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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앞 공원에 천진난만한 아이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꺄하하하!"
기쁨에 찬 웃음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미야프였다. 녀석의 곁에는 리아가 함박웃음을 한 채 함께 있었다. 신기한 것은 미야프는 암스테르담 시민들과 참 쉽게 어울린다는 점이었다.
나는 벤치에 홀로 앉아 사방을 휘젓는 미야프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몽마는 몽마네. 언어의 장벽 따위 개무시하는 걸 보니."
솔직히 좀 부러웠다. 나는 영어 하나 공부하기 위해 진짜 개고생 했는데, 쟤는 그냥 태어날 때부터 언어를 마스터했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기도 했다. 물론 시샘도 좀 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도 잠시 나는 살짝 눈을 감았다. 리아의 실수와 내 착각으로 인해 방송국과 약속한 시간이 아직 멀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암스테르담에서 하룻밤을 보내야했지만, 딱히 급할 게 없었기에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그나저나 도대체 전직은 언제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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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직업]
+ 제왕의 위엄을 꺾고 스스로 자격을 증명하라.
+ 임무 현황 : 발아
+ 기본 보상 : 최종 직업
+ 전체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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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슬쩍 암스테르담의 허수마비를 10단계로 만들 때 활력 회복이 드디어 10성을 달성했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타란툴라보다 더 빠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쉬움은 아쉬움이었고, 그 덕에 전직 퀘스트가 조금 변했다. 파종이었던 임무 현황이 발아로 넘어갔다.
발아 다음은 개화겠지.
어림짐작이 아니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거의 확실했다. 이제 남은 건 왕족 몽마를 사냥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문제는 왕족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거지만. 근데 이제 시간이 되지 않았나?"
내가 핸드폰을 통해 시각을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저 멀리 방송국 차량이 나타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스포츠 중계를 할 때나 볼 수 있는 중계차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생중계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완전히 일어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지휘 차량 안에서 나는 오랜만에 보는 욜란테에게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 지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욜란테를 향해 확인하듯 물었다.
"사냥 성공하는 게 불확실해서 시간을 못 배지만. 만약 성공한다면 속보로 내보낸다는 말이죠?"
"네. 맞아요. 짧게 사냥하는 장면을 바로 편집해서 보내려고 해요. 성공하지 못하면 다 헛수고가 되겠지만요."
"무조건 성공하라는 말로 들리네요. 아무튼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촬영 협조를 미리 받아 놨어요. 그러니 미스터 어썸은 다른 거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의외로 우리 PD가 능력이 있더라고요."
욜란테와 대화를 끝낸 나는 분장차로 가서 잠시 시달린 후에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때 찜되자 밖은 이미 어두컴컴해 진 상태였다. 그래도 방송을 위해 허수마비 근처에 설치된 조명 덕분에 딱히 어둡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거기에 진행 팀이 크게 벽을 만들어 날 보호하니 마음이 이보다 더 편할 수 없었다.
나는 한쪽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리아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방송이라는 거. 은근히 귀찮네. 자꾸 기다리래."
"다 고영 씨 때문이잖아요. 어쨌든 성공해요. 아니, 무조건 성공 해야 해요. 안 그러면……."
"내 값어치가 떨어진다고? 됐네요. 내가 언제 그런 거 신경 썼다고. 사실 이번에 그냥 어썸 바나나는 공개하려고 했는데. 더 이상 감추기도 좀 그렇잖아?"
리아도 내 의견과 같은지 고개를 끄덕였다. 난데없는 타란툴라의 숙련도 인증만 아니었어도 그냥 한강에 있는 허수마비를 사냥했을 터였다.
하루 종일 비글처럼 뛰어 놀다 지쳐 잠든 미야프를 무릎에서 재우고 있는 리아를 한 번 보고는 말을 이었다.
"어차피 알 사람들은 다 내 정체를 알잖아. 돌아가는 분위기도 그렇게 나쁘지 않고. 뭐, 삼촌이랑 숙모가 좀 민망해하는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지지해 주니까."
"킥! 하여튼 고영 씨 가족들도 대단해요. 어떻게 알았대요?"
"뭘 어떻게 알아. 그 변태 선생인 자식이 인터넷으로 보다가 내 목소릴 알아차린 거지. 어휴. 아무튼 처음엔 난리도 아니었어. 그래도 삼촌이 나서서 막아줘서 다행이지."
"그래도 부러워요. 고영 씨는 좋은 가족을 두었잖아요."
