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76화 (176/200)
  • <-- Nameless Princess -->

    ***

    오랜만에 남궁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영지 쟁탈전을 진행하는 동안 고유 기능이 정지된 남궁의 1층에는 나신의 여자들이 짝을 이룬 채 즐겁게 떠들고 있었다. 1층뿐만 아니라 2층도, 3층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도와주기 위해 온 여자들은 같은 여자들끼리도 낯을 가렸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1층에는 소연이와 현아의 일행, 2층에는 김아연과 연예인 일행. 그리고 3층에는 모지현의 일행이 자리하게 됐다. 본래는 여자들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인원수가 많은 순으로 낮은 층을 맡기려고 했지만, 소연이와 현아의 강력한 주장에 본래 생각을 바꿔야했다.

    "오빠야. 우리 못 믿어? 이래봬도 나 랭커거든? 뭐, 어썸 바나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나도 랭커에요. 그리고 저 애들 중 절반은 랭커라니까요? 이만하면 대단한 거 아니에요?"

    "랭커가 그렇게 사냥 못해 죽은 귀신처럼 들이 대냐? 조심들 해. 나도 얼마나 강한 놈들이 올지 모르니까."

    소연이와 현아는 최전방에서 싸우고 싶어 했다. 단순히 날 도와주려는 것보다는 처음 있는 공성전에 흥미를 느낀 듯 싶었다. 게다가 대단한 행사이니만큼 대단한 보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보상이 꽤 크다는 건 알고 있었고, 미리 말을 하기도 했다. 다만 그 크다는 말이 애매했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보상이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녀석들은 1층에서 선봉에 서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다행히 다른 여자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모지현 일당은 자잘한 것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녀들만큼은 아니더라도 김아연 일행도 비슷했다.

    모두가 원하는 대로 배치를 했지만 나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얼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이건 좀 그런데. 꼭 돈 없는 애들 화살 받이로 내몬 거 같잖아?"

    "어머, 이 오빠 순진한 거 보게."

    "킥! 킥킥! 우리 고영 오빠. 은근히 맹하네?"

    "뭔 소리야? 가뜩이나 심난한 사람한테."

    얘들이 날 위로하려 이러나 싶었다.

    그런 게 아니었다.

    갑자기 혼자 웃던 현아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 후배 에이스라는 여자를 불렀다.

    "얘. 너 요즘 한 달에 얼마 정도 버니?"

    "저요? 글쎄요. 대충 평균내면 한 3억 쯤?"

    "에이, 빼지 말고. 너 요즘 잘나간다는 거 소문 쫙 났는데? 따로 알바 뛰고 버는 것까지 하면 얼마니? 한 5억 되나?"

    내 앞에서는 언제나 어린 동생 같던 현아가 팔짱을 끼고 말하는 모습이 꽤 여유가 넘쳐 보였다. 차세대 에이스라는 늘씬한 여자가 살짝 위축이 되어 보일 정도로.

    잠시 위축된 모습을 보이던 여자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히 답했다.

    "알바까지하면 한 7억 쯤 돼요. 사실 요즘 일하는 것보다 이쪽으로 나가는 게 더 낫지 싶어요. 언니들처럼요."

    "그래. 그게 나아. 섹스 배틀 가르쳐주는 게 훨씬 낫지. 몸도 안 상하고. 안 그래?"

    소연이까지 나서 몇 가지 조언을 하고 나서야 여자가 돌아갔다.

    그제야 팔짱을 푼 현아가 날 빤히 바라보았다. 이래도 돈 때문이냐고 묻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 니들이 짱이다. 진짜 세상 많이 변했네."

    "아무튼 오해는 하지 마. 우리가 2층에 있는 핏덩이보다 인기는 없어도. 돈은 훨씬 더 버니까."

    "알았으니까 1절만 해. 모를 수도 있지."

    내 투덜거림에 소연이와 현아가 깔깔 거리며 웃더니 이내 부럽다는 듯 답했다.

