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99화 (19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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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 시련의 방 앞에 섰을 때 바람이 불어왔다.

    요망한 바람이 무한한 바람을 채워주겠노라고 속삭였다.

    욕망의 부채질 앞에서 길 잃은 상처 입은 어린 양이 고뇌에 빠졌다.

    ***

    거대한 문이 열렸다.

    "여기는……. 거기구나."

    문틈으로 어둠이 보였다. 어둠의 중심에 고풍스런 침대가 있었다. 절정의 단풍이 떠오르는 침대 주변에 놓인 촛대가 일렁이며 점점 어둠을 몰아냈다.

    여명을 불러오는 촛불이 권태로운 그녀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트린 그때.

    석상처럼 굳어 있던 내 다리가 움직였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저절로 움직이는 내 육체가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 생각했다. 잠자리 날개로 만든 옷을 입고 침대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그녀를 보니까.

    "오랜만이네, 특등품."

    날 보며 손을 흔들며 반가운 인사를 건넨 그녀는 오랜만에 보는 디테였다.

    아프로디테.

    미의 여신으로 알려진 남자에 환장한 여자. 아니, 여신이었다.

    자꾸 말아 올라가는 오른쪽 입꼬리를 내버려둔 채 걸었다. 내가 디테의 침대로 향할 때마다 그 옆에 있는 장대 같은 촛대가 더욱 더 주변을 밝혔다. 침대에 다다르고 나서야 촛불이 처음처럼 잠잠해지는 게 꼭 내 길을 비춰주는 것 같았다.

    당연하다는 듯이 여전히 요염한 자태를 뿌리는 디테의 옆에 앉으며 맞은편 어둠을 바라보았다. 막상 그녀를 다시 보니 할 말이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동정을 앗아간 그녀에게 복수하겠다고 다짐한 게 다 거짓이라는 듯이.

    오히려 먼저 말을 걸어온 건 디테였다.

    "우리 특등품. 그동안 잘 있었니?"

    물론 디테의 고약함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내 사타구니 바로 앞까지 고개를 들이 밀며 몸을 숙이더니 뜨거운 입김을 뿌려댔다. 그러자 내 하물이 날 배신하며 불끈 솟아올랐다.

    "어머! 그렇게 그리웠니? 괜찮아, 괜찮아. 나만 믿으렴."

    "여전하네."

    드디어 말문이 열렸다. 복잡한 생각은 집어 치웠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 물음에 디테가 고개를 들어 날 올려다보았다. 그러더니 살짝 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뭐야, 이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잠시 당황하고 말았다.

    내 입술을 살짝 깨물었던 디테가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더니 이내 허리를 펴며 날 똑바로 바라보았다.

    "재미없는 건 여전하네. 예상은 했지만, 이러면 실망스러운데."

    이 년도 생각을 하는 구나.

    내가 그런 것처럼 디테도 내가 올 줄 알았나 보다.

    "그건 두고 보면 알 일이고. 바로 시작할 거야? 좀 피곤한데."

    "그럼 한 숨 자고 나서 할까?"

    시간의 제약을 받는 게 아니라 제약을 줄 수 있는 디테다운 대답이 이어졌다.

    솔직히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피곤한 건 맞았다. 다만 그 피곤함이 육체적 피곤함일 뿐이었다. 두 번째 관문이 생각보다 싱거웠기에 정신적으로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철저하게 단절된 층계라고 했던가?

    디테도 내가 두 번째 시련을 너무도 손쉽게 해치웠다는 걸 모르는 눈치였다. 음흉한 조력자가 건네준 정보니 확실했다. 차라리 디테가 방심하고 있을 때 끝장을 보는 게 낫지 싶었다.

    "아니. 바로 시작하자. 얼른 끝내고 집에 가서 쉬고 싶네."

    "자신감이 너무 과한 거 같은데? 너희 세상 시간으로 2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까먹은 거니?"

    "2년이라……. 여기 온지 벌써 두 달이나 지났단 말인가?"

