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39화 (139/200)
  • <-- Neither Twelve -->

    ***

    기세와 여지.

    과감한 베팅으로 입찰자의 기세를 꺾어 경쟁이 붙을 여지를 두지 않는 것.

    이것이 이번 경매에 참여하는 내 컨셉이었다.

    사실 경매의 묘미는 희망 고문이었다. 조금씩 호가를 높이면 경쟁자는 자신이 낙찰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그 경쟁자의 희망이 높아지는 호가에 조금씩 꺼져가는 것과 경쟁자의 마지노선을 넘는 호가를 불러 굴복시키는 것이야 말로 경매의 백미였다.

    하지만 난 아니지. 내 목적은 온전히 낙찰이니까.

    나는 달랐다. 내게 중요한 건 오직 내가 노리는 아이템을 낙찰 받는 것뿐이었다. 그것을 위해 약간의 출혈쯤이야 감수하고도 남았다.

    잠시 날 관찰하던 라이언이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경매를 즐기는 것 같지 않군. 자네는 정말 저 아이템이 중요하다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헛돈을 쓰지 않겠죠."

    "그렇군. 자네도 은근히 짠돌이였어."

    혀를 차며 다시 말문을 걸어 잠그는 라이언의 모습에 괜히 나만 이상해진 것 같았다.

    뭐, 짠돌이라면 짠돌이지. 괜히 경쟁 붙어서 낙찰가가 올라가는 건 싫으니까.

    경쟁이라는 게 늘 그렇듯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니었다. 경매에 뛰어든 이들은 결국 상대를 짓누를 때 얻는 쾌감을 즐겼다. 물론 사람은 다양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일단 경쟁이 붙으면 가격에 거품이 끼는 건 변하지 않았다. 그 거품이 크거나, 작거나.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나도 거품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낙찰 받을 확률이 줄어드는 것 보다는 나았다. 내 과감한 입찰에 보이지 않는 경쟁자들은 숨죽였고, 욜란테의 카운트가 끝날 때까지 새로운 경쟁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첫 번째 경매부터 화끈하네요! 축하합니다, 미스터 어썸! 정말 끝내주네요. 제 몸이 녹아내릴 정도로 화끈했어요!"

    여전히 욜란테가 나를 노리는 것 같았지만.

    미심쩍은 의심을 뒤로한 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청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방청객들은 박수로 내 인사를 받아주었고, 그렇게 경매는 본격적으로 정상을 향해 달려갔다.

    모두가 처음 공개되는 뛰어난 아이템에 점점 흥분할 때 나는 오히려 무덤덤했다. 아니, 무덤덤하는 체 했다. 바로 방금 낙찰 받은 아이템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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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한 용광로]

    + 신성한 재료를 녹일 수 있는 용광로.

    + 1회 사용 후 소멸.

    + 소비 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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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만 봐서는 도저히 10만 경험을 주고 살 게 아니었다. 비록 접두사가 다르긴 하나같은 용광로들은 이미 많이 존재했다. 또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1회용 장비 제작 기술 스크롤.

    한 마디로 용광로를 정의하면 절구의 상위 호환 버전이라 할 수 있었다. 보통 절구는 정확한 재료를 넣지 않으면 실패하고 말았다. 반면 용광로는 쓸데없는 재료를 넣었다고 하더라도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나의 온전한 결과와 제외된 재료가 나오는 식으로 말이다.

    뭐, 그래도 좀 미친놈처럼 보이긴 하겠네.

    내가 생각해도 남들이 날 어떻게 볼지 모르지 않았다. 이해는 갔다. 일반적으로 용광로는 절구보다 조금 더 안전한 소비용 아이템에 불과했다. 절구보다 성공 확률이 높다고는 해도 큰돈을 쓸 정도는 아니라는 게 중론이었다.

    이런 대세에 혼자 아니라고 외치는 건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사람들이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게 있었다. 바로 접두사였다.

    신성한.

    내게는 신성한 재료가 있었다.

    그리고 신성한 재료를 담금질할 도구도 얻었지.

    자꾸 휘어지는 입꼬리를 억지로 붙잡다보니 내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걸렸다. 나를 힐끔거리던 라이언이 그걸 놓치지 않고 말을 걸어왔다.

    "설마 이제 와서 후회하는 건 아닐 테고. 무언가 자네만 아는 게 있는 건가?"

    하여튼 늙은 생강은 정말 매웠다.

    라이언의 중후한 목소리에 내 미소가 싹 사라졌다. 경각심이 든 것이다. 이대로 헤실헤실 거리다가는 쓸개까지 내줄지도 몰랐다. 그것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살짝 입맛을 다신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혼나는 중입니다. 잔소리꾼에게."

