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58화 (158/200)
  • <-- Ninetail Queen -->

    "아놔…….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엿 같네, 진짜."

    나지막이 읊조리다보니 괜히 더 열이 뻗혔다. 얼리고 태우고. 아주 날 가지고 노는 게 확실했다.

    썅. 액체 질소 다음엔 황산이냐?

    욱하는 감정이 치솟았다. 여전히 실실 웃고 있는 여름달이 보였다.

    "좆까, 씨발."

    내가 이기고 만다! 꼭!

    승부욕이 타오르며 내 눈빛도 함께 타올랐다.

    언제까지 쪼갤 수 있나 보자고.

    짜증나게 날 비웃고 있는 여름달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뿌드득!

    그제야 여름달이 입을 열었다. 그것도 아주 재수 없고, 얄밉게.

    "정신력이 대단하군. 지금까지 버틴 사내는 그대가 처음이다!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인간!"

    "지랄하네. 조까세요. 이 미친년아!"

    이미 이성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진짜 내가 이렇게 막나가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여전히 내 물건을 내려다 볼 용기는 없었지만.

    열은 받았지만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건 미련한 짓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침착하려 애썼다. 다행히 초반처럼 카운트를 먹지 않았기에 시간을 넉넉히 가질 수 있었다.

    슬쩍 상태창을 확인하며 남은 활력부터 확인해 보았다.

    84.

    ……돌겠네.

    여름달에게 어떻게든 한 방 먹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내 활력이 바닥인 상태였다.

    다행히 간당간당한 내 활력을 보니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냉정을 되찾으며 천도 씨앗을 먹었다. 물론 그 전에 미야프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모두 사용했다.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쨌든 천도 씨앗을 먹은 덕분에 버프를 받고 만피인 채로 여름달의 다음 공격을 받을 수 있게 됐으니까.

    "후우……."

    공격권이 여름달에게 넘어가자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흘러 나왔다. 긴장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었다. 이런 내 모습에 여름달이 또 재수 없게 바라보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기면 돼. 이기면.

    쓸개를 깨문 것처럼 입맛이 썼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눈을 빛냈다.

    내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여름달이 처음으로 바닥에서 무릎을 뗐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서늘한 바람을 일으키며 몸을 돌렸다. 나와 마주보는 자세가 된 그녀는 망설임 없이 사박사박 눈밭을 걸었다.

    뽀드득.

    바람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던 여름달의 발자국 소리가 마지막에 변덕을 부렸다. 그녀는 진각을 밟는 것처럼 바닥을 찍었다. 움푹 들어간 눈밭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그렇게 섬뜩할 수가 없었다.

    꿀꺽.

    이번엔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나도 모르게 긴장한 눈빛으로 여름달의 얼굴을 바라볼 때였다.

    "건방지구나! 감히 본안을 노려보다니!"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이쯤 되면 사이코패스가 따로 없었다. 저건 미친년이었다. 문제는…….

    짝! 짝! 짜악!

    "악!"

    희고 작은 손바닥이 드럽게 맵다는 것이었다.

    난데없이 싸다귀 3연타를 맞은 내 볼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픈 것도 아픈 거였지만, 자존심이 더 상했다. 실제로 이어진 보스의 판정을 들어보니 데미지는 그리 크지 않았다.

    ['여름달'에게 501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여름달'에게 500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여름달'에게 498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고작 1,499의 데미지.

    반면 정신적 충격은 1만4천의 데미지를 받은 것 같았다.

    "아빠? 바람폈어?"

    거기에 미야프의 헛소리까지 더해지니 정신적 충격이 엄청났다. 뒤늦게 리아와 미야프가 아침 드라마에 푹 빠진 게 기억났다. 아무래도 TV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싸다귀 3연타의 첫 시작이었던 왼쪽 뺨이 화끈거렸다. 이가 시릴 정도로 얼얼한 공격을 끝낸 여름달이 미친년처럼 짖더니 이내 제 자리로 돌아가 엎드렸다.

    "자중하도록."

    뭐래? 이 미친년이.

    잠깐 돌아간 입으로 인해 말이 안 나와 더 억울했다. 한 마디 쏘아 붙여줘야 속이 풀릴 것 같은데. 진짜 가지가지 하는 여름달이었다.

    "후우……."

    다시 공격권을 되찾은 나는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흥분하면 안 된다. 흥분하면 지는 거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는 걸음을 옮겼다. 금세 엎드린 여름달의 지척에 닿은 나는 한쪽 무릎을 굻고 자제를 잡았다. 양손을 가느다란 여름달의 허리를 잡았다.

