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29화 (12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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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적.

    승자가 결정되는 순간 누구하나 숨을 쉴 수 없었다.

    더 이상 숨을 참을 수 없게 된 그때.

    모두의 입이 열리며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우와아아아……!"

    일거에 폭발한 환호가 두터운 정적을 찢어 버렸다.

    실실한 리즈의 머리를 옆으로 밀어 낸 나는 상체를 일으켰다. 내 작은 행동에 사람들이 더욱 큰 환호를 보였지만, 나는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을 뿐이었다. 침대 아래로 슬쩍 다리만 뻗은 나는 바닥을 뒹굴고 있던 내 속옷을 간신히 엄지발가락에 걸 수 있었다.

    됐어!

    싱크로라이징을 하는 것처럼 다리를 쭉 뻗은 나는 더욱 조심스럽게 다리를 들어 올렸다. 발가락에 걸린 팬티가 관객들의 눈에 들어가며 좀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됐지만 상관없었다. 침대 위로 쭉 뻗은 다리에 걸린 팬티를 얼른 낚아 챈 나는 서둘러 그것을 입었다.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후……."

    팬티를 입고 나서야 침대를 내려오는 내 앞에는 잔뜩 상기된 얼굴의 욜란테가 서 있었다. 내 곁으로 다가온 그녀가 막 자리에서 일어난 내 얼굴 앞에 마이크를 들이 밀었다.

    이 여자. 흥분했네.

    나는 피식 웃으며 욜란테를 보며 그녀의 실수를 일깨워 주었다.

    "질문을 하고 난 다음에 마이크를 넘겨야죠."

    "아!"

    실수를 깨달은 욜란테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다행히 욜란테는 금세 당혹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곤 제법 침착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게 다 여러분들을 웃기려는 제 노력인거 아시죠?"

    "아니요!"

    "꺄하하하!"

    "안 통하네. 칫."

    귀엽게 상황을 모면한 욜란테가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앞에 놓고 날 바라보았다.

    "자, 그럼 인터뷰 좀 할게요."

    그 사이 진행 요원이 카메라 밖에서 가져다 준 옷을 챙겨 입은 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묘한 아쉬움을 담은 눈빛을 잠시 날 바라만 보던 욜란테가 눈을 한 번 깜빡이더니 다시 맑은 눈빛을 뿌렸다.

    "일단 리즈 선수는 지금 잠시 쉬고 있답니다."

    "나도 눈이 있습니다."

    "어머? 시청자 여러분들께 말씀드린 건데요?"

    "그건 몰랐네요."

    가벼운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니 한결 분위기가 편해진 느낌이 들었다.

    하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짝 동여맨 허리띠 같았으니까.

    노련하게 분위기를 풀어 낸 욜란테가 드디어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것부터 물어 봐야겠어요. 미스터 바나나. 아니, 미스터 어썸. 약빨았나요?"

    순간 내 어처구니가 빠졌다.

    어이없는 얼굴로 욜란테를 빤히 바라봤지만 그녀는 당당하다는 얼굴이었다.

    "안 그래요, 여러분? 이 남자. 약빤 게 분명해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어떻게 랭커를 저 지경으로 만들 수 있겠어요? 그 우락부락한 머신 선수를 처발. 아니, 한방에 끝낸 여장부가 리즈 선수인데."

    "그래요……!"

    아주 관중들을 쥐락펴락 하네.

    상황에 따라 과한 농담일 수도 있었지만 크게 기분이 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인 뒤 가볍게 입을 열었다.

    "약이라. 유명한 파란 알약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 지 알려지지 않았나요?"

    "아, 맞다. 활력이 깎이죠?"

    "정력도 깎입니다. 그리고 약 먹는다고 강해지면, 이 세상에 약한 남자는 없겠네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관중들이 폭소했다. 다들 눈치가 있다 보니 약한 남자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욜란테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은근히 뒤끝이 있네요? 미스터 어썸. 머신 선수가 그렇게 싫었어요?"

    "말했잖아요. 남자보다 여자가 좋다고. 아,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이야 말로 약 빨았겠네요. 스테로이드 같은 거."

    관중들이 또 다시 자지러졌다.

    욜란테는 얼른 입술을 깨물었다. 괜히 질문을 하려고 입을 열면 관중들처럼 폭소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억지로 웃음을 참는 욜란테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뿌듯했다.

    이 기회에 이민 올까? 코드가 좀 맞는 거 같은데.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욜란테가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후아……. 오늘 정말 진행하기 힘드네요."

    "그래요? 난 잘한다고 느꼈는데."

    "잘하긴요. 엉망이었죠. 아무튼 미스터 어썸. 혹시 레벨을 공개해 줄 수 있나요?"

    "어제는 랭커인지 묻더니 오늘은 레벨입니까?"

    "네. 가장 궁금한 게 그거니까요. 도대체 레벨이 몇이기에 여자를 그렇게 죽여 버릴 수 있죠? 잔인하게!"

    "잔인한 건 아닌데……."

