까.
아르바이트로 단련된 삶의 지혜다.
“우선, 너의 무당으로서 자질을 시험해보마!”
“네.”
적성검사로 이미 판명된 자질을 굳이 시험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의문이 강하게 들었지만, 군말 없이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이 교무실을 둘러봐라.”
“네.”
“무엇이 보이지?”
“선생님들이 보입니다.”
무당 유일암이 교무실 바닥에 뿌린 알코올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는 선생님들이 보였다.
“그밖에는?”
“...책상과 의자가 보입니다.”
“어허! 무당이면 무당답게 대답해야지! 이 교무실에 숨어있는 귀신을 묻는 거다!”
“......”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는 무당 유일암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교무실을 다시 한번 훑어봤다.
‘흠.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눈 씻고 봐도 귀신은커녕 귀신의 환청조차 들리지 않았다.
“뭐…. 됐다. 초짜에게 많은 걸 기대한 내 잘못이지.”
“아, 네.”
“웬만하면 제자로 받아주려고 했는데, 재능이 부족한 녀석을 가르칠 만큼 이 몸은 한가하지 않아서 말이다. 다른 무당을 알아봐라.”
“네.”
유명한 무당을 초청해준 담임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미련 없이 포기했다.
재능이 부족하다지 않는가?
안 보이는 유령을 보인다고 거짓말해봤자 금방 들통날 것이다.
“적성검사결과표, 가지고 있냐?”
“네.”
“의심하는 건 아닌데, 잠시만 보여다오.”
“네.”
나는 무당 유일암의 요구대로, 호주머니 안에 고이 넣어둔 종이 쪼가리를 건넸다.
그 말미(末尾)에 적힌 ‘무당’을 지그시 쳐다본 그는,
“...시험을 주마.”
“예?”
“기회를 준다는 얘기다.”
“괜찮습니다. 말씀처럼 저는 다른 무당을 알아볼게요.”
“나의 유명세에 부담을 느끼는 건 알지만, 사양하지 않아도 돼.”
“저는 정말로-”
“지금부터 이 학교에 숨은 귀신을 찾아라. 나는 곧 방송할 예정이라서 바쁘니 말 걸지 말고.”
“......”
제멋대로 통보한 무당 유일암이 교무실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며 요란하게 외쳤다.
“카메라 들고 여기로 와! 오늘은 고등학교 괴담 특집방송이다.”
“네! 스승님!”
학교 운동장에 세워진 검은색 승용차 안에서 하교하는 여학생들의 치마 아래를 구경하던 남자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저 사람도 무당인가?’
복장이나 분위기는 사회초년생 운전기사인데.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유명한 무당의 제자’를 보던 중-
“아얏?!”
탁!
내 정수리를 강타하는 무언가 때문에 머리를 싸맸다.
서둘러 뒤를 돌아보니, 부채를 쥔 무당 유일암이 거만하게 턱을 세우고 있었다.
“뭐 해? 빨리 귀신을 찾아.”
“저는 한다고 한 적이-”
“헛소리 할 시간에 빨리 움직여! 곧 생방송을 시작할 거라고. 망치면 네가 책임질 거야?”
“......”
너무나 황당했던 나는 붕어처럼 입술을 끔뻑거렸다.
‘완전히 막무가내잖아?’
도움을 청하고자 서둘러 담임선생님을 돌아봤더니,
“일단은 해보렴. 선생님은 이 일로 교장실에 가야 해서….”
버팀목이 되어야 할 사람이 도망치듯 교무실을 떠났다.
“선생-”
교무실의 다른 선생님들께 시선을 돌렸으나, 방송을 인식한 그분들은 업무에 열중하는 척하거나 얼굴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방송.
학교장의 허가가 떨어진 촬영인지는 나로선 알 수 없지만, 이 교무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휘말렸다는 것만은 이해했다.
“귀신이라니….”
“구시렁거리지 말고 빨리 움직여. 귀신을 발견하면 도와달라고 소리 지르고.”
“왜요? 귀신 모르게 조용히 돌아와서 위치를 알려드리는 편이….”
“멍청하긴! 그래야 좀 더 극적인 연출이 나오지. 네가 소리를 지르면 멀리서 뒤따라가던 나와 제자가 현장을 덮칠 거야. 이해했어?”
“네.”
“내 제자가 되겠다는 녀석이 이토록 눈치가 없어서야. 쯧쯧.”
“......”
나는 이 남자의 제자가 되겠다고 말한 적이 없지만, 더는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어디서부터 갈까?
고민은 짧았다. 매점이 있는 학교 건물 지하 1층부터 옥상까지 산책한다는 마음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로 했다.
“아! 맞다. 예비 제자.”
“......”
“너 말이야, 너. 박문수.”
“강문수입니다.”
의도적으로 유일암을 무시하고 있던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이 학교의 괴담에 대해 아는 게 있으면 전부 말해봐. 아무도 없는 음악실에서 피아노 건반 소리가 들린다거나….”
“없을걸요.”
“없어? 네가 무관심해서 모르는 건 아니고?”
