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44화 (14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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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수 투하.

    조금 묘한 고유 기술명이었다. 여기서 백수는 말 그대로 하연 물. 즉, 정액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남은 기술치 3개를 탈탈 털어 고유 기술을 배운지 3일이나 지났음에도 내가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아직 한 번도 고유 기술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진짜 난감하네. 기껏 배웠는데, 쓰질 못하니. 왜 쓰질 못해."

    이 기술이 내 기술이다. 이 기술의 중점은 정액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3일전 배운 백수 투하의 정보창을 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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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수 투하]

    + 숙련도 : 1성

    + 장전 현황 : 1/3

    + 백수 투하 시 치명 증폭 100% 증가.

    + 매달 초하루에 한 발씩 자동 장전.

    + 사정 시 장전 기간 초기화.

    + 고유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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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의 성능 자체만 보면 이보다 확실히 좋았다. 치명 증폭은 고스란히 내 화력으로 이어지니 당연했다. 다만 기술을 사용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한 달의 충전 시간과 한 번에 500정력 소모.

    뛰어난 기술이다 보니 자연스레 제약이 강력했다. 그나마 3개의 기술치를 모두 쏟아 부어 달인 등급이 되어서 다행이었다. 장전 가능한 숫자는 처음에 1개, 다음에 2개, 마지막에 3개 순으로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웬만하면 시험 삼아 몽마에게 사용을 해 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손해가 막심했다. 기술에 대해 감을 잡기 위해 한 달을 쏟아 붓는 건 아무래도 아니었다. 물론 다음 달까지 보름정도 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보름이 짧은 시간은 아니니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내 욕심이었다.

    나는 왕족 몽마를 사냥하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도저히 참을 수도, 참기도 싫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노르웨이의 수도인 오슬로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고 있었다.

    오직 트루드를 홍콩으로 보내기 위해서.

    당연한 말이지만 자신이 없으면 시작도 안했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이 자신감의 원천은 다름 아닌 김아연이 수집해온 정보 덕분이었다.

    모든 공격이 가학성 공격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15%의 내성을 먹고 들어가는 거고.

    나보다 방어력이 높은 김아연도 평타가 1천이 넘게 들어온다고 했다. 이 사실만 보면 아무리 독수리의 전혼을 껴도 몸빵이 안 될 게 분명했다. 물론 가학 내성 15%를 올려주는 흑편 절단 업적이 없을 때 이야기였다.

    물론 연타 공격에 능한 트루드의 공격 패턴은 내게 꽤나 위협적일 확률이 높았다. 은근히 치명타가 잘 터진다는 김아연의 말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쉽지는 않겠지. 아니, 어려울 거야. 어렵겠지만…….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얀 독수리의 전혼을 장착하면 5,034가 되는 최대 활력, 미야프에게 전수한 1,510의 활력을 회복하는 활력 치료 기술, 매 회전 252의 활력을 회복시켜주는 활력 회복 기술까지.

    생존력만 따지면 나도 최고의 탱커인 김아연 못지않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활력이 아니라 정력이지.

    정작 내가 고심하는 건 활력이 아니라 정력이었다. 백수 투하를 쓰게 되면 단숨에 500의 정력이 날아갔다. 최대 정력이 1,190에 불과한 내게 이건 너무 큰 출혈이었다. 정력 회복 기술이 있어 매회전 60의 정력을 회복하기는 하지만, 이걸로는 여전히 부족했다.

    자연스레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혹시나 내가 잘못 계산한 것일 수도 있기에 다시 한 번 버프 기술들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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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기 강화 : 7턴, 75정력.

    + 속도 증가 : 7턴, 50정력.

    + 광속 자지술 : 8턴, 75정력.

    + 동공 확장 : 5턴, 150정력.

    + 혈류 증가 : 5턴, 125정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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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역시 문제는 특화 기술이네. 맞아 줄래도 100정력이나 먹으니, 원. 풀 세팅에 575인가.

    기본 기술이나 1차 직업 기술은 기본적으로 효과가 고만고만한 한편으로 필요한 정력도 낮았다. 다만 2차 직업 기술은 아니었다. 이것들은 기술의 성능이 정말 뛰어났지만, 그만큼 막대한 정력을 소모했다.

    여기에 활력 치료를 쓸 때 45의 정력이 필요했다. 그뿐만 아니라 맞아 줄래는 2턴에 한 번씩 써야했다. 결국 2턴마다 190. 즉, 매회전에 95의 정력이 소모된다는 의미였다. 이건 정력 회복으로 얻는 60의 정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정력 파산.

    굳이 비유하자면 지금 내 상황은 정력 빚을 지어야했다.

    파란 물약을 빨면 해결이야 되겠지만, 그러면 허무하게 공격 턴을 넘겨야하니까.

