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72화 (17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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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전혼 사냥은 은화 2개로 3개의 전혼을 임의로 뽑을 수 있었고, 금화 2개로는 7개의 전혼을 뽑을 수 있었다. 참고로 패치 이후 동화로는 하나의 전혼을 뽑는 게 가능했다.

    요즘 동화의 시세는 개당 경험치 200으로 고정된 상태였다. 만약 정말 엄청 너무 운이 좋아 동화 1개로 50의 성장치를 가진 전혼만 뽑는다고 가정해도…….

    "동화 천 개네. 그럼 최소 20만 경험치인가?"

    그럴 리가.

    이건 말도 안 되게 운이 좋은 경우로 상정했을 때 이야기였다. 나만해도 지금까지 평균을 구해보면 36의 성장치를 조금 넘었다. 꽤 운이 좋다는 나도 말이다.

    결국 못해도 30만 경험치는 받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아니지. 그래도 왕족이니까. 템보다는 못해도 반절은 받겠지. 한 50만은 받으려나?"

    내가 말해 놓고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근히. 아니, 대놓고 경쟁심을 부추기는 보스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자기자랑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중에 아주 간혹 하얀 전혼을 가진 이가 있기는 했지만, 푸른 전혼은 그냥 꿈의 영역이라 여기는 분위기였다.

    희소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가격은 상승하는 법이었다. 그런데 성능까지 좋으니 가격이 훨씬 더 올라갈 건 자명했다. NPO BOSS를 통해 경매를 붙이면 최고 기록을 갈아치울 지도 몰랐다.

    "물론 그 전에 간을 봐야겠지만. 나쁘지 않네."

    내 생각과 달리 그리 큰 가격이 붙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때는 미련 없이 깔 생각이었다. 제 값 못 받고 파는 것보다는 그냥 과식하는 게 나으니까.

    다시 눈앞의 창을 닫은 나는 기대감 어린 얼굴로 하나의 창을 열었다.

    바로 큰 변화가 예상되는 상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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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활력 : 17,144(+10,299)

    + 정력 : 2,875(0)

    + 경험 : 1,913,440(+12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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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격력 : 2,186(+95)

    + 마법력 : 9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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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어력 : 1,665(+1500)

    + 항마력 : 1,310(+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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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중률 : 236(0)

    + 회피율 : 26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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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도 : 89(0)

    + 치명 증폭 : 546%(+65)

    + 치명 저항 : 7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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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외로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변화는 다름 아닌 경험치였다. 비록 호콘 왕세자와 거래로 86만5천의 경험치가 늘어난 뒤에 사냥을 통해 얻은 경험치로 인해 증가분 표기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지난달에 결투와 사냥으로 거의 60만에 달하는 경험치를 얻은 건 대단한 일임에는 분명했다. 다만 이렇게 경험치가 폭증한 건 역시 거래 덕분이었다.

    "결국 돈 버는 데는 득템이 최곤가?"

    운 빨이 최고라는 생각에 쓴웃음이 튀어 나왔지만, 금세 쓸데없는 감정을 지우고 상태창의 변화에 집중했다.

    경험치를 제외하면 역시 활력이 가장 많이 올랐다. 이젠 활력 부족에 허덕일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업적 덕분에 타격력과 회피율이 소폭 상승했다.

    "그래도 젤 맘에 드는 건 치명 증폭이지."

    546%의 추가 데미지를 준다는 건 너무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내 약점이라 할 수 있는 활력을 1만 포인트 이상 올린 것도 좋았고, 치명 저항을 올려 내성을 올린 것도 좋았다. 덕분에 자유 임무를 우승하는 것에 희망이 생겼으니까.

    현재 내 수치화된 전투력은 3,549이었다. 초기 전투력에서 1,408 포인트나 올라갔다. 만렙에서 65%의 전투력 상승을 꾀했다는 건 꽤나 대단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11월도 끝났네. 시간이 참……. 빨리 가네."

    슬쩍 눈을 뜨고 달력을 보니 11월 28일이라 적혀 있었다.

    응? 29일?

    아……. 내가 또 하루 종을 처잤구나.

    그럴 만도 했다. 신의 허리띠를 얻는 여정은 정말 고단했으니까. 이정도 후유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얼른 다시 눈을 감았다. 까먹기 전에 전혼 사냥을 할 생각이었다. 하루 넘게 잠들어 버린 탓에 공짜 전혼 사냥을 못한 건 괜히 라이터를 돈 주고 사는 느낌이었다.

    뭐, 담배는 피지 않지만. 비슷하지 않으려나?

    역시나 한 자리 수의 성장치를 가진 전혼을 뽑은 나는 다시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아랫도리가 잠들기 전처럼 아프지 않았다. 그래도 병원에는 가볼 생각이었다. 내 똘똘이는 소중하니까.

    얼른 씻고, 싸고, 먹었다.

    잠시 후.

