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90화 (190/200)
  • <-- A Year of Revolution -->

    잠시 중학교 2학년처럼 변했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중학교를 다녀 본적도 없으니까.

    불쑥 솟아나는 창피함을 무마하기 위해 나는 얼른 능력창을 열어 스탯을 찍었다.

    마음먹었으면. 못 먹어도 고!

    사실 전혼 사냥에 쏟아 부은 은화와 동화랑 달리 금화는 넉넉했기에 저지른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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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격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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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력 : 150 + 145

    + 지력 : 0 + 85

    + 체력 : 100 + 125

    + 속도 : 100 + 125

    + 정확 : 0 + 85

    + 행운 : 20 + 93

    + 잔여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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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운 20개를 투자한 덕분에 실제로는 28개의 능력치를 투자한 효과를 얻었다. 능력치를 증가시켜주는 업적 덕분이었다.

    스탯 투자를 마친 나는 오랜만에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그동안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세기의 섹스 심벌 노릇을 하느라 들여다 볼 틈이 없었다. 전 세계를 이동하고 간간히 짬을 내서 몽마를 사냥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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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활력 : 26,100(+8,365)

    + 정력 : 3,250(+375)

    + 경험 : 2,624,769(+1,26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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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격력 : 6,667(+3,911)

    + 마법력 : 9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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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어력 : 1,670(0)

    + 항마력 : 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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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중률 : 236(0)

    + 회피율 : 27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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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도 : 98(+9)

    + 치명 증폭 : 882%(+159)

    + 치명 저항 : 1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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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쇠장갑은 무시무시했다.

    그동안 바뀐 상징으로 인해 치명 증폭이나 치명 저항이 꽤 올랐고, 또한 타격력의 증가도 꽤 있었다. 그러나 타격력을 가장 많이 올려준 것은 다름 아닌 신의 쇠장갑이었다. 이것을 착용하는 순간 타격력만 2,250이 올라갔으니까.

    다시 경험한 적도 없는 중학교 2학년 때의 표정을 짓기 전에 나는 얼른 상태창을 닫았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내 핸드폰이 울렸다.

    "나 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원장이었다.

    두근, 두근!

    나 원장이 보낸 메시지를 읽는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녀에 대한 어설픈 마음이 남아 있어서?

    아니다. 나와 그녀는 이미 친구 사이로 돌아간 지 오래였다. 반 년 전 소리 없이 나타나 소리 없이 사라진 나 원장에게 서운하기는 했지만 담담한 내 모습을 통해 확인까지 했었다.

    그런데도 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유는…….

    "새로운 왕족 몽마?"

    테러 집단의 인질이 된 왕족 몽마 말고 또 다른 왕족 몽마가 전 세계에 나타났다.

    순간 사고가 정지됐지만, 이내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나는 뉴런처럼 빠르게 집밖으로 몸을 날렸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

    천사들의 도시로 향하고 있을 때 내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쩝. 파티원으로 현실에 나타난 왕족 몽마를 스틸하면 좋을 텐데.

    당연히 불가능했다.

    영지 쟁탈전을 위해 나타난 왕족 몽마가 아닌 이상 왕족 몽마는 고유의 권역을 지니고 있었다. 그 권역은 참가자로 따지면 영지였고, 그러다 보니 그곳에서는 무조건 선공을 맞고 시작하는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사냥당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꾸 몸이 쑤셨다. 퍼스트 클래스인데도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자 담당 승무원이 다가와 친절한 미소와 함께 어디가 안 좋은지 물었다. 물론 아무것도 아니라며 물이나 한 잔 달라고 했지만.

    왜 전용기 전용기 하는지 알겠네. 이거 직항이 있어도 시간이 안 맞으니 영 그러네.

    잠시 후 승무원이 공손히 가져다 준 물로 목을 축인 나는 그대로 누워 버렸다. 자려는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정보가 필요했다.

    [@Awesome Banana : 뭐함? 소식 들었음?]

    여전히 단아한 아나운서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김아연에게 연락을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그 뒤로 그나마 알고 있는 이들에게 연락을 해 보았지만, 역시나 하나 같이 감감 무소식이었다.

    내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진상 손 놈으로 각성하려고 할 때였다.

    [@Miho Szuki : 파리로 슝슝! 처형된 왕비가 나타났대요! 마리 앙투아네트요!]

    거리낌 없이 자신의 본명을 별명으로 등록한 미호였다.

    다시 착한 손님이 된 나는 좌석에 누우며 답장을 보냈다.

    [@Awesome Banana : 그거 이름만 따온 걸 텐데.]

    [@Miho Szuki : 그래도 얼굴은 비슷하지 않을까요? 기대돼요! 진짜루! 근데 당신은 어디로 가요?]

