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70화 (170/200)
  • <-- Whale Hunting -->

    순간 내 물건이 부러졌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들었다.

    고통에 눈꺼풀이 파르르 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억지로 눈을 떴다. 다행히 속마음처럼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전기톱이 살짝 부어 있기는 했지만 어디 부러진 것 같지는 않았다.

    혹시나 싶어 슬쩍 손으로 만져보았다.

    괜찮네. 아니, 괜찮은 게 아니지.

    부러지지 않았다는 안도가 들었지만, 그보다 현실화된 막막함이 절망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차갑게 얼은 손으로 만지니 시원한 느낌이었다. 조심스레 자가 진찰을 끝낸 나는 다시 허리를 펴며 전기톱 앞에 있는 얼음을 확인해 보았다.

    차이가 없다. 실수로 같은 그림을 나란히 붙여 놓은 틀린 그림 찾기 같자, 눈앞이 다시 깜깜해졌다. 이렇게 막막한 적이 언제 있나 싶었다.

    아, 꼭 그때 같네. 재수 없는 의사 양반이 현대 의학으로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남성으로서 사망 선고를 받았을 때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때를 생각해보니 오히려 지금보다 그때가 더 참담했던 것 같았다. 단순히 기억이 흐려져서 그런 게 아니었다. 사실 그때 그 기억은 쉬이 잊을 수 없는 각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긴 한데. 진짜 어떡하라고. 아오……."

    물론 내 인생에서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면한 문제가 쉬운 건 결코 아니었다. 트럭에 치이나, 버스에 치이나. 맹렬히 달리는 차에 치이면 죽는 건 매한가지였다.

    "에효……."

    자꾸 한숨만 나왔다. 이제는 기도가 완전히 마비됐는지 숨 쉬는 게 괴롭지 않았다. 그래서 더 난감했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니까. 게다가 어떻게든 눈앞의 얼음 바위를 깨야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숨을 가라앉히며 엉덩이에 힘을 빡 줬다. 쥐가 날 정도로 괄약근에 힘을 준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자학하는 걸 마주볼 용기까지는 없었다.

    두 번째 공격이 이어졌다.

    콰아앙……!

    조금보다 더 큰 소리가 터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굉음과 고통은 비례한다는 것을.

    "아악! 아오! 악! 아악!"

    욕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악다구니였다.

    나도 모르게 무릎과 허리를 굽힌 채 사타구니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차마 손으로 만질 수가 없었다. 괜히 만지면 더 아플 것 같았다.

    똥 싸다 막혀 끙끙거리는 강아지처럼 신음을 흘리던 나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눈을 뜰 수 있었다.

    "후……. 썅! 그냥 해머 하나 달라고! 아님 망치라도! 이게 무슨 개지랄인데!"

    이성이 뚝뚝 끊어졌다. 어쩔 수 없었다. 불알이 터지는 고통에 이성을 기대하는 건 과욕이었다.

    허공에 삿대질하며 난리를 쳤지만 역시나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혼자 지랄 지랄 개지랄을 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래도 실컷 쌍욕을 뱉어내니 속이 좀 시원했다. 정신이 좀 맑아지자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정신력을 집중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쉽지는 않았지만, 임무창을 여는데 실패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동안 노력이 헛되이 사라진 건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

    [신의 허리띠 구출]

    + 완성한 신의 허리띠를 구출하라.

    + 임무 현황 : 1/100

    + 기본 보상 : 신의 허리띠

    + 파생 임무

    --------------------

    부질없었다.

    임무 현황은 고작 1이 올라갔을 뿐이었다. 그 말은 곧 방금처럼 두 번의 공격을 백번이나 더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198번. 하, 하하……."

    그냥 웃음이 나왔다. 박음질을 198번이나 더해야 임무를 깰 수 있다는 건 조금도 희망적이지 않았다. 벌써부터 내 물건이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가득했다.

    내 허탈한 웃음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웃음이 사라지더니, 이내 그 자리에 오기가 차올랐다.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은 채 나는 상태창을 확인해 보았다. 역시나였다. 내 활력이 깎인 게 눈에 보였다.

    전투였구나!

    뒤늦게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 임무 현황의 100은 눈앞의 얼음 바위의 전체 생명력을 의미했다. 100%의 활력 중 지금 내가 깎은 게 1%라는 사실이 허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문제는 내 활력인데. 1% 깎는데 5%가 까였어?"

