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86화 (186/200)

<-- Sex Battle Arena -->

***

아레나.

계단 형식의 관중석이 있어 중앙의 경기장을 볼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하는 아레나는 주로 1만에서 2만석 규모의 실내 원형 경기장을 칭하는 말이었다. 흔히 1만석을 홀급, 2만석을 아레나급, 3만석을 슈퍼 아레나급이라고 했다. 그 이상의 경우는 스타디움이라 따로 부르는 편이었다.

내가 평소 관심도 없었던 이 단어를 알게 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정식 계약을 맺기 전 JAV GROP 측에서 내건 조건 때문이었다.

그들은 내가 남궁에서 100명과 섹스 배틀을 치르고 모든 각도에서 동영상을 제공하겠다고 하자, 며칠 뒤 한 부의 공연 계획서를 가지고 왔다. 그 계획서에는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의 도면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남궁을 슈퍼 아레나처럼 꾸며 달라는 말이었다.

나쁠 것 없고 생각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바로 시도를 해 보았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실패했다.

"남궁은 그냥 아레나급이었지."

워낙 공간 복사에 최적화 되어 있다 보니 실제 면적에 무감각해졌던 것이다.

결국 그렇게 크지 않다는 말을 하며 자존심을 구긴 나는 역으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내 영지에 몇 명이나 초대할 수 있는지 한 번 확인해 봅시다."

양보다 질을 앞세운 제안이었다.

내가 남궁에 여러 사람을 초대하여 섹스 배틀 아레나를 진행할 수 있다는 의사를 피력하자 주최 측에서 난리가 났다. 그들로서는 더 없이 좋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공짜는 아니었다.

그들이 새로운 제안서를 만들기 위해 밤낮을 잊었을 때 나는 SNS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의외였다. 남자들의 물건을 그냥 세우고 또 세우고 밤낮 없이 세우고 마지막까지 세운다는 이제 전설이 된 한 명의 여자가 날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죽을 때까지 세우다보니 생일이 11월 11일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스즈키 미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날 찾아와 팬 미팅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뜬금없는 미호의 제안에 무슨 개소리냐고 할 뻔 하기는 했지만, 이어진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유코에게 들었어요. 실험할 사람이 필요하다면서요? 제 SNS에 올리면 1만 명? 2만 명? 금방 지원 받을 수 있어요."

이 누님은 여전히 색기 발랄했다. 오랜만에 팬미팅을 할 겸 친구도 도와줄 겸 왔다는 그녀는 의외로 추파를 던지지 않았다. 한 분야의 달인이기에 자존심이 강한 듯 싶었다.

"물론 어영부영 무임승차 할 생각은 없어요. 유코한테 들었는데……. 재미난 아이템을 찾고 있으시다고요?"

대륙의 사랑을 받는 여자는 스케일이 달랐다. 그녀는 내가 흡수용 재료로 쓸 아이템을 구해주겠다고 먼저 나섰고, 나로서도 나쁠 게 없는 제안이었다. 사람 모으는 게 은근히 귀찮다고 생각했는데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그렇게 갑작스런 미호의 남궁 팬미팅이 시작됐다.

예상했다고 해야 할까.

팬미팅을 치른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정식 영주가 되며 생긴. 아니, 한층 더 강화된 손님 초대 기능은 최대 3만 명까지 가능했다. 물론 이것은 3층의 공간 확장을 최대한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그래도 2만 명 정도야 충분히 하고도 남을 정도는 됐다.

무대가 세워진 거대한 축구장 같은 남궁 아레나에 초대된 미호의 팬들은 열화와 같은 함성으로 그녀를. 아니, 나를 반겼다. 조금 의외기는 했지만, 세기의 정력남이라는 타이틀은 꽤 파급력이 강했다.

물론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발단은 한 남자의 우렁찬 외침이었다.

"섹스 해! 섹스 해!"

"꺄아아악!"

"섹스! 섹스!"

"해요! 해요!"

난리도 아니었다.

갑자기 위 아 더 월드. 아니, 위 아 더 섹스를 외치는 2만여 관중들의 모습에 나는 물론이고 미호도 당황했다. 얼마나 난감했는지 축객 메뉴를 쓸 생각을 못했을 정도였다.

뒤늦게 축객 메뉴를 떠올리고 사태가 일단락 됐지만, 나와 미호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생긴 건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미호 누님의 연륜은 허깨비가 아니었다.

"제 팬들이 좀 짓궂어요. 너무 마음에 담지 마세요. 아이템은 구해지는 대로 전해드릴게요. 고마워요."

가벼운 입맞춤. 정확히는 볼맞춤을 뒤로하고 미호가 도망치듯 떠났다.

나는 색다른 경험에 놀라는 한편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다행히 깜짝 팬미팅처럼 요란한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그 뒤로 시간이 흘렀다.

***

올해의 마지막 달이 하늘에 떠올랐다.