    내가 나름 변명을 해 보았지만 통할 리가 없었다. 흔히 평타라고 일컫는 내 공격 방식 때문이었다.

    평타는 말 그대로 평타인 게 정설이었다.

    욜란테가 이런 정설을 고대로 자기 입으로 옮기며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날 궁지로 몰았다.

    "평타잖아요? 보통은. 아니, 원래 평타는 공격 기술보다 데미지가 낮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죠. 공격 기술은 연속기가 아닌 이상 보통 2배 이상의 데미지를 주니까요. 한방 한방이 강력하죠."

    "네. 역시 잘 아시네요. 그리고 평타로 득을 보려면 체력을 포기 해야 하잖아요? 부족한 파괴력을 메꾸려면 타격횟수를 올려야하니까요. 그쵸?"

    "나보다 더 잘 아시네요. 맞습니다. 그래서 체력이 고민입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요."

    고개를 주억거리며 욜란테의 말에 동의했다. 사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은 모두 맞았으니까.

    이런 내 모습과 달리 욜란테는 고개를 저었다.

    "에이, 아닌데요? 리즈 선수는 머신 선수를 한방에 보낼 정도로 막강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증명했어요. 그런데 그런 리즈 선수의 필살기까지 버터 냈잖아요? 그런데 활력이 부족하다고요?"

    "그게 필살기였어요?"

    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하자, 욜란테가 더 크게 고개를 저었다.

    "……하아."

    "우우우……!"

    이거 내가 무슨 역적인 거 같잖아?

    리즈는 자신의 기술을 꽤 상세하게 공개했다. 물론 머신과 경기 전 녹화한 인터뷰 때의 일이었다. 그녀의 인터뷰는 내가 대기실에 있을 때 흘러나온 상태였다.

    이러니 내가 모르는 게 당연했다.

    뒤늦게 욜란테에게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피식 웃으며 당당히 말했다.

    "에이, 난 또 무슨 큰 실수 한 줄 알았네. 그냥 욕을 해요. 야유를 하지 말고."

    "우우우! 우우우우!"

    "그냥 욕을 하라니까."

    굳이 관객들을 도발한 이유가 있었다. 두꺼운 이 야유는 다름 아닌 남자들의 질투였다. 물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넘어가는 것도 좋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남들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은.

    그런 심적 변화가 있었기에 이렇게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리아가 매달려도 나올 리가 없었다. 방송처럼 큰 광고 효과가 없더라도 경매는 할 수 있었으니까.

    뭐, 방송 효과 덕분에 경매가가 올라간 건 있지만. 그거 얼마나 한다고.

    게다가 내가 남자들을 도발하니 여자들이 나를 위해 환호했다. 나도 남자다보니 여자들의 환호가 싫지 않았다.

    야유와 환호를 동시에 즐기는 내 모습에 욜란테가 울상을 지었다.

    "이 상황 좀 어떻게 해줘요. 이러다 나도 시말서를 쓰겠어요."

    "자자. 계속 이렇게 시끄러우면 인터뷰고 뭐고 그냥 갑니다?"

    그 순간 방청석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여자들은 내 이야기 자체에 관심이 컸고, 남자들은 내 조언에 목이 말랐다.

    이래서 조련 조련 하는 구나.

    인기 있는 아이돌의 느낌을 잠시 느낀 나는 고개를 돌려 놀란 얼굴의 욜란테를 바라보며 얼른 인터뷰를 진행하라 손짓했다.

    욜란테가 긴장감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모습에 어이없는 실소를 흘리더니 이내 공격적으로 질문을 해왔다.

    "자. 이렇게 자신만만한 분께서 자기 레벨로 밝히지 못하는 소인배처럼 행동하지는 않겠죠?"

    "나 소인배 맞습니다. 요즘 대인배처럼 행동하면 호구라고 욕먹어요. 왜 욕을 하는지 이해는 안 되지만."

    "……진짜 이럴 거예요? 시말서 쓰면 진짜 가만 안 있을 거예요!"

    "시말서는 무슨. 프리랜서가 무슨 시말섭니까?"

    "나 계약했거든요? 전속 계약! 이제 보스 챔피언쉽은 내가 책임지고 사회를 맡을 거거든요?"

    "아, 그래요? 축하해요. 근데 나중에 왕중왕전 한다고 날 부르진 말아줘요. 애들 모아 놓은데 위험한 짐승을 풀어 놓으면 그거 아동학대입니다."

    "하아……."

    나도 좀 말빨이 느는 것 같았다. 이래서 사람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했다. 문득 나도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소소한 감상에 빠져있을 때 욜란테는 점점 맨붕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있었다.

    다행히 이어진 내 대답에 완전히 정신줄을 놓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알았어요. 공개한다고 뭐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어머? 맞아요. 잘 생각했어요. 그래서 레벨이 몇이에요?"

    "근데 그냥하면 재미없잖아요?"

    아. 나란 남자. 왜 이렇게 짓궂을까.

    점점 내 성격이 삐뚤어지는 것 같았다.

    갑자기 든 생각이었지만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나는 담담히 욜란테에게 한 가지 게임을 제안했다.