    내 얼굴이 수심에 잠겼다. 두 달 동안 실종 상태와 마찬가지니 걱정스러운 게 당연했다. 물론 첫 번째 시련에서 떨어져나간 이들이 내가 있는 곳을 알리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삼촌이랑 숙모가 많이 걱정하시겠네.

    진심으로 날 위하는 사람. 아니, 가족의 걱정을 하는 것도 잠시였다. 이런 걱정은 쓸데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결전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괜히 디테의 수작에 말려들기보다는 어느덧 의미가 흐려진 복수에 도전하는 게 나았다.

    실잠자리의 날개로 만든 한복을 입고 있는…….

    "……한복이라고?"

    "그래도 눈이 썩지는 않았네? 어때? 잘 어울려?"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디테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빙그르 몸을 돌렸다. 치마를 살짝 쥐어든 채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도는 그녀의 자태는 뇌쇄적이었다. 염기를 폭발하는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내 피를 뜨겁게 달구었다.

    찌르르 울며 불붙은 심장이 찌그러졌고, 타들어가는 목구멍의 갈증을 풀기 위해 침을 삼켰다.

    잔뜩 굳은 내 얼굴. 아니, 상기된 내 얼굴에 디테가 더욱 요염한 미소를 뿌리며 내 무릎 위에 올라탔다.

    "여전히 순진하네. 귀엽다, 너."

    다리를 벌리고 내 허벅지 위에 올라탄 디테가 손을 뻗었다. 그녀의 매끈한 손톱이 내 볼을 타고 스르륵 떨어졌다. 부드러운 손톱이 지나간 자리에 홍조가 피어올랐다.

    와락!

    내 의지를 반하는 흥분에 결국 두 손이 반응했다. 어느새 내 손은 디테의 팔뚝을 강하려 움켜쥐고 있었다. 제법 고통스러울 법한대도 그녀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날 바라보며 반대쪽 손을 뻗어 내 얼굴에 붉은 낙서를 그렸다.

    움찔, 움찔!

    디테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내 몸이 잘게 떨렸다.

    무방비 상태로 얼마나 흘렀을까.

    내 얼굴에, 내 가슴에, 내 정신에…….

    디테의 각인이 그러졌다.

    "후욱! 후욱!"

    "못 참겠지? 그래. 참지 마. 날. 나를……."

    더 없이 흥분한 나를 침대에 눕힌 디테가 잠자리 날개를 붙잡더니 그대로 찢어 버렸다. 그녀의 손아귀에 갈기갈기 찢긴 잠자리 날개가 이내 고운 가루처럼 사방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떨어지는 잠자리 날개의 대부분은 내 몸에 안착하더니 이내 내 거죽을 파고 들어왔다.

    불끈!

    혈관까지 파고든 잠자리 날개의 가루가 내 피와 뒤섞이며 빠르게 내 이성을 지워나갔다.

    머릿속이 저물어가는 황혼처럼 변한 그때였다.

    "확실히 인간은 대단하네. 시계의 초침 같은 시간동안 이렇게 큰 발전을 한 걸 보면 말이야. 자칫 잘못했으면 내가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자랑스러워해도 돼. 하지만, 그거 아니?"

    나긋나긋.

    내 귓가를 간지럽히던 디테의 목소리가 잠시 잦아들더니, 이내 그녀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흘러 나왔다. 비록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안도하는 기색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격의 차이는 결코 좁힐 수 없다는 걸. 그 머저리가 애를 쓰기는 했지만. 그렇지만 내가 그 녀석의 장단에 놀아줄 정도로 멍청한 건 아니거든."

    아…….

    이성이 흩어지기 직전에서야 깨달았다. 그녀가 신이라는 걸. 여신의 힘은. 로키보다 더 높은 격을 이룬 존재는 규칙 속에 또 다른 규칙을 만들 수가 있었다.

    예외.

    굴레 밖의 존재가 성투의 법칙을 어기고 새로운 법칙으로 날 옭아맸다.

    성투의 힘이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고, 그것은 곧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실제로 나는 시나브로 디테의 몸짓에 홀린 상태였다.