    외출 준비를 끝낸 나는 아침을 막 지난 햇살을 맞으며 현관을 나섰다.

    멈칫.

    안타깝게도 난 병원에 갈 수가 없었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그런 게 아니었다. 어차피 개인 진료를 받으면 비뇨기과 전문이의 지식과 경험을 비릴 수 있었다.

    내가 문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이유는…….

    웅성, 웅성.

    "어이, 김 기자. 여기 맞아? 아니. 박고영이 있긴 한가?"

    "원래 집에서 잘 안 나온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딴 데 갈 데도 없잖아?"

    "그렇긴 한데. 이틀 동안 대문 한 번 안 울리잖아. 안에 없는 거 아닐까 싶은데."

    "이틀은 무슨. 이제 겨우 하루 지났구먼."

    집 앞에 쫙 깔린 기자들 때문이었다.

    뭐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보다 내 몸이 먼저 반응했다. 고양이의 걸음을 따라하며 그대로 후진한 나는 새벽까지 친구들과 술 마시고 들어온 유부남처럼 현관문을 열고 닫았다.

    아무런 기척을 내지 않고 집안으로 돌아온 나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쉬며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 있는 미야프의 방에 들어간 나는 슬쩍 커튼을 열고 밖을 확인해 보았다.

    "……미친."

    우리 집 밖으로 얼추 스무 명에 달하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심지어 중계를 하려는지 커다란 카메라를 어깨에 올리고 있는 카메라맨까지 보였다. 무슨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

    내가 사고 친 연예인도 아니고.

    어이가 없는 건 없는 거였다. 일단 상황부터 파악해야했다.

    다시 1층으로 내려온 나는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마시며 전화를 하기 위해 휴대폰을 잡았다.

    [부재중 전화 439건]

    ……나 설마 몽유병에 걸렸나?

    부재중 전화뿐만 아니라, 문자와 메신저 메시지도 한 가득이었다. 더 웃긴 건 이 수많은 연락 중 내가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다는 점이었다.

    우선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몇 번 이어지더니 금방 통화가 연결됐다. 나는 조금 다급한 목소리로 다짜고짜 삼촌에게 물었다.

    "삼촌! 우리 집 앞에 기자들이 쫙 깔렸어요!"

    "고영아! 이 자식아! 전화를 왜 그렇게 안 받아!"

    "아, 피곤해서 자고 있었어요. 근데 이게 먼일이에요? 지금 난리도 아니라니까요! 제 얼굴 막는 건 잘 돼가고 있다면서요?"

    내게 위임 받은 삼촌네 로펌은 일처리 하나는 제대로 했다. 수임료는 물론이고 합의금도 알아서 하라는 한 마디의 위력이었다. 꽤 많은 돈이 나갔지만 그래도 내 얼굴이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걸 나름 잘 막아서 잘했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기자들이 들이닥치니 황당할 수밖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언론사와 거래중이라던 삼촌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정 반대되는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렸다.

    "일단 집에 있거라. 지금 직원들 보낼 테니까. 연락이 안 돼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가 없었어.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냐?"

    이건 또 무슨 소리?

    삼촌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난데없는 물음에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네? 무슨 일이라뇨? 그걸 저한테 물으면 어떡해요. 저 그냥 하루 종일 자고 있었다니까요?"

    "……너 설마 모르는 거냐?"

    이거 좀 불안한데…….

    삼촌의 목소리에 어린 의미심장함에 괜히 식은땀이 흘렀다.

    그때 삼촌이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뉴스라도 확인해 봐라. 채널은 상관없을 게다."

    "네. 알았어요. 아무튼 집 앞에 깔린 기자들부터 좀 어떻게 해주세요."

    차마 병원가야 한다고 말할 순 없었다. 그러면 삼촌이 더 걱정할 테니까. 정확한 이유를 묻는 것도 포기했다.

    그냥 보면 알겠지. 근데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러지?

    내가 통화를 끝내고 리모컨을 찾으려 할 때였다.

    "그리고……."

    "네?"

    "후우! 놀라지 마라. 우리가 최대한 빨리 해결할 테니. 일단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어디 나가지 말고. 알겠지?"

    "네. 그럴게요."

    불안감이 더욱 짙어졌다. 이렇게 자신 없는 삼촌의 말투는 내가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말고는 없었다. 그 말은 곧 이번 일도 그만큼 엄청나다는 의미일 가능성이 높았다.

    무의식적으로 침을 꼴깍 삼킨 나는 통화를 끝내고 찾아서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의 빨간 버튼을 눌렀다.

    팟!

    한동안 전기 맛을 못 봤던 TV가 켜지며 비싼 값을 했다.

    다행히 채널을 돌릴 필요가 없었다.

    [이곳은 어제 전체 알림의 주인공인 어썸 바나나. 박고영 씨가 거주하고 있는 자택입니다.]

