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1화 (2/232)
  • 001화

    [서장-2절] 귀신이 안 보입니다.

    이런 나도 처음부터 나쁜 어른이었던 건 아니다. 나쁜 어린이는 더욱 아니었고.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어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오! 문수야. 환자의 보호자가 널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 병원만은 오기 싫었는데...”

    “어허! 그게 일거리를 준 병원장 앞에서 할 소리냐?”

    “네.”

    “녀석... 책가방 멜 때는 정말 착했는데.”

    “그때는 순진했죠.”

    내 인성(人性)과 인생(人生)은 이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 * *

    “문수야. 미안하다.”

    “괜찮아요.”

    “그래도 미안하다.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해서.”

    “......”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힘없이 누워 계신 아버지의 진솔한 사과에 말문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의미 없는 질문이다.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사고 당시에 혈중알코올농도가 매우 높게 측정되셨데요.”

    음주운전은 아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을 함께한 자동차는 진즉 중고차 시장에 팔았기에.

    “힘들었다.”

    “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술을 들이켤 만큼 힘들었다는 얘기.

    자식이 부모에게 변명하지 말라고 훈계할 순 없는 노릇이기에 가만히 듣기만 했다.

    힘든 것도 사실이고.

    “내가 고집부리지 않았다면...”

    “이렇게 될 줄 모르셨죠.”

    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을 바꾸려다가 실패했다. 몸과 마음이 망가질 만큼 처참하게.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셨죠.”

    수입이 적은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신 아버지는 옛날부터 주식과 부동산에 관심이 많으셨다.

    이건 그 결과.

    “내가 오만했어.”

    “아버지의 잘못은 아니에요. 성공한 사례만 보여주면서 부추긴 사람들이 문제지.”

    위로는 안 되겠지만, 무슨 말이라도 해드리고 싶었다.

    “나는 다를 줄 알았다.”

    “처음에는 잘 됐죠.”

    금방 부자가 된다고 확신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여전히 선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였기에.

    “하지만 타고난 재능은 이길 수 없었다. 경쟁은커녕 그들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셈이지.”

    “......”

    무슨 대단한 경험담을 전수하듯 한탄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걸 직접 겪어봐야만 아나요?’

    범부(凡夫)가 노력해서 천재(天才)를 제치고 성공할 만큼 이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모든 천재가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에 등장하는 토끼처럼 오만하고 게으른 건 아니니까.

    우습게도, 진짜 토끼는 다른 토끼들이랑 경쟁하기 바빠서 거북이는 안중에 없다.

    “나는 멋진 남편,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알아요.”

    “그래서 노력했다.”

    “그것도 알죠.”

    하지만 아버지보다 뛰어난 사람이 세상에 많아서 실패했다.

    그뿐이다.

    “나는-”

    “그만 하세요.”

    “뭐...?”

    “그만하시라고요! 저도 아버지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교과서 살 돈도 없는데, 자릿수부터 다른 병원비를 어떻게 마련할지 모르겠다고요!”

    꾹 참아왔던 내 인내심이 마침내 폭발해서 언성이 높아졌다.

    평범한 고등학생에게 무슨 돈이 있겠는가?

    미치겠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당장 오늘 입원비도 없는데.”

    “여기에 오래 안 있을 거다.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하...”

    아버지가 구급차에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중요한 수업을 제쳐두고 병원까지 달려왔다.

    그런데 그 원인이 참...

    술이 원수다.

    “문수야.”

    “네.”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 적성검사결과를 무시하지 마.”

    “네.”

    아버지의 사뭇 진지한 조언은 전혀 도움이 안 됐다.

    적성대로 살기.

    좀 더 풀어서 말하면, 자기가 잘하는 일을 하면서 살기.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미안하다.”

    “쉬세요. 아르바이트 끝나자마자 바로 올게요.”

    “오지 마.”

    “그건 제가 결정합니다. 아버지의 수술비와 입원비도 제가 알아서 할 거고요.”