모든 이들이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모여 있을 때 나는 홀로 남궁에 있었다. 한동안 날 걱정해서 함께 있어 주었던 나 원장도 없었고, 삼촌네 가족들도 함께하지 않았다. 더 이상 혼자 지내는 게 괴롭거나 외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혼자인 것도 아니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무대가 그 증거였다. 마름모꼴의 새하얀 링 위에 서 있던 나는 슬쩍 한 바퀴 빙그르 돌아보았다. 마름모 형태의 무대 옆으로 삼각형의 무대가 하나씩 살짝 떨어져 있었다.

이 4개의 삼각형 무대가 바로 오늘 결전을 치를 도전자들이 소환될 자리였다.

위에서 보면 반쯤 기울인 정사각형에 삼각형 4개가 달라붙어 또 하나의 정사각형을 만들어낸 형태라고 할 수 있었다.

"상상력을 쥐어짠 보람이 있네. 뭐, 설계는 그쪽에서 다 했지만."

1 대 100.

글자로 볼 때는 꽤 멋진 말이지만, 실전으로 들어가면 난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니 어느 정도 교통정리를 할 필요가 있었고, 그것은 곧 무대의 구조로 이어졌다. 이렇게 나눠 놓은 것만으로도 한층 더 깔끔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무대가 정사각형이다 보니 자연스레 가장 가까운 곳에 일명 명당이라는 한 장에 1만 달러짜리 1등급 자리가 만들어졌다. 그 다음으로 가까운 관객석과 무대가 가장 가까운 곳은 2천5백 달러짜리 2등급이었고, 나머지는 그냥 몽땅 1천 달러짜리 3등급 좌석이 됐다.

총 2만개의 자리가 있었지만 모두 팔리며 2천4백5만 달러의 입장 수익이 만들어졌다.

뭐, 진짜는 DVD 판매겠지만. 그나저나 기부하는 걸 좀 늘려야겠네. 돈이 돈을 번다고 자꾸 쌓이네.

자산 관리의 변화를 줄 생각을 하며 큰 정사각형 안에 작은 정사각형이 들어간 형태의 텅 빈 경기장을 모두 둘러 본 나는 이내 눈을 감았다.

이제 입장할 시간이다.

슝, 슝, 슈슈슝!

멋지네.

수많은 빛줄기가 이정한 좌석 위로 떨어졌다. 지난 며칠 동안 초대 위치를 조절하느라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궁 아레나에 2만의 관중이 가득 들어찼다.

소환 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관객들에 이어 오늘 경기에 참여하는 네 부류의 소위 원정대라 불리는 이들을 소환했다.

배우, 가수, 선수. 그리고 또 다른 배우.

일본에서는 꽤 유명한 배우들이 좌측 상단에 있는 삼각형 무대를 채웠다. 이어서 맞은편에 가수들이, 그 왼쪽에 운동선수가 소환됐다. 마지막으로 텅 빈 새하얀 무대에 육감적인 AV 배우들이 소환되는 것으로 준비가 끝났다.

"우와아아아……!"

"휘익! 휘이익!"

"꺄아아……!"

난리도 아니었다.

내가 있을 때는 조용하더니.

솔직히 살짝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속내를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슬슬 나도 체면을 생각하나 싶었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체면을 생각하는 놈이 이런 난교 파티. 아니, 대결을 할 리가 없으니까.

"그나저나 신기하네."

1백 명 중 한 손가락으로 뽑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나도 얼핏 본 얼굴이 간간히 보였다. 그만큼 일본이 성적으로 개방적인가 싶었지만, 이내 신경을 껐다. 그냥 얼른 끝내고 미야프랑 불꽃놀이나 구경하는 게 낫지 싶었다.

연예인은 이제 지겨우니까.

자국 연예인도 아니다보니 이들이 얼마나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는지 내가 알 수는 없었다.

그때 선봉으로 나선 농염한 중년의 여자가 20대 못지않은 알몸을 보이며 앞으로 나왔다. 그러더니 양손으로 확성기를 만들며 소리쳤다.

"어썸 바나나! 사회자! 사회자가 안 왔어요!"

아차.

깜빡했다.

이런 큰 이벤트를 내가 진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사회자가 필요했다. 나름 일본에서 유명한 코미디언 출신 사회자라는데, 나는 잘 몰랐기에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 했다. 게다가 입장권 판매가 일본에서만 이루어진 게 아니었기에…….

"영어도 잘 할 줄은 몰랐네. 스페인어도 한다고 했던가?"

내 옆에 새하얀 비키니 차림으로 나타난 사회자는 다름 아닌 미호였다. 폭넓은 활동을 하는 그녀는 예상 외로 언어에 소질이 많았고, 그 덕분에 사회자로 고용될 수 있었다. 게다가 오늘 나와 싸울 여자들보다 더 좋은 몸매가 꽤 매력적이기도 했다.

리허설을 했던 터라 미호는 뒤늦게 소환 됐어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대의 끝으로 이동하며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물론 그보다 묵직한 게 더 출렁여서 시선을 뺏었지만.

"안녕하세요, 여러분! 미호에요!"

"와아아아!"

"미호! 미호!"