    결국 버프 사용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칭호를 바꿀까도 고민해 보았지만, 성체 파괴자를 써도 딱히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활력 20%, 정력 10%가 올라도 별 게 없었다. 성체 파괴자로 칭호를 교체해도 활력은 436, 정력은 119밖에 오르지 않았다. 이것 가지고는 부족한 정력을 메울 수 없었다.

    게다가 만인전의 주인이 주는 공격력과 방어력 25% 증가 효과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어차피 올라간 방어력으로 부족한 활력을 대체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약간의 활력과 정력을 위해 칭호를 바꾸는 건 너무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오슬로에 도착할 때까지 머리를 쥐어짜 보았지만, 마땅한 전략이 떠오르지 않았다.

    화창한 오슬로의 햇볕이 괜히 더 차갑게 느껴졌다.

    ***

    걱정과 부담이 가득했다.

    장거리 비행의 여독을 풀기 위해 바로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지만, 내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비단 표정뿐만 아니라 기분이 별로였다. 트루드는 이전처럼 자신감만 가지고 들이댈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선잠을 자다 일어난 나는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방송국 관계자들과 회의를 하겠다며 나간 리아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기에 혼자 밥을 먹을 생각이었다. 딱히 입맛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굶을 수도 없었다.

    조식당에 홀로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시지와 달걀, 으깬 감자를 깨작거리며 먹고 있을 때였다.

    "고영 씨!"

    저 멀리 식당 입구에 리아가 나타났다. 그녀는 날 보자마자 뭐가 그리도 반가운지 미야프처럼 뛰어 왔다.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사는 리아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혀를 차며 그녀를 나무랐지만, 그녀는 딱히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나는 오늘따라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리아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뭔데? 또 뭐 때문에 그렇게 기분이 좋은 거야? 약 빤 건 아닐 테고."

    "제발 좀 그 재미없는 농담은 그만하면 안 돼요?"

    농담 아닌데…….

    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리아가 내 소시지를 하나 날름 손으로 집어 먹으며 재잘거렸다.

    "랭커들이 도와주기로 했어요. 고영 씨가 트루드 레이드를 하려고 한다니까, 다들 두 발 벗고 나서던데요?"

    나 잘했죠?

    리아의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결코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딱딱해졌다.

    "너 설마 걔들이랑 합동 사냥한다고 했어?"

    "네! 물론 전술이나 지휘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랭커잖아요? 꽤 도움이 될 거예요. 근데 리즈가 자꾸 고영 씨랑 파티 맺으려고 해요. 거긴 내 자린데……."

    ……이거 돌았네.

    내 목소리가 더 없이 싸늘해졌다.

    "누구 맘대로 레이드를 하니 마니야? 내가 언제 합동 사냥을 한다고 했어?"

    "네? 아니, 전 그냥 고영 씨가 답이 없다고 하시길래. 그래서 도움을 요청한 건데……."

    "그러니까 누구 맘대로? 내가 어렵다고 했지, 합동 사냥을 한다고 했어?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는 건데!"

    아이, 씨.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동시에 날카로워졌다. 내 폭언에 리아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리더니 이내 눈물이 맺혔다.

    후우……. 이게 아닌데.

    뒤늦게 후회가 들었다.

    그렇다고 화가 가라앉은 건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싸늘한 눈빛으로 리아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일은 사적인 감정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여전히 딱딱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울먹이는 리아를 쏘아붙였다.

    "난 자기 멋대로 결정하는 사람이랑 같이 일 못하니까."

    선을 지켜라.

    나는 사과나 위로 따위를 입에 담지 않았다. 오직 한 가지. 서늘한 경고뿐이었다.

    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리아의 흐느끼는 소리가 커졌다.

    서러움에 울음을 리아가 울음을 터트렸지만,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기분이 너무 더러웠다.

    ***

    내 더러운 성깔을 인증했다.

    상관없었다. 괜히 착한척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번 일은 내가 과민 반응한 것도 있었지만, 리아가 너무 앞서간 것도 있었다.

    어차피 언제고 한 번 해야 할 말이었어.

    마음이 불편한 건 불편한 거였다.

    나는 식탁 위에 있는 바구니에 담긴 사과를 그대로 집어 한입 깨어 물곤 침실로 들어갔다. 대충 사과를 씹어 먹은 뒤 사과심을 쓰레기통에 버린 나는 기껏 차려 입은 옷을 훌러덩 벗었다. 속옷 바람이 된 난 조금은 신경질 적으로 침대 위에 누웠다.

    "아, 몰라. 아닌 건 아닌 거지. 누가 도와달라고 했나? 왜 오버야. 오버는."

    그동안 미처 몰랐던 걸 이번 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자존심이 좀 강한 것 같았다.

    분명히 트루드 사냥은 어렵다 못해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어려운 사냥이 예상됐지만, 그거야 내가 감수할 문제였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사냥하는 거지."