    "뭘 또 삐져? 그리고 오빠야 모를 수밖에 없잖아? 탑 중에 탑인데."

    "맞어, 언니. 고영 오빠가 아래애들 신경 쓰겠어? 나 같아도 안 그러겠다. 체급이 다르잖아, 체급이. 아무튼 진짜 대단한 오빠라니까?"

    "괜히 헛바람 넣지 말고. 좀 있다가 올 테니까."

    "맡겨만 둬."

    소연이가 내 말을 잘라 먹으며 기대어린 얼굴을 보여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2층으로 향했다.

    2층의 상황도 1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직 전투 시작 전이라 그런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가볍게 김아연에게 주의할 점을 알린 뒤 바로 3층으로 향했다.

    "나중에 한 판 해줘야 해! 약속했어! 꼭이야!"

    탕녀 김아연의 외침과 함께.

    김아연뿐만 아니라 나름 유명한 연예인들이 날 보며 눈을 빛내는 게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개 중에는 슬쩍 몸매를 과시하며 끈적끈적한 눈빛을 보내는 여자도 있었고, 부끄러움에 얼굴만 붉히는 여자들도 있었지만.

    휘이 손을 저으며 3층에 올라왔을 때 나는 역시 모지현! 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떠들썩한 1, 2층과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차분한 분위기는 교양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뭐, 벗으면 다 똑같지만.

    피식 웃으며 중앙에 자리를 잡으며 회원들까지 휘어잡고 있는 모지현을 향해 다가갔다. 중간 중간 클럽 다이아몬드 회원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내가 모지현 자리에 앉자 회원들이 슬쩍 엉덩이를 옮겨 다가오는 게 자못 기세가 당당했다.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겠습니다. 오늘은 좀 참아줘요."

    "꼭이에요. 꼭!"

    "확답을 해줘요! 나중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지 말고!"

    "이번에도 요트에서? 저번 달에 괜찮은 거 하나 뽑았는데."

    "그러지 말고 우리 전용기 어때요? 태평양 상공에서……. 아, 어떡해!"

    하아.

    교양은 개뿔.

    이미 볼 것 다 본 사이였다. 그러니 교양을 차릴 리가 없었다. 심지어 모지현도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기에 더욱 난감했다.

    내가 어쩌다 여난에 시달리는지…….

    조금 기가 찼지만 이내 확답을 주며 상황을 정리했다. 어차피 당분간 바쁜 일이 없었기도 했고, 나름 사회에서 꽤나 콧방귀를 끼는 여자들과 친해져 놓으면 나쁠 게 없었다. 실제로 퇴폐적이지만 농염한 그녀들의 육체가 싫지도 않았고.

    확답을 얻고 나서야 여자들은 제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모지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 맞다. 고영 씨. 잠시 거래창 좀 열어 줄래요?"

    뜬금없는 대화의 시작이었지만 나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이제는 웬만한 사람이면 다 머릿속으로 보스를 구동할 수 있었다. 모지현도 당연히 가능했고, 그녀는 눈을 감고 거래창을 열어 물품을 올려놓았다. 일전에 빌려주었던 퀴이브의 가리개와 속옷이었다. 그런데 거래창에 올라온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놀라 두 눈을 뜨고 말았고, 자연스레 거래가 취소 됐다.

    "이게 뭡니까?"

    꽤 놀란 내 목소리에 모지현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내가 흥분한 게 그렇게 좋은가 보다.

    "좋은 물건을 사용했으니까요. 그 비용을 지불해야죠. 안 그래요?"

    "……그건 이미."

    "아아. 아니에요. 변호사만 해도 사건을 수임 받을 때 성공 보수가 있잖아요?"

    저기요. 그거 대법에서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차마 이렇게 되물을 수가 없었다. 나는 대인배가 아니니까. 그저 가볍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며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이윽고 거래가 끝났다. 무사히 거래가 끝났지만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 대신 모지현이 성공 보수라고 준 아이템을 사용했다.