잠시 미호의 팬미팅이라 착각이 들었을 정도로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도 잠시 미호는 능숙하게 관객들을 다루……. 그냥 조련했다. 그녀의 손짓 한 번에 관객들은 조용해졌고, 덕분에 원활한 진행이 가능해졌다. 여전히 함성이 끊이지는 않았지만.

"자자. 진정. 진정 좀 하세요. 그래야 본격적인 섹스 배틀을 시작할 수 있잖아요? 비싼 돈 주고 왔는데, 벌써부터 힘 빼면 어떡해요? 그렇죠?"

현실에서 격투 이벤트라면 몰라도 섹스 배틀 아레나는 다른 이벤트 따위는 없었다.

오직 하나.

섹스 배틀이 전부였다.

"……메인 디쉬만 백 개라서 문제지."

곧 일어날 일에 살짝 기가 찼지만, 미호는 여전히 열심히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렇게 빨빨 거리며 돌아다니며 관객들을 조련한 미호가 각 파트의 대표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하려 했다.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 분위기를 띄울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 시작은 배우 파트의 농밀녀 준코였다.

"준코 씨. 준코 씨는 일본에서 엄청 유명한 여배우죠?"

"글쎄요. 그렇게 유명한지는 모르겠어요. 영화는 유명하겠지만."

"어머? 영화가 유명하면 당연히 주연 여배우도 유명한 거 아닌가요? 당신이 연기한 그 영화 속 귀부인은 너무 야했어요."

"그러지 마요. 야한 게 아니라 솔직한 거였어요."

"어썸 바나나에게 도전장을 내민 당신처럼요?"

미호의 인터뷰는 꽤 능숙했다. 한두 번 해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녀뿐만 아니라 인터뷰이인 준코 역시 노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저 여자가 나온 영화. 나도 본 거 같은데.

꽤 싸디스틱한 영화를 떠올리자 전기톱이 꿈틀거리며 반응을 했다.

그 사이 미호는 인터뷰의 본래 목적을 잊지 않았다.

"세상에! 당신도 랭커였군요! 좋아요, 준코 씨. 그럼 한 가지만 더 물어 볼 게요. 자신 있으신가요?"

"살다보면 알게 되는 사실이 하나 있어요. 힘보다 기술이라는 것. 그 기술이 바로 연륜의 정수라는 것. 비록 제 레벨이 조금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날 만족시킨 남자는 없었어요. 힘 좋은 젊은 남자도요."

"어머나! 야해요, 준코 씨."

"호호, 그런가요?"

나긋나긋하면서 권태로운 목소리는 꽤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인터뷰를 끝낸 미호가 여러 나라 말도 준코의 당찬 포부를 통역하자 또 다시 엄청난 함성이 떨어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미호는 운동선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또 다시 운동선수 측의 대표인 수영 선수에게 도발을 이끌어냈다.

"문제없어요. 그래봤자 그는 신성한 활어일 뿐이에요. 전 잘 버려진 식칼이고요."

"입이면 충분해요. 우리들 폐활량은 저 오만한 여자들 못지않답니다."

"그래요. 우리가 가장 레벨이 낮아요. 하지만 실력은 달라요. 입? 앞? 뒤? 어디든 좋아요. 반드시 받아내고 말겠어요. 저 남자의 정액을!"

그 뒤로도 각 파트별 대표들의 도발이 이어졌고, 사람들은 더욱 환호하며 광분하기 시작했다.

이거 시작도 안 했는데 분위기가 참 끈적끈적하네.

결투의 결과를 제외한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인터뷰를 가장한 도발을 이끌어내는 임무를 무사히 마친 미호가 살랑살랑 웃으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은근히 얄밉게 구는 미호의 모습에 한 마디 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미호가 나보다 먼저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오늘의 주인공! 어썸 바나나의 각오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어썸 바나나. 당신은 어떤가요? 일 백의 결사대를 무찌를 자신이 있나요?"

결사대? 원정대 아니었나?

한 가지 단어가 살짝 거슬렸지만 대답하는데 문제될 건 아니었다.

나는 담담한 얼굴로 담담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원래 하룻강아지들이 시끄러운 법입니다."

도발은 도발로 받아치는 게 제 맛이었다.

판이 더 없이 달아올랐다.

========== 작품 후기 ==========

고영이가 좀 휘둘리는 거 같아 보이는데...

어쩔 수 엄써요 ㅠㅠ..

애초에 피동적인 성격을 가진 캐릭터다보니;;;

그래도 한 두 앞을 내다보기는 하지만요.

원래 The Sex Factor, Battle of The Sexs.같은 에피소드를 꽤 많이 구상해 놓았었습니다.

일본 재패 후 유럽. 유럽에서는 클래식한 프랑스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유럽의 변....아니 성진국 독일로 향하고. 결국에는 미국까지 날아가는 이야기였는데.

나중에 보니 이게 영 중복되는 게 많더라고요.

이 에피소드를 통해서 몇 개 남은 장비 세팅을 끝내려는 계획이었는데.

조금 선회했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안쓰기는 뭐해서 간략하게 이정도로 넘어갈 생각입니다.

그나저나 고질병이 또 도져서 난감합니다.

아무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전 내일 연재분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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