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82화 (18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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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는 별 거 없었다. 그냥 이긴 놈이 강한 거였다. 그 이긴 놈이 바로 나였다.

사지로 뻗어나간 전율이 사그라지며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일단 왜 이런 차이가 벌어졌는지 알고 싶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밝혀내야 했다.

모든 수치가 이름 없는 공주보다 밑도는 내가 이러한 괴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금세 나왔다.

바로 치명 증폭이었다.

불끈!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동시에 여유가 생겼다.

이제 겁날 게 없으니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이름 없는 공주의 상태창에 그동안 경험했던 전투 경험이 더해지며 새로운 정보가 스며들었다. 치명도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었다. 치명도는 한 가지만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치명 공격 확률과 치명 방어 확률.

이 두 가지를 모두 의미하는 게 치명도라는 항목이었다.

단적인 예로 치명도가 100이면 치명 공격 확률이 100으로 적용하고, 치명 방어 확률은 100의 절반인 50으로 적용하는 식이었다. 그러니 100%의 확률이라도 꼭 100%가 되는 게 아니기도 했다. 심지어 이름 없는 공주는 나와 붙으면 치명 공격 확률이 -4%가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동안 치명 공격을 거의 받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내 높은 치명도 덕분이었다.

"……행운을 올려야하나?"

새로운 정보에 살짝 갈등이 피어났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장은 올리고 싶어도 올릴 수 없었다. 그보다는 근력을 늘어난 한계까지 올리는 게 더 중요했기에.

그렇다고 소득이 없는 건 또 아니었다. 비록 직접적인 영향은 없겠지만, 사고를 전환하게 된 건 긍정적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치명도를 높여주는 과부 제조기의 상징을 착용한 건 그냥 왕족이라 착용한 감이 없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아니었다. 치명도라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이상 과부 제조기는 고정이었다. 내가 강력한 이유가 치명 증폭이듯이, 다른 이들 역시 같은 방식으로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 번 찾아보긴 해야겠네. 치명 저항을."

여기서 치명도를 더 높이는 건 큰 이득이 없기에 더 이상 치명도를 올릴 생각은 없었다. 다만 치명 감소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그동안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자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치명 감소도 좋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안전한 게 치명 저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적수를 찾아보지 못할 정도로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더 강해질 수 있는 길이 보였다.

그래서 좋았다.

아직 개척할 수 있는 경지가 남아있다는 것이.

지금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온 건 맞았다. 그렇다고 해서 쉬고 싶은 생각은…….

"좀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좀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솔직한 심정으로 그동안 강박처럼 강해지려 한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아니, 그냥 그 이유 하나로 달린 것과 진배없기는 했다. 다만 이제는 본래 바라던 목표는 달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고자는 아니니까. 이 녀석도 꽤 쓸 만하잖아?

걱정 없는 얼굴로 고개를 살짝 숙여 조용히 잠들어 있는 전기톱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섹스 배틀이 아니라도 발기를 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이미 모닝 발기를 겪은 뒤로 은연 중 완치 판정을 내리기도 했으니까.

"더 이상 강박에 시달릴 필요는 없지."

그동안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넘어갔던 일이 이제야 풀렸다. 가슴이 뻥 뚫리며 시원했다. 아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면이 있기는 해도, 최소한 성적 능력만큼은 더 없이 성숙하다는 생각이다.

성숙하다 못해 만개했지.

실실 웃는 것도 잠시 내 표정이 이내 사그라졌다. 성기능이 만개하면 뭐하나. 제대로 쓰질 못하는데.

아쉽지만 내 고민은 여기까지였다. 이런 생각을 하니 자연스레 나 원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서른이 넘어 처음 느낀 감정을 분석하고 싶지는 않았다. 설익은 감정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머리를 비운 나는 그래도 많이 성장했다고 자화자찬하며 제대로 활성화 된 영지창을 열어 보았다.

점점 힘을 잃어가던 미소가 한순간 사라졌다.

"하아……. 미치겠네."

이제는 한숨을 쉬어도 집중력이 흐트러지지는 않았지만, 그건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영지창에 한가득 자리한 메뉴 옆에 있는 숫자가 너무 기가 막혔다. 1만 단위 이하로 있는 건 몇 개 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영지창에 생긴 항목은 크게 보면 2가지였다.