    뒤늦게 로키가 은밀히 보냈던 올가미를 사용하지 않을 걸 후회했다.

    그리고 후회는 언제나 때가 늦었다.

    뚝.

    내 이성이 그대로 끊겨 버렸다.

    똑 같았다.

    처음 디테와 만났을 때 겪었던 것과.

    ***

    햘짝, 햘짝.

    사탕 빠는 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혔다.

    힘겹게 눈을 떠 보니 디테가 풀죽은 내 물건을 요리조리 핥고 있는 게 보였다.

    아, 쌌구나.

    이번에도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도대체 얼마나 발정 났으면 저럴까 싶었다. 완전히 죽은 내 물건은 아무리 봐도 소생이 불가능해 보였으니까.

    적어도 하루는 푹 쉬어야. 아니, 이틀은 쉬어야 회복이 가능할 것 같았다.

    이미 방전된 전기톱이었지만, 디테는 의외로 포기할 줄 몰랐다. 그녀는 아무리 입으로 정성껏 다루어도 전기톱이 반응이 없자, 이내 고개를 들고 내 다리를 품에 안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내 교차위의 자세로 전기톱을 음부로 문지르면서 내 다리를 가슴에 끼우고 흔들었다.

    가지가지 한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것만 아니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상황이었다.

    ……근데 뭐가 좀 이상하다?

    황당함도 잠시 이내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 이질감이 보인 곳은 다름 아닌 디테의 고운 얼굴이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모두 간직한 것 같았던 그녀의 얼굴에 균열이 일어나 있었다.

    불만.

    정확하게는 욕구 불만이 디테의 얼굴에 맺혔다. 순간 왜 저럴까 싶었다. 그렇게 하고도 부족한 거라 여겼다.

    그게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알 수 있었다.

    깨끗한 디테의 가랑이 사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

    거의 정신을 차린 덕분에 탄성을 터트렸지만, 디테는 전기톱을 살리겠다는 일념에 빠진 탓에 듣지 못했다. 그녀는 열심히 날 자극하며 어떻게든 죽은 물건을 세우려고 했다. 마치 그것이 존재의 의의라도 되는 듯이.

    그 일념 덕분일까?

    전기톱이 드디어 일어났다.

    "아아! 됐어! 됐다고!"

    얼마나 기뻤는지 디테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좋아했다. 그 덕분에 전기톱이 그녀의 음부를 파고들었다. 갑작스런 삽입이었지만 그녀는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더 좋아하며 눈을 감았다.

    "흐응, 흐응. 역시 특등품이야! 좋아, 좋아. 흐윽! 흥. 흐응."

    즐거운 콧노래 중간 중간 교태 섞인 비음이 터졌다.

    그때마다 전기톱에 더욱 피가 쏠리며 심장이 뜨거워졌다. 몸은 정직했고, 나는 흥분했다. 그것도 미칠 것 같았다.

    으……. 부러질 것 같네. 으으!

    덕분에 완전히 정신을 차린 나였지만, 도통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깜빡 정신을 잃은 건 아닐 터였다. 디테의 육신에 흐르는 땀방울이 그걸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왜 아직까지 내 불알이 털리지 않았는지. 그것이 알고 싶었다.

    혹시나 싶어 상태창이나 보관창을 불어 보았다. 여전히 시스템은 실행되지 않았다. 그 말은 곧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보스의 예외라는 걸 의미했다.

    아니. 아니지. 내가 여기 소환 된 이유가 뭔데?

    고개를 저었다. 휘몰아치는 쾌락의 열기 때문이 아니었다. 한 가지 짓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었다.

    일단 나는 보스의 임무 때문에 이곳에 소환 된 상태였다. 그런데 디테의 격에 함몰되어 예외적인 존재가 됐다. 한 마디로 로키의 힘이 닿지 않는 걸 의미했다.

    그렇다면 한 가지 가정이 가능했다.

    방전.

    여전히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나는 보스가 없다면 물건을 세울 수 없다면. 그렇다면 보스의 체계 밖으로 나가면 다시 고자가 될지도 몰랐다.

