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ly me to the Blue -->
***
귀국길은 편안했다.
늦은 시간까지 사냥에 매진한 리아는 기내식도 거른 채 골아 떨어졌다. 피로가 풀리지 않은 나는 기내식을 챙겨 먹기는 했다. 그 외의 시간은 모두 잠을 잤지만.
자고, 자고나. 먹고, 자고나.
기절한 덕분에 편안하게 귀국할 수 있었지만, 그 편안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 때문이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왕족 몽마로 추축되는 몽마가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와 덴마크, 노르웨이. 이렇게 총 3곳인데요. 특파원을 연결해 그곳 상황을 알아보겠습니다.]
여독에 지쳐 푹신한 좌석에 기대고 있던 나와 리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것도 잠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핸드폰을 꺼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이번에도 나와 리아는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하아……."
"세상에……."
장탄식을 터트린 나는 리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냐, 이거. 진짜야?"
"진짜 같아요. 메일이랑 문자가 잔뜩 쌓여 있네요. 폭설 내린 우리 집 앞마당처럼."
"아……. 기껏 귀국했더니."
굳이 뒷말까지 내뱉을 필요가 없었다.
리아가 애매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더니 살짝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래도 한국에도 있잖아요. 힘내요."
"모르겠다. 아무튼 당분간 사냥은 접어야겠네."
"그래야죠. 눈치싸움이 꽤 심할 것 같은데."
왕족 몽마.
별거 없어 보이는 이 단어가 가지는 무게는 엄청났다. 이미 인터넷은 불바다였다. 여기저기 떡밥과 찌라시가 넘쳐나며 난리도 아니었다. 언론 매체라고 다를 게 없었다. 다들 허수마비 실종 사건 이후 연이어 터진 이슈를 퍼 나르며 여론을 지필 땔감을 끊임없이 공급했다.
반면 왕족 몽마를 사냥하고자하는 참가자 입장은 달랐다. 나는 물론이고 다들 선뜻 먼저 나설 것 같지 않았다. 아니, 나는 다들 서로의 눈치를 볼 것이라 확신했다.
리스크가 너무 커.
왕족 몽마는 분명 큼지막한 먹잇감이었지만, 괜히 욕심을 내다가 입이 찢어질 수도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입맛을 다셨다.
분명 위험한데.
자꾸 침이 고였다.
***
고작 나흘 만에 입맛이 뚝 떨어졌다.
과연 왕족 몽마는 대단했다. 아니, 엄청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였다.
일단 충격의 시작은 노르웨이에 나타난 왕족 몽마였다.
[여왕 처녀 트루드]
바로 발키리였다.
이처럼 덴마크에는 여왕 인어 아리엘, 우리나라에는 여왕 여우 여름달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녀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저 여름달은 구미호로, 아리엘은 인어공주로 불렀을 뿐이었다.
우리의 상상 속 존재하는 존재가 현실에 나타나자 사람들은 광분했다. 애초에 두려움 따위는 없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동안 몽마들이 직접적인 해악을 끼치지 않았기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징벌은 보스가.
이 단순한 명제에 홀린 사람들은. 아니, 남자들은 저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세 여왕에게 달려들었다.
결과는?
"참혹하네. 이거 골 때리겠는데?"
"실제로 노르웨이 정부는 군대를 투입했어요. 귀족 몽마보다 더 공격적인 트루드를 무력으로 막겠다면서요."
"지랄 났군."
신랄한 표현이지만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도 없었다.
실제로 노르웨이 군대는 쑥대밭이 됐다. 레이드에 나섰던 사람들이 패퇴하여 병원에 실려 갔지만, 그렇게 큰 부상을 입은 건 아니었다. 워낙 상식 이상의 파괴력으로 인해 과로나 탈진을 했을 뿐이었다. 간혹 지병을 가지고 있던 이들의 더 악화되기도 했지만, 그건 꼭 몽마 탓이라 할 수는 없었다.
이렇듯 과감한 판단을 내렸던 노르웨이 정부는 전 세계에서 지탄을 받으며 먹이 않아도 될 욕을 잔뜩 먹고 있었다.
나는 유령처럼 총알을 흘려보내는 트루드가 찍힌 영상을 보며 더욱 기가 찼다.
"진짜 개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네. 애꿎은 건물에 총질한 거랑 뭐가 달라?"
"이번에 노르웨이 정부가 실수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아무 의미 없는 헛짓은 아니었어요."
"그건 그렇지. 덴마크나 우리나라나. 노르웨이가 저렇게 깨지지 않았으면 바로 군대를 동원했을 테니까. 운이 좋았지."