    "감히 내 몸에 손을 대다니!"

    "그만 좀 해, 이 미친년아."

    "뭐라! 네 놈! 기고만장한 꼴을……으음!"

    여우의 개소리를 계속 들을 생각은 없었다. 나는 대답도 귀찮았다. 다시 한 번 풀 버프를 시전한 나는 망설임 없이 그대로 탱글탱글한 태자 같은 여름달의 엉덩이 사이로 전기톱을 찔렀다.

    다행히 액화 질소에 당하고, 황산 테러에 당했지만. 전기톱이 완전히 망가진 건 아니었다. 물론 허리를 튕기며 얼음장 같은 여름달의 속살을 파고 들 때마다 귀두가 쓰리고 불알이 따끔거렸지만.

    까드득, 까득, 까드득.

    무슨 호수 깨지는 소리가 다 나냐.

    얼마나 메말랐으면 이럴까 싶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정도 고통은 여름달에게 당했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으윽……."

    취소다.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고통은 날 것 같았다. 적응이 될 법했는데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가까스로 10번의 공격을 딱 채운 나는 흘러나오는 신음을 억지로 참으며 전기톱의 상태부터 확인해 보았다. 예상했던 것 보다는 낫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예상했던 대로라고 해야 할까. 전기톱의 상태는 꽤 처참했다.

    가뜩이나 굵은 핏줄로 일해 징그러운 전기톱이었는데, 전신에 물집이 잡혀 있으니 더 흉측해 보였다. 심지어 몇 개의 물집이 터져 얇은 피부가 너덜너덜한 게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릴 정도로 끔찍했다.

    한 마디로 전기톱이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다.

    38,397.

    625에서 4,937을 왔다 갔다 하는 데미지가 10번 더해지니 꽤 괜찮은 데미지가 나왔다. 물론 성기 성능이 저하됨에 따라 본래의 25%에 불과한 데미지였다. 첫 번째 공격 때 주었던 5만7천의 피해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명확했다.

    공격력이 많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웃었다. 당연했다. 이정도면 할 만했으니까.

    "후우……. 맹랑한 놈이군!"

    깊은 한숨을 내쉬며 들썩이는 가슴을 다독이는 여름달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게도 꽤 큰 피해라는 것을. 물론 아직 10만이 넘는 활력이 남아 있겠지만, 그래도 절반의 활력이 깎인 건 경시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내 예상대로 여름달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졌다. 서릿발 같은 그녀의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살모사 앞에 놓인 개구리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움츠려들지 않았다.

    그 이유가 곧 밝혀졌다.

    "가거라!"

    이미 한 번 당했던 총 10번의 연계기가 펼쳐졌다. 여름달의 은빛 꼬리가 더욱 요사한 기운을 뿌리며 내 몸에 달라붙었다. 마치 내 피를 빨아 먹으며 날 마비시키는 거머리로 착각할 정도였다.

    으음? 역시!

    내가 침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확실했다. 일단 쾌감부터 달랐다. 물론 고운 꼬리의 애무는 등골을 타고 찌릿찌릿했지만, 그렇다고 막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내 온몸을 긁어준 은빛 꼬리가 되돌아갔을 때였다.

    ['여름달'에게 218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첫 공격부터 3분의 1정도 줄어든 상태였다. 이어진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내 얼굴에 맺힌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파괴와 탈의.

    이 공격력 감소 상태 이상의 효과는 확실했다.

    심지어 이전과 달리 10번째 연계기의 정점은 실패하며 날 더욱 기쁘게 만들었다.

    2,681.

    총 9번의 공격을 받으며 은근히 많은 활력이 깎였다. 그럼에도 난 웃었다. 이번 공격이 시사 하는 바가 너무도 컸기 때문이었다.

    버틸 수 있다.

    방금 공격이 계속 들어온다면 버티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활력 치료와 활력 회복으로 매 턴 3,113의 활력을 회복할 수 있었기에.

    나는 스스로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느낀 여름달을 보며 활짝 웃어 주었다.

    "너, 네놈! 도대체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것이냐!"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모지리도 아니고."

    "……좋다. 내 너를 인정하지. 허나! 그것이 패배를 뜻하는 건 아니다!"

    뭐래……. 어? 이런 젠장!

    여전히 정신 나간 여름달의 헛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뒤늦게 그녀의 기술을 알아채고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녹음의 내음을 와락 풍기는 기술. 그것은 다름 아닌 회복 기술이었다.