    [@Awesome Banana : 어?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어디 가는지?]

    [@Miho Szuki : 에이, 욕심꾸러기잖아요. 당신은. 당연히 사냥하러 갈 거라 생각했어요.]

    올. 의왼데?

    하긴, 한 분야에서 큰 발자국을 찍은 이들 중 어리석은 이는 없었다. 아, 정치는 제외하고. 아니. 그냥 권력을 쥐는 곳은 빼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 나는 얼른 진짜 궁금한 걸 물었다.

    [@Awesome Banana : 혹시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알아요? 급하게 비행기에 오르다보니 확인을 못했거든요.]

    [@Miho Szuki : 피. 그거뿐이에요? 전에 내가 부탁한 걸 들어주지 않았으면서. 너무 뻔뻔한 거 아니에요?]

    뭐지, 이 날선 반응은?

    머리가 모로 돌아갔다. 당연히 기억을 못했으니까. 곰곰이 생각을 해 봤지만, 딱히 미호에게 부탁 받은 게 없는 것 같았다.

    미호도 오지 않는 메시지를 통해 이 사실을 알았는지 날선 고슴도치 같은 글자를 보냈다.

    [@Miho Szuki : 와. 기억 못한다. 너무해!]

    [@Awesome Banana : 원래 내가 기억력이 좀 나쁩니다. 머리가 나빠서 미안해요.]

    [@Miho Szuki : 흥! 년 초에 그랬잖아요. 내 친구 좀 달래주라고.]

    아……. 그거?

    기억이 났다. 동시에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어쩔 수 없었다. 미호가 부탁한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친구인 유코와 자라는 거였으니까.

    그때는 농담으로 여기고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는데, 농담이 아니었나 보다.

    나는 단호하게 대응했다. 나름은?

    [@Awesome Banana : 유코 씨 결혼했다면서요? 그것도 무서운 집안이랑.]

    [@Miho Szuki : 착한 남자였어요. 그녀의 순결을 지켜줄 만큼. 결혼하고 그만 떠났지만.]

    이건 또 무슨 얘기래?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항상 반지를 끼고 있기에 유부녀인 줄 알았는데, 정확하게 그건 또 아니었나 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아무 여자와 막 자고 그러는 사람은 아니었다. 진짜로.

    [@Awesome Banana : 그건 유감입니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니에요. 어쨌든 전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바람직한 남자입니다.]

    [@Miho Szuki : 유코도 바라고 있다면요? 그럼 생각을 바꿀 의향이 있을까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괜히 미호의 화술에 말려든 기분이었다. 실제로 내가 바라는 정보는 한 글자도 얻지 못한 채 계속해서 그녀의 의도대로 놀아나고 있었다.

    이번에는 진심으로 단호하게 나섰다.

    [@Awesome Banana : 그건 당사자들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미호 씨가 그렇게 나서는 거. 내 입장에서는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Miho Szuki : 역시 나쁜 남자. 한국 남자들은 다 당신처럼 나쁜가요? 그것도 매력적이면서?]

    [@Awesome Banana : 내가 잘난 겁니다. 그보다 상황이 어떤지 알고 있습니까?]

    [@Miho Szuki : 치. 역시 나쁜 남자. 그런데 어쩌죠? 당신이 너무 좋아요.]

    웃기시네.

    미호의 능글맞은 태도에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와 관계가 진척된다 해도 섹스 파트너 이상은 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건 미호도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다행히 미호는 더 이상 장난을 치지 않았다. 그냥 심심했던 모양이다. 금세 그녀가 현재 상황을 알려주었다.

    [@Miho Szuki : 아직 세 곳 왕족 몽마를 잡은 데는 없다네요. 영국 쪽에서 먼저 시도했다는데…….]

    [@Awesome Banana : 영국? 블러디 헬이요?]

    [@Miho Szuki : 네. 그 까칠한 애들이 들이댔는데. 그냥 깨졌대요. 완전히 박살나서 그쪽은 지금 난리도 아니에요.]

    아, 그래서 이 여자가 파리로 향했구만! 혹시 뒷북치면 바로 영국으로 떠나려고.

    내게 꼭 나쁜 소식은 아니었다. 지금 상황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도 유럽으로 향할 테니까. 반대로 미국 쪽은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 치열할 것 같았다.

    조금 안심한 내가 느긋하게 머릿속으로 글자를 조합할 때였다.

    [@Miho Szuki : 고영 씨! 미국! 미국이요!]

    [@Awesome Banana : 네? 왜요. 미국이 왜?]

    [@Miho Szuki : LA에 나타난 대왕 독수리를 레스트 길드가 잡았대요!]