    “...미안하다.”

    이때까지는 몰랐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 * *

    누구나 어릴 적에는 꿈이, 사회에 나가서 하고 싶은 근사한 직업이 하나씩은 있었으리라.

    내 친구들도 그렇다.

    “제발! 나는 우주비행사가 됐으면 좋겠다.”

    “하? 네가 우주비행사면 나는 대통령이 되고도 남겠다.”

    “아침부터 웬 시비야. 내가 하고 싶다는데.”

    “그래. 꿈은 자유지. 아! 꿈이 아닌 녀석도 있군.”

    “쩝. 인생은 참 불공평해.”

    영양가 없는 주제로 한창 열띤 토론을 벌이던 그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게로 모였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너, 잘났다고.”

    “나도 알아.”

    내 나이에 부모님의 장례식을 치르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흔치는 않을 테니까.

    친인척들에게 의지하지 않은 점도 칭찬해주고 싶다.

    “......”

    “......”

    그런 나의 당당한 태도에 학급 친구들은 말문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몇 초 뒤에,

    “다 가진 놈이 더하네!”

    “우우! 강문수는 물러나라!”

    “너만 잘살고 싶냐! 퉤퉤!”

    야유가 빗발쳤다.

    왜?

    “지금까지 실컷 놀고서 억울하다고 하면 안 되지. 양심 어디?”

    아르바이트로 바빠서 놀 시간이 없었던 것뿐이지만, 이유가 어쨌든 나는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수학, 과학, 사회, 음악, 체육...

    거의 모든 과목에서 높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고등학교의 마지막 방학식을 보름 앞두고 그 노력의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이건 나뿐만이 아니다.

    “으으…. 긴장돼.”

    “너도? 나도!”

    “잘 나왔으면 좋겠네.”

    “나, 너무 떨려….”

    교실의 모든 학생이 시험성적표를 받기 직전처럼 바짝 긴장한 얼굴로 대기하고 있다. 아니, 차라리 그때가 훨씬 편하리라.

    “헛!”

    “오셨다!”

    “모두 자리에 앉아!”

    학교 복도를 염탐하듯 힐끔거리던 친구들이 소란스럽게 외쳤다.

    그리고 십여 초 뒤,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며, 우리가 목 빠지게 기다리던 여성이 새하얀 봉투를 양팔 한가득 끌어안고 들어왔다.

    얼추 1년을 함께한 그녀가 이 학급의 담임선생님.

    졸업을 앞둔 제자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는 애정과 걱정으로 가득했다.

    “여러분, 오래 기다렸나요?”

    탁.

    담임선생님은 새하얀 봉투를 교탁 위에 올려놓으며 말문을 열었다.

    “......”

    “......”

    하지만 교탁 위에 탑처럼 쌓인 봉투에 시선이 쏠린 우리는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다.

    이에 담임선생님은 가벼운 쓴웃음을 지으며,

    “이해합니다. 시험 때보다 긴장된다는 거. 여러분의 선배들도 그랬으니까요.”

    쓱-

    가장 위에 있는 봉투를 조심스럽게 집어 든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예고대로, 교육부에서 실시한 적성검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봉투 안에 그 결과가 있고요.”

    “아!”

    “아아!”

    숨 막히는 침묵이 깨지면서 학생들의 탄식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적성검사.

    일의 소질을 알아보는 검사.

    의무교육처럼, 이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이 검사를 받아야 한다.

    “선생님.”

    용기를 낸 여학생 하나가 손을 들며 말했다.

    “질문 있나요?”

    “네. 선생님도 이 검사를 받으셨나요?”

    “물론입니다. 저도 여러분이랑 비슷한 시기에 적성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서 고등학교 수학 선생이 나왔지요.”

    그래서 고등학교 수학의 지도편달을 맡은 담임선생이 되어 이 교탁 위에 섰다고.

    뒷말은 굳이 안 해도, 적성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이 교실의 모든 학생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적성검사...’

