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94화 (19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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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궁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날 맞이한 이는 역시나 도리였다.

    "오셨사와요!"

    독특한 말투와 함께 날아온 도리가 내게 안겨들었다. 그녀는 더 이상 인어가 아니었다. 동화 속 인어 공주처럼 그녀는 두 다리로 걸어 다녔고, 조개 두 짝이 전부였던 옷도 이제는 사람답게 입은 상태였다. 비단 겉모습만 변한 건 아니었다.

    250만 짜리니까.

    총 250만의 경험치를 도리에게 쏟아 부었다. 경험치가 남아돌아서 그런 면도 있었지만, 이미 1천의 병력을 확충하여 더 이상 돈 쓸 곳이 없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궁급의 병력 한계는 1천이었으니까.

    반쯤 실험이라 여기며 한계까지 도리의 특성과 능력을 강화하고 성장시켰다. 그런데 한계까지 성장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장착창과 상징창.

    여전히 스탯을 올리거나 기술을 배울 수는 없었다. 다만 아이템을 장착하거나 상징을 제단에 올릴 수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였다. 이런 숨은 효과를 확인한 나는 얼른 이름 없는 공주를 도리처럼 성장시킨 건 당연했다.

    덕분에 500만 경험치가 뭉텅 사라졌지만, 여전히 쓴 돈 보다 남은 돈이 더 많은 나였다.

    그렇게 한 동안 공주와 도리를 꾸미는데 돈을 쓰다 보니 웬만한 랭커 부럽지 않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공주야 수문장이다 보니 방어 위주로 손을 봤지만, 도리는 아니었다. 도리는 지금까지 내가 쓰지 못했던 마법 관련 물품들을 독식하며 진일보한 상태였다.

    실제로 대련을 붙이니 막상 막하였지.

    나는 이름 없는 공주를 남성체로 변화한 상태에서 싸워 42승 37패를 기록한 도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물었다.

    "병력 배치는?"

    "영주님 명령대로 했사와요. 모두 1층 미로에서 대기 중이와요."

    "아, 그거 바꾸려고. 그냥 여기 3층으로 모이라고 해. 그리고 입구를 중심으로 크게 진을 쳐. 도망가지 못하게."

    "아하! 영주님의 위엄을 보이시려고! 알겠사와요. 당장 명령을 내리겠사와요!"

    도리가 하늘하늘한 치마를 양손으로 잡아 올리더니 이내 두 다리로 맹렬히 달려 나갔다.

    그 사이 나는 날 도와주기 위해 찾아온 이들을 초대했다. 물론 전투에 기용할 생각은 없었다. 그들은 그저 관객일 뿐이었다. 그것을 위해 수문장이 있는 곳의 맞은편에 고대 로마 검투장의 일부를 떼어와 붙여 놓은 상태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3층의 한쪽을 차지한 관객석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나도 경험치 먹고 싶어!"

    쓸데없는 김아연의 헛소리가 날아오는 게 좀 거슬렸지만, 다른 이들은 신기한 눈으로 관객석을 살피며 자리를 잡았다. 그 사이 나는 일천의 병력이 진을 치고 사방을 막고 있는 3층 입구로 걸어갔다. 도리가 옆으로 다가와 시간이 됐음을 알렸다.

    "영주님! 이제 시작하와요!"

    "그래."

    본래 계획은 미로에 병력을 투입해 각개 격파를 할 생각이었다. 모지현이 적들의 상태창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충격을 제대로 주려면. 좀 과격해야 돼.

    경고이자 증명.

    나는 이번 영지전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당신들이 날 따라 잡으려면 한 세기는 더 지나야 한다고. 아니, 죽을 때까지 나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영지 쟁탈전'을 시작합니다.]

    [전체 임무 '영지 방어'를 생성합니다.]

    드디어 영지전이 시작했다.

    수문장 위에 설치한 돈지랄 중 하나인 거대한 화면을 통해 1층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이 흘러 나왔다. 밀림보다 더 난해한 미로에 다들 반란군은 정신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간혹 길목에서 마주친 이들끼리 공격을 하며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관객석에 앉은 든든한 친구들이 하하 호호 웃으며 한 편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관람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층에 있는 3층 입구에 적들이 모였다. 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다. 얼추 세어보니 정말 100명이 넘는 숫자였다.

    "……왕족이 다 몰려왔나?"

