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95화 (1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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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에서 벌어진 학살이 대형 화면에서 적나라하게 흘러나왔다.

이미 남궁에서 학살이 끝났음에도 아직 전투를 막 시작할 지점 밖에 영상이 흐르지 않은 이유는 이 대형 화면이 NPO BOSS의 특설 세트장에 위치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세계 최고의 사회자로 발돋움한 욜란테가 몸을 돌려 뒤쪽에 있는 대형 화면을 넉 놓고 보며 중얼거렸다. 단순히 중얼거린 것 같았지만, 그 와중에도 진행을 잊은 게 아닌 듯 했다. 확실히 그녀도 능숙해져 있었다.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닌가요?"

욜란테의 혼잣말 같은 물음에 답한 것은 그녀의 왼편에 자리한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였다. 그는 요즘 한창 냉정하면서도 동시에 객관성을 잃지 않는 평가로 유명한 랭커이자 평론가인 콘라드였다. 독일의 귀족가문 출신인 그는 날카로운 식견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위험한 게 아니라 무모합니다. 아무리 어썸 바나나라도 백 한 명의 왕족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자신감이 과해 자만한 듯 보입니다."

"이래서 노땅이 괜히 노땅이라는 거지. 콘라드 당신은 그래서 독일인이라는 거야. 저게 뭐 어때서? 어차피 어썸 바나나는 혼자 싸우려고 하잖아? 저 친구가 골이 빈 게 아니라면 노림수가 있다는 거지."

콘라드의 평가에 참지 못하고 일갈을 지를 20대 젊은 이탈리아 남자는 호전적인 성격으로 악명이 자자한 사비오였다. 그는 고영을 롤모델로 삼았다고 당당히 밝힐 만큼 공격적인 스타일을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자신보다 랭킹이 높은 이들을 자주 이기는 모습으로 젊은 층의 엄청난 지지를 받는 사람이었다.

욜란테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상반된 의견을 피력하는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물론 이내 다시 대형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어쨌든 두 남자의 표정을 살피며 진행 방향을 잡는데 성공한 것 같았다.

"성향이 확실히 갈리네요. 하지만 점점 진형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건 잘 모르는 제가 봐도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요? 혹시 숙녀 분들은 어떤 생각인가요?"

눈싸움 중인 두 남자를 향해 묻는 것은 생방송임을 감안하면 너무 위험하다 판단한 욜란테가 반대편에 있는 두 여성을 향해 물었다.

랭커는 아니지만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터넷 보스 방송의 BJ인 델리아와 블러디 헬 소속으로 부단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영국 여자 이사벨이 욜란테의 질문에 서로 바라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먼저 발언권을 얻은 사람은 이곳에서 가장 젊은 델리아였다. 그녀는 자신보다 10살이나 많은 이사벨에게 양해의 미소를 짓더니 이내 꽤 냉철한 감상을 내뱉었다.

"전 사비오와 콘라드의 말이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흔히 그러잖아요? 다굴에 장사 없다고. 보편적으로 볼 때 미스터 어썸의 행동은 무모한 게 맞아요. 하지만 그건 보편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말이죠. 미스터 어썸은……. 평범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은근히 사비오의 말에 힘을 실어주는 건가요?"

"부정하지는 않을 게요. 솔직히 왕족은 많이 나왔지만, 왕족 몽마를 혼자 잡을 수 있는 건 여전히 저 남자뿐이잖아요?"

"그렇지! 폭군이 괜히 폭군이야? 걸렸다하면 질질……. 아니. 가만두지 않으니까 폭군이라고 하는 거 아냐? 어썸 바나나는 이 시대의 유일한 폭군이라고!"

난데없이 사비오가 끼어들자 욜란테는 다시 화면에서 눈을 떼야했다.

다행히 그녀의 적절한 제지에 분위기가 너무 과열되는 건 막을 수 있었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물론 진행을 잊지는 않았다.

"자, 이제 곧 싸울 것 같네요. 노마를 개처럼 엎드리게 만들었어요. 그래도 당황하지 않고 어썸 바나나를 중앙으로 유인한 노마의 임기응변이 꽤 좋았죠?"

"최상위 랭커다운 센스였습니다. 최상위 랭커는 단순히 스펙이 좋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 얼마나 돌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느냐. 그것으로 결정됩니다. 섹스 배틀은 의외로 변수가 많은 게임이니 말입니다."

"흥! 변수는 무슨. 그것도 통하는 상대가 있고, 아닌 상태가 있어. 어썸 바나나에게 저딴 수작이 통할 것 같아?"

"이런, 이런. 사비오 씨. 계속 그러시면 제가 곤란해요. 일단 상황을 보면서 이야기 할까요? 이제 곧 전투가 치러 질 테니까요."

욜란테의 말대로 화면에서는 박고영이 막 노마의 볼기짝을 그러쥐는 게 보였다. 아마 곧 삽입을 하는 것으로 공격을 할 게 자명했다. 창과 방패의 대결이니만큼 다들 집중하기 시작했다.

단 한 사람을 빼고.