    도대체 왜 리아가 그런 생각을 한 건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까지 파티 사냥은 고사하고 합동 사냥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아니, 그런 기색 자체를 보이지 않았다.

    내가 보인 건 그저 엄청난 난관이 예상된다는 것뿐이었다.

    "기껏 지는 걸 감수했더니. 뭐? 레이드? 합동 사냥?"

    심지어 나는 패배까지 염두에 두었다. 단순히 한 번 지는 게 아니었다. 나는 올 스탯을 올려주는 업적이 파괴되는 것도 감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리아가 대뜸 합동 사냥을 언급하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내 마음도 모르고. 그동안 너무 편하게 대해줬어. 젠장!"

    심하게 화를 낸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그건 서운함이었다. 나름 리아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녀가 내 속마음을 눈치 채지 못하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욱하는 마음에 리아에게 소리치고 나오긴 나왔는데…….

    "막상 진상을 부리고 나니 할 게 없네. 그렇다고 사과하기는 자존심 상하고. 아, 진짜."

    물론 이대로 리아와 인연을 끊을 생각은 아니었다. 그녀가 곧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알 거라 믿었다. 그녀가 사과를 해오면 나도 사과를 하고 앞으로 서로 조심하자는 식으로 좋게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단지 확신이 없을 뿐.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댄 나는 슬쩍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이내 친구 등록이 되어 있는 나 원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쌤. 나 사고 쳤는데. 원격 상담 좀.]

    짤막하게 몇 글자를 보내기 무섭게 내 핸드폰이 울렸다.

    나 원장의 전화였다.

    나는 시시덕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응! 나 쌤."

    "뭐야? 무슨 사고를 쳐?"

    전화기에서 꽤 다급한 나 원장의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놀란 기색이 가득한 그녀의 목소리에 괜히 콧잔등이 간지러워졌다.

    사실대로 말해야하나?

    살짝 망설임이 들었다. 나 원장이 실망할 것 같았다. 고민도 잠시 나는 솔직하기로 결심했다.

    나 쌤을 속이는 건 아무래도 싫단 말이야.

    사실 속이려고 해도 속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 원장은 내게 인간 상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내 솔직한 고백이 끝난 그때였다.

    "이, 이, 이……."

    "응? 나 쌤. 왜 그래? 통화가 잘 안 돼?"

    "이……. 이 멍청아!"

    깜짝이야!

    우렁찬 나 원장의 일갈에 나도 모르게 전화기를 귀에서 최대한 멀리 밀어냈다. 그동안에도 그녀의 천둥 같은 잔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일곱 살이야? 일곱 살! 요즘 애들도 안 그래! 서른이나 된 놈이 쪽팔리지도 않아! 어! 쪽팔리지도! 내가 뭐라고 그랬어!"

    "……나한테 뭐라고 한 게 한두 갠가, 뭐."

    "뭐? 너 진짜 이럴래? 자꾸 나 실망시킬래?"

    ……치사하게.

    나 원장이 내 약점을 잡고 뒤흔들었다. 그녀는 내가 얼마나 그녀에게 의지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물론 일전에 내 고백 사건으로 인해 잠시 어색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와 나 원장은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알았어. 나도 알아. 잘못한 거. 그래도 너무하잖아? 걔가 지멋대로 결정했다니까? 나한테 물어 보지도 않고!"

    "그래도 인간아. 그럼 대화를 해서 오해를 풀려고 해야지. 버럭 화를 내고. 여자를 울려? 그게 할 짓이니?"

    "……그건 나도 미안하게 생각하기는 한데. 어떡해? 그렇다고 잘했다고 칭찬하면. 그럼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데?"

    "누가 칭찬을 하래? 화를 내도 방법이 틀렸잖아. 대화가 중요하다고 그랬어, 안 그랬어?"

    "그랬지."

    "그런데 그걸 고새 까먹었어!"

    또 다시 오른팔이 내 고막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였다.

    쭉 뻗었던 팔을 다시 굽히며 전화기에 대고 작게 답했다.

    "그건 아닌데. 잠깐만. 근데 뭐야? 지금 나 혼내는 거야?"

    "그럼 혼날 짓을 했는데, 혼나야지. 지금 네가 잘했다는 거니?"

    "아니, 그건 또 아닌데……."

    이상했다.

    나는 분명 조언을 받기 위해 나 원장에게 연락을 했다. 나를 잘 알고 있는 그녀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조언을 해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의 목소리 들으면 마음이 편하기도 했고.

    그런데 왜 혼이 나야하지?

    어느덧 나는 무릎을 꿇고 전화를 받고 있었다.

    진짜 이상했다.

    이게 아닌데…….

    뒤늦게 이상함을 눈치 챘지만, 나는 여전히 혼이 나고 있었다.

    역시 내 천적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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