    바로 기술의 책과 능력의 책이었다.

    뜻하지 않게 기술치 1개와 능력치 5개를 얻은 나는 바로 상태창을 열어 체력에 5개의 능력치를 투자했다. 기술치도 쓰고 싶지만, 마땅한 게 없어 보류해야했다.

    드디어 100의 체력을 달성한 나는 희미한 미소를 그리며 눈을 떴다. 괜히 모지현이 더 예뻐 보였다. 비록 김아연이 날름 가져간 최초 달성 업적으로 인해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였다.

    체력 100 달성 보너스로 활력이 500이나 늘어났고, 상태 이상 기절과 중독이 25% 증가했다. 게다가 소비 물품 효율이 25%나 더 좋아졌다. 이제 하얀 물약 하나를 먹으면 1,400의 활력을 회복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뭐, 먹을 일은 없겠다마는.

    웬만한 물약을 먹게 되는 일이 없어진 이유는 다름 아닌 신성한 광기 때문이었다. 이 기술은 정말 미친 기술이었다. 1회 전투에 한하고, 한 번 사용하면 24시간의 쿨타임이 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오히려 제약이 이것뿐인 게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모지현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고맙습니다. 모지현 씨."

    "이제 좀 성을 떼 주면 안 돼요? 너무 정 없게 들리는데."

    "그래요. 지현 씨."

    그제야 모지현이 밝게 웃었다. 고작 성을 떼고 이름을 불렀다는 게 그리도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가 좋아하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더 이상 기분 좋게 웃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나는 귓속에 울리는 보스의 목소리에 표정을 지운 채 입을 열었다.

    "5분 남았답니다. 그럼 부탁합니다."

    "걱정 말아요. 우리들은 꽤 다양한 취향을 가지고 있으니까."

    의미심장한 말에 도리어 마음이 놓였다. 김아연과 같은 취향을 가진 이는 이곳에도 있는 모양이었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그 어떤 존재보다 든든하게 느껴진 나는 마음 편히 1층으로 향할 수 있었다. 물론 가기 전에 신출내기를 살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영 미덥지 않네.

    허수마비처럼 상대에 따라 성별이 변하는 수문장에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본격적인 정비를 하기 위해서는 이번 시험을 통과해야했다.

    시험에 통과하여 온전한 기능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성별을 바꿀 수 없는 몽마로 바꿀 결심을 하며 1층에 내려왔다. 분위기가 달랐다. 안내음은 나뿐만 아니라 남궁에 있는 모두에게 전해진 탓이었다. 긴장감 넘치는 1층의 넓은 대전을 가로질러 입구로 향하며 소연이와 현아에게 손짓했다.

    내 뒤편으로 다가온 두 여자를 향해 나는 나지막이 지시를 내렸다.

    "혹시 모르니까 일자로 서 줘. 몹들이 튀어 나가지 못하게."

    "올, 학익진?"

    현아가 괜히 장난스럽게 답했지만, 내 긴장을 녹일 정도는 되지 않았다.

    "흰소리 하지 말고. 부탁할게."

    "치. 너무 무뚝뚝하면 재미없다니까?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 남자든 여자든. 그냥 잡고 버텨 볼 테니까."

    "오빠가 고생이겠다. 그치, 언니?"

    현아의 말이 맞았다. 지금 이곳에 남자는 나뿐이었다. 당연히 여성체 몽마가 나오면 내가 전담해야했다.

    크게 걱정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여자들이 더 걱정이 됐다. 남성체 몽마를 남겨두고 여자들이 전멸하면…….

    으으! 안 돼. 절대 안 돼!

    결코 그런 일은 없어야했다.

    나는 엄청난 상상에 몸을 부르르 떨다 말고 오늘 날 도와주기 위해 온 이들을 위해 입을 열었다.