    아니. 맞네. 그거야.

    "……코드가 뽑히고 밧데리가 나갔구나!"

    "하응! 아으! 좋아! 역시 특! 특! 특……. 어? 너 정신을 차렸어? 벌써? 그럴 리가!"

    육신의 통제를 되찾은 나는 정확하게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여전히 난 고자였다. 보스가 없다면.

    그래서 내가 정신을 잃은 동안에도 디테가 날 쥐어짜는데 실패해 버린 것이다.

    이제야 빛이 보였다.

    승리의 빛을 발견한 나는 그 즉시 상체를 일으켰다. 이미 내 손을 출렁이는 디테의 가슴에 닿은 지 오래였다. 찰나의 방심에 디테는 자세를 풀어야만 했다.

    날 옭아매던 자세가 무너진 그때 나는 재빨리 새로운 자세를 잡았다.

    권태와 권태가 충돌하여 깨지길 바라며 준비한 자세는 다름 아닌 태초의 인간이 취했을 체위였다.

    후배위.

    순식간에 개처럼 엎드리게 된 디테였다.

    부끄러움은 없어 보였다. 그 대신 고개 돌려 날 바라보는 디테의 눈빛에 경악이 서렸다.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걸 목격한 사람처럼.

    "미혹이……. 내 미혹이 풀렸어? 어떻게!"

    "뭘 어떻게야. 처음도 아닌데. 윽!"

    내게 걸었던 미혹이 풀린 걸 깨달은 디테가 놀라는 사이 나는 얼른 물건을 밀어 넣었다. 디테의 육신 중 유일하게 소심한 국화무늬 구멍으로. 덕분에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엄청난 압박감에 신음을 흘려야했다.

    확실히 여신은 여신이네.

    색정으로 격을 이룬 디테는 모든 구멍이 예술이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의 한계를 벗어던진 그녀의 항문은 마치 살아 있는 낙지처럼 전기톱을 휘감았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녀의 구멍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질끈!

    이러다 질 것 같다는 위기감이 무식한 방법으로 이어졌다. 두 눈을 질끈 감은 나는 그대로 혀를 깨물었다. 타의가 아닌 자의로. 어금니에 깨물린 혓바닥에서 뜨거운 피가 스멀스멀 흘러나오며 입안이 비릿하게 변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흥! 그런다고 내가 질 것 같니?"

    간신히 정신을 차렸지만 디테는 디테였다. 그녀는 금세 당혹스러움을 수습하더니 이내 무릎에 힘을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아무리 건장해도 여신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순간 일어선 자세 디테의 국화꽃을 쑤시는 것도 잠시, 나는 그녀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디테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내 발목의 뒤를 양손으로 잡더니 힘을 주며 내 무릎을 강제로 굽혔다. 어릴 적 기저귀를 갈던 자세가 된 나는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야!"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디테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녀는 내 무릎이 내 가슴에 닿았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날 완전히 뭉갠 그녀가 이내 내 허벅지 뒤쪽에 앉으며 전기톱을 앞구멍으로 받아 들였다.

    내게 등을 보인 채 쪼그린 내 허벅지 위에 앉은 디테가 연신 허리를 앞뒤로 돌리며. 아니, 전후좌우로 돌리며 요분질의 정점에 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찌걱, 찔걱, 뿌직!

    "이 자지! 그냥 뽑아 버릴 거야!"

    이번에는 디테가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자존심이 상한 디테가 괴성을 지르며 내 전기톱을 빨아 들였다. 그녀가 허리를 돌릴 때마다 뿌리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동시에 귀두에서 터질 것 같은 사정감이 더해지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기껏 기회를 잡았는데!

    사실 기회가 아니라 행운이었지만, 그래도 너무 억울했다. 져도 이렇게 허망하게 지고 싶지 않았다. 뭐라도 해볼 수 있다면 다음을 기약할 수도 있었다.

    다음은 없었다. 완벽한 패배가 눈에 선했다. 이대로 지면 다시 보스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할 것만 같았다.

