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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ss-133화 (1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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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외였다.

    친밀도가 관심이 되든 말든 미야프는 나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미야프는 꼭 데면데면한 신입 여직원 같았다. 그랬던 미야프가 갑자기 내게 달라붙어 애교 섞인 떼를 쓰는 게 좀 신기했다.

    일단 미야프는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꼬마 숙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미야프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응? 왜? 또 달라고?"

    도리도리, 도리도리.

    내 물음에 미야프가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다시 날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구슬프게 울었다.

    "먑먑! 먀먀먑! 미야?"

    "……뭐라는 건지."

    살짝 귀엽게 보였던 미야프의 얼굴도 금세 시들시들해졌다. 자꾸 뜻 모를 소리만 지르니 가슴이 답답했다. 분명 이유가 있으니 저러는 거 같은데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미간에 살짝 골이 파였음에도 불구하고 미야프가 계속 내 다리를 부여잡으며 몸을 흔들며 떼를 썼다.

    "미약! 먁! 먁먁!"

    그때 미야프가 봄날 막 모습을 드러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스마트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소파 옆에 던져 놓았던 스마트폰을 집어 들며 물었다.

    "이거?"

    "미야푸!"

    미야프가 활짝 웃었다.

    일단 방향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다만 여전히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나는 내 스마트폰을 미야프에게 밀며 물어 보았다.

    "이거 뭐? 달라고?"

    도리도리, 도리도리.

    저러다 목 디스크 오겠네.

    연이어 거칠게 머리를 흔드는 미야프였다.

    분명 밥을 달라는 건 아닌데. 도대체 뭐지?

    밥을 달라고 할 때 미야프는 날 빤히 바라보며 자기 배를 슥슥 문지르는 버릇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먁먁 거리는 미야프와 스마트폰을 번갈아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내 감은 조용했다. 슬슬 짜증이 올라왔지만 처연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미야프의 모습에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한 번 입을 열려고 했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사진이 떠올랐다.

    고양이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논다고 했던 거 같은데. 저것도 고양이 같긴 하니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나는 스마트폰을 켜서 미야프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이거 가지고 놀고 싶어? 근데 나 게임 같은 거 안하는데. 이젠."

    도리도리! 도리도리!

    어찌된 게 고개를 젓는 게 점점 더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미야! 미야양! 먀!"

    내가 미야프의 목 건강을 걱정하고 있을 때 미야프가 조막만한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야프의 손을 따라가 보았다.

    설마…….

    미야프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 있는 걸 확인한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며 물었다.

    "보스 앱을 켜라는 말이야?"

    "미얍! 미야얍!"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미야프가 더 없이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적 없는 해맑은 미소였다. 너무 귀여운 표정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진작 이렇게 살갑게 좀 하지. 나쁜 기집애. 치사한 기집애 같으니라고.

    물론 그 와중에도 나는 처음 보는 미야프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보스 앱을 켰다. 그러자 미야프의 눈빛이 더욱 반짝였다.

    "미얍! 얍얍!"

    "아아. 알았어. 켰잖아? 아아. 인벤토리를 열라……. 어? 인벤토리?"

    미야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있는 버튼을 착실히 누르던 나는 뒤늦게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나는 얼른 보관창을 열었다.

    미야프의 목소리가 더욱 들뜬 기색으로 물들었다.

    점점 확신이 생겼다.

    이윽고 보관창을 크게 확대한 나는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며 미야프에게 보여주었다.

    "미얍! 미야야야야얍!"

    귀청 덜어지겠네.

    살짝 고막이 찌릿찌릿 했지만 다행히 미야프가 원하는 게 무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손가락을 멈춘 그곳에 미야프가 뚫어지게 쳐다보는 아이템이 보였다.

    [부러진 옥비녀]

    튜토리얼 막보를 사냥하며 얻은 잡템이었다.

    사실 까먹고 있었다. 벌써 몇 달 전 일이었다. 게다가 잡템을 말 그대로 잡템이었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이걸 달라고? 근데 이거 너 못 주는데?"

    "미얍? 미야푸……."

    미야프의 눈에 눈물이 송골송골 맺혔다. 울기 일보 직전인 미야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흠칫하고 말았다. 비 맞은 아기 고양이 꼴을 하고 있는 미야프의 모습은 정말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안되는 게 되는 건 아니었다. 물론 종속에게 장비를 줄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은 종속 전용 장비에 한하여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건들기만 해도 울어 버릴 것 같은 미야프를 향해 최대한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난감 가지고 싶어? 내가 사줄까?"

