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65화 (16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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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고가 그런 식으로 되어있을 줄이야.

    인어 메이드 도리의 성씨를 들은 직후 나는 옥문의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공간 이송을 한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엄청난 공간 복사에 놀란 나머지 잊고 있던 걸 떠올린 탓이었다.

    뒤늦게 비고의 열쇠에 생각이 닿은 나는 얼른 열쇠를 검황적 순으로 범벅이 된 도리의 얼굴 앞에 내밀었다. 비고의 열쇠를 꺼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생각하는 순간 손에서 뿅! 하고 나타났으니까.

    열쇠를 확인한 도리는 그 즉시 어떻게 사용하는 지 알려주었다. 비고로 안내하는 게 아니라 사용법을 알려주는 도리의 행동에 적잖이 놀랐다. 내가 생각했던 비고와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전과 달리 비고의 열쇠는 밝은 빛을 발하며 사라졌고, 이내 내 눈앞에 남궁의 비고가 나타났다.

    마치 인터넷 쇼핑몰 같은.

    열쇠가 브라우저인가? 남궁은 운영체제고. 그럼 비고는 도메인이야?

    실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예상 밖의 상황이었다.

    잠시 당황하기는 했지만 익숙한 인터페이스에 나도 모르게 손을 움직였다. 스마트 패드를 사용하는 것처럼 휙휙 여러 가지 물품을 둘러본 나는 어느 순간 손을 멈추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보스의 비밀 창고에는 내가 애타게 찾고 있는 신성 재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집의 수염.

    다행스럽게도 남궁 비고에서 꺼낼 수 있는 항목이었다. 다른 던전에 종속된 보물이었다면 비고를 열었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었다. 천만 다행스러운 일이었고, 나는 얼른 누가 볼세라 손을 뻗었다.

    뜻밖의 행운을 손에 쥔 나는 즐거운 미소를 띠며 하인이든 뭐든 마음대로 놀라고 말한 뒤 옥문을 열고 현실로 돌아왔다.

    꿈속을 여행한 것 같은 몽롱한 기분은 현실로 돌아온 지 한 시간이 넘게 흘렀음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덧 두 시간 정도 시간이 흐르니 전율에 잘게 떨었던 손끝이 점점 안정을 되찾았다.

    "후……. 이거 끝내주네. 끝내줘. 와. 이걸 팔려고 했다니."

    내 눈깔이 썩은 동태 눈깔보다 못하다는 걸 여실히 깨달았다. 괜히 오한이 들었다. 만약 별 생각 없이 팔았다면 얼마나 후회했을 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최소한 한 달은 맛탱이가 갔겠지.

    안도감도 잠시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근데 왜 옷을 입고 있었지? 침실이잖아? 저택으로 변해도 옷을 벗고 소환됐었는데."

    이상했다. 고개를 갸웃하며 곰곰이 생각해봐도 의문 투성이었다. 섹스 배틀을 위해 남궁으로 간다면 꽤 불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옷을 벗어야하나? 이따가 가서 좀 물어봐야겠……. 아!"

    뒤늦게 옷을 입고 남궁으로 가는 것이 가진 장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얼떨떨한 얼굴로 말했다.

    "삼촌이랑 숙모도 초대할 수 있겠네? 옷을 입으면 쪽팔리는 일이 없으니까. 이거 잘하면……?"

    우주 최강의 첨단 휴양지가 내 손 안에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힘이었다.

    그건 그거고. 일단 확인부터 해보자.

    새로운 권력을 손에 쥐었다는 것보다 갱신된 임무 현황이 더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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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허리띠]

    + 신의 허리띠를 취하라.

    + 임무 현황 : 4/5

    + 기본 보상 : 푸른 전혼

    + 추가 보상 : 모든 기술 숙련도 한 단계 상승

    + 고유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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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예상대로였다. 임무 현황이 3에서 4로 변했다. 이제 한 개의 재료만 더 구하면 신의 허리띠를 만들 수 있었다. 게다가 모든 기술 숙련도가 한 단계 상승하는 보너스까지.

    그러고 보니 기술 숙련도가 어떻게 됐더라?

    문득 기술 숙련도까지 생각이 이어진 나는 얼른 기술 현황을 펼쳐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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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격 기술]

    + 구강 삽입 : 5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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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어 기술]

    + 도둑 숨기 : 2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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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원 기술]

    + 활력 치료 : 5성

    + 활력 회복 : 10성

    + 정력 회복 : 10성

    + 도둑 삽입 : 10성

    + 속옷 도둑 : 2성

    + 성기 강화 : 9성

    + 색기 증가 : 9성

    + 속도 증가 : 8성

    + 광속 자지술 : 9성

    + 강약 조절 : 9성

    + 맞아 줄래 : 9성

    + 무기 연구 : 9성

    + 동공 확장 : 9성

    + 혈류 증가 : 9성

    + 절대 삽입술 : 10성

    + 백수 투하 : 5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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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격 기술과 방어 기술은 더 볼 것도 없었다.

