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52화 (15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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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콘 왕세자와 밀약을 체결했다.

    계약 조건은 의외로 간단했다. 트루드의 마법 방패 가격을 100만 경험으로 책정했고, 내가 인정한 신성 재료를 개당 10만 경험으로 책정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신성 재료라는 설명을 가진 물품 전체가 10만이 아니라, 내가 인정한 재료에 한하여 10만이 된다는 점이었다.

    물론 계약 조건은 한 가지가 더 남아 있었다. 아니, 이 조건이 가장 중요했다. 바로 위약에 대한 상황이었다.

    만약 계약이 불발될 경우 나도 꽤 리스크가 컸기에 당연한 조치였다. 왕세자도 혹여나 내가 다른 이들에게 방패를 팔면 낭패인 건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떨어지니 당연히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왕세자는 내가 판매를 거부하거나 계약서에 적시된 대로 방패 성장을 하지 않을 경우 위약금을 내도록 했다. 그 위약금이 무려 50만 경험이었다. 너무도 현실적인 경험치였기에 더욱 섬뜩한 조항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내 조건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었다. 나는 왕세자가 구매를 거부할 경우 방패 성장과 강화에 들어간 비용을 모두 보상 받기로 했다. 거기에 왕세자가 배상을 거부할 경우 왕실에서 보증을 서기로 해 놓으며 만만치 않은 가시를 심어 놓았다.

    그렇게 서로가 만족할만한 계약이 체결됐다.

    계약 체결 후 나는 리아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퍼스트 클래스는 여전히 편안하게 날 맞이했고, 나는 마음 편히 계약에 대해 흡족해할 수 있었다.

    "흐흐……. 호구 잡았네. 호구 잡았어."

    "네? 무슨 일 있었어요?"

    "어? 아냐. 아무것도. 그냥 호구는 어디나 있구나 싶어서."

    내 대답에 리아의 표정이 더 어리둥절하게 변했지만 그녀에게 이유를 말해주지는 않았다. 계약 조건 중에 비밀 서약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일국의 왕세자인데 내게 호구 잡혔다고 깎아 내릴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일부러 호구 잡혀 준 것도 있겠지. 그러지 않았으면 내가 흥미를 드러내지 않았을 테니까.

    확실히 그랬다. 이번 계약은 아무리 봐도 내게 유리했다. 물론 내가 방패를 판다는 전제 조건을 만족할 때 이야기였지만, 어차피 계약서상에는 판매시기에 대해서 내 자의적 판단에 맡겨 놓은 상태였다.

    결국 나는 남의 돈으로 방패를 성장시키고 강화하는 꼴이었다. 심지어 그걸 내 마음대로 죽을 때까지 쓸 수 있었다. 물론 계약서 상 그렇다고 죽을 때까지 쓸 생각은 없었다.

    더 좋은 놈으로 구해야지.

    내 욕심은 끝이 없었다.

    "그래도 좀 어수룩해 보인단 말이야. 아니면 내가 그렇게 돈이 많을 거라 생각했나?"

    사실 나는 방패를 3번이나 성장할 돈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있기는 했지만, 그러면 다른 걸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3번째로 성장시킬 성능이 뭐든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림의 떡이니까.

    아무튼 판매 할 때 성장 비용이랑 강화 비용을 돌려받기로 했으니. 너무 농땡이를 피우진 못하겠네.

    내가 투자한 성장과 강화 비용은 거래 할 때 받기로 되어 있었다. 일종의 전세금이었다. 그러니 평생 방패를 신기로 쓸 게 아니라면 적당한 시기에 넘기는 게 나로서도 좋았다.

    그건 그거고. 일단 눈앞에 닥친 일부터 처리하자.

    미래보다 현재에 집중하기로 한 나는 얼른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이윽고 내 머릿속에 무기 성장창이 나타났다. 신기로 등록하기 전 지를 생각이었다.

    방식은 간단했다.

    그냥 해당 단계의 성장 비용 옆에 있는 단추를 클릭하기만 하면 됐다.

    ['트루드의 마법 방패'의 '활력'을 성장합니다.]

    ['활력'의 현재 성장 단계는 1단계입니다.]

    동일한 메시지가 10번이나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5만5천의 경험치가 사라졌다. 1차 10단계 성장 비용이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바로 2차 성장으로 넘어갔다. 2차 성장 항목은 계약대로 특수 옵션이었다. 1차 때보다 두 배의 비용이 들어갔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순식간에 16만5천의 경험치를 쓰고도.

    ['타격력 감소'의 현재 성장 단계는 10단계입니다.]