병력 정비와 영지 개발.

일단 병력 확충을 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지금까지 내가 사냥한 몽마들을 구매하여 배치하면 끝났다. 그렇게 배치된 몽마병을 추가로 성장시키거나 진화시킬 수 있었다.

영지 개발 또한 비슷했다. 궁급 영지를 개발하는 항목 자체야 진지 구축 및 함정 설치 등의 단순한 메뉴밖에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단 수성측이 유리한 방향으로 내성의 변화를 주는 게 가능했다.

문제는 오직 한 가지.

"돈이 문제야, 돈이. 무슨 10레벨짜리 애마부인 하나 뽑는데 2천 경험치야?"

몽마를 병력으로 삼는 비용을 산출하는 방식은 아주 단순했다. 실제로 몽마를 사냥할 때 얻는 경험치의 10배가 배치 비용이었다. 만약 정식 서비스 후 처음으로 잡았던 줄무늬 다람쥐 한 마리를 남궁에 배치하면 3,200의 경험치가 들어갔다.

황당한 건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배치한 몽마병을 강화시키거나 특성을 강화하는 일종의 훈련을 위한 비용이 따로 있었다. 각자의 영지 특성에 맞게 성장시키는 데는 방법을 불문하고 1회에 1만의 경험치가 들어갔다.

"한 마디로 돈지랄이지. 한 번에 제대로 된 특성이 나오란 법이 없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내가 돈이 썩어나도 싫었다. 다행이 이런 나를 위해 병력을 확충하는 방법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종속으로 삼은 몽마를 병력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이게 더 효율적이었다. 게다가 이 방법이 가장 마음에 드는 이유는 쓸데없는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물론 길들이는데 반지 값이 들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었다.

길들이기 노가다를 결심한 나는 영지 개발 항목을 훑어보았다.

역시나 돈지랄이었다.

"나무 방벽 소환하는데 10만. 그것도 파괴되면 재설치 해야 하고."

그냥 이름 없는 공주를 믿을란다.

더 볼 것도 없었다. 나는 그대로 영지창을 닫아 버렸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욱하는 심정도 잠시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굳이 돈을 처바르지 않아도 나는 강했다. 게다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도 있었다.

"이제는 쓸데없이 경험치를 뿌리지 않아도 될 테니까."

이번에 영지 쟁탈전에 참여한 여자들은 꽤 대박을 쳤다. 그녀들은 전체 임무를 통해 나와 같은 2만이 넘는 경험치를 얻었다. 거기에 각자 사냥한 몽마에게서 얻은 것도 적지 않았고. 심지어 내가 준 경험치 1만까지 더하면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한 달 뒤 있을 영지 쟁탈전에 도움을 청하면 발 벗고 나설 게 분명했다. 굳이 저번처럼 1만의 경험치를 주지 않아도 말이다.

마음을 비운 나는 눈을 뜨며 고개를 들었다.

벌써?

시계를 보니 자정이 채 몇 분 남지 않았다.

나는 살짝 기대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들어 매매창을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맹약의 청동 반지나, 백은 반지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황금 반지는 아예 기대도 하지 않았고.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겠지?

마음은 그랬지만 내 손가락은 제멋대로 움직였다. 검색창에 황금의 맹약 반지를 입력했고, 이내 검색 버튼을 눌러 버렸다.

"그럼 그렇지."

역시 황금 반지는 없었다. 그래도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맹약의 청동 반지는 물론이고 백은 반지가 엄청나게 올라와 있었다. 비록 가격이 지랄 맞기는 했지만.

"가장 싼 게 어디 보자 청동은 7천. 백은은 1만4천? 미쳤네."

매매창에 등록된 가격을 오름차순으로 정렬하니 가관이었다. 이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지경이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매매창을 닫아 버렸다.

그냥 맹약의 반지를 동화 하나 주고 사서 쓰는 게 낫겠다.

눈앞에 열악한 건설 현장이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였다.

[8회차 자유 임무를 종료합니다.]