    내 미간이 좁혀졌다. 전황이 좋지 않았다. 더욱이 눈앞의 빙암과의 전투는 회전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아 걱정이었다.

    물론 나 혼자 공격할 수 있다는 건 좋은 거라 볼 수 있었다. 다만 회전이 없다보니 활력 회복과 정력 회복 기술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활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활력 치료를 하거나 물약을 먹어야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정력이 내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았다.

    다행히 물약은 풀이니까. 한 번 해보자!

    이판사판이었다.

    나는 더욱 집중력을 끌어 올리며 버프를 사용해 보았다. 제대로 들어갔다. 처음으로 내게 긍정적인 신호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동안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속도 증가와 광속 자지술까지 사용하니 최대 14대를 때릴 수 있게 됐다. 예전이라면 엄청난 연타 공격에 기뻐했겠지만…….

    "한 번 박는 것도 드럽게 아픈데. 미치겠네."

    갈수록 태산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어쨌든 하기는 해야 했다.

    또 다시 눈을 질끈 감은 나는 곧 다가올 고통의 파도를 대비하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허리를 튕겼다.

    쾅! 콰앙! 콰아앙……!

    3번.

    내가 허리를 튕긴 횟수였다. 딱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 단단한 얼음에 내 물건을 쑤실 수 없었다. 이로써 한 가지는 확실했다. 창과 방패의 싸움은 무조건 방패가 유리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저 구부정한 자세로 몸을 굽힌 채 바들바들 몸을 떨 뿐이었다. 다행히 다리는 풀리지 않았지만 그래봤자였다.

    보스는 냉정했다.

    [성기가 동상에 걸렸습니다.]

    [성기의 성능이 25% 하락합니다.]

    [성기가 타박을 당했습니다.]

    [성기의 성능이 50% 하락합니다.]

    확인사살.

    이젠 욕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소리칠 힘도 없었다. 진짜 나갈 방법이 있다면 이대로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패배를 떠올리는 순간 눈앞에 작은 창이 떠올랐다.

    [포기]

    "……장난해?"

    변덕이 들끓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대로 포기하고 싶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 도망칠 길이 열리자 그러기 싫었다.

    무릎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나는 어금니를 더욱 강하게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박았다. 더 이상 눈을 감지 않은 채.

    퍽퍽! 퍼퍼퍽!

    강렬한 굉음은 없었다. 무릎도 굽히지 않았다. 그저 허리를 튕기고 또 튕겼다. 한기에 마비가 되어 고통에 무뎌질 법도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허리를 튕겨 차가운 얼음벽을 하물로 찌를 때마다 똥구멍이 찌릿찌릿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멈추기 싫었다.

    어느덧 오기가 분노로 변해 있었다.

    퍽퍽! 퍽퍽퍽! 콰앙!

    "헉, 헉헉!"

    반쯤 무아지경이었다.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도 나는 허리를 멈추지 않았다. 다행히 회전이라는 개념이 없는 특이한 전투다보니 버프가 계속 이어졌다.

    얼마나 이를 악물었는지 턱에 감각이 없어졌을 때였다.

    "아……!"

    나는 얼핏 들리는 보스의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춰야했다. 뒤늦게 상태창을 확인해 보았다. 아차 싶었다.

    활력 1.

    즉사 면역 덕분에 살아 있었다. 백전불태의 업적이 없었다면 나는 방금 공격에 패배를 맛보았을 상황이었다. 다행히 자책골을 넣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흥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분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되지도 않았겠지."

    물론 흥분해서 꼭 나쁜 건 아니었다. 그 덕분에 고통이 덜했으니까.

    늦게나마 다시 이성을 되찾은 나는 활력 치료를 연이어 사용하여 내 활력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는 내 눈앞에 상태창을 그대로 띄워 놓았다. 혹시라도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차차.

    다시 박음질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그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바로 신의 허리띠 구출 임무 현황이었다.

    [33/100]

    "오!"

    의외라면 의외의 결과였다.

    처음 1%를 깎을 때 내 활력이 5%가 소비됐었다. 그런데 지금은 1%를 깎는데 3%정도가 소비된 것 같았다. 이정도만해도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남은 정력을 확인해 보니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내 인내심과 고통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할 수 있겠어."

    인내심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나는 다시 허리를 튕겼다.

    여전히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고, 칼로 베인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난 멈추지 않았다. 그저 활력이 떨어지면 활력 치료를 사용하고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그렇게 세 번째 활력 치료 타임을 마치고 다시 공격을 시작했을 때였다.