    특히 상급 몽마들의 회복 기술은 어마어마한 효과를 자랑했다. 상위 계층 중 상위 계층인 왕족 몽마의 회복 기술 효과야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게 분명했다. 이런 내 예상은 언제나 그렇듯 제대로 들어맞았다.

    푸른 바람을 전신으로 받아들인 여름달의 안색이 달라졌다. 살짝 달아올라 불그스레하던 그녀의 볼이 새하얀 눈처럼 변했다. 털옷 밖으로 드러난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공격력 감소는 먹여 놨으니까. 그런데…….

    "이상하네. 왜 탈의가 되지 않을까."

    뒤늦게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여름달은 여전히 비키니 같은 속옷을 입고 있었다. 물론 그게 속옷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처음 입고 있던 천 쪼가리로 여전히 자신의 가슴과 음부를 가리고 있었다.

    본래 파괴나 탈의 효과가 터지면 몽마가 착용하고 있던 의복도 같이 터졌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몇 번의 파괴와 탈의가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여름달은 처음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확실히 지금까지의 경험과 상반되는 결과였다.

    그뿐만 아니라 화상으로 인해 공격력이 대폭 감소된 게 마음에 걸렸다. 처음 걸려보는 특이한 상태 이상이라 언제 회복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늠을 못하겠단 말이야. 언제 치료될 지. 음. 잠깐만.

    문득 귀족 몽마를 사냥하다 얻은 소비품이 떠올랐다. 상점에서 팔지 않는 희귀한 이것은 일종의 물약이었다. 천도 씨앗과 열매의 엄청난 효과에 깜빡한 나머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뒤늦게 대충 읽고 넘어갔던 설명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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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벌꿀]

    + 에베 나무의 벌통에서 채취한 희귀한 벌꿀.

    + 활력 500 회복.

    + 정력 250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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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 벌꿀]

    + 에옵 바위의 벌통에서 채취한 희귀한 벌꿀.

    + 활력 750 회복.

    + 정력 375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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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아니고. 여기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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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슈의 꿀]

    + 케슈 여왕벌의 벌통에서 채취한 희귀한 꿀.

    + 활력 1,000 회복.

    + 정력 500 회복.

    + 모든 상태 이상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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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창을 뒤지자 금세 내 기억 속에 있던 게 나왔다. 활력과 정력을 모두 회복할 수 있는 건 꽤 괜찮은 효과였다. 물론 전체 활력과 정력의 50%를 회복시켜 주는 천도 씨앗이 없을 때 이야기였다.

    이러다 보니 두 가지의 벌꿀과 케슈의 꿀에 대한 기억이 흐릿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얻을 때만 해도 상태 이상 회복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말벌 코스프레를 하고 있던 귀족 몽마를 사냥하고 얻었을 때만해도 난 그냥 희귀한 소비템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것이 지금 상황에서는 생명수로 느껴졌다.

    아!

    잊고 있던 특이한 소비품 하나가 더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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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슈의 알]

    + 케슈 여왕벌의 벌통에서 채취한 희귀한 알.

    + 모든 상태 이상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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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한 개밖에 없는 케슈의 꿀과 달리 케슈의 알은 여유가 있었다. 그래봐야 3개뿐이었지만. 어쨌든 내게 필요한 효과는 마찬가지이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케슈의 알을 까먹기로 결정했다.

    나는 두 눈을 딱 감고 케슈의 알을 먹었다. 솔직히 겉모습이 징그러웠다. 뭐, 진짜로 먹는 건 아니긴 했지만.

    그 순간 눈이 번쩍이는 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든 상태 이상'을 회복합니다.]

    [성기가 화상에서 풀렸습니다.]

    [성기의 성능을 50% 회복합니다.]

    됐다!

    물론 여전히 절대 삽입술로 공격하다보니 50%의 데미지밖에 줄 수 없었다. 그래도 25%의 데미지 보다는 나은 게 당연했다.

    여름달도 물집이 가라앉는 내 전기톱의 모습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시작이다, 이년아악!"

    으름장이 비명으로 이어졌고, 비명은 찰진 파열음으로 이어졌다. 여름달이 공격권을 돌려받자마자 내 따귀를 무자비하게 걷어 올렸던 것이다.

    짜악! 짜악! 쫘아악!

    과한 흥분은 언제나 불의의 일격으로 끝났다.

    눈물이 찔끔 나는 건 결코 아파서 그런 게 아니다.

    ……젠장. 서럽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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