    우리 집 앞의 모습이 TV화면에 나오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자기들 마음대로 촬영하고, 그걸로 모자라 내 이름을 까발리는 행태에 어이가 없었다.

    다만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아니, 낼 수 없었다. 바로 뉴스 화면 하단에 딱 박혀 있는 글귀 때문이었다.

    [어썸 바나나 박고영. 최초의 신성 무구 제작에 성공!]

    "……하?"

    내 이름 석 자가 전국으로 방송됐다.

    혹시나 싶어 채널을 돌려 보았다. 욕만 나왔다. 모든 뉴스 채널에서 내 이름을 언급했다. 순간 열이 뻗힌 나는 삼촌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이내 그만 두었다. 법은 나보다 삼촌이 더 잘 알았고,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조언을 듣는 게 더 낫지 싶었다.

    그 전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열 받는 건 열 받는 거였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었다. 최소한 이유라도 알면 덜 억울할 것 같으니까.

    분노의 엄지로 채널 변경 버튼을 꾹꾹 눌러 보았다. 그냥 채널이라는 채널에서는 다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만 이렇게 날뛰는 이유에 대한 뉴스는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사태 파악을 해야지. 왜 우리 집만 비추는데?

    괜히 더 짜증이 솟아 리모컨을 소파 위로 던졌을 때 내 전화기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나 쌤]

    나 원장의 전화였다.

    얼른 통화를 수락한 나는 전화기를 귀에 댔다.

    "야! 이 나쁜 놈아!"

    "아 깜짝아! 왜 소릴 질러!"

    우렁찬 소리. 아니, 소음에 전화기를 다시 떼며 소리쳤다. 나 원장의 비명 같은 고함에서 내 고막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다행히 나 원장의 목소리는 금세 잦아들었다.

    나는 다시 전화기를 귀에 대고 헛기침을 시작으로 통화를 시작했다.

    "나 쌤. 나 걱정했어? 보니까 전화를 꽤했던데?"

    "……걱정 같은 소리하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무슨 변덕으로 셀프 아우팅을 한 거야?"

    "아우팅? 무슨 아우팅?"

    "전체 공지로 니 이름이 떴잖아! 이게 어디서 오리발이야!"

    아따 고막아.

    잠시 귀를 보호한 나는 그냥 스피커폰으로 해 놓은 뒤 핸드폰을 입 앞으로 가져왔다.

    "아, 진짜. 나 하루 종일 자다 일어났어. 몸이 좀 안 좋아서 병원엘 가려고 했더니 집 앞에는 기자들이 쫙 깔려 있고. 무슨 일인지 설명부터 해주면 안 될까?"

    "……진짜야?"

    "그럼 진짜지."

    나 원장이 내 솔직한 대답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한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에휴! 그럼 공지 때린 것도 네가 한 게 아니야?"

    "무슨 공지? 아니, 잠깐만. 보스가 무슨 업데이트를 한 거야?"

    "진짜 모르나보네……."

    나 원장이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괜히 불안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분위기를 잡는지 모르겠다.

    더 이상 마른침을 삼킬 수도 없을 때.

    나 원장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제. 아니 그러니까 그제 저녁에. 갑자기 전체 공지가 떴어."

    "전체 공지? 보스에 그런 기능도 있었나?"

    "있더라. 아무튼 갑자기 네 이름이랑 신성 무구? 그걸 네가 만들었다고. 그리고 자격을 증명했다고. 그랬다는 공지가 떴어."

    "그니까 도대체 어떻게? 아니. 내용이 정확하게 어떤 거야? 어떻기에 온갖 뉴스에서 내 이름을 까발리는 건데?"

    살짝 상기된 내 추궁 같은 물음에 나 원장이 또 다시 말을 줄였다. 그러더니 깊은 한숨이 이어졌다. 뭔가 싶어 내가 다시 알려달라고 캐물었지만, 나 원장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슬슬 인내심이 사라지며 미간이 좁혀졌다.

    다행히 나 원장을 날 무시한 게 아니었다.

    이윽고 나 원장과 내 개인 채팅방에 한 장의 사진이 전송됐다.

    정확하게는 사진이 아니라 글자였다.

    [박고영 참가자가 신성 무구 '신의 허리띠'의 제작에 성공했습니다.]

    [박고영 참가자가 신성 무구 '신의 허리띠'의 시험에 통과했습니다.]

    [첫 신성 무구의 출현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를 시작합니다.]

    문구 자체만으로도 머리를 부여잡고 싶어졌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 원장이 보낸 준 건 사진이었다. 맑은 하늘에 빛이 모여 글자를 이룬 한 장의 사진. 사진의 정체는 다름 아닌 한반도의 상공을 점령한 보스의 안내창이었다.

    잠든 사이 전 세계 하늘에 내 이름이 아로새겨졌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퇴고까지 마친 시간 오후 11시 45분.

    하얗게 불태웠습니다.

    15분을 못참고 그냥 예약 걸로 침대로...

    얼른 주말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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