    반면 지원 기술은 달랐다. 그동안 자유 임무에 많게는 1단계, 적게는 2단계씩 기술 숙련도 상승 보상이 나왔다. 그걸 모두 챙긴 보람이 보였다.

    "그래도 좀 아깝긴 하다. 그냥 무시하고 광속 자지술이랑 속도 증가를 쓸 걸 그랬나?"

    욕심 많은 나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다. 왕족 몽마를 사냥하며 속도 증가와 광속 자지술을 쓰지 않았기에 두 기술의 숙련도는 그대로였다. 가뜩이나 점점 사용 빈도가 줄어들다보니 앞으로 올리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나마 백수 투하를 5성까지 올린 게 다행인가?

    그래도 백수 투하가 예상보다 빠르게 올라가는 게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물론 반숙의 달걀을 사용하여 크게 올랐고, 실제 기술을 사용해서 올린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5성이 됐다는 사실은 나름 긍정적이었다.

    천천히 아쉬움을 달랜 나는 10성이 되어 변화한 기술의 정보를 차례로 확인해 보았다. 정력 회복은 띄우지도 않았다. 어차피 3%에서 5%로 늘어났을 게 뻔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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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둑 삽입]

    + 숙련도 : 10성

    + 삽입 공격 횟수 1회 추가.

    + 범용 달인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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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 삽입술]

    + 숙련도 : 10성

    + 천 계열 속옷 대상에게 삽입 공격 가능.

    + 고유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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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박."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30%의 확률로 추가 공격을 하게 해주던 도둑 삽입은 아예 한 대 더 때릴 수 있게 진화했고, 절대 삽입술의 경우 데미지 페널티가 사라졌다. 이거야 말로 혁신이었다. 혁신.

    괜히 몸이 근질근질했다. 엉덩이는 들썩였고, 눈빛은 흥분했다. 아무래도 당분간 사냥에 더 집중해야 할 것 같았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절대 삽입술은 예외로 쳐도, 도둑 삽입은 범용 기술이었다. 그 말은 곧 다른 지원 기술들도 10성이 되면 한층 더 강력해질 거라는 걸 의미했다.

    "아, 미치겠네."

    절로 앓는 소리를 내뱉은 나는 한참을 꼼지락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막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축배는 아직 터트릴 때가 아니라 생각했으니까.

    길게 숨을 내뱉으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제야 심장이 점차 조용해지는 것 같았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잦아든 이유에는 이달의 자유 임무도 꽤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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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회차 자유 임무]

    + 동족의 정혈을 약탈하라.

    + 임무 현황 : 15,160/10,000

    + 기본 보상 : 황금 선물 상자

    + 우승 보상 : 황금 공물 궤짝

    + 자유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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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자유 임무는 기술 숙련도를 상승시켜주는 보상 위주였다. 3회차는 기본 보상으로 1단계를, 4회차는 우승 보상으로 2단계를, 5회차는 기본 보상으로 1단계와 3단계를 올려주는 반숙의 달걀을, 6회차는 조건부 1단계의 숙련도 상승이 보상이었다.

    그랬던 것이 이제는 싹 사라졌다. 뜬금없이 선물 상자와 공물 궤짝이 보상으로 되어 있자, 나도 모르게 기운과 기대가 동시에 빠졌다. 가장 마지막 벽을 시스템의 도움 없이 올려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우울하기까지 했다.

    어쩔 수 없지.

    아쉬움은 아쉬움이었고, 일단 우승 보상이 더 중요했다.

    "그것보다 골 때리네. 언제 이렇게 올랐지? 아아. 별장에서."

    웃긴 상황이었다. 새하얗게 불태우며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의 경험치가 자유 임무에 집계되었다. 자정이 넘어서까지 결투를 해서 그런 것 같았다.

    만약 선착순으로 등수를 정하는 방식이라면 우승을 확정했을 수도 있지 싶었다. 물론 확실한 건 아니었다. 당연히 이번 달은 결투 위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숙련도를 신경 쓰기는 해야겠지만, 남궁 광고도 할 겸 잘됐다 싶었다.

    조급함을 덜어낸 나는 현재 내 보유 경험치를 확인해 보았다.

    519,270.

    많기도 하네.

    이 정도면 신기를 성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일단 성장만 시키면 취소가 안 되니까. 1단계만 시켜서 고정해 놓는 것도 나쁘지 않아."

    낙장불입.

    한 번 성장하기로 결정한 장비 성능은 되돌릴 수 없었다. 그러니 3차 성장을 1단계만 해 놓아도 안전장치로써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고작 3천의 경험치로 말이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여름달의 사악한 미소를 성장창에 올렸다. 순식간에 성장이 끝났다. 1차 성장으로 타격력, 2차 성장으로 치명 증폭을 선택한 나는 마지막으로 활력을 1단계만 성장하고 다시 신기창에 여름달의 사악한 미소를 등록했다.