    도리도리! 도리도리!

    아, 어쩌라고!

    나로선 크게 마음먹고 한 말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종속 장비 상자를 살 생각은 없었다. 금화 한 개를 투자하기에는 좀 과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랬던 내 생각을 뒤집었는데도 미야프는 요지부동이었다.

    답답하네.

    좀 난감한 상황이었다.

    나는 잠시 말없이 황금 상점을 열어 물품을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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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속 장비 상자 : 금화 1개

    + 종속 기술 상자 : 금화 5개

    + 종속 진화 상자 : 금화 10개

    + 씁쓸한 사탕 : 금화 20개

    + 시큼한 사탕 : 금화 20개

    --------------------

    내가 가지고 있는 금화는 고작 4개에 불과했다. 실제로 금화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아니, 은화도 보기 힘들어진지 오래였다.

    매물도 없는 상태라 미야프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종속 장비 상자를 사주는 게 전부였다.

    이거 참……. 돈이 없어 딸아이 장난감을 못 사주는 것도 아니고.

    기분이 참 묘했다.

    내가 착잡한 심정을 느끼고 있을 때도 미야프는 계속 칭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미야프를 보며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야프야. 미안한데, 이거 밖에 못 사주는데. 이걸로 안 될까?"

    "……미야푸."

    잔뜩 실망한 미야프가 잡고 있던 내 다리는 놓더니 그대로 주저앉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에 주저앉은 미야프의 모습에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나는 물품창에서 부러진 옥비녀를 꺼냈다. 이쑤시개보다 조금 더 큰 옥비녀가 내 손에 나타났다. 이럴 때마다 참 신기한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부러진 옥비녀를 꺼내든 나는 소파에서 내려와 미야프 앞에 쪼그려 앉으며 살살 미야프를 달래 보았다.

    "그냥 이거라도 가지고 놀래? 장비로 착용은 못해도, 그냥 가지고 노는 건 되니까. 일단 가지고 놀면 내가 돈 벌어서 새로운 거 사줄게."

    도리도리.

    미야프도 이젠 지쳤는지 젓는 고개에 힘이 없었다.

    나는 자꾸 돌덩이를 가슴에 얹어 놓은 것 같아 억지로 미야프의 작은 손에 부러진 옥비녀를 쥐어 주었다.

    미야프가 고개를 들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미얍! 미얍얍!"

    "응? 왜? 싫어?"

    미야프의 목소리에 답답함이 느껴졌다. 내가 되묻자 그 답답함은 더욱 커졌다. 분명 아직 내게 바라는 게 있는데 내가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러니 슬슬 짜증이 났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아, 진짜.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데?

    "후우……. 그래도 참자.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정말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다시 한 번 착한 아빠 코스프레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었다. 아니, 마지막이었다. 만약 미야프가 계속 같은 모습이면 그땐 그냥 소환 해제할 작정이었다.

    나는 억지로 웃으며 미야프가 자꾸 돌려주려는 부러진 옥비녀를 집어 들었다.

    "나 가지라는 말이지?"

    "미야야약!"

    아씨. 이게 진짜!

    참자, 참자. 조금만 더.

    "흐음……. 아냐? 나 주는 거 아냐?"

    "미얍. 먑? 미얍. 미얍. 먑먑."

    고개를 끄덕인 미야프가 다시 귀여운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가리키더니 이내 내가 쉬고 있는 부러진 옥비녀를 가리켰다. 두 물건을 번갈아 가리키는 모습에 무언가 알 듯 말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왼손에는 스마트폰을 오른 손에는 부러진 옥비녀를 들고 미야프가 그랬던 것처럼 번갈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뭘까? 분명 무얼 하라는 것 같은데.

    한 번 찬찬히 생각을 해 보았다.

    일단 저 녀석은 이걸 갖고 싶은 건 맞는데. 근데 장비로 등록은 안 되고. 그런데 준다고 해도 싫다고 하고. 괜히 엄한 상점창이나 손으로 찌르고. 찌르고?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종속 장비 상자와 부러진 옥비녀를 절구로 빻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궁금했다.

    금화 하나 버린다 치고. 한 번 해봐?