    "허허! 그런가? 하긴, 좀 과하긴 했어. 물론 거대한 방송국과 관계가 좋으면 나쁠 게 없지만, 경험치 10만이라……. 나로서는 글쎄. 좀 오버페이 같군."

    "그렇다고 생방송 중에 못난 모습을 보일 순 없으니까요."

    최대한 담담히 말하려고 하는 내 모습을 억지로 참는 걸로 오해한 듯 라이언이 킬킬 거리며 대형 화면으로 눈길을 돌렸다.

    자연스레 상황을 모면하는 사이 두 번째 경매가 끝났다.

    두 번째 낙찰자는 스튜디오 안에 없었지만, 방송을 책임지는 제작진은 어리석지 않았다. 그들은 미리 준비한 대로 전화 연결을 통해 낙찰자와 간략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떤 방식으로 실시간으로 정해지는 낙찰자와 전화를. 그것도 이렇게 빠르게 한 것인지 궁금했다.

    의외로 이런 궁금증은 금세 풀렸다.

    "제작진이 똑똑한가 보군. 아무래도 VIP들에게 브로슈어를 돌린 듯 하네."

    "브로슈어요?"

    그게 뭐지?

    라이언을 바라보는 내 얼굴이 이렇게 말했다.

    너무 솔직한 내 표정에 라이언이 쓴웃음을 흘리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노구를 이끌고 강단에 선 교수처럼 지루하지 않았다. 의외로 꽤 젊은 생각을 하는 라이언이었다.

    "그냥 전단지라 보면 되네. 돈지랄을 한."

    "팜플렛 같은 거예요?"

    "리플릿, 팜플렛, 카탈로그, 브로슈어. 아, 부클렛도 있군. 그냥 다 같다고 보면 되네. 사람들의 허영을 채워주기 위한 거니까. 물론 비지니스에서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도 오래 겪으면."

    "장난치는 거 같기도 하겠네요. 아무튼 고급 팜플렛이란 말이네요?"

    "그렇지. 그리고 VIP들을 멤버십으로 운영하겠지. 어차피 낙찰 받는 이들은 정해져 있을 테니 말이야."

    라이언의 설명이 다 끝나지 않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으로 대충 상황이 그러졌다. 나도 NPO BOSS와 정보를 공유하는 계약관계로 묶여 있으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살짝 냉소적으로 변했던 라이언이 본래의 허허로운 분위기로 돌아갔다.

    이 아저씨도 꽤……. 부자겠네.

    라이언은 대놓고 자신의 부를 자랑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의 행동에서 조금씩 자연스럽게 품격이 묻어났다. 앞서 설명한 전단지의 종류만 해도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그냥 헛소리로 들렸을 지도 모르겠다.

    자신만이 공고한 세상을 가진 라이언의 모습에 나는 한동안 그를 묵묵히 관찰해 보았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의 분위기는 다른 사람들과 상당히 달랐다.

    현자 같네.

    세상을 관조하는 현자처럼 라이언은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았다. 그저 잔잔한 호수 같았다. 간간히 경매에 참여할 때도 그는 냉정했고, 낙찰을 받았다고 으스대지도 않았다.

    내가 라이언을 관찰하는 사이 경매는 마지막 물품을 남겨 놓고 있었다.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니, 첫 경매를 제외하면 하나 같이 나와 관련이 없었다. 남은 경매 물품은 내가 올린 물품이거나, 귀족 이상의 장비뿐이었으니까.

    그렇게 내게는 한없이 지루했던 경매가 끝났다.

    물론 내게 쏟아진 관심은 여전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내가 유일하게 입찰하고 낙찰 받은 물건이 가장 비싼 가격을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욜란테의 경매 입찰에 대한 이유를 묻는 질문을 부드럽게 웃어넘긴 나는 마지막 질문을 받았다. 꽤 의미심장한.

    "일각에서는 여전히 레벨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의문스럽게 보고 있는데요. 혹시 들은 적 있으신가요?"

    "저도 눈이 있고, 귀가 있으니까요. 크게 신경 쓰지는 않습니다. 원래 1등에게는 환호와 야유가 같이 쏟아지는 법이잖아요?"

    "어머? 꽤 직설적이네요. 그럼 다시 한 번 여쭈어 볼 게요. 여전히 레벨을 공개할 의향이 없으신가요?"

    중요한 시점이었다.

    만약 여기서 레벨 공개에 대해 꼴사나운 짓이라고 하면 랭커들을 적으로 돌리게 됐고, 레벨을 그대로 공개해도 두 달 동안 레벨 변화가 없는 것에 의심을 받게 됐다.

    그렇다고 3차 전직을 터트릴 수는 없으니까.

    3차 적진에 관한 이야기는 내가 3차 전직을 한 이후에 NPO BOSS에서 터트리기로 이미 상의가 끝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였다.

    "레벨은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원론적인 립서비스.