    "3번. 한국에 있는 게임이에요. 3번의 기회를 줄게요. 당신이 숫자를 읊을."

    "제가 숫자를 부르면요? 어떻게 하는데요?"

    "그럼 내가 그 숫자보다 레벨이 높은지, 낮은지 알려줄게요. 기회는 딱 3번이에요. MC의 역량을 한 번 봅시다!"

    욜란테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로서는 딱히 이득이 있는 제안이라 할 수 없었다. 차라리 내가 툭 던지듯 레벨을 밝히는 게 그녀로서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였다.

    반면 관객들은 달랐다. 그들은 작은 게임에 흥미를 보였다.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분위기를 끌어올리는데 게임만큼 손쉬운 게 또 없었다.

    다행히 욜란테는 금방 고개를 끄덕이며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녀가 대담하게 결정을 내린 건 아니었다. 내 눈에는 실시간으로 시청자 반응을 확인하던 PD가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좋아요! 3번이라고 했죠? 내가 꼭 그 안에 당신 레벨을 맞출 거예요!"

    "오케이. 맞추면 내가 오늘 하루 해달라는 거 다 해주겠습니다."

    "오오오!"

    원래 게임은 내기가 더해져야 제 맛이지.

    대놓고 불을 지핀 내 말에 욜란테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녀가 은근한 눈빛을 뿌리며 날 흘겨보았다.

    "정말인가요? 모든 걸 다 해줘요?"

    "물론입니다. 살면서 약속을 어긴 적은 없으니. 믿어도 됩니다."

    "내가 오늘 하루 같이 자자고 해도?"

    "와아아아!"

    이거 참. 오늘 완전 도발의 연속이네.

    어이없는 욜란테의 말에 내가 헛웃음을 흘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내 눈에서 입을 떼지 않고 있었다. 얼른 닥치고 대답하라는 눈빛이었다.

    "저기, 욜란테 씨? 당신 결혼 했잖아요? 남편이 방송 보고 있을 수도 있단 생각 안 해요?"

    내 살짝 힐난이 물어나는 대답에 욜란테가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이윽고 욜란테의 매혹적인 입술이 벌어졌다.

    "여보. 미안해. 나도 여잔 걸? 그냥 사냥한다고 생각해. 나도 당신이 사냥하는 거 터치 안하잖아? 그래 줄 거지?"

    ……미치겠네.

    욜란테의 말은 겉으로 보기에 장난스러운 진행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았다.

    지금 욜란테는 백퍼센트 진심이었다. 나와 한 번 자고 싶어 하는 게 고스란히 피부로 느껴졌다.

    아, 이건 아닌데.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 중 하나가 바로 임자 있는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자였다. 같은 남자로서 쪽팔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나는 남자들 사이에 있는 불문율을 어기는 그런 족속들을 혐오했다.

    불륜은 불륜이지. 로맨스가 아냐.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나만의 도덕관념을 이기지 못하고 약속을 철회하려고 할 때였다.

    "40!"

    욜란테가 선수를 쳤다.

    외통수에 걸린 나는 혓바닥이 까끌까끌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말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겨우 어썸 바나나라는 상품의 가치를 높여 놨는데, 이제 와서 그걸 모두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나름의 계획을 위해 나는 모험을 하기로 결정했다.

    "업."

    "40보다 크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40을 초과한다는 거죠? 이상이 아니라."

    "당연합니다. 이상이 있으면 게임 자체가 말이 안 되죠. 물론 가능은 하지만, 너무 불리한 게임이 되니까. 게임은 공정해야죠."

    내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욜란테가 이내 더욱 반짝이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두 번 남은 기회 중 하나를 사용했다.

    "45!"

    "업."

    "와……."

    짤막한 내 대답에 방청석에서 탄성과 탄석이 터졌다. 방금 내 대답으로 내 레벨이 46레벨 이상이라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대략적으로 현재 플레이어들의 평균 레벨이 20 언저리인 걸 감안하면 진짜 말도 안 되는 레벨이었다.

    모두가 내 레벨에 놀랐지만, 모두가 놀란 건 아니었다.

    한 사람은 놀라지 않고 냉정을 유지했다.

    바로 욜란테였다.

    이거 꽤 긴장되네.

    점점 좁혀오는 포위망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갔다. 진짜 이러다가 내 레벨을 맞추면 사달이 나는 거였다. 부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길 바라고 또 바랐다.

    환호성이 잦아들며 긴장감 넘치는 정적이 스튜디오 안을 가득 매웠을 때였다.

    굳게 닫혀 있던 욜란테의 입이 열렸다.

    마지막 기회를 사용한 욜란테의 목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가슴이 따끔할 정도로 그들의 시선은 뜨거웠다. 정말 뜨거웠지만…….

    내 가슴은 더 없이 시원했다.

    "다운."

    욜란테가 울상을 지었다.

    안타까운 탄식이 쉬이 멈추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전 뽕빨에 재능이 없다는 걸.

    예. 맞아요.

    이 글은 Sex Game Fantasy입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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