[8회차 자유 임무를 집계합니다.]

[기본 보상 '징벌 면역 30일' 효과를 적용합니다.]

[우승 보상 '종속 진화 장비 1개'를 획득합니다.]

[9회차 자유 임무를 시작합니다.]

예스!

보상은 그리 크다고 할 수 없었지만 승리의 쾌감은 여전했다.

이번에도 이겼다는 생각에 취한 상태였지만, 내 손은 알아서 움직였다. 이윽고 내 핸드폰에 9회차 자유 임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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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차 자유 임무]

+ 성교를 통해 상대를 절정에 올려라.

+ 임무 현황 : 0/1

+ 기본 보상 : 능력의 책

+ 우승 보상 : 빛나는 능력의 책

+ 자유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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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구나.

괜히 보상으로 징벌 면역을 준 게 아니었다. 8회차 자유 임무의 기본 보상은 떡밥이었다. 9회차 자유 임무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근데 섹스 배틀이 아니라, 그냥 섹스를 하라니! 젠장!"

불리해도 너무 불리한 조건이었다. 섹스 배틀을 빼면 여전히 난 초식 동물에 불과했다. 아니, 이제 좀 나아졌으니 잡식 정도는 될까?

토끼나 돼지나.

결국 사자는 아니었다.

"후우……. 미치겠네. 임무는 거지같은데 보상은 무슨 재벌이네."

우승하면 능력치 20개였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아마도 이번 한 달 동안은…….

"콘돔 판매량이 절정이겠네. 아, 주식 좀 사놀 걸 그랬나?"

유사 이래 처음으로 인류의 발정기가 아닐까 싶었다.

벌써부터 사방에서 신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제야 놓았던 정신줄을 잡으며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핸드폰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며 나는 다짐했다.

"차라리 잘 됐어. 이참에 제대로 겪어 보지 뭐. 까짓것. 섹스가 별 거야?"

고자에서 기껏 벗어났더니 결국 지루가 된 나였다.

이런 상황에 두려울 게 없었다. 최소한 토끼는 아닐 테니까. 아니, 한 발 시원하게 싸는 게 내 소원이었다. 얼마나 싸고 싶었으면 백수 투하라는 스킬이 생겼을까.

"그래. 이번 기회에 한 번 제대로 싸보자. 사정이 어떤 느낌인지를 알아야 할 거 아냐?"

그러면서도 슬그머니 업적창을 열어 최초의 동정 업적을 내려놓으려고 하기는 했지만.

남몰래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그때였다.

"다녀왔어. 뭐 좀 사오느라고 좀 늦었네."

"아쁘아아아! 선물! 선물 주세요! 미야프 말 잘 들었으니까! 선물 많이 주세요!"

나 원장과 미야프가 현관문을 열고 들이닥쳤다.

갑작스런 일녀일마의 등자에 놀란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달려드는 미야프를 잽싸게 피했다. 괜히 자존심을 세우다가는 내 갈비뼈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

허공을 붕 날아오던 미야프가 어어 하더니 이내 바닥에 안면 슬라이딩을 하며 고꾸라졌다.

철푸덕! 찰싸악……!

"아악!"

"으아아앙!"

갈비뼈를 지키기 위한 내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뒤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던 나 원장이 표독스런 눈빛으로 달려들었던 탓이다. 막 김장을 끝낸 것 같은 그녀의 손바닥이 내 등을 후려갈기자, 화상을 입은 것처럼 후끈거리면서 동시에 엄청 쓰라렸다.

나 원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또 날 혼내기 시작했다.

"너, 너! 정신이 있어, 없어! 그러다가 미야프가 다치면 어쩌려고!"

"……나 쌤. 정말 쟤가 다친다고 생각하는 거야? 저기 바닥 깨진 거 안 보여? 어우. 저게 얼마짜린데."

내 한숨에 미야프가 울음을 그쳤다. 하여튼 요즘 들어 점점 눈치만 빨라지는 게 여우가 따로 없었다. 나 원장도 바닥에 미야프의 얼굴이 음각된 걸 보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쪼르르 탁자 아래로 숨어들려고 하는 미야프를 보며 손을 까딱거렸다. 녀석이 잠시 망설이며 내 눈치를 보았다. 나는 혼내지 않겠다는 말로 녀석을 구슬리자, 그제야 웃으며 다가오는 미야프의 모습에 실소가 절로 나왔다.