    장비 성장을 끝낸 나는 바로 강화창을 열었다. 처음에는 강화를 먼저 하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지만 의미 없는 생각이었다. 강화는 최종 상태에 추가하는 식이었고, 당연히 강화를 먼저 하든 말든 결과에는 변화가 없었다.

    강화창을 열자 자연스레 내 장비 보유 현황과 강화제 현황이 나란히 중앙 등록창 아래 나타났다.

    꽤 많이 쌓였네? 하긴. 그동안 귀족 몽마를 꽤 많이 잡았으니.

    비전투 물품인 강화제는 최대 50개까지 가질 수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강화제는 그런 최대 수량에 근접할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무기 강화제의 경우 42개였고, 장식 강화제의 경우 44개였다.

    별다른 고민 없이 트루드의 마법 방패를 등록창에 올린 나는 연속으로 10번을 강화했다.

    강화가 끝나기 무섭게 나는 얼른 트루드의 마법 방패 정보를 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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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루드의 마법 방패]

    + 전사의 심장을 가진 고귀한 처녀의 방패.

    + 활력 3,750 상승.

    + 정력 1,500 상승.

    + 방어력 350 상승.

    + 항마력 450 상승.

    + 적의 타격력 15%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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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성장을 통해 활력이 1,250이나 올라갔고, 2차 성장을 통해 적의 타격력 감소 수치가 5%나 늘었다. 설명대로 성장 1단계 마다 5%의 효과가 늘어나는 게 확실했다. 게다가 방어력과 항마력이 왕족 등급이다 보니 100씩 오른 게 인상적이었다.

    역시 계급이 깡팬가? 똑같은 돈을 투자해도 내 것은 20씩 밖에 안 올랐는데.

    퀴네의 갑주 세트는 성능에 비해 등급이 낮았다. 그 덕분에 내가 낄 수 있었지만, 또한 그 때문에 강화 효율이 낮았다. 역시나 이 세상에 완벽한 건 없나 보다.

    제법 아쉬워 할 법도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쉽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기대가 됐다.

    얼마나 강해지려나?

    나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은 채 트루드의 마법 방패를 신기로 등록하고 얼른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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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활력 : 8,825/8,825

    + 정력 : 4,375/4,375

    + 경험 : 232,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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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격력 : 1,108

    + 마법력 :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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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어력 : 505

    + 항마력 : 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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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중률 : 236

    + 회피율 :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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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도 : 79

    + 치명 증폭 : 335%

    + 치명 저항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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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험치가 줄은 게 눈에 걸렸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나는 폭증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늘어난 활력과 정력에 헛웃음이 나왔다. 게다가 방어력과 항마력도 엄청나게 오르니 더할 나위 없었다. 상태창에는 표시가 되지 않지만, 적의 타격력 감소 또한 마찬가지였다.

    350과 450씩 올라간 방어력과 항마력도 대단했지만, 그보다 활력과 정력이 정말 감격스러울 정도로 높았다.

    어제만 해도 활력 3천에 정력 1전짜리였는데.

    "하, 하하……."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독수리의 전혼을 낀다면 활력이 1만을 넘어 갔다. 처음 100의 활력과 정력으로 시작했을 때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정말 많은 게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아가 날 미심쩍은 눈으로 보며 슬쩍 떨어졌지만 아무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그냥 지금이 너무 좋았다. 지금 이 상태라면…….

    "쉬울 것 같네."

    "……고영 씨. 정말 괜찮아요? 혹시라도 이상한 거 있으면 말해요. 괜히 숨기지 말고요."

    이게 날 미친놈으로 보나? 아니. 어떤 의미론 미친 게 맞을지도.

    리아가 뭐라던 그냥 좋았다. 자꾸 히죽히죽 웃을 정도로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그럴수록 리아의 표정이 안 좋아졌지만.

    걱정을 넘어 절망하는 것 같은 리아의 얼굴에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저었다.

    "정신병 걸리건 아냐."

    이미 정신병에 속하는 트라우마가 있긴 하지만.

    "그럼 왜 그래요? 무섭게. 그러지 마요. 그런 장난치지 말아요."

    "장난이 아니라. 그냥 신기 등록해서 그래. 강화랑 성장 시킨 걸로 다가."

    "……씨이."

    리아는 여전히 울상을 지었다. 아무래도 나를 걱정한 게 억울한 눈치였다.

    귀여운 리아의 반응에 피식 웃은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을 이었다.

    "조울증도 아니고. 기분이 왜 그렇게 왔다 갔다 해? 그리고 3차는 못했어. 일이 있어서."