"아뇨. 그게 아니라. 덕분에 각국 정부들이 보스를 대하는 태도가 반전됐어요."
"아……."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리아의 말대로 그동안 정부는 제제는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지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보스를 방관했을 뿐이었다.
심지어 슬슬 눈치 보다가 제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
그랬던 정부들의 태도가 단숨에 변했다. 비록 왕족 몽마에 의해 뜻하지 않은 사상자……까지는 아니고. 피해자가 생겼지만, 귀족 몽마까지는 별 다른 문제가 없었다. 만약 왕족 몽마를 처리할 수만 있다면 정부 입장에서 나쁠 게 없는 상황이었다.
"명분. 아니, 후대의 면죄부를 쥔 거네."
"네. 맞아요. 이래서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됐거든요, 이제는."
"최소한 보스에 대한 제제는 없겠네. 솔직히 지금까지 가면을 쓴 건 귀찮은 것도 귀찮은 거지만, 그보다 아직 보수적인 우리나라라서 그런 것도 있거든. 괜히 알려지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까 싶어서."
법이란 게 그랬다. 태생부터 권력자들이 국민들을 편하게 다루기 위해 만든 게 법이었다. 인간의 존엄이니 뭐니 떠들어 봤자, 이것은 변하지 않았다.
특히 과거의 굴레에 얽매어 나오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법은 현재 사회상과 많이 어긋나 있었다. 위정자들은 법의 문제점을 고치려하지 않았고, 그렇게 사회의 불만은 점점 커져만 갔다. 시대가 어떻든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걱정했다. 만약 내가 전면에 나서면 권력자들이 자신의 노리개로 삼을 까봐. 다행히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뭐, 만인전 소속이기도 하니까. 딱히 위험한 일은 없겠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나는 그동안 말하지 않은 걱정을 털어내고 밝은 얼굴로 리아를 바라보았다.
"근데 저거 너무 센 거 아냐? 나도 솔직히 못 잡을 거 같은데?"
"하아……. 고영 씨. 저건 혼자 잡는 게 아니에요. 왕족 몽마는 주변에만 있어도 동시 전투가 가능하대요. 실제로 난교를 벌이는 건 아니고. 허수마비처럼 개인 침실에서 독자적인 전투를 할 수 있대요. 다만……."
"쉽지 않겠는데, 이거."
내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물론 다수로 왕족 몽마를 사냥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좋은 이야기였다. 다만 개인 침실에서 독자적으로 싸우는 게 문제였다.
10만 대군이 있어도 지휘하지 못하면 결국 오합지졸에 불과하니까.
내 골치가 사락사락 아파올 때였다.
리아가 내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눴다.
"그리고 본사에서 고영 씨에게 주라고 한 게 있어요."
"뭔데?"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 리아를 바라보았다. 머뭇거리는 그녀의 표정에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윽고 리아가 내 핸드폰으로 보낸 사진 한 장을 보는 순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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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처녀 트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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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력 : 174,400
+ 정력 : 8,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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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격력 : 1,345
+ 마법력 : 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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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어력 : 776
+ 항마력 :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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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중률 : 190
+ 회피율 :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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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명도 : 34
+ 치명 증폭 : 100
+ 치명 저항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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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위 : 기승
+ 종족 : 인간
+ 속성 : 성
+ 성향 : 가학
+ 계급 : 왕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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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드의 정보를 확인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 나왔다.
"진짜 지랄 났네?"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가슴이 답답했다. 아마조네스의 고유 기술이 생각보다 더 뛰어나다는 경계심조차 들지 않았을 정도였다.
이건 뭐 답이 없었다.
허탈한 내 모습에 리아가 동조했다.
"그래서 지금 위에서도 난리에요. 이정보를 터트리는 건 좋은데. 그랬다가는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질까 봐요."
"그럴지도 모르겠네. 정도껏 강해야지. 이정도면 누가 덤비겠어? 진짜 중동의 미친 새끼들이 아니면."
지금 상황에서 평범한 참가자들이 트루드와 싸우는 건 자살도 아니었다. 그냥 스스로 먹이가 되는 것뿐이었다. 그 정도로 트루드의 전력은 끔찍했다.
나도 자신이 없었다.
자신감이 바닥을 치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꿀벌이 된 거 같네. 말벌의 침입을 받은."
"후우……. 고영 씨가 그럴 정도면. 정말 답이 없네요."
