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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2화 (3/232)

002화

이 세상에는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살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소년이 매우 많다.

그들은 평생 못 찾거나, 찾더라도 시기와 기회를 놓쳐서 재능을 썩히고 만다.

이건 틀림없는 불행(不幸)!

하지만 모두가 이 문제를 알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재능은 낳고 길러준 부모조차 정확히 알 수 없기에.

혁명가 ‘P’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 그랬다.

“인류의 역사는 P의 출현으로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직업혁명의 시발점인데요. P가 발명한 적성검사기 덕분에 인류는 방황을 멈추고 효율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선생님!”

“질문 있나요?”

“네. P가 외계인이란 소문이 있는데, 정말인가요?”

“소문은 소문일 뿐, 그 누구도 혁명가 P의 정체를 모릅니다. 외모는커녕 성별과 국적조차 알려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P는 매우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마스터P, 닥터P, 지니어스P, 지저스P, 프로페서P, 슈퍼P….

이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비밀에 싸인 인물인지 알 수 있다.

“직업혁명으로-”

“선생님.”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손을 들며 사회 선생님을 불렀다.

“강문수 학생도 질문 있나요?”

“네. 직업혁명으로 피해 본 사람들은 어떻게 됐나요?”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군요.”

“적성검사결과가 잘못 나온 사람도 분명히...”

“없습니다.”

사회 선생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언했다.

그 탓에 말문이 탁 막혔지만,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은 나는 꿋꿋하게 질문을 이어나갔다.

“적성검사결과가 안 좋게 나와서 직장을 잃는 사람은요?”

“국가보상이라면 당연히 없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냉정한 경쟁 사회니까요. 답이 되었나요?”

“...네.”

사회에 정통한 사회 선생님다운 거침없는 답변에 나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이해해주세요. 저 녀석, 적성검사결과가 아주 이상하게 나왔거든요.”

“맞아요. 직업이 참….”

“문수의 직업이 좀 그렇지?”

“내가 문수였으면 교육부로 바로 달려갔다.”

“나도.”

급우들은 불구경하듯 나를 바라보며 쑥덕거렸다.

그때,

“무당이래요! 무당!”

옆자리의 친구가 참지 못하고 내 직업을 밝혔다.

“무당?”

“네. 무당이래요.”

“그렇군요. 수업 끝난 후에 청소도구를 들고 교무실로 오세요.”

“예?”

“타인의 적성검사결과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발설하는 행동은 매우 무례한 행동입니다. 그 벌칙으로, 교무실 청소를 시키겠습니다.”

“서, 선생님! 억울합니다! 이미 애들은 다 알고 있었는데…!”

“저는 몰랐습니다. 강문수 학생의 적성검사결과를.”

“아으….”

“학교라서 교무실 청소로 끝나는 겁니다. 사회에 나가서, 직장에서 방금 같은 몰상식한 행동을 하면 개인신상보호법 위반, 상황에 따라서는 명예훼손도 될 수 있습니다. 이해했나요?”

“네.”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수긍하는 친구의 모습에 응징하려던 주먹을 살포시 내렸다.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그렇게 정리될 때쯤, 사회 선생님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강문수 학생.”

“네.”

“혁명가 P의 적성검사기에서 나온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나요?”

“네.”

어째서 그런 당연한 질문을? 내가 아닌 누구라도 싫어할 것이다.

“강문수 학생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잘 들으세요. 직업에 귀천(貴賤)은 없습니다. 직업혁명으로 전문화 사회가 된 현대에는 더욱.”

“무당도요?”

“네. 무당도요. 누군가에게는 필요할 겁니다.”

“아, 네.”

“그리고 적성검사결과가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가는 기나긴 여정이기에….”

“선생님은요?”

“그게 무슨 뜻이죠?”

“선생님은 적성검사결과가 어떻게 나오셨어요?”

“...저는 고등학교 사회 선생이 나왔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래서 인생의 개척은 어디에?

“......”

“......”

“흠흠. 오늘 수업은 이걸로 마칩니다. 남은 약 10분 동안 조용히 자율학습하도록 하세요.”

* * *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 라는 속담이 있다.

“무당 강문수다!”

“문수야. 내 운수 좀 봐줘!”

“학교에 무당이 있다고?”

입소문은 매우 빠르게 퍼진다는 뜻이다.

“...무례는 개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다방면으로 우수한 기대주였던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추락했을까?

그 원흉은 명백했다.

적성검사결과!

이젠 학교의 어딜 가든지 들려오는 ‘무당’이란 수식어에 화병으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물론,

“미래의 대통령이 지나가신다!”

“대통령 각하! 저를 채용해주세요!”

“나는 적성이 비서야. 기억해줘!”

“오! 대통령 씨! 정책은?”

자신의 적성이 수식어처럼 딸려오는 걸 즐기는 녀석도 있었다.