지금까지 조용히 앉아 말을 아끼던 이사벨이 슬쩍 입술을 달싹거렸다. 거의 이빨까지 그녀의 목소리가 튀어 나왔지만, 그녀는 결국 말을 아끼기로 한 것 같았다. 그 대신 묘한 눈빛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제 시작하겠네. 오르가즈믹 웨이브가.'

블러디 헬의 부단장인 이사벨이었다. 당연히 그녀도 박고영의 기술 연마에 동원된 적이 있었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대형 화면에서 박고영이 노마의 음부로 전기톱을 밀어 넣는 걸 보며 그 당시 기억이 떠오른 이사벨이 몸을 잘게 떨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숨을 참았다. 곧 벌어질 광경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박고영의 박음질이 끝났다.

"역시……!"

나름 마음의 준비를 했던 이사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낮게 신음을 흘렸다.

명확하게 사태를 파악한 이사벨과 달리 다른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이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무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충격적인 장면에 넋을 놓고 있던 욜란테가 특유의 직업의식을 떠올리며 정신을 차렸다.

"이, 이게 뭔가요! 이게! 지금 보셨나요? 일격. 한 방에 101명의 왕족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니, 무릎을 굻은 정도가 아니라……."

흥분까지 수습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결국 경악으로 물든 목소리가 점점 흐려지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다행히 멘트는 끊어지지 않았다.

"……엄청나군요. 제 분석이 틀린 건 정말 오랜만입니다. 이 정도로. 이만큼 어썸 바나나가 강력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그나마 냉정하기로 유명한 콘라드가 부드럽게 끊어진 욜란테의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목소리가 잘게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런 냉정한 멘트는 여기까지였다. 사비오와 델리아는 경악에서 벗어났지만,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환호성을 터트리며 박수와 함께 전율 섞인 탄식을 터트렸다.

"끝내주네, 끝내줘! 와……. 이거 난 영원히 짝퉁이겠는데? 이게 말이 돼? 미쳤다, 미쳤어!"

"사람이, 사람이 아니네요. 진짜, 정말. 어흐! 나 어떡해요. 쌀 것 같아요. 보기만 했는데."

모두가 전율하고 있을 때 대형 화면의 영상이 끝났다.

그제야 PD의 신호를 받은 욜란테가 정신을 차리며 카메라를 향해 몸을 돌렸다. 방송은 이제 시작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 지금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전파해야했다.

패널들을 다독인 욜란테가 자연스럽게 분석의 물꼬를 틀었다.

"휴……. 아직도 손에 땀이 차네요. 아무튼. 어썸 바나나의 활약 잘 봤습니다. 이제 분석을 할 시간이에요. 그런데 분석을 할 수 있을까요?"

욜란테의 진담과 농담이 섞인 물음에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는 패널들을 탓하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방금 본 전투 모습은 분석이 불가능해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고영 씨는 광역 기술이 없는 게 유일한 약점이라면 약점 아니었나?'

의문이 들었지만 욜란테는 프로였다. 그녀는 금세 미소를 지으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진행을 시작했다.

"자, 여전히 다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네요. 이해해요. 저도 지금 미치겠어요. 그래도 방송을 하긴 해야겠죠? 여기서 끝냈다가는 시청자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그냥 욕을 먹는 게 낫겠습니다. 분석이 불가능합니다, 이건. 그저 상상을 초월했다. 이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무슨 쓸데없는 말을. 그냥 끝내주는 겁니다. 왜 전 세계 여자들이 어썸 바나나에게 박히고 싶어 하는 지. 그 이유를 보여준 겁니다. 괜히 내가 짝퉁이라 욕먹으면서까지 어썸 바나나를 따라하는 게 아니라고!"

사비오의 말은 거칠었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박고영의 강함을 인정했다.

'이거 오늘 방송 완전 망하겠는데. 어떡하지?'

패널들이 의욕을 잃은 상황에 욜란테가 방송의 여파를 신경 쓸 때였다.

지금까지 말을 아끼고 있던 이사벨이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오르가즈믹 웨이브라는 기술입니다. 어썸 바나나가 보여준 기술은."

"네? 어어, 잠깐만요. 이사벨은 어썸 바나나가 사용한 기술을 알고 있나요? 아니, 다시 물어 볼게요. 이사벨. 당신은 어썸 바나나의 광역 기술을 어떻게 알고 있죠?"

절망 속 작은 희망을 잡은 욜란테가 고개를 홱 돌리며 이사벨을 향해 질문을 쏟아냈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패널들의 시선이 담담한 이사벨의 얼굴에 꽂혔다. 그들 모두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다는 눈빛이었다.

자못 부담스러운 상황임에도 이사벨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미 이런 상황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담담하게 PD에게 신호를 보내며 고개를 돌렸고, 사람들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 대형 화면을 돌아보았다.

이윽고 대형 화면에 박고영이 절정 투하를 쓰는 장면이 느린 속도로 흘러 나왔다.

이사벨은 막 마지막 삽입을 끝내고 전기톱을 빼내는 박고영의 모습이 나올 때 다시 입을 열었다. 당연히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절정 투하에 대한 설명이었다.