"타격력이 천삼백이야. 이걸 누가 버텨? 나도 몇 방 안 맞으면 골로 가겠구먼. 아니, 스킬이나 크리 터지면 그냥 원킬 나겠는데?"
"그래도 고영 씨는 즉사 면역이잖아요? 어떻게 안 될까요?"
"안 되지. 안되고말고. 난 자살하는 취미 없다. 이건 아냐."
리아가 본사에서 은근히 압박을 받은 것 같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니었다. 사적으로 리아와 아무리 친하다 해도.
내 솔직한 말에 리아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이 정보를 보는 순간 알았을 거다. 다만 입장이 있다 보니 말을 꺼냈을 뿐.
어찌됐건 지금 나로서는 도저히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근데……. 이거 잘하면 되지 않으려나?
그때 내 눈에 한 가지 희소식이 보였다. 바로 트루드의 성향이었다. 녀석은 가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잘하면 검은 채찍을 사냥하며 얻었던 업적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가학 성향이라고 무조건 가학성 공격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건데.
잠시 고민을 한 나는 일단 확인해 보기로 했다.
"혹시 용병을 구할 수 있을까?"
"네? 용병이라뇨? 갑자기 왜 그런 살벌한 사람을……."
얘가 또 오해했네.
뜬금없이 눈치를 잃은 리아의 대답에 실소를 흘린 나는 손을 흔들었다.
"그런 용병이 아니라. 나 대신에 트루드에게 들이대 줄 용병. 체력이 높은 탱커 계열이면……어? 잠깐만."
내게 필요한 용병의 조건을 읊다보니 한 사람이 떠올랐다.
김아연이라면? 잘하면 가능하지 않으려나?
물론 공짜로 부탁할 생각은 없었다. 실험에 들어가는 비용은 직접 댈 작정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바라는 것도 하나 쯤 들어주고.
혼자 묻고 혼자 답하는 사이 리아의 볼이 점점 부풀어 올랐다.
이번에는 내가 눈치를 잃어버렸다.
다행히 리아의 볼이 터지기 직전에 상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거 가능성이 있겠어. 잘하면……. 근데 너 표정이 왜 그래?"
"몰라요!"
아귀의 시력을 가진 것 같은 내 무신경함에 리아가 버럭 화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저래?
조금 의아하기는 했지만 딱히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어차피 저러다 말 것이 분명했다. 리아가 나를 많이 알게 된 만큼 나도 리아를 많이 알았기에.
소파에 다시 기댄 나는 두 눈을 감고 소식창을 열었다.
[@Awesome Banana : 아르바이트 할 생각 있어?]
[@Pink Mike : 나 바쁨.]
짤막한 내 물음에 김아연의 답변이 금방 날아왔다.
도도하네. 하지만…….
나는 자본주의에 물든 속물적인 놈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제안은 간단했다. 마치 옛날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의 대사처럼.
[@Awesome Banana : 기본 수당 경험치 1만. 제반 비용 제공. 어떰?]
[@Pink Mike : 개처럼 일하겠습니다! 사장님!]
체면을 차리지 않는 건 김아연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돈은 개처럼 벌어서 졸부처럼 써야 제 맛이지."
내게 요즘 정승들은 옛날 졸부와 다르지 않았다.
***
김아연과 이야기는 잘 끝났다.
선금 1만에 성공 보수 1만.
총 2만의 경험치에 김아연이 자존심을 버렸다. 그녀는 알아서 하겠다며 아양을 떨었다.
"벗으라면 벗겠어요."
물론 개소리와 함께.
어쨌든 계약은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확실히 체력 계열인 김아연은 다양한 내성 기술과 업적, 거기에 장비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딱히 쓸데없이 아이템을 구매하거나 기술 구매 비용을 쓸 필요가 없었다.
내 목적은 트루드의 공격 속성과 방식을 알아내는 게 전부였으니까.
사실 김아연에게나 1만, 2만의 경험치가 커 보였지. 내게는 아니었다. 그녀에게 2만의 경험치를 건넨다고 해도 아직 40만이 넘는 경험치가 내 손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김아연과 계약을 채결했을 때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근데 너 여자잖아? 트루드도 여성체고. 근데 전투가 가능해?"
순진무구한 내 물음에 김아연이 피식 웃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이윽고 한 마디의 말이 김아연의 입술 사이로 사르륵 흘러 내렸다.
"성별이 중요해?"
많은 의미가 함축된 한 마디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간신히 남겨 놓은 한 조각의 환상이 무참히 부서졌다. 이 여자는 언제나 상상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아연은 애자였다.
양성애자.
그녀는 바이섹슈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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