    ……헐?

    순간 움찔하며 집중력이 깨졌다. 다행히 보스 앱이 풀릴 정도는 아니었다. 나름 노력의 성과는 남아 있었다.

    놀람도 잠시 나는 이내 피식 웃었다.

    [@Awesome Banana : 에이, 6월 달이에요. 4월이 아니라.]

    [@Miho Szuki : 진짜에요! 거짓말이 아니라! 지금 난리도 아니에요! 제 메신저가 터질 것 같아요!]

    뭐지? 진짠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때 더욱 놀라운 소식이 내게 전해졌다.

    [@Miho Szuki : 아악! 어떡해요! 파리도 잡혔대요! 노마네 길드가 사냥에 성공했대요! 망했어요! 완전 망했어요!]

    망한 건 미호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망했다. 그것도 제대로.

    마음 한 구석에 설마 하는 심정을 가지며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공항에 도착한 순간 알 수 있었다.

    미호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빌어먹을."

    외마디 욕지거리를 내뱉은 나는 가장 빨리 있는 런던행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다행히 런던에 도착했을 때까지 고혈에 취한 대주교는 살아 있었다. 살아 있기는 살아 있었지만, 나는 바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온탕에서 몸을 지지고 있는 대사관에서 나온 주무관 때문이었다.

    주무관은 시작에 불과했다. 엉덩이가 무거워 게으를 수밖에 없다는 소문이 자자한 외교관 직원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제1차관이며 영국의 대사관으로 있는 거물까지 나타났다.

    그들이 나타난 이유는 한 가지였다.

    "영국 왕실에서 조용히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차분한 영국 대사의 설명의 끝에는 공식적인 만남이 아니라는 속삭임 붙었다.

    솔직히 갈등이 생겼다.

    그냥 배 째라고 해?

    냉정하게 생각하면 결코 그리해서는 아니 됐다. 이미 보스 랭커들의 존재에 대해 각국 정부들이 주시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괜히 밉보였다가는 얼마나 큰 홍역을 치를지 몰랐다.

    물론 내게 직접 위해를 가할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다른 이들도 무사할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괜히 나댔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부담스러운데…….

    호콘 왕세자를 만났을 때만해도 사실 멋도 모르고 나선면이 없지 않았다. 이제는 그때와 상황이 좀 달라졌다. 이미 나는 숨을 수 없는 유명 인사가 됐고, 그것은 곧 보이지 않는 족쇄로 작용했다. 거기에 영국 왕실의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 진퇴양란이 따로 없었다.

    분명 머리로는 좋게 좋게 넘어가라고 했지만.

    "미안한데요. 좀 비켜 주시죠? 도움은 바라지도 않으니까."

    어디 사람 마음이 뜻대로 되던가?

    내 성대가 내 의지를 반대했다.

    누가 봐도 날아 섰다는 걸 알 수 있는 낮게 깔린 목소리에 뒤늦게 나타나 날 상대하던 대사가 흠칫 놀라는 게 보였다.

    미안해요, 아저씨. 아저씨한테 악감정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에요.

    사실 악감정이 생기려야 생길수가 없었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악감정을 품을 정도로 열등감 덩어리가 아니니까. 다만 사람이라는 게. 집단이라는 게 그랬다. 전체가 아무리 잘해도 일부가 잘못하면 전체의 잘함은 사라지는 법이었다.

    외교관이라는 이들을 보면 예전 집안에서 처박혀 살 때 보았던 교양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6.25 사변 때 북쪽에 억류되었던 국군을. 아니, 이제는 늙어 힘이 없어진 노인을 귀찮은 파리처럼 여기는 게 역력한 목소리로 응대하는 목소리가.

    비단 외교관만 그런 게 아니었다.

    대부분의 경찰들이 사명을 가지고 열심히 하면 뭐하나, 대부분의 검사들이 밤잠을 줄여가며 범죄자를 잡으면 뭐하나, 대부분의 군인들이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면 뭐하나.

    일부의 비리가 전체를 욕먹이는 것은 다 똑같은데.

    이게 집단의 인상이 굳어가는 법칙이었고, 나 또한 이러한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감정적인 대응이 잘못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모하거나 무례할 수는 있었다. 그래도 싫었다. 지난 날 결심한 대로 나는 나대로 살고 싶었으니까.

    당황한 이들을 뒤로한 채 얼른 공항을 빠져 나왔다. 아니, 빠져 나가려고 했다. 그런 나를 붙잡는 우람한 그림자가 있었다.

    야속한 세월이. 아니, 유전자가 앗아간 머리가 내 앞에 보였다.

    "반갑습니다, 어썸 바나나."

    견부 밑에서 태어난 호자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날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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