묘한 뉘앙스였다. 마치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처럼.
내가 리아를 빤히 바라보자, 리아가 조금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 가족이 있지만, 가족이 없는 거 같거든요."
"됐어. 굳이 말 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고아 앞에서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좋은 가족이든, 나쁜 가족이든.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워 죽겠으니까."
"아, 미안해요."
내 싸늘한 말투에 리아가 움찔하며 서둘러 사과를 해왔다.
나는 혀를 차며 그런 리아를 향해 한숨 섞인 말을 전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미안해 할 필요도 없고. 원래 내 손에 박힌 가시가 가장 아픈 법이잖아? 그리고 난 위로 같은 거 잘 못하니까. 그런 말해도 소용없다는 것만 알고 있어."
"킥! 알았어요."
"진짜야."
"알았다니까요?"
"진짜라고."
"네네. 그러세요."
괜한 오해를 한 것 같은 리아의 모습에 다시 한 번 말을 하려고 했지만, 헐레벌떡 뛰어온 조연출의 모습에 그만두어야했다.
"준비 끝났습니다!"
"알았어요. 바로 시작할게요."
나는 예의 입에 발린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에서 리아가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촬영 준비가 끝나 있었다. 실패를 염두에 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ENG 카메라만 다섯 대였다. 거기에 축구장 광고판 같은 것들이 반원을 그리며 둘러쳐져 있었다.
아주 뽕을 뽑으려고 하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지만 얼른 미소를 지우며 큐시트를 숙지하는 욜란테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깔끔한 와인빛 정장을 입은 채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그나저나 진짜 전속인가보네요. 이렇게 막 돌리는 거 보니."
"어머? 막돌린다뇨? 너무 야해요."
"……그쪽이 이상한 겁니다."
"아무튼 간단하게 인터뷰부터 하고 사냥을 시도하면 돼요. 그리고 좋은 소식 하나. 실패해도 방송에 내보내기로 했대요. 어썸 바나나라는 브랜드가 꽤 인지도가 높다보니 관심이 많을 것 같다네요."
"실패해도 그림이 좋고요?"
욜란테가 소리 없이 웃으며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스터 어썸이 실패하면 다른 랭커들도 도전하기로 했거든요."
"진짜 뽕을 뽑네. 아무튼 얼른 시작합시다. 며칠 사냥을 제대로 못했더니 찌뿌둥하네요."
"어머? 그럼 내가 풀어 줄까요?"
"됐습니다."
욜란테의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아 더 무서웠다.
이윽고 간단한 인터뷰 촬영이 시작됐다. 간단한 신변잡기 식의 이야기를 했고, 금세 마지막 질문이 날아왔다.
"그런데 왜 10단계 허수마비를 사냥하려고 하시죠? 미스터 어썸에게 1만의 경험치는 그냥 그렇지 않나요?"
"뭐, 솔직히 있으나 마나한 건 맞습니다."
"그럼 역시 고난과 도전 보상 때문인가요?"
"솔직히 보상이 끝내주잖아요? 근데 그것보다는……."
내가 잠시 말끝을 흐리자, 촬영장 분위기가 갑자기 긴장됐다. 욜란테도 말을 아끼며 내게 더욱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기분 좋은 긴장감을 잠시 즐긴 나는 다시 말을 이으며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자존심 때문입니다."
"자존심이요?"
"네. 자존심. 내가 보내지 못할 몽마는 없으니까요."
"와아……."
오만한 내 말에 욜란테는 물론이고 촬영하고 있던 연출팀까지 놀란 탄성을 터트렸다.
다행히 욜란테는 금방 놀람을 추스르더니 이내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 미스터 어썸과 하룻밤을 보내고 싶네요."
"그건 좀 사양하고 싶네요."
"여전히 단호한 미스터 어썸입니다. 근데 그거 알아요? 헐리웃 여배우들이나 빅토리아 엔젤스들도 당신과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 하는 걸?"
"……언제든 환영합니다."
"뭐예요!"
"아. 결혼한 분은 빼고요."
솔직히 크게 놀랐지만 다행히 재치 있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인터뷰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결전뿐이었다.
원래라면 침실에서 사냥을 시도했겠지만, 이미 약속한 게 있다 보니 오랜만에 현실에서 사냥을 해야 했다.
이짓도 자주하니 그냥 무덤덤하네.
