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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ss-131화 (13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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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덜란드에서 할 일이 모두 끝났다.

    바로 귀국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직 3회차 자유 임무가 끝날 때까지 시간이 남아 있었고, 그 시간 안에 나는 한 마리라도 귀족 몽마를 더 사냥하고 싶었다. 워낙 귀족 몽마들이 근래에 수난을 당하다보니 고작 3마리를 사냥하러 런던까지 가야했지만.

    아슬아슬하게 귀족 몽마를 독차지하고 나서야 나는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리아와 함께 퍼스트 클래스에 나란히 누워 인천으로 날아가고 있을 때 한국 시각으로 7월 1일 자정이 됐다.

    [3회차 자유 임무를 종료합니다.]

    [3회차 자유 임무를 집계합니다.]

    [기본 보상 '기술 숙련 우대권 1개'를 획득합니다.]

    [우승 보상 '하얀 전혼 상자 1개'를 획득합니다.]

    [4회차 자유 임무를 시작합니다.]

    3연속 우승이었다.

    일견 당연한 결과 같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조금 불공평 할 수도 있었지만, 파티 사냥을 해도 카운트가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정말 짜증을 넘어 화가 났을 정도였다.

    긴장하고 있었다는 걸 증명하듯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좌석에 다시 누웠다. 리아가 걱정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며 날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녀의 걱정보다 내 호기심이 더 컸다.

    나는 슬쩍 허공에 손을 저은 뒤 머릿속으로 보스 앱을 실행했다.

    물품창을 보니 내가 보상으로 얻은 2개의 물품이 고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중 나는 하얀 전혼 상자부터 개봉해 보았다.

    ['하얀 전혼 상자'를 개봉합니다.]

    개봉하기 무섭게 내 머릿속에 3단계로 구분 된 창이 나타났다.

    능력, 속성, 종족.

    나는 지체 없이 능력을 선택했다. 대분류를 선택하니 12개의 소분류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나는 망설임 따위를 보이지 않았다.

    ['하얀 늑대의 전혼'을 획득합니다.]

    비록 1단계짜리 전혼이었지만, 자그마치 성장치가 1,000이었다. 지난 3달간 키운 늑대의 전혼 성장치가 1,884인걸 감안하면 이번 보상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줄여주는 지 알 수 있었다.

    한 달 반이나 줄어든 거네. 그나저나 하얀 독수리를 키우는 것도 괜찮아 보이는데.

    본래 목적은 늑대를 키우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짝 고민이 됐다. 아무래도 리즈와 결투가 날 조금 소심하게 만든 것 같았다.

    물론 이 고민은 금방 사라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1천의 성장치로 하얀 독수리의 전혼을 성장시켜봤자, 활력이 100밖에 오르지 않으니까.

    단계를 오르면 오를 때마다 전혼의 필요 성장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에 반하여 늘어나는 효과는 고정적이었다. 그러니 효율이 점점 나빠지는 건 당연했다.

    100의 활력과 10%의 치명증폭.

    이 두 가지 선택지에서 한 가지를 택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바로 늑대의 전혼을 성장시켰고, 한 단계가 오르며 귀족 2단계가 될 수 있었다. 이로써 독수리와 늑대 전혼이 모두 귀족 2단계. 즉 17단계가 될 수 있었다. 최종 25단계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그렇다고 만만히 볼 것도 아니었다.

    이제 한 단계를 올리려면 1,500의 성장치가 필요하네?

    1,500의 성장치를 모으려면 대충 두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 한 동안은 전혼이 성장할 길이 없어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운이 좋기를 바라는 것과 매일 까먹지 않고 영혼의 낚싯대를 드리우는 것뿐이었다.

    전혼 상자를 깐 나는 기술창을 열어 기술 숙련 우대권을 사용할 기술을 고민해 보았다.

    10성이 되면 숨은 능력이 나온다고 했으니까. 아무래도 높은 걸 올려야 하나?