    이윽고 변화한 상태창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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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활력 : 6,845(+75)

    + 정력 : 2,875(0)

    + 경험 : 351,270(-16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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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격력 : 2,091(+250)

    + 마법력 : 7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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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어력 : 170(0)

    + 항마력 : 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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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중률 : 236(0)

    + 회피율 : 2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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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도 : 89(0)

    + 치명 증폭 : 468%(+36)

    + 치명 저항 :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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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단계만 성장한 활력은 75밖에 오리지 않았다. 반면 타격력은 드디어 2천의 고지를 밟았다. 10단계 성장을 통해 250의 타격력이 늘어난 덕분이었다. 물론 날 가장 뿌듯하게 만든 건 역시 치명 증폭이었다.

    20%에서 30%.

    10단계 성장을 통해 치명 증폭은 10%가 올랐다. 반면 상태창의 치명 증폭은 36%나 증가했다. 상승이 아니라 증가라는 단어가 가지는 차이였다. 전체의 치명 증폭의 증가폭이 10%나 늘어나니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3차 성장으로 선택한 활력도 남은 9단계를 성장하면 675의 활력을 더 올릴 수 있었다. 물론 높으면 높을수록 좋았다. 다만 효율이 문제였다. 내가 원하는 건 활력 상승보다 최대한 적은 돈으로 팔아도 위험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3천 경험으로 본래의 목적을 달성한 나는 기쁨을 감추지 않으며 상태창을 닫았다. 이내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동안 고민했던 한 가지 문제에 대한 확신이 섰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집중력을 끌어 올리며 전혼창을 열었다.

    그리고 독수리를 늑대의 먹이로 주었다.

    ['하얀 늑대의 영혼'이 귀족 4단계로 성장합니다.]

    10%의 치명 증폭이 추가되었다. 다시 상태창을 확인해 보았다.

    "481."

    13%의 치명 증폭이 올라가 있었다.

    내 장점이 더욱 더 극대화되는 순간이었다.

    ***

    그날 저녁.

    나는 가족들을 남궁으로 초대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보스 앱의 궁전창 초대할 사람을 등록하고 동의를 받기만 하면 됐다. 나와 삼촌이 떨어져 있어도 상관이 없었다.

    먼저 도착해 있었던 나는 슬쩍 도리에게 눈치를 주었다.

    얼른 애들 단속해라. 손님들 온다.

    방금 전까지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주범인 도리는 꼬리를 파닥파닥 거리며 얼른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그사이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새로운 공간이 복사되어 펼쳐졌다.

    청소할 필요가 없어서 좋네.

    새로운 기능을 발견한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남궁에 내가 초대한 손님이 날아들었다.

    "어, 어어!"

    "세상에……!"

    "말도 안 돼! 이건, 이건!"

    익숙한 목소리가 낯선 비명을 질렀다. 그 중에는 삼촌의 목소리도 있었고, 숙모의 목소리도 있었다. 심지어 내게 부모님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선영이의 목소리까지 얼핏 들렸다.

    초대한 손님은 내 가족이었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바로 리아였다.

    나는 천천히 눈을 뜨며 새로 복사한 공간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았다.

    저 멀리 어둠 속 푸른 별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지구였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딱딱한 대지는 다름 아닌 달의 표면이었다.

    "꽤 운치 있죠?"

    "……고영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그냥 달나라 여행 왔다 생각하면 돼요. 뭐, 진짜 같은 가짜지만."

    "가짜라니! 가짜라니! 형! 이거 완전 쩔어! 와, 와아. 와……!"

    어리둥절한 삼촌과 달리 선호는 그냥 신나서 방방 뛰었다. 심지어 중력까지 변했는지 높이뛰기 선수처럼 허공에 붕 떠올랐다. 그 모습에는 나도 적잖이 놀랐다.

    이거 재밌겠는데?

    나도 선호처럼 힘차게 허공으로 뛰어 올라 보았다. 역시 높이 떠올랐다. 중력이 달라졌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새로운 경험을 만끽할 수 있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삼촌이 수십 년 전 동심을 되찾으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숙모도 마찬가지였다. 토끼눈을 하고 있던 선영이도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 이게 행복이지. 행복이 별 거야?

    모두 생소한 환경. 아니, 달나라 여행이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뭐,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공간 복사는 중력뿐만 복사한 게 아니었다. 이 골 때리는 기능은 기온까지도 복사했다.

    "으으, 혀, 혀어어엉……."

    "에취! 에취취!"

    우주는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연이어 감기 걸린 듯 재채기를 한 나는 얼른 새로운 공간을 복사했다.

    파하앗……!

    사진으로만 보았던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해변이 달나라를 밀어버렸다.

    모두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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