    현재 지구에 있는 왕족은 총 132명이었다. 반면 왕족이 가지고 있는 영지는 14개에 불과했다. 그 중 현실의 왕족이 가진 영지가 8개로 절반이 넘었다. 게다가 현실의 왕족은 대부분 내 버스를 탄 적이 있는 좋은 경험치 공급원들이었다.

    내 손님들을 제외하면 남은 왕족은 100명이 조금 넘었다. 오늘에서야 그 숫자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손님이 아닌 왕족은 딱 101명이라는 것을.

    "백한 마리 달마시안이라니."

    문득 지친 얼굴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왕족들이 강아지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왕족이라지만 의복이 없는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나처럼.

    그 백한 마리 달마시안들이 중세 귀부인의 복장을 한 여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그 귀부인이 바로 노마였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7년만의 외출에서 먼로가 입은 복장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외모만큼은 먼로와 정말 비슷했다.

    물결처럼 찰랑거리는 황금빛 머릿결, 잡티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 거기에 새까만 점과 새빨간 입술까지.

    특히 새빨간 입술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괜히 먼로의 입술, 리즈의 눈이라 하는 게 아니네."

    놀람도 잠시 나는 수문장 위에 있는 화면에서 눈을 뗐다. 더 이상 화면을 통해 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3층 입구를 향해 눈을 돌리는 순간 노마의 명령을 받은 여자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장한 표정을 한 채 처음으로 3층에 올라선 여자가 주변을 봉쇄하고 있는 몽마 군대를 보며 흠칫 놀라는 게 보였다.

    얼마나 놀랐는지 입만 쩍 벌리고 있는 여자였다.

    이윽고 3층 입구에 석상처럼 굳은 여자들이 한 명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그리고 백 명.

    꾸역꾸역 물을 뱉어내는 연못처럼 각양각색의 모습을 한 100명. 아니, 101명의 달마시안들이 3층 입구에 원형 방진을 치며 자리를 잡았다. 자의적으로 만든 진형이 아니었다.

    그래도 수장이라는 걸까?

    가장 마지막에 나타났던 노마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나는 내 쪽으로 걸어 나오는 노마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잡아 당겼다. 내 앞에 선 노마가 내 미소에 놀라 움찔하더니 이내 날카로운 눈빛을 뿌렸다.

    "오랜만이야, 어썸 바나나. 정말 반가워. 정말."

    "반갑다라. 정말 반가운가?"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진심이야. 아니, 우리는 진심이라고 해야 맞겠지. 여기 있는 동료들은 모두 너에게 당하고 이를 간 사람들이거든!"

    백한 마리 달마시안.

    그들은 모두 여자였다.

    슬쩍 시선을 돌려 사실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마에게 물었다.

    "너네 길드는 오히려 남초 집단이 아니었나? 네 추종자들이 아주 바글바글 한 걸로 아는데."

    내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노마가 어깨를 한 번 으쓱이더니 이내 별 거 아니라는 어투로 답했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그 친구들은 아직 실력이 부족하니까. 괜히 머릿수를 채워봤자, 지휘하기만 어렵지 않겠어?"

    "솔직하네."

    "그럼. 솔직하기라도 해야지."

    이미 내 영지 쟁탈전의 모습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일부러 보여준 것도 없지 않았다. 이왕 덤벼들 것이라면 제대로 덤볐음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일부러 여성체로 이루어진 군대를 만들었다. 그래야만 나와 다른 취향의 남자들이 내게 접근할 수 없으니까. 내 군대는 일종의 취향 깔때기였다.

    그런데 이런 내 목적으로 인해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Awesome Banana vs Girls]

    한 칼럼의 제목처럼 나와 전 세계 여자들의 대결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흥미를 위한 언론의 수작이었지만, 그 효과만큼은 수작정도가 아니었다. 꽤 많은 이들이 이런 구도에 힘을 실었고, 그 중에는 여자들의 인권을 세운다는 명목으로 활동하는 여자들이 많았다. 물론 오히려 여자들의 인권을 깎이는 원흉이 되기 십상이었지만.

    다만 눈앞의 노마는 오히려 페미니스트를 혐오하는 걸로 유명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대화가 길어졌다.

    "이유가 있나 보네. 굳이 여자들로 덤빈."

    내 확신이 담긴 목소리에 노마는 더 이상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굳이 남자를 포함하지 않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속내를 너무 쉽게 들킨 노마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지그시 날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튼 눈치는 빨라가지고. 이런 음흉한 남자를 왜들 그렇게 좋아하는 거야?"