    지금 내 기술 중 가장 숙련도가 높은 건 활력 회복이었다. 다만 이 기술은 범용 기술. 즉, 기본 기술이었다. 그것은 곧 강력한 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분명 활력 회복은 좋은 기술이고, 동시에 꼭 필요한 기술은 맞았다.

    하지만 잘 오르는 것도 사실이지. 가장 성장도를 올리기 쉬운 기술을 올릴 필요가 있나?

    활력 회복 기술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 중 가장 숙련도를 올리기 쉬운 기술이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올리기 힘든. 즉, 지금 가장 숙련도가 낮은 기술을 올리는 게 더 나아 보였다. 그것이 가장 많이 시간을 단축시키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는 기술 숙련 우대권을 사용했다. 이번에도 내 기술이 단축 아이콘이 정렬된 창이 나왔고, 나는 15개의 기술 중 하나를 선택했다.

    [고유 기술 '절대 삽입술'의 숙련도가 한 단계 상승합니다.]

    내가 선택한 기술은 다름 아닌 절대 삽입술이었다. 이로써 절대 삽입술의 숙련도가 4성으로 올랐다. 물론 절대 삽입술보다 숙련도가 낮은 기술도 있었지만, 그것은 반쯤 사장된 범용 기술이거나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특화 기술뿐이었다.

    나름 괜찮은 선택이라 생각하며 나는 물품창을 닫았다. 이윽고 4회차 자유 임무를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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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회차 자유 임무]

    + 직접 길들인 종속의 충성을 얻어내라.

    + 임무 현황 : 호감/충성

    + 기본 보상 : 천도 열매 1개, 천도 씨앗 2개

    + 우승 보상 : 기술 숙련도 2단계 상승

    + 자유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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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는 모든 시스템을 하나씩 임무로 만들 모양이었다.

    이유야 어떻든 내게 꽤 유리한 상황이란 건 확실했다. 이미 미야프의 친밀도는 4단계인 호감 상태였다. 물론 마지막 한 단계가 드럽게 오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유리한 고지라는 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타임 어택인가?

    그보다 내 관심을 끈 것은 우승에 대한 기준이었다. 보는 순간 딱히 다른 설명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번 임무는 양보다 질을 평가하는 거라는 걸.

    나름 치열한 시간 싸움이 될 수도 있었지만, 내 생각에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없게 만들 생각이었다. 꽤 열심히 경매창을 뒤졌지만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찾지 못한 이상 어떻게든 30만이 넘는 경험치를 쓰긴 써야했다.

    동전이나 사지 뭐. 좀 비싸긴 하지만.

    나는 황금을 쌓아 놓고 감상하는 취미는 없었다. 경험치라도 다르지 않았다. 일이만도 아니고, 30만이 넘는 경험치였다. 이걸 그냥 가지고 있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라 생각했다.

    물론 마음에 걸리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사정 면죄부의 판매 가격은 500 경험이었고, 청동 상점에서 동화 1개로 살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동화 1개를 매매창에 450 경험 안팎으로 올렸다.

    솔직히 좀 비싸긴 한데. 별 수 없으니까. 한 20만 경험은 여기다 쏟아 붓지 뭐. 그럼 한 450개정도 되나?

    생각보다 엄청난 숫자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경험치를 탈탈 터는 것도 좀 내키지 않았다. 그럴 경우 혹시라도 나중에 내게 필요한 장비가 경매장에 나왔을 때 막상 경험치가 없어 못사는 일이 생길 지도 몰랐다.

    상태창을 확인하는 것으로 점검을 끝낸 나는 살짝 갈증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증이 305가 된 건 좋은데. 활력이 문제네. 활력이."

    아무래도 나보다 거의 15레벨 낮은 리즈를 상대 할 때 느낀 내 단점이 너무 강렬했나 보다.

    쉬이 걱정을 떨치지 못하고 있을 때 리아가 조금은 멍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좀 이상한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신경을 끄고 승무원에서 시원한 물을 부탁했다. 금방 돌아온 승무원이 건넨 물잔을 단숨에 비운 나는 여전히 멍한 리아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가끔 애가 멍청해지는 거 같기는 했지만.