"삽입 공격을 끝내고 전기톱을 뺄 때 노마의 음부를 보세요. 투명한 아지랑이가 일어나 있죠? 저건 화면이 잘못된 게 아닙니다."

"전기톱이요?"

차근차근 설명하는 이사벨의 말에 델리아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사벨은 델리아에게 박고영이 자신의 물건을 전기톱이라 부른다고 설명해주었고, 델리아는 무언가 감명 받은 얼굴로 변했다. 그러더니 계속 한 가지 단어를 되뇌기 시작했다.

"체인 쏘. 아, 전기톱. 전기톱에 찔리면, 아아! 전기톱!"

이사벨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녀도 처음 박고영에게 당했을 때 딱 델리아의 얼굴이었으니까. 심지어 몽롱한 눈빛까지 비슷하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욜란테가 시기적절하게 끼어들어 이사벨을 상념에서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이사벨. 도대체 오르가즈믹 웨이브가 뭐죠? 무슨 기술이기에 저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상상이 안 돼요. 아무리 그래도 저기 있는 여자들은 모두 왕족이잖아요? 나름 단단히 준비도 했을 텐데요?"

속사포처럼 떨어지는 욜란테의 질문에 이사벨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달랐지만.

"음. 저도 정확하게 들은 게 아니라 확답을 하긴 어려워요. 그래도 쉽게 풀어서 말하면 이런 거예요. 어썸 바나나가 공격을 끝냈을 때 패시브 스킬이 발동돼요."

"그게 오르가즈믹 웨이브인가요?"

"네, 맞아요. 그 웨이브는 이름과 달리 무조건 절정을 느끼게 해주는 건 아니에요. 공격을 가한 대상에게 준 피해의 절반 정도를 광역 데미지로 돌리는 것일 뿐. 물론 어썸 바나나의 공격력이 엄청나다보니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이 패시브 공격에 당하면 절정에 오르게 되겠네요."

경험이 동반된 차분한 이사벨의 차분한 설명이 끝났다.

그러자 욜란테를 필두로 패널들이 경악에 찬 비명을 질러댔다.

"……세상에!"

"패, 패시브라니! 말도 안 됩니다! 그런 기술이 있다는 건 듣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어이, 콘라드. 당신이 무슨 백과사전이라도 돼? 보스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어썸 바나나라면 가능해! 남자들의 꿈을 이룬 존재라면!"

"전기톱, 전기톱 마사지. 아아……!"

충격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것은 비단 스튜디오만 국한 된 게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전 세계에서 이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사람들 역시 충격에 빠져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때 욜란테의 귓속에 더욱 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마른침을 꿀꺽 삼킴 욜란테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방금 들은 소식을 읊었다.

"방금 어썸 바나나의 전투 기록이 들어왔습니다. 네. 이사벨의 말이 맞았어요. 그녀의 말대로 광역 기술이 무한 기술이라네요.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다시 욜란테의 입술에 꽂혔다.

잠시 목을 축인 욜란테가 여전히 갈라진 목소리로 일곱 자리의 숫자를 읊었다.

"최소 데미지 1,432,454. 최대 데미지 1,938,026."

"거짓말! 거짓말이오!"

"좆문가 나셨네! 어썸 바나나 무시 하냐! 캬! 취한다, 취해!"

"전기톱, 아아! 어썸 체인 쏘. 어쩜 좋아!"

이미 세 사람은 이성을 놓은 지 오래였다.

어쩔 수 없이 욜란테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 속 놀람을 감추고 있는 이사벨을 바라보며 도움을 청했다. 그녀로서는 어떻게든 이 소식의 진실성을 어필해야했다. 그게 그녀의 임무라면 임무니까.

다행히 이사벨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에요. 일전에 우리 길드원들 저렇게 쓰러트릴 때. 그때 제가 받은 피해가 그보다 컸으니까요. 그런데 욜란테. 정확한 사실을 전하지 않을 생각인가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우리 보스라치는 언제나 사실에 입각한 사실만을 전하기로 시청자 여러분들과 약속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너무 엄청나서……."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에요. 정 못 믿겠다면 제 전투 기록을 공개할 의향도 있어요.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같은 결과를 얻은 기술 실험의 그날 얻은 전투 기록을."

욜란테는 이사벨의 보증에 겨우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다독일 수 있었다.

잠시 눈을 감은 욜란테가 이윽고 아예 쉰 목소리로 아직 말하지 않은 사실을 카메라 앞에 던졌다.

"방금 전해드린 일곱 자리 숫자는. 누적 데미지가 아니에요, 여러분. 정말 믿기 어렵겠지만. 어썸 바나나는 노마에게 총……."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는지, 욜란테가 자신의 진행 카드에 숫자를 적었다. 그러더니 자신이 적은 숫자를 카메라 앞에 공개했다.

[15,094,582]

평론가도, 분석가도. 심지어 빠순이도.

모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홉 번의 타격이 만들어낸 여덟 자리의 아름다운 숫자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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