“없어요. 전혀.”
“......”
“......”
“잘 들어.”
“네.”
“없으면 끝이야? 만들어서라도 대령해야지! 참 방송할 줄 모르네! 아니, 됐다. 초짜에게 기대한 내가 바보지. 빨리 걷기나 해.”
“네.”
‘방송이라…?’
나는 씰룩이는 입꼬리를 애써 숨기며 털래털래 앞장섰다.
* * *
생방송을 준비하면서 강문수의 뒤통수를 쳐다보는 ‘천재 무당’ 유일암은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왜?
“어째서 귀신을 못 보는 거야!”
“스승님. 헛걸음한 거 아닙니까?”
“기다려. 정말로 없어서 못 봤을 수도 있으니까.”
저 학생의 적성검사결과에는 정말로 ‘무당’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진짜로 무당이란 의미.
P가 발명한 적성검사기는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실수와 오판도 없었기에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스승님. 슬슬 방송하실 시간입니다. 준비하시죠.”
“그래.”
“저는 걱정됩니다. 저 녀석, 무당이랑 연관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 같아서요.”
“처음에는 다 그렇게 시작해. 너도 그랬고. 아니, 더 심했지.”
“제가요?”
“카메라맨이잖아.”
천재 무당 유일암의 제자는 적성검사결과가 ‘촬영기사’였다.
그럴싸한 구도, 멋들어진 연출, 자연스러운 편집, 적당한 노출, 재빠른 융통성, 시기적절한 대본….
그래서 고품질의 방송을 어렵지 않게 만들어냈다.
“스승님.”
“방송준비가 끝났어?”
“그건 진즉 끝났고요. 저 녀석을 제자로 받을 생각입니까?”
“당연하지. 경쟁 중인 놈들에게 빼앗기면 곤란해.”
학교 복도를 걸어가는 중인 강문수를 바라보는 무당 유일암의 두 눈동자가 탐욕스럽게 빛났다.
고품질의 방송으로 그의 인기를 올려준 제자에게는 불만 없지만, 적성이 늘 아쉬웠으니까.
호칭뿐인 제자.
동업자에 훨씬 가깝다.
그런데도 제자가 ‘무당’으로서 고평가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럴싸한 연출과 편집 덕분.
하지만 언제까지 대중을 속일 수 있을까?
늘 불안하다.
“스승님. 진짜 제자가 생겼다고 저를 무시하거나 푸대접하시면 안 됩니다.”
“당연하지.”
재능이 없는 그를 제자로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신뢰성에 큰 타격을 받으니까.
제자의 재능을 칭찬하는 대목이 들어간 방송이 한두 번이었던가?
둘은 운명공동체나 다름없다.
“시간이 됐습니다.”
“바로 시작해.”
“네.”
늘 하던 대로 수신호를 보낸 제자의 카메라 렌즈가 스승 유일암을 주시했다.
삑-
“안녕하십니까, 구독자 여러분. 저는 귀신 퇴치 전문 무당 유일암입니다. 오늘은 이 고등학교에 숨은 귀신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 * *
귀신, 마법, 전생, 예언, 신….
나는 이런 오컬트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유명한 전문가가 직접 내게 말한 탓일까?
“괜히 몸이 으스스하네.”
학생들이 다 떠나고 조용해진 학교의 복도에서 계절을 무시한 한기(寒氣)가 몰아치는 듯했다.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학교를 떠나고 싶은데….
“오늘은 이 고등학교에 숨은 귀신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뒤편에서 따라오는 천재 무당 유일암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생방송이기도 하고, 저 남자를 초청한 담임선생님의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탈주는 무리.
그냥 이 얼토당토않은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상한 말을 해서...”
교무실에서 귀신이 도망쳤다는 소리를 왜 하는 거야?
끼익-
아무도 없을 게 뻔한 화장실 문을 열고 안쪽을 들여다보며,
“...실례합니다?”
귀신 찾는 시늉을 했다.
“......”
하지만 화장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간혹 있는, 변비 때문에 귀가하지 못한 학생조차도.
그 옆의 교실도, 과학실도, 음악실도, 시청각실도, 급식실도….
무당 유일암이 언급한 귀신은커녕 이상한 조짐이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하아...”
곧 아르바이트할 시간인데, 나는 여기서 왜 바보 같은 짓거리에 어울려주고 있는 걸까?
내 인생을 통틀어서 이토록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다.
“헛! 저 남자는 유일암이잖아!”
“무당 유일암? 정말로?”
“저기 봐! 진짜야!”
“어머! 카메라도 있어! 생방송 찍는 중인가 봐!”
아직 하교하지 않고 학교에서 기웃거리던 극소수 학생들이 그들을 발견하고는 호들갑을 떨었다.
‘유명하긴 한 모양이네.’
무당 유일암이 그런 학생들에게 반가운 얼굴로 다가가서 서슴없이 말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귀여운 학생. 안 바쁘면 질문 좀 해도 될까요?”
“아! 네.”
“이 학교의 괴담에 대해 아는 게 있나요?”