    쾅! 콰앙! 쩌어억……! 콰아앙!

    "어?"

    처음으로 파열음이 들렸다.

    고개를 내려 얼음 바위의 표면을 확인해 보았다.

    옥쟁반처럼 매끈하고 금강석처럼 단단했던 얼음에 거미줄이 생겼다.

    "아아……!"

    환희가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물론 환희는 오래가지 않아 사라졌다.

    파삭! 파사삭!

    "윽! 으으윽!"

    거미줄의 중심을 전기톱이 파고들자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날카로운 고통이 느껴졌다. 얼음이 깨지며 내 살덩이를 찌르니 당연한 결과였다. 기껏 무뎌진 고통이 다시 강렬해지니 도리어 내 공격이 무뎌지고 말았다.

    그래도 참았다. 참고 또 참았다. 그 인내심이 곧 빛을 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파항! 쩌억! 쩌어어억……!

    "후우……. 이게 되는구나. 진짜로."

    인내의 결실이 눈앞에 드러났다. 거대한 얼음 바위가 세로로 쩍 갈라지더니 이내 양분되어 버렸다. 내 허리 앞에 있는 얼음은 마치 쇠로된 추에 맞은 것처럼 움푹 들어가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놀람도 잠시 내 눈이 스르륵 풀렸다.

    몽롱해진 눈빛으로 변한 나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 내 손이 허공을 향해 뻗어가는 것을.

    꽈악…….

    스스로 움직여 허공에 둥실둥실 떠 있는 신의 허리띠를 움켜쥐는 순간이었다.

    [파생 임무 '신의 허리띠 구출'을 완료합니다.]

    [신성 무구 '신의 허리띠'를 획득합니다.]

    [고유 임무 '신의 허리띠'를 완료합니다.]

    드디어 지긋지긋했던 임무가 끝났다. 임무 보상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눈앞에 있는 창으로 손을 가져갔을 뿐이었다.

    지금은 그저 쉬고 싶었다.

    ***

    머리가 지끈거렸다.

    천천히 돌아오는 정신에 눈을 떠 보니 소파에 앉아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손으로 눈을 비비며 시계를 확인해 보니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은 게 보였다. 아무래도 피곤함에 잠깐 쓰러진 것 같았다.

    "아, 깜빡 잠……. 28일?"

    그게 아니었다. 잠깐 졸은 게 아니라 그냥 하루 종일 잤다. 24시간 넘게 잠들었으니 시간이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하루 꼬박 잤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만큼 서브 퀘스트가 지랄 같았다는 의미였다.

    나는 두 번 다시는 이번과 같은 퀘스트를 하지 않기를 기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악!"

    아니, 일어날 수 없었다.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지만, 엄청난 고통이 내 사타구니에서 느껴졌다. 도저히 꼼짝을 할 수 없는 고통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아닐 거야.

    불현듯 피어난 불안감을 억지로 뒤로하며 조심스레 바지를 들춰 보았다.

    "아……."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말았다. 내 사타구니에는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벌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잣됐다.

    내 소중한 물건은 잣이 되어 있었다. 정확하게는 잣이 빠진 잣방울 같았다. 한 마디로…….

    "강판에 갈린 양초 같네……."

    차마 내 입으로 난도질당한 걸레짝 같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날카로운 얼음 조각에 베인 내 물건의 상태는 정말 심각했지만, 다행히 병원에 가야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가기는 갈 생각이지만 지금 당장은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얼마나 재생력이 좋은지 벌써 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으윽! 이거……. 안되겠는데."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팬티에 난도질당한 물건이 쓸렸다. 꽤 비싼 팬티였지만 쓸릴 때마다 엄청난 고통이 느껴지니 도저히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소파에 다시 앉으며 아주 오래전 일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돈가스 먹으러 간다고 자랑하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내아이가 있었다. 해맑게 웃으며 엄마 손잡고 떠났던 그 아이는 다음날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며칠 뒤 학교에 다시 나온 아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었고, 한동안 인상을 크게 쓰던 기억이 났다.

    아, 그래서 걔들이 그렇게 아파했구나.

    이제야 왜 그때 그 아이가 인상을 썼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 내 인상이 그때 그 아이처럼 구겨졌다.

    ========== 작품 후기 ==========

    일요일 늦게 올라와서 피곤이 아직도 풀리지 않네요.

    명절 때 한 글자도 못 쓰다보니 비축분은 없고.

    슬슬 피가 말라가는 시간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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