"하여튼 여우라니까."

"히힛! 미야프는 예쁜 여우! 언니는 예쁜……. 어, 어. 그러니까."

"아줌마……악! 아 쫌!"

"누가 맞을 짓을 하래니? 미야프. 일로 와. 많이 아팠지?"

아프긴 개뿔이!

다행히 미야프는 나 원장에게 쪼르르 달려가지 않았다. 역시 눈치 백단이 맞았다. 요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로 기대어린 표정을 짓는 녀석은 내가 무엇을 주려는지 아는 게 틀림없었다.

정말 신기하다 못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지?

그때 내 옆에 붙어 앉은 나 원장이 고백하듯이 작게 속삭였다.

"나도 모르게 진화 장비를 아빠가 구했을 거라고 했거든. 미안."

"아하. 뭐, 틀린 말은 아니네. 이번에도 우승 했거든."

"어? 진짜? 진짜 우승 했어?"

나 원장이 진심으로 놀란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내 넋두리를 들은 그녀였고, 그녀도 나름 이번에는 힘들다 생각하고 있었던 탓이다.

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당연하지. 올해는 물론이고 내년도 내가 독점할 테니까. 자유 임무는 그냥 포기 해."

"치. 웃기셔. 이번 달이나 잘 하시지? 우리 강한 남자 박고영 씨."

……나쁜 년. 아주 가슴을 후벼 파라!

얄밉게 말하는 나 원장을 일부러 무시한 나는 스마트폰에 집중했다. 어차피 주위가 산만해서 집중하기 어려웠기에 종속 진화 장비를 폰에 깔린 앱으로 건넬 작정이었다.

"아빠! 아빠! 빨리! 빨리!"

내가 미야프가 재촉하는 소리에 맞춰 종속 진화 장비를 미야프에게 건넸을 때였다.

미야프가 폴짝폴짝 뒤면서 또 다시 바닥에 족적을 남겼다.

하아. 수리비 또 깨지게 생겼네.

너무 좋아하는 미야프의 모습에 차마 입 밖으로 한탄을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내가 속으로 생돈이 나가는 걸 안타까워하는 그 순간이었다.

미야프가 양 손을 꼭 쥐며 가슴 앞에 모았다.

우웅! 우웅! 우우웅!

무언가 심상치 않은 공명음이 터졌다.

나는 물론이고 나 원장까지 긴장해서 침을 꼴깍 삼켰다. 이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눈앞에 벌어지는 일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미야프가 허물을 벗기 시작했다. 시작은 정수리부터였다. 마치 탈피하는 뱀처럼 미야프의 웃는 모습이 그대로 찍힌 투명한 껍질이 앞뒤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중력을 이기지 못한 껍질이 바나나 껍질처럼 점점 넓게 벌어졌다.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현실이 맞았다.

우리는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멍하니 미야프가 허물을 벗는 걸 바라만 보았다.

머리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배로.

차츰 차츰 이어진 탈피가 어느덧 무릎을 지나 발목까지 이어졌다.

일련의 모습이 마치 꽃봉오리가 벌어지며 그 안에 잠들어 있던 요정이 태어나는 것 같았다.

영험한 기운이 내 몸을 파고들며 심장을 뒤흔들었다.

사르륵.

비단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살짝 들리며 또렷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종속 '미야프'가 진화에 성공합니다.]

['미야프'가 고유 기술 '이케이케 이끄요!'를 획득합니다.]

"……잘못 들었습니다?"

"이케이케 이끄요! 이끄요! 아빠! 나 기술! 내 기술! 으히힛! 좋다! 으히히힛!"

탈태를 끝낸 미야프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한 채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다.

그때마다 바닥이 푹푹 들어가며 내 가슴을 쿵쿵 때렸다.

감동의 물결이 사라지며, 내 억장이 그대로 무너졌다.

그래도 자식인데. 그래도 내 자식인데…….

흉작도 이런 흉작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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