    지금으로썬 그나마 이게 최선이었다.

    다행히 오늘 NPO BOSS의 최대 관심사는 내가 아니었다. 그들은 이번 기회에 욜란테에 이어서 새로운 스타를 만들고 싶어 했다. 바로 아마조네스였다.

    그렇게 아마조네스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하는 것을 끝으로 촬영이 끝났다.

    한 가지 흥밋거리를 남겨 둔 채로.

    ***

    촬영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내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쉬지도 않고 연속으로 수만 번 사냥을 한 것 같았다. 정신적 피곤함에 거의 실신한 나는 씻을 생각도 못한 채 소파에 그대로 쓰러지듯 누워 버렸다.

    "진짜 방송은 할 짓이 아냐."

    "그런 것 치고는 촬영하는 내내 여유가 넘쳐 보이던데요?"

    "그거야 돈 받고 하는 일이니까. 출연료가 은근히 많이 주고."

    "에이, 돈도 많으신 분이. 그나저나 아마조네스. 어땠어요?"

    리아가 아마조네스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촬영 말미에 이루어진 그녀의 인터뷰 때문이었다.

    나는 여전히 소파에 누운 채 내가 느꼈던 점을 담담히 읊었다.

    "정신력이 강해 보였어. 그리고 현실적이고. 그런 스타일은 위험한 전투를 하지 않지. 그런데도 상위 랭커. 그것도 탑에 근접했다는 건 두 경우겠지."

    "아이템이 좋거나, 직업이 좋거나."

    "정확하게는 기술이지. 직업이야 뭐 별거 있나. 스킬 트리에 따라 결정되는 거니까."

    "하긴. 그 여자의 고유 기술도 신기했어요. 아니, 좀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하나?"

    리아가 허탈함과 놀라움 사이에 있는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그녀와 비슷한 마음이었다. 마지막에 터트린 한 방은 꽤 강한 인상을 남겼다.

    나는 아마조네스의 고유 기술을 직접 입으로 옮기며 다시 한 번 그녀의 기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블 바코드. 진짜 독특하네. 직업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대충 원래 직업에 영향을 받은 거 같기도 해."

    나도 그러니까.

    "그런 거 같아요. 근데 좀 신기하긴 한데. 그래도 막 엄청나다. 그런 건 아니지 않아요? 물론 전투 전에 몽마의 정보를 얻는 건 좋지만. 비슷한 기술이 있잖아요."

    "있긴 있지. 그래도 꽤 자세한 정보를 얻더만? 게다가 전투 전에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며? 그게 어디야. 아무런 위험 없이 몽마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그래서 본사에서 꽤 공들여 전속으로 묶은 거 같지만요."

    리아의 말대로 NPO BOSS가 아마조네스에게 공을 들인 이유는 바로 그녀의 고유 기술 때문이었다. 참가자들은 몰라도 방송국에서는 최고의 기술이었다. 자체적으로 정보를 추출할 수 있다는 건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방송국에는 최고의 마스터키였다.

    좀 누워있었더니 머리가 가벼워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에 기대며 맞은편에 앉아 있는 리아를 바라보았다.

    "이유야 어떻든 대단한 기술은 맞아. 만약 그게 사람에게도 적용된다면. 꽤 큰 무기가 될 수도 있겠지."

    "으음!"

    내 무심한 한 마디에 리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짜식. 고맙네.

    리아의 심각한 얼굴을 보는 순간 괜히 그녀가 기특했다. 동시에 고마운 감정도 생겼다. 약간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 위주로 생각해주는 리아가 싫지 않았다.

    괜히 사서 걱정하는 리아를 향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 말했다.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어차피 계약은 영원한 게 아냐. 그리고 내 스탯을 보면 어때?"

    "네? 어떻다뇨! 그럼 고영 씨 맞춤 세팅을 하고 덤빌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그런다고 내가 질까?"

    "……자신만만한 건 좋지만. 그래도 조심해요. 괜히 이상한 여자 근처에 가지 말고요. 그러다 홀라당 정보를 벗겨 먹으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리아의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옛 고사에도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었으니까. 다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힘의 차이까지 어찌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내가 직업 이름처럼 진짜 무적인 건 아니었다. 내게도 약점이라 할 수 있는 게 있었다. 일단 하염없이 낮은 항마력이 첫 번째였고, 그 다음으로는…….

    "상태이상만 조심하면 돼. 어차피 난 즉사 면역이잖아?"

    "……그래도 조심해요."

    "그래. 조심할게. 그나저나 난 이대로 쉴 생각인데. 넌?"

    내 물음에 리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왠지 그녀의 눈빛이 결연해 보였다.

    그래. 니 렙에 잠이 오면 안 되지.

    사냥을 떠난 리아를 뒤로한 채 나는 그대로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내일 아침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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