“나중에 대통령 선거에 나가면 나를 꼭 뽑아줘!”

친구는 적성검사결과에서 ‘대통령’이 나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불세출의 정치인 흉내를 내면서 교내를 헤집듯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장단을 맞춰서 비위를 맞추는 기회주의자, 간신배들까지 등장했으니!

“나는 기자야.”

“방송작가도 필요할걸.”

“경호원으로 써줘!”

그들도 자신의 적성검사결과에 나온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기자입니다. 대통령이 되신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대통령님. 저희 방송에 출연해주십시오.”

“비켜! 애들은 비켜! 대통령 각하가 지나가신다!”

유치하다는 말조차 아까운 광대놀음이나 다름없었지만, 그걸 비웃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괜히 원한을 샀다가 나중에 정말로 대통령이 되면 어쩌겠는가?

“좋겠다….”

“부럽다….”

나는 확연히 대조되는 그 꼴을 보면서 속이 더욱 끓었다.

“무당 강문수!”

“문수야! 귀신이 보여?”

“나는 언제 결혼해?”

웃음기 가득한 학생들이 끊임없이 주위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호기심은 차라리 낫다.

“문수야. 신이랑 소통할 수 있어?”

“쯧쯧. 몰랐냐? 문수의 스마트폰에 신의 연락처가 있어.”

“대박! 무교도 받아주나?”

“신께 안부 전해줘!”

명백히 놀리는 녀석들이 거머리처럼 휴식시간마다 달라붙는 바람에 짜증이 점점 쌓였다.

“와...”

그런데도 꾹 참는 내 인내심에 박수와 경의를!

‘아니지. 계속 참다가는 정신병원에 실려 갈지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폭력과 욕설은 하책.

그렇다면?

“야! 계속 귀찮게 하면 너희들에게 저주를 내려주겠어.”

“뭣?!”

“헛?!”

“못 믿겠으면 시험해봐. 내가 어째서 무당인지 가르쳐줄게.”

그간 참은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폭발한 탓일까?

내 분위기에 압도된 녀석들이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난 간다!”

“나도!”

“헛! 같이 가!”

우르르.

적성검사결과를 신뢰하는 만큼 저주도 두려웠던 아이들이 패잔병처럼 흩어졌다.

“...휴우.”

쉬는 시간마다 귀찮게 하던 녀석들이 전부 사라진 걸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교실의 내 자리로 돌아왔다.

쿵!

그리고는 곧바로 책상에 머리를 박듯 엎어졌다.

‘저주는 무슨.’

그런 신비한 초능력이 정말 있었다면 진즉 사용했으리라.

나는 오컬트(occult)를 전혀 모르는 평범한 고등학생. 심지어 종교랑 친하지 않은 무신론자다.

“저주를….”

“무당이면 저주도….”

“맞아. 저주가….”

교실의 학우들이 나를 힐끔거리며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소문이 돈 걸까?

조금 전까지는 말을 못 걸어서 안달이더니, 이젠 똥을 피하듯 멀어지기 바빴다.

‘그래. 차라리 이게 낫지.’

조금씩 식어가는 머리로 내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돈!

‘무당은 어떻게 돈을 벌지? 이것도 아르바이트가 있나?’

진짜 미치겠다.

* * *

“야! 선생님이다!”

“모두 자리에 앉아!”

“조용! 조용!”

드르륵-

고등학교 3학년 학급의 수학을 맡은 담임선생님이 미닫이문을 열며 교실 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그녀는 종례를 시작하기 전에 제자들의 상태를 쭉 훑어보다가 책상에 엎어져 있는 한 남학생의 뒤통수에서 시선이 잠시 멈췄다.

무당.

이 학교의 개교(開校) 이래 처음 나온 적성검사결과.

그래서 그녀 나름대로 조사를 해봤다. 이대로 어영부영 졸업시켜도 상관없지만, 적성검사결과에서 ‘고등학교 수학 선생’이 그냥 나온 게 아니기에.

책임감, 사명감, 직업정신….

그래서 자신의 제자 모두가 진심으로 잘되길 바라고 있다.

“여러분, 수업은 잘 받았나요?”

“네!”

“네~!”

단 한 명을 제외한 학생들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이 나라의 모든 학교에서 종사하는 선생들은 적성검사결과에서 ‘선생’이 나온 전문가들.

잘 가르치는 건 기본이고, 세월이 흘러도 식지 않는 열정으로 학생들을 상대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수업의 질이 떨어질 수 있을까?

거의 힘들다.

“미래의 대통령께서도 수업을 잘 받았나요?”

“하하하!”

“웃으라고 한 질문이 아닙니다.”

“넵!”

“대통령의 자질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닙니다. 매년 수십 명씩 쏟아지니까요. 그들 모두가 대통령이 될까요?”