    억울하고, 또 억울했다.

    너무 억울한 나머지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그때였다.

    스륵, 스르륵.

    "……나?"

    내 눈 앞에 두 명의 내가 나타났다. 순간 헛것을 봤나 싶었다. 뿌옇게 변한 두 눈을 문지르고 다시 봐도 여전히 나와 똑같이 생긴 쌍둥이가 눈앞에 있었다.

    분신!

    억울함이 정점에 달한 순간 나도 모르게 어떻게든 굴욕적인 자세로 날 희롱하는 디테를 짓밟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분명 분신이라도 나와 날 어떻게 좀 해달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너무 열이 받아 잘 생각은 나지 않지만.

    그렇다면?

    "뭐긴, 뭐야. 이제 끝났다는 거지!"

    억울함이 사라지며 희망이 차올랐다.

    분신 삽입술이 펼쳐진 이상 다른 기술도 사용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여전히 표독한 얼굴로 내 자지를 뜯어내려고 하는 디테를 응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혼탁해진 규칙 때문일까.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미야프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에 나는 지원 기술을 하나씩 사용해야했다. 처음 기술을 사용하고 혹시나 싶어 한 번 더 기술을 사용해 보았을 때 기술이 제대로 시전 됐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윽고 모든 기술을 사용한 나는 지금 상황도 잊고 탄성을 터트렸다.

    "아……. 다 써지네."

    기본적으로 보스는 서로 한 번씩 공격을 주고받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사라졌다. 두 신격을 이룬 존재가 충돌하며 규칙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탓이다.

    턴 게임에서 갑자기 리얼 타임으로 변했네.

    승리의 여신이 있다면 지금 내게 미소를 짓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내 오른쪽 입꼬리가 다시 하늘 위로 승천했다.

    그것과 동시에 두 분신이 디테를 향해 달려들었다. 처음 흐릿한 모습을 하고 있던 녀석들이 어느새 뚜렷하게 변했다. 격의 간섭이 이루어진 게 확실했다.

    "……이건?"

    "늦었다, 이 년아!"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그림자 덕분에 분신의 존재를 깨달은 디테였다. 그건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상황이었다. 이미 상황은 무섭게 반전되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디테가 멈칫하는 사이 나와 분신들이 능숙하게 움직였다. 나는 그대로 침대 위에 누웠고, 두 마리의 분신은 각각 디테의 다리 사이와 머리 앞에 자리를 잡았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 디테의 세 구멍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것이다.

    물론 디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사실 육체적인 힘만 따지면 분신이고 나발이고 디테를 이길 수 없었다.

    그때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다.

    "공격권이 돌아 왔네?"

    "……설마!"

    기회가 온 이상 놓칠 내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 간섭이 됐다고는 하나, 이게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이런 생각조차 없었다. 그저 기회가 왔다는 사실에 몸을 맡겨 버렸다.

    그대로 디테의 뒷구멍에 전기톱을 쑤셔 박았다. 그와 동시에 분신들이 디테의 앞구멍과 입구멍을 막아 버렸다. 거침없는 파도 같은 박음질이 이어진 건 당연했다.

    퍽, 퍽퍽, 퍽퍽퍽!

    수욱, 쑥! 쑤우욱!

    뿌직, 뿌지직……!

    세 가지의 각기 다른 악기들이 장엄한 협주곡을 연주했다. 음탕하지만 당연한, 당연하지만 부끄러운. 번식의 본능이 외도하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이럴, 흑! 이럴 순 없으, 흑! 내가, 내……. 아악! 악! 말도, 안. 안……. 돼에에에엑……!"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악기의 연주가 더해지며 협주곡이 절정으로 치달았다.

    풀썩.

    마지막 연주를 끝낸 악기가 쓰러졌다.

    하지만 남은 세 악기는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그 대신 새로운 네 번째 악기가 연주에 참여해 멋을 더했다.

    "결국……. 후. 이겼네."

    힘겨운 전투 끝에 맛보는 쾌감은 여전히 맛있었다.

    마지막 만찬이 즐겁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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