    딱 봐도 알겠다. 노마가 화제를 돌리려하는 것을.

    나는 노마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움직였다. 아예 대놓고 그녀들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으로 말이다.

    "교환원이 동성에게만 전달이 가능한 건가? 아니면 그냥 아직 숙련도가 낮은 건가?"

    흠칫!

    노마뿐만이 아니었다. 담담한 내 목소리를 들은 이들이라면 모두가 몸을 움찔하며 눈동자가 흔들렸다. 모지현이 구해준 정보가 꽤 쏠쏠한 효과를 불러왔다.

    놀람도 잠시 노마가 와락 일그러진 얼굴로 날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어떻게 알았지? 설마 배신자가!"

    "뭘 또 그렇게 오버해? 아, 언론이 떠드는 대로라면 배신자가 맞기는 하겠네."

    "아마조네스! 이 망할 년이! 또!"

    "너무 그러지 말라고. 그 친구도 먹고 살아야지? 요즘 요트 사느라 지갑이 홀쭉해진 것 같던데."

    정보 상인으로 우뚝 선 아마조네스는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지만, 동시에 막대한 원한을 사기도 했다. 만약 그녀가 랭커 자리에서 내려온다면 다음날 사체로 발견될 확률이 순금의 순도와 같다고 할 정도였다.

    아마조네스의 악명을 이용한 덕분에 손쉽게 그들의 비밀 병기를 확인한 나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주제 파악을 못하는 달마시안들을 혼내는 것뿐이었다.

    "자, 그럼 시작할까?"

    "흥! 우리 모두 3차 전직자들이라고! 게다가……!"

    "아, 그래. 너희 새로운 오더가 대단한 건 알겠네. 레스트가 잠자코 있는 것 보니까. 단순히 명령만 내리는 게 아닌가 봐?"

    "콜린! 시작 해!"

    노마는 더 이상 내 술수에 휘말리지 않았다. 그녀는 대뜸 뒤편으로 소리를 쳤고, 이내 원형 방진을 이루고 있는 여자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는 그녀들은 정예다웠다.

    스스로 장기말이 돼서라도 그렇게 이기고 싶은 건가?

    보스의 이해도가 높아진 덕분에 하나를 물으면 둘을 깨달을 정도가 된 나였다. 교환원의 직업을 가진 여자가 재미있는 기술을 가진 게 확실했다. 단순히 혼전 속에서 명령을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동료들을 수족처럼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단체 전투 중에는 명령 하달이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걸 넘어 한층 더 진화한 건 맞았다.

    하지만…….

    "누가 가만히 있어 준데?"

    보이지 않는 교환원이 준비를 할 때까지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나는 로봇 만화를 볼 때마다 합체할 때 싸우라고 소리치는 놈이니까.

    나는 그대로 노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

    높이 솟은 관중석에 소란이 일었다.

    "어, 어어! 저거!"

    "위험해! 왜 저러는 거야!"

    "저 새끼 미쳤네. 돌았어. 그렇게 뒤지고 싶었나?"

    당연한 반응이었다. 박고영이 갑자기 백 한 명의 왕족 사이로 들어간 탓이다. 굳이 위험을 감수 할 필요가 없었기에 괜히 무리하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걱정하는 와중 한 사람만이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유일하게 웃고 있는 그녀는 다름 아닌 블러디 헬이었다. 영국에 있는 그녀였지만, 남궁에 초대 받는 데는 문제될 게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이들 중 박고영을 가장 많이 알고 있었다.

    "그때처럼 하려나 보네. 하여튼 지독한 남자라니까. 저 남자는."

    "당신!"

    따로 초대 받아 살짝 동떨어져 있던 블러디 헬을 향해 김아연이 삿대질을 하며 다가섰다.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례에 가만히 있을 블러디 헬이 아니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운 채 스산한 얼굴로 김아연을 바라보았다.

    싸늘한 블러디 헬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김아연은 거침이 없었다. 그녀도 똘기라면 누구 못지않은 사람이었다. 자리를 옮겨 블러디 헬의 옆자리로 걸어간 김아연이 뜬금없이 물었다.

    "알고 있는 거 말해 봐. 도대체 저 새끼가 왜 저러는 거야? 아씨. 베팅 크게 했는데. 왜 저래 진짜! 야! 이 멍청아!"

    "……이제야 저 남자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군."

    "뭐래? 헛소리 하지 말고. 좀 말해보라고!"