“어... 아니겠죠?”

대통령 임기가 1개월 미만이 아닌 이상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문제. 대통령이 못 되면 뭘 할 건가요?”

“어…?”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에 ‘미래의 대통령’은 말문이 막혔다.

“선거를 도와줄 사람을 고용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그 돈을 마련할 건가요? 부모님께 빌릴 생각인가요?”

“후원을….”

“오늘 학교에서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고 누가 선뜻 돈을 내밀까요? 이게 동영상으로 녹화되어 먼 미래에 공개된다면?”

“......”

선거를 시작하기도 전에 완전히 망치리라.

그 정도를 예상하지 못할 만큼 멍청하진 않기에 ‘미래의 대통령’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잘 생각해보세요.”

“네….”

마음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추락한 제자에게서 시선을 뗀 수학 선생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적성검사결과는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같은 적성의 경쟁자가 사회에 많으니까요. 여러분이 노력하지 않으면 적성검사결과표는 휴짓조각이나 다름없습니다. 명심하세요.”

“네!”

“네! 선생님!”

학생들은 그녀의 말에 제법 감명받는 눈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을 맡을 때마다 비슷한 조언을 ‘복사+붙여넣기’ 하기에 어려울 게 없었다.

다만,

“흠….”

수학 선생은 눈만 움직여서 강문수를 힐끔 훔쳐봤다.

저 방황하는 아이에게 무슨 조언을 해줘야 할까?

무당.

그녀도 처음 보는 적성검사결과라서 말문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러니하네.’

인류가 방황하지 않도록 길잡이가 되어주는 P의 적성검사기 때문에 방황하게 된다니?

무척 곤혹스러웠다. 적성검사결과를 신뢰하기에 더욱.

“문수야.”

그래서 훈계가 아닌 다정한 어조로 그녀는 입술을 뗐다.

“네.”

“종례 후에 교무실로 와주겠니? 길진 않을 거야.”

“......”

“지금의 너에게 도움이 될 사람을 학교로 초대했단다.”

“네?”

“말도 없이 약속을 잡아서 미안하지만, 진로상담의 연장선으로 봐줬으면 좋겠구나.”

“...네.”

제자에게 원하는 대답을 들은 수학 선생은 안도한 어조로 종례를 마쳤다.

“적성검사결과는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내일도 지각하지 말고 성실하게 학업에 임하세요.”

“네.”

“네~!”

* * *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종례가 끝난 후, 나는 담임선생님을 따라서 교무실로 향했다.

‘나에게 도움이 될 사람이라?’

조금 궁금했다.

“선생님. 저를 위해 학교로 초대하신 분이 누구인지 미리 알 수 있을까요?”

그래서 슬쩍 물어보기로 했다.

“비밀.”

“......”

돌아온 답변은 시원찮았지만!

“텔레비전에 나올 만큼 대단히 유명한 분이야.”

“아, 네.”

유명한 사람이 나를 위해?

밑바닥까지 추락한 내 자존감이 아주 조금 살아났다.

“힘들게 모신 분이니 절대로 결례를 범하면 안 돼.”

“네.”

끼익-

교무실 앞에서 한 번 더 당부한 담임선생님이 문을 열며 앞장서서 들어갔다.

그런데….

“수학 선생님!”

“선생님! 좀 말려줘요!”

“이게 무슨 일이람!”

교무실에 먼저 와있던 다른 선생님들이 그녀를 보자마자 하소연하듯 외쳤다.

교무실 안에서 무슨 일이?

담임선생님을 뒤따라 교무실 안으로 고개를 들이민 나는….

“우오오! 공부에 지친 귀신아~! 물러가라~! 훠이~!”

촤악!

입안에 머금은 술을 사방에 뿌리며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는 남자를 보자마자 얼음처럼 굳었다.

진짜 무당?

복장과 행동을 보자면 그랬다.

“......”

교무실 안의 선생님들은 조금 식겁한 수준이겠지만, 나는 암담하기 짝이 없었다.

‘나도 나중에 저래야 한다고?’

현기증이 몰려왔다.

“무당 유일암 씨! 교무실에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귀신아~!”

“당신의 제자가 될지도 모를 학생보다 귀신이 중요하신가요?”

“물러나- 음? 아! 선생님.”

교무실에서 제멋대로 날뛰던 남자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문수야.”

“...네?”

“인사.”

“아, 네. 안녕하세요. 적성검사결과에서 무당이 나온 고등학교 3학년 강문수라고 합니다.”

꾸벅, 인사했다.

생계가 걸린 아르바이트로 갈고 닦은 나의 완벽한 예의범절로 첫인상을 좋게-

“내 이름은 알겠지? 천재 무당 유일암.”

“어…. 네.”

전혀 모르지만, 모른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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