    아버지도 담임선생님처럼 그 결과를 받아들였다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짝짝!

    그때, 우리의 긴장된 분위기를 쇄신하듯 손뼉을 친 담임선생님이 밝은 목소리로 선언했다.

    “자! 지금부터 선생님이 호명하는 학생은 앞으로 나와서 적성검사결과를 받아가세요.”

    “드디어!”

    “아오!”

    “1번, 강문수.”

    “네.”

    “2번, 강승호.”

    “네!”

    그렇게 봉투를 받고 자기 자리로 돌아간 우리는 조심스럽게 적성검사결과표를 펼치기 시작했다.

    스윽-

    “오예! 의사다…!”

    “말도 안 돼! 맨날 다치는 저 녀석이 의사라니!”

    “실화냐? 부럽다.”

    “심지어 수의사야! 나는 애완동물을 좋아하는데!”

    “와! 축하해!”

    자기가 원하는 직업, 혹은 그 기대치 이상이 나온 학생들은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어라?”

    “왜?”

    “운동 쪽일 거라고 짐작하긴 했는데…. 축구가 아니네.”

    “뭔데?”

    “배구선수.”

    결과가 자기 예상에서 약간 빗나간 직업이 나온 학생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건 뭘까….”

    “응? 무슨 직업이길래?”

    “미식가가 나왔어.”

    “...음식을 먹고 맛을 평가하는 직업, 맞지?”

    “맞아. 나는 다이어트가 일상인데 어째서...”

    특이한 직업이 나와서 난감해하는 학생도 있었다.

    “이건 뭐야….”

    “응? 너는 무슨 직업이길래?”

    “대통령이 나왔어.”

    “미친! 실화냐?!”

    “실화다! 그러면 이건 진로를 어떻게 잡아야 하지? 경영학? 정치학? 아니면 시위나 봉사활동 같은 거에 참석해야 하나…?”

    너무 대단한 직업이 나와서 혼란에 빠진 학생도 있었다. 심지어 그 학생은 내 친구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떠들썩했던 교실이 잠잠해졌을 때쯤,

    “강문수는?”

    “그러게. 문수는?”

    “넌 직업이 뭐야?”

    자기 적성검사결과를 확인한 학생들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선생님도 궁금하군요.”

    개인신상정보라서 학생들의 적성검사결과표를 보지 못한 담임선생님도 짙은 호기심을 보였다.

    “......”

    나는 새하얀 봉투 안에서 적성검사결과표를 천천히 꺼냈다.

    ‘제발.’

    아버지는 생전에 돈을 많이 벌길 갈망하셨지만, 적성검사결과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크게 바라는 건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면 무엇이든 상관없기에.

    “문수도 대통령이려나?”

    “과학을 좋아하니 기술자나 연구원이 아닐까.”

    “나까지 괜히 기대되네!”

    “우주비행사일지도...”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책상 위에 엎어놓은 적성검사결과표를 살짝 뒤집어서 확인했다.

    “어라?”

    내 눈을 의심했다.

    그래서 양손으로 눈을 씻은 후, 조심스럽게 다시 한 번-

    “이건 말도 안 돼!”

    적성검사는 반복할 수 없다. 다시 봐도 결과가 똑같으니까.

    “문수야. 알려줘.”

    “문수는 무슨 적성일까?”

    “야. 얼른 펼쳐봐.”

    이젠 교실 안의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직업은….”

    여기서 감춰도 소용없다. 교육부에 내 적성검사결과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니까.

    조만간 진로상담을 위해 담임선생님에게도 알려질 것이다.

    ‘아버지...’

    적성검사결과에 불복한 남자의 마지막 모습이 문뜩 떠올랐다.

    “말하기 힘드니?”

    “...아뇨.”

    담임선생님의 한마디에 번뜩 정신이 든 나는 탄식하듯 읽었다.

    적성검사결과에 적힌 그대로,

    “무당(巫堂).”

    아직 본 적도 없는 귀신들이랑 일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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