    "……오늘은 좀 심한데?"

    정신줄을 거의 놓은 것 같은 리아를 향해 나는 걱정스런 눈빛과 함께 손을 뻗었다. 내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살짝 흔들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흐리멍덩했다. 내 얼굴이 더욱 심각해졌다.

    "리아!"

    "아. 어? 아. 네. 네."

    "왜 그래 갑자기? 너 좀 많이 이상해."

    "아……. 죄송해요. 제가 좀 놀라서."

    "뭐 때문에 그런데? 잠깐만. 아, 괜찮아요."

    내 목소리가 컸는지 승무원이 걱정스런 얼굴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나는 얼른 손을 들어 승무원에게 별일 아니라 말했다. 다행히 승무원은 한 번 더 물어보더니 이내 금세 제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슬쩍 주변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리아에게 물었다.

    "너 혹시, 오래 만에 고향 갔다고 그런 거 아니지?"

    "네? 그런 거라뇨?"

    "약 같은 거 말이야."

    "……아니거든요? 우리나라가 무슨 메스 같은 걸 막 파는 줄 알아요? 기껏해야 위드 같은 건데."

    리아도 주변이 신경 쓰였는지 작은 목소리로 내 말에 답했다. 다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황당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나는 리아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보통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약과 거리가 먼 편이었고, 나도 그런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위드? 잡초?"

    "아뇨. 팟이요. 마리화나요."

    "아. 대마? 근데 진짜 아냐? 방금 너 눈빛 진짜 이상했어. 완전히 맛이 간……."

    "뽕쟁이 같았다고요?"

    "……어."

    내가 살짝 뒷말을 흐리자, 리아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녀의 태도를 보니 확실히 약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하루 종일 나랑 있거나 미야프랑 놀았으니까. 시간도 없었겠네.

    괜한 오해를 푼 나는 피식 웃으며 다시 자리에 누우려고 했다.

    그때 리아의 목소리가 내 멱살을 잡아끌었다.

    "새로운 시스템이 생겼어요. 원 데이 퀘스트에요."

    "일일 임무? 자유 임무랑 비슷한 거야? 아니. 그전에 난 없는데? 그런 말 아예 없었는데?"

    "평민까지만 적용되나 봐요. 자유 임무보다 확실히 가벼운 임무인데, 이걸 해내면 꽤 쏠쏠한 보상이 나와요. 동전이나 소비템 같은 거요."

    "……이거야 말로 역차별이네."

    싱거운 소리가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가뜩이나 반복 퀘스트도 내가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니, 보상이 좋아진 전례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보스가 자꾸 날 엿 먹이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리아도 내 사정을 알고 있다 보니 키득키득 거렸다.

    자연스레 내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웃어? 이빨 보이지?"

    "에이, 왜 그래요? 가진 것도 많은 사람이. 그냥 일용직이라 보면 돼요. 평민까지는 하루 벌어 하루 사니까. 최저 시급을 좀 올려준 꼴이라고 할까?"

    "그 최저 시급. 꽤 부럽네."

    "치. 경험치가 넘쳐흐르면서."

    "아니거든. 나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 거든? 이거 동화로 바꾸면 금방 없어져. 100개만 사도 5만이잖아?"

    내말에 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날 무시하고 자려는 게 아니었다. 살짝 미간을 찌푸리는 걸 보니 나처럼 머리로 보스 앱을 구동하려는 것 같았다.

    물론 기내라서 이러는 건 아니었다. 보스와 관련되는 순간 휴대폰은 휴대폰이 아니라 할 수 있었다. 전원이 꺼진 상태에서도 보스 앱을 켜겠다고 조금만 집중하며 꺼진 휴대폰으로도 보스 앱을 실행할 수 있었다. 당연히 휴대폰 자체는 꺼진 상태에서.