    어차피 지금 당장 금화를 쓸데가 없었다. 4개나 3개나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사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되면 그냥 미야프를 소환 해제 할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최악의 경우 부러진 옥비녀가 사라질 수 있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지. 그럼 저게 더 이상 귀찮게 안 할 테니까.

    좀 사악한 마음을 먹으며 나는 백은 절구를 활성화했다. 이내 막 구매한 종속 장비 상자와 부러진 옥비녀를 절구통에 넣었다. 준비를 끝낸 나는 슬쩍 미야프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이것 봐라?

    미야프가 눈을 반짝이며 날. 아니,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묘한 가슴의 떨림을 느끼며 그대로 절굿공이를 클릭했다.

    쾅, 쾅, 쾅!

    [조합에 성공합니다.]

    [종속 장비 '고귀한 로젠의 옥비녀 1개'를 획득합니다.]

    "미야아아푸……!"

    "……하, 하하."

    내가 조합에 성공한 걸 본능적으로 알았는지 미야프가 펄쩍 뛰며 좋아했다. 녀석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거실 이리저리 달리며 좋아했다. 거실 한 바퀴를 신나게 돈 미야프가 이내 내 품으로 뛰어 들었다.

    와락!

    나도 모르게 미야프를 품에 안아 버렸다. 놀라긴 했지만 미야프가 내 가슴에 얼굴을 문지르는 게 썩 나쁘지 않았다. 이럴 때보면 몽마라기보다는 그냥 천진난만한 꼬마 아이 같았다.

    물론 미야프는 천진난만하지 않았다.

    슬쩍 고개를 들어 날 올려보는 미야프의 눈빛이 그 증거였다.

    "얼른 장착하라고?"

    "미야푸!"

    내 대답이 맞았는지 미야프가 활짝 웃었다. 나도 미야프를 따라 웃었다.

    잠시 눈을 감은 나는 그대로 미야프가 바라는 대로 옥비녀를 미야프의 정식 장비로 등록했다.

    ['고귀한 로젠의 옥비녀'를 '미야프'의 장비로 등록합니다.]

    [종속 '미야프'가 진화합니다.]

    부지불식간에 터진 안내가 내 머릿속을 강타한 순간.

    파핫!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

    쿡.

    음?

    쿡쿡.

    뭐지?

    쿡쿡쿡.

    기분 좋게 잠을 자고 있는데 누가 자꾸 내 볼을 찌르자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아, 뭐야?"

    "아빠! 일어나!"

    "뭐래? 내가 왜……."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눈을 뜬 나는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작은 생명체를 볼 수 있었다.

    미야프였다.

    뒤늦게 잠들기 전 미야프가 진화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떠올랐다.

    화들짝 놀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고개만 살짝 들어 내 가슴을 방석처럼 깔고 앉은 미야프를 보며 중얼거렸다.

    "……방금 말 한 게 너야?"

    "응. 응. 나야. 나야."

    뭐지? 이 개떡 같은 상황은? 꿈인가?

    머리가 점점 더 복잡해졌다.

    내 머릿속이 막장으로 변해갈 때 미야프가 털썩 내 가슴에 엎드렸다. 그러더니 조금은 기운 없는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아빠. 나 배고파. 밥 줘. 배고파. 배고파. 밥. 밥."

    "잠깐만. 너 진짜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맞아?"

    "우와. 우리 아빠 바보다. 바보 아빠다!"

    "아빠라니? 내가 왜 아빤데?"

    "그냥 아빤 아빠야! 근데 나 진짜 배고픈데. 밥 줘. 밥 줘어어어……."

    이거 무슨 뱃속에 아귀가 들었나?

    새하얀 빛에 쏘이고 잠깐 기절했던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했다.

    그 전에 이 녀석 좀 처리해야겠네.

    "알았으니까 내려와. 나도 일어나자."

    "응! 밥줄거지? 나 치킨! 치킨이 좋아요!"

    설마……. 에이, 아닐 거야. 아니겠지.

    반드시 아니어야했다.

    나는 폴짝 바닥으로 뛰어내린 미야프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먹이는 안 먹어도 돼?"

    "우와. 우리 아빠 진짜 바보다. 내가 왜 먹이를 먹어. 그거 맛없어. 치킨이 더 맛있어! 치킨! 치킨! 치킨!"

    아무래도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 같았다.

    그런데 왜 눈앞이 깜깜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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