“어…. 잘은 모르지만, 시험을 망치고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린 1학년 여학생이 있었던 것 같기도….”
“협조해줘서 고마워요.”
“이거 혹시, 생방송인가요?”
“맞아요.”
“어머어머!”
발랄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빠르게 오가는 와중에 나에 대해서도 은근슬쩍 언급됐다.
“오늘은 새로운 제자를 맞이하기 위한 시험도 겸하고 있습니다. 이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죠.”
그는 ‘새로운 제자’라는 단어에 힘주어 말했다.
“혹시, 문수요?”
“쉿! 귀여운 학생. 제자의 이름은 방송 마지막까지 비공개입니다.”
“어머! 네.”
나는 조심스럽게 엿듣던 귀를 닫고 계속 전진했다.
‘누구 마음대로 당신 제자야?’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은 꾹 참기로 했다. 여기서 귀신을 찾지 못하면 재능이 없다는 뜻이고, 그러면 알아서 포기할 테니까.
철부지 어린애처럼 싫다고 생떼를 부릴 필요는 없다.
드르륵-
녹슨 경첩 소리와 함께 옥상으로 향하는 철문이 열렸다.
여태까지 평범, 지극히 양호.
교장실, 교감실, 방송실, 전산실 같은 일부 제한된 장소를 제외하고는 전부 훑어본 셈이다.
“얼른 아르바이트하러- 음?”
잽싸게 몸을 돌려서 왔던 길을 되돌아갈 생각이었던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책가방?’
흙먼지가 쌓인 옥상 바닥에 분홍색 책가방이 덩그러니 있었다.
가방의 깨끗한 상태로 보아선 최근에 버려진 듯했다. 어쩌면 가방 주인이 근처에 있을지도.
“흠….”
사방이 탁 트인 학교 옥상의 유일한 사각지대는?
내가 알기로는 올라온 옥상 계단의 뒤편뿐.
스윽-
유일암의 발언 때문에 괜스레 긴장한 나는 숨소리도 죽인 채 조심스럽게 그 사각지대로 향했다.
“헛!”
마음에 안 드는 천재 무당의 짐작이 맞았던 걸까?
옥상 난간 앞에 가방 주인으로 짐작되는 여학생이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여보세요?”
“......”
여학생의 얼굴이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가려져서 볼 수 없었지만, 의식이 없는 건 틀림없었다.
‘선생님을 부를까? 아니지.’
호주머니에 든 스마트폰을 꺼내려던 손을 멈췄다.
도움을 청할 어른이 뒤따라오고 있잖은가?
“앗! 보십시오! 귀신에 씐 여학생이 옥상에 쓰러져 있습니다! 이건 조작이 아닌 실제 상황입니다! 제자야. 하나도 놓치지 말고 찍어라.”
“네. 스승님!”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도움은커녕 방해만 될 것 같았다.
“유일암 씨. 지금은 장난칠 때가 아니에요. 일단은 신고를-”
“귀신아! 썩 물러가라!”
쫙!
양손에 부채를 펼쳐 쥔 무당 유일암이 쓰러진 여학생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깨어나라!”
“......”
“이런! 귀신이 제대로 박혔구나!”
툭툭!
그는 이렇게 소란을 떨어도 반응이 없는 여학생을 발로 걷어찼다.
“오! 방금, 이 학생의 몸이 떨리는 것을 보셨습니까? 저의 제령(祭靈)에 혼쭐이 난 귀신이 드디어 반응을 보이는군요!”
“그건 당신이 발로-”
“오오옷! 귀신아! 물러가라! 거기는 네 자리가 아니다~!”
무당 유일암은 내 항의를 뭉개듯 더욱 큰 소리를 지르며 여학생을 또 걷어찼다.
툭툭!
“이봐요! 쓰러진 사람을 발로 걷어차지-”
“귀신아!”
툭툭!
“이 미친 새끼가…!”
마침내 인내심이 폭발한 나는 유일암의 몸을 힘껏 밀었다.
그러나,
“어허! 귀신이 친구를 불렀구나! 바로 제압해주마!”
단단한 돌기둥처럼 버틴 그의 반격에 역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헛?!”
그것도 하필이면 여학생의 가녀린 몸 위쪽으로.
‘젠장!’
나는 충돌을 피하고자 억지로 허리를 비틀었다.
그 순간적인 판단은 좋았지만, 여학생 대신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이 나를 반겨줬다.
‘아…. 되는 일이 없네.’
질끈.
나는 본능적으로 두 눈을 감으며 충격을 각오했다.
* * *
“...음?”
각오했던 충격과 통증이 없었다.
그리고 학교 옥상 대신 체육관이 시야 한가득 들어왔다.
“부처님...”
“주여...”
“아버지...”
각자가 믿는 신(神)을 찾으며 기도하는 학생들이 내 뒤로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적성검사장>
체육관의 용도가 쓰인 커다란 팻말이 떡하니 놓여 있었다.
“적성검사...?”
적성검사기가 실린 병원 버스가 나를 반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