    내 설명에 리아가 표정을 고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녀를 이해시켜 줄 수는 없었다.

    그 대신 다른 화제를 리아에게 던졌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코펜하겐에 도착하면, 귀족 몽마 좀 알아봐 줘."

    "그렇게 사냥하고 지겹지도 않아요? 누가 보면 사냥에 한 맺힌 줄 알겠어요."

    사냥은 아니지만 맺힌 게 있긴 하지.

    리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질린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차마 말로는 못하고 눈빛으로나마 나보고 쉬라는 리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아니, 바꿀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몸이 너무 근질근질 거렸다.

    "고생 좀 해줘. 많이 사냥할 건 아냐. 그냥 서너 마리면 돼. 그리고 바로 아리엘을 사냥하려고."

    "네? 그, 그 무슨 기술이 충전되려면 일주일은 필요하다면서요? 너무 성급한 거 아닐까요?"

    깜짝 놀란 리아가 내 팔을 붙잡으며 걱정을 피력했다. 일견 그녀의 말이 맞아 보였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리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제라면 모르겠는데. 지금은 괜찮지 싶은데?"

    "뭐가요? 아……. 설마 신기 하나가 그렇게 차이가 난다는 말이에요? 진짜에요?"

    리아가 더욱 놀라 내게 달라붙었다.

    나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었다.

    리아의 눈동자가 더욱 크게 벌어졌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

    오슬로와 마찬가지로 코펜하겐은 바다를 끼고 있었다.

    인어 공주가 태어난 그 바다에는 상상 속에서 튀어 나온 것 같은 인어 한 마리가 헤엄치며 혼자 바다를 독점하고 있는 중이었다.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사달과 그간 응급실로 실려 간 도전자들로 인해 역시나 인어 여왕 주변은 한산했다. 그래서 심심해진 인어 여왕이 더욱 날 뛰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인어 여왕의 권역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땅을 밟은 채 저 멀리 바다에서 혼자 돌고래처럼 헤엄치고 노는 인어 여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여긴 오슬로보다 더 썰렁하네."

    "사망자가 나왔으니까요. 물론 지병이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 거지만. 그래도 몽마에게 죽은 사람이 있으니, 분위기가 좋이 않을 수밖에요."

    "그래도 막지 않았네?"

    "……몰라서 묻는 거 아니죠?"

    물론 알고 있다. 리아가 발에 땀나도록 돌아다니며 허가를 맡은 덕분에 나와 리아가 이렇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걸 말이다. 지금 코펜하겐 앞바다는 얼어붙은 것과 다름없었다.

    "아무튼 방송사에는 미안하다고 전해 줘."

    "아니에요. 어차피 카메라로 촬영하는 건 재미가 없잖아요?"

    "심상의 구슬을 달라는 말은 안하고?"

    "그러기에는 염치가 없잖아요. 계약 사항대로 고영 씨가 말한 물건을 구하지도 못했는데."

    "뭐, 일단 찍어는 놓겠다고 전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리아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방송국 사이에 껴서 그녀도 꽤 고생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런 그녀를 위해 작은 호의를 베푸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그쪽에 몰아주기로 마음먹었으니. 그리고 은근히 인맥도 넓은 것 같고.

    작은 호의에 미소 짓던 것도 잠시 리아가 다시 우려 섞인 얼굴로 날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요? 아리엘은 트루드랑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요? 가뜩이나 고영 씨는 법사 계열이랑 상성이 안 좋은데."

    "그렇긴 한데. 그만큼 방어력도 낮잖아. 활력도 그렇고."

    "꼭 이렇게 급하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사실 상부에서도 이런 고영 씨 모습을 걱정하고 있어요. 만약에라도 지면 어쩌나하고요. 지금까지 고영 씨는 비공식적으론 몰라도 공식적으로 무패 배틀러라는 인식이 깔려 있으니까요."

    "아무튼 쓸데없이 이미지 매이킹을 하고 그래?"

    "별 수 있나요. 요즘은 캐릭터가 중요하잖아요. 예능이든, 다큐든. 심지어 시사든."

    리아의 말투를 들어보니 썩 지금 방송 유행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도 그녀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다만 그녀의 말에 동의하며 대화를 이어나가지는 않았다.

    그 대신 걸음을 옮겼다.

    "그럼 다녀올게."

    "조심. 조심해요!"

    고작 한 걸음 옮겼을 뿐인데, 리아의 목소리가 흐릿했다. 내가 인어 여왕의 영역에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파핫!

    순간 눈앞이 어둠으로 번쩍하며 장소가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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