    그럼에도 리아가 이러는 건 조금이라도 강해지고 싶은 그녀의 의지 때문이었다.

    날 따라한다고 강해지는 게 아닌데.

    이런 리아를 말려도 봤지만, 그런다고 들을 리아가 아니었다. 평소 착하고 순해 보이는 그녀였지만, 그녀도 고집이 있었다. 세상에 자존심이 없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잠시 후 리아가 두 눈을 번쩍 뜨며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고영 씨. 업데이트 된 게 또 있어요! 상점! 상점에 들어가 봐요!"

    "야. 목소리 크다. 이러다 사람들 다 깨겠네."

    "아무튼 들어가 봐요! 고영 씨한테는 좋은 일이에요!"

    "아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좀. 좀 조용히 하자."

    계속 재촉하는 리아의 모습에 나는 할 수 없다는 얼굴로 눈을 감았다. 리아와 달리 나는 순식간에 보스 앱을 구동했고, 금세 상점에 접속할 수 있었다.

    이윽고 나는 리아와 같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도 그래? 250이야?"

    "네!"

    "……대박인데?"

    대박이었다.

    일반 상점에서 판매하는 사정 면죄부의 가격이 250 경험으로 변해 있었다. 방금 전까지 500 경험이던 것이 반값으로 떨어졌다. 반면 청동 상점의 물품에는 가격 변화가 없었다.

    "동화 값이 내려가겠네?"

    "아마도요. 그래도 200 이하로 떨어지지는 않을 걸요?"

    "후……. 이거 잠수함 패치 때문에 살 떨려서 살겠냐?"

    "왜요? 고영 씨한테는 잘 된 일이잖아요?"

    "잘된 일은 무슨. 십년감수했을 뿐이지. 자칫 잘못했으면 2배로 바가지 쓸 뻔 했는데."

    오한에 걸린 듯 몸을 부르르 떠는 내 모습에 리아가 또 키득거렸다.

    해맑은 웃음도 잠시 리아가 슬쩍 내게 상체를 기울이더니 이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근데 고영 씨. 나 좀 도와 줄 수 있어요?"

    "응? 뭔데?"

    "그전에 도와준다고 해줘요. 네?"

    "일단 들어보고. 뭔지 모르는데 무작정 도와준다고 할 순 없잖아? 난 실없는 사람이 되긴 싫어."

    "치. 좀 해준다고 하면 어디 덧나나?"

    리아가 뿔난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내게 끼를 부리는 것처럼 다가온 자세였고, 나는 그럴수록 묘한 불안감을 느껴야했다.

    아예 내 귀에 입술을 가져간 리아가 뜨거운 목소리를 내 고막으로 던졌다.

    "잠깐 눈 감고 소식창에 들어가 봐요."

    "도대체 뭔데 그래?"

    점점 불안감이 커지는 걸 느끼며 나는 살짝 눈을 감았다. 걱정스런 느낌과 반대로 호기심도 들었나 보다. 나는 얼른 소식창을 열었다.

    아직 안 왔네?

    내 소식창에는 새 소식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리아가 보낸 메시지가 왔다는 알람이 울렸다.

    나는 얼른 리아가 보낸 쪽지를 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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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일 임무]

    + 희귀한 장소에서 결투를 진행하라.

    + 결투 장소의 희귀한 정도에 따라 추가 보상 지급.

    + 기본 보상 : 동화 2개.

    + 추가 보상 : 최대 동화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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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화장실이 그렇게 넓다는데…….]

    작은 창 안에는 한 장의 사진과 글귀 하나가 적혀 있었다.

    왜 자기 입으로 말을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눈을 뜨며 살짝 상기된 리아를 바라보았다.

    "너 은근히 야하다?"

    리아의 얼굴이 더욱 발갛게 변했다. 말 그대로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 같았다. 정말 부끄러운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게 퍽 귀여웠다. 그럼에도 리아는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녀가 눈빛으로 말했다.

    지금 당장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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