    알쏭달쏭한 블러디 헬의 한 마디에 김아연이 홱 고개를 돌려 눈을 부라렸다. 반면 블러디 헬은 편안한 미소로 답했다. 그것으로 모자라 턱짓을 하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격 떨어지게 설치지 마라. 핑크 마이크."

    "어? 당신 나 알아?"

    "저 남자에게 무턱대도 덤비다가 똥구멍이 털린 여자라면. 잘 알고 있지."

    "하! 그러는 넌 안 털렸냐? 이게 어디서 잘난 척이야? 저 새끼한테 구멍이라는 구멍은 다 털려 먹은 게!"

    김아연도 블러디 헬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아무리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여자라지만 그녀도 나름의 정보 체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제하더라도 블러디 헬은 꽤 유명한 여자였다.

    "날 아는 군!"

    "알지. 3차 전직하고 까불다가 제대로 털린 거."

    "큭. 궁금하면 그냥 닥치고 봐라. 저 남자가 얼마나 지독한 남자인지 곧 알 수 있을 테니까."

    "자꾸 말 돌릴래? 뭔데?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하는 건데! 말 좀 하라니까! 야! 쌩까냐?"

    쌩깠다.

    블러디 헬은 더 이상 김아연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 대신 아예 백한 마리 달마시안들의 중심에 들어선 박고영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막 박고영이 노마를 달마시안처럼 엎드리게 하는 게 보였다.

    "이제 시작하겠군. 후!"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이는 블러디 헬의 모습에 오히려 김아연이 놀랐다. 그녀는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저 미친년이 긴장할까 싶었다. 자연스레 그녀의 시선이 박고영을 향해 돌아갔다.

    그렇게 관객 모두의 눈동자가 박고영에게 고정됐다. 이윽고 그들의 눈에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던 박고영이 엎드린 노마의 엉덩이 사이로 전기톱을 밀어 넣는 게 잡혔다. 여전히 우람한 박고영의 물건에 다들 한 마디씩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저거 박제할 수 없을까?"

    "내가 똑같이 만들어 봤거든? 딜도 장인에게 부탁해서. 그런데 영 느낌이 안 살더라."

    "당연하지. 저건 딴딴하기도 하지만, 뜨거워서 좋은 거라고."

    "아, 꼴려. 평생 못 벗어날 것 같아."

    "그냥 포기하고 첩이라도 되게 해달라는 게 나을 지도……."

    별의 별 말이 다 나오고 있을 때 유일하게 다른 말을 내뱉는 이가 있었다.

    양손을 불끈 쥐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블러디 헬이었다.

    "드디어……. 시작한다!"

    곁에 있던 김아연이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블러디 헬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말 그대로 잠시였다. 그녀는 이내 다시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김아연의 눈동자가 찢어질듯 벌어졌다.

    쿵! 쿠르르……!

    "아아아앙……!"

    "가, 가아앗!"

    "싫어! 싫어어억!"

    "꺄악!"

    달마시안 무리의 중심에서 폭탄이 투하된 것 같았다. 박고영이 떨어트린 폭탄이 터지며 그 중심에 있던 노마가 바닥에 엎어지며 사지를 부들부들 떨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폭발의 여파로 박고영을 둘러싸고 있던 여자들이 추풍낙엽처럼 날아갔다.

    홍콩으로.

    "……오르가즈믹 웨이브!"

    절정 투하.

    10개의 기술치로 배울 수 있는 이 기술은 박고영이 가진 유일한 광역 공격 기술이었다. 그 기술의 범위는 반경 10미터가 넘어 보였고, 위력 또한 총 데미지의 절반이나 됐다. 5할이지만 경시할 수 없었다. 박고영의 공격력은 1할이라도 무지막지했으니까.

    절정의 파도에 휩쓸린 여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냥 쓰러졌다. 그리고 몸을 떨었다. 아주 꼴사납게.

    자신들이 뿜어낸 애액으로 점철된 바닥에 누운 여자들이 바들바들 거리는 사이에 한 남자가 우뚝 섰다.

    한 방에 모든 걸 정리한 박고영이었다.

    전율에 휩싸여 있던 블러디 헬이 오연한 박고영을 보며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마약 같은 남자. 도저히 싫어할 수가 없겠구나."

    관객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는 남자가 박고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가 주는 절정의 환희는 너무 중독성이 강했다.

    한 번 중독된 이들은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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