카메라 앞에서 가면만 쓴 모습으로 알몸이 됐지만, 딱히 부끄럽거나 창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되도록 카메라를 머릿속에서 지운 채 홀로 서 있는 10단계 허수마비를 향해 다가갔다. 이내 내 손이 허수마비에 닿자, 허수마비가 스르륵 허수어미로 변했다. 붉디붉은 허수어미의 눈빛이 10단계라는 걸 다시 한 번 알려주었다.
"후우……."
잠시 심호흡을 한 나는 광속 자지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포문을 열었다.
미야프가 있음 편한데.
물론 미야프가 기술을 대신 사용해도 내 정력이 깎이는 건 변화가 없었다. 다만 미야프가 기술을 사용하면 단숨에 기술을 사용하여 공격권 소비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것만 해도 큰 이득이었다.
아쉽지만 카메라 앞에서 미야프를 공개할 수는 없었고, 나는 차근차근 기술을 사용했다. 중간에 광폭의 비약을 먹을 수 없는 게 좀 아쉽다면 아쉬웠다.
어쩔 수 없지. 광폭의 비약까지 빨면 광자술이 끝나니.
다시 한 번 미야프의 장점을 느끼며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방금 전 턴에 맞아 줄래를 사용했기에 이제 한 방이 남았을 뿐이었다. 슬쩍 손을 들어 올리는 걸로 신호를 보내니, 욜란테의 긴장된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1차 시도를 하는 어썸 바바나입니다!"
욜란테의 말처럼 나는 지금 1차 시도일 뿐이었다. 오늘은 정말 이 녀석을 잡고 싶었다. 만약 내 순수 실력을 잡지 못하면, 미야프의 도움을 받아 모든 버프와 물약, 그리고 요리까지 먹을 생각이었다.
욜란테의 목소리가 잦아들었을 때.
나는 착 가라앉은 눈빛을 뿌리며 허수어미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 마치 연인이 서로를 허리를 잡고 마주 선 자세였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는 특이한 체위일 뿐이었다.
슬쩍 전기톱을 허수어미의 음문에 조준한 나는 그대로 허리를 밀어 올렸다.
퍼억!
['허수어미'에게 2,471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허수어미'에게 2,488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허수어미'에게 14,375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내 치명도는 혈류 증가까지 사용하면 94에 달했다. 그럼에도 첫 3번의 공격 중 치명 공격은 한 번밖에 터지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빌어먹을 치명 감소는 여전하네.
10단계 허수마비는 내 치명도를 낮추는 지 10번 공격하면 4번이나 터질까 말까 했다. 9단계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지만, 10단계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내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무는 동안에도 내 전기톱은 끊임없이 허수어미를 공략했다.
['허수어미'에게 3,218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허수어미'에게 3,340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허수어미'에게 10,625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다음 3번의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치명타 공격이 민뎀이 터지며 내 속을 쓰리게 했다. 최대 12번의 공격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벌써 절반. 혹은 그 이상을 공격했지만, 36,517의 피해밖에 주지 못했다.
쓰읍. 아무래도 미야프까지 동원해야겠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허수어미의 최대 활력은 10만 정도로 추측하고 있었다. 절반의 기회를 쓰고도 반의 반 밖에 피해를 주지 못했으니 이번 시도는 실패라 봐도 무방했다.
자연스레 몸에 힘이 빠지며 부드러워졌다.
나는 별 기대 없이 남은 공격을 끝내기 위해 전기톱으로 허수어미를 찔렀다.
퍽!
['허수어미'에게 2,904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에이.
속으론 여전히 좀 기대하고 있었나 보다.
내가 피식 웃으며 기대를 완전히 버렸을 때였다.
갑자기 좀 둔탁한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퍼억! 퍼억! 퍼어억!
['허수어미'에게 12,764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허수어미'에게 13,301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허수어미'에게 12,257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허수어미'에게 12,017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허수어미'에게 10,882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허수어미'가 절정에 올랐습니다.]
어? 뭐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순간 정신이 멍했다.
내가 살짝 정신줄을 놓고 있는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보스는 꿋꿋이 자기 할 일을 계속했다.
['9,999 경험'을 획득합니다.]
[현재 보관 경험 : 414,490]
[허수마비의 봉인을 해제합니다.]
[전체 임무 '고난과 도전'을 완료합니다.]
[기본 보상 '고유 비급서 1개'를 획득합니다.]
['추가 보상 '능력의 책 2개'를 획득합니다.]
사냥이 끝났다.
잭팟이 터졌다.
그리고…….
"이거 난리 났네."
허수마비가 사라졌다.
========== 작품 후기 ==========
오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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