    "아무튼 부탁 좀 하자. 그리고 성공하면 1만 경험치씩 쏠 테니까."

    "근데 진짜 줄 거야? 괜히 허세 부리는 거면 그냥 하지 말지?"

    "나도 허세에 한 표. 오빠야. 70이 넘어. 그럼 70만 경험치라는 말인데. 미치셨어요?"

    소연이와 현아가 차례로 날 갈궜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녀들에게 70만 경험치는 수십억 원보다 더 큰 가치를 가졌으니까.

    "줄만하니 주는 거야. 랭킹 1위가 이정도 못하겠냐?"

    "못할 거 같은데?"

    두 여자가 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거 내가 이렇게 미덥지 못했나 싶었다. 물론 내 상태창을 보여주면 간단히 해결될 테지만 그럴 수 없었다. 괜히 내 상태창을 공개했다가는 뒷감당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버그라고 난리치겠지.

    피식 웃은 나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내 경험치가 190만이 넘는다고 했지만…….

    "나는 키가 190이다!"

    "난 가슴이!"

    역시나였다.

    에효. 그래. 맘대로 생각해라. 그렇다고 포주 같이 느껴진다고 말할 수도 없고.

    내 솔직한 마음을 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것은 두 여자의 역린과 같았다. 괜히 꽤 도움 받았던 이 녀석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보다는 내가 좀 미더워지는 게 더 나았다.

    "하여튼 남자라고. 뻥은……."

    "킥! 진짜 이 오빠 웃긴다. 그치 언니? 무슨 190이야? 19만만 있어도 기겁할 정돈데."

    "내 말이. 내가 지금까지 모은 경험치가 26만 좀 넘는데."

    날 놀리는 대화가 꽤 놀라웠다.

    소연이가 한 말대로 26만이면 지금 그녀의 레벨이 40레벨이라는 걸 의미했다. 그 정도면 확실히 대단했다. 그것도 상위 랭커였으니까. 뿐만 아니라 현아도 비슷할 게 분명하니 그동안 두 녀석들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니들 꽤 열심히 했다? 둘 다 40이란 말이야?"

    "40은 무슨. 이제 38렙이야."

    "엉? 26만 넘었음 40렙 아냐?"

    "……금수저. 아니, 황금 콘돔 같은 오빠야. 물약 값만 해도 얼만데!"

    "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에 나는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랭커가 되면 뭐하나. 사냥할 때 물약을 빨아야하는 것을. 그나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게 아니라 다행이라는 게 두 여자의 설명이었다.

    나는 물약을 사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났고, 그저 영혼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괜히 된서리를 맞을 필요는 없었기에.

    "좆에 금칠한 오빠는 모르겠지. 암, 모를 거야."

    "알리가 있니? 우리가 어떻게 당했는데? 내가 그짓하다 기절한 건 저 오빠가 처음이잖아!"

    "나도. 진짜 지린다 지린다 했지만. 내가 지릴 줄 몰랐어. 괴물이야, 괴물! 저리가라, 괴물!"

    아예 재미 들렸구만.

    소연이와 현아가 나쁜 마음을 먹고 이러는 건 아니었다. 그저 오랜만에 만나서 들떴을 뿐이었다. 그만큼 그녀들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다분했다.

    아쉽지만 애정 어린 장난은 여기까지였다.

    ['영지 쟁탈전'을 시작합니다.]

    [전체 임무 '영지 방어'를 생성합니다.]

    보스의 삭막한 목소리가 남궁을 가득 채웠다.

    이제 싸울 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영지 쟁탈전 설명을 하다보니 썩 영양가가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 고영이 많이 성장했다는 걸 알리고 싶은 편이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나수정빼곤 친구 하나 없던 녀석이...

    그런데 어쩌죠?

    자꾸 이 녀석 뒤통수를 후려 갈기고 싶네요...흐흐...

    그럼 전 내일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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