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26화 (12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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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잉, 지잉.

    정적에 휩싸인 무대에는 전기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다행히 정신을 차린 사회자가 승자를 선언했다.

    재미있는 건 사회자가 여자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바로 어제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욜란테였다. NPO BOSS는 아예 그녀를 초창기에 밀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스, 승자는 딜도의 여왕입니다!"

    결투의 승자가 가려지자 가슴을 드러내는 페티시 룩을 입고 있는 여자가 자신의 애병을 뽑아 들고 높이 들어 올렸다. 승자의 포효를 내지르는 그녀의 모습에 뒤늦게 방청객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냈지만, 왠지 기운 없는 환호였다.

    기운이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거야 원. 무서워서 보겠나."

    "첫 경기부터 너무 끔찍하군. 차라리 유혈이 낭자하는 격투 경기를 보는 게 낫겠어."

    처음으로 라이언 할배와 마음이 통했다. 남자라면 누구나 소름 돋을 만한 상황이었다. 2차 전직 기술 중에 기기를 제작하는 기술이 있어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쓰일 줄은 꿈에도 상상치 못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쓰는 줄 알았는데. 반대인 줄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당당하게 인터뷰를 끝내고 무대 뒤로 사라지는 여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레벨업에 더 신경 써야겠어. 저런 여자랑 만났을 때 우선 공격권을 놓치면……. 저렇게 되겠지."

    "동감이네. 분발해야겠군."

    나와 라이언 할배가 사이좋게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 실신한 남자가 의료진에 부축을 받은 채 부대를 내려갔다. 진행 요원들은 그 사이 침대 매트리스와 시트를 아예 새것으로 교체하는 깔끔함을 보였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워낙 첫 번째 경기가 일찍 끝난 탓에 다름 경기를 바로 진행할 수 없었다.

    욜란테는 놀람을 빠르게 추스르더니 이내 뒤편에 설치된 대형 화면을 가리키며 시간을 끌었다.

    "워낙 빨리 끝난 경기네요. 제대로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하이라이트를 준비했습니다. 다 함께 보실까요?"

    안 돼! 틀지 마!

    내 소리 없는 비명은 결코 욜란테에게 닿을 수 없었다.

    이윽고 대형 화면에 방금 전 벌어진 참사가 다시 한 번 나왔다.

    "어우!"

    "으으!"

    그 순간 또 다시 억눌린 신음이 터진 건 당연했다. 그만큼 끔찍한 장면이었다. 보기 좋게 여자를 도발했던 남자의 최후는 너무 강렬했다.

    욜란테가 살짝 인상을 쓰더니 얼른 표정을 고치고 나름 중계를 이어갔다.

    "방금 들어온 소식인데, 딜도의 여왕은 2차 직업 전직자라고 합니다. 게다가 그 직접은 바로 딜도 장인! 세상에……. 참 엄청난 직업이네요. 그렇죠?"

    평정을 되찾은 욜란테는 또 다시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다.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 그녀는 자잘한 비하인드 이야기를 풀며 더욱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단지 남자들은 동의하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보통 남자라면 자신의 엉덩이에 굵고 탐스러운 물건이 들어오는 걸 바라지 않을 테니까.

    다행히 끔찍한 하이라이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곧 시작할 경기의 대전자였다. 다행이 두 남녀의 모습은 이전 대전자보다 한결 더 평범해 보였다.

    나는 대형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프리뷰 영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국에서 대전을 잡을 때 꽤 신경을 썼나보네."

    "비키니와 삼각인가?"

    "그러네요. 그러고 보니 아까 실려 간 남자도 SM 쪽이라고 했죠?"

    "정확하게는 M이었네. 그런데도 한 방에 가다니……. 너무하군."

    씁쓸한 라이언 할배의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조용히 항문에 딜도가 꼽힌 남자에게 애도를 표하고 나서야 나와 할배 사이의 대화가 이어졌다.

    "아무튼 이번 경기는 좀 길어야겠네요. 방송사 입장에서는."

    "그게 말처럼 쉬운가. 원래 섹스 배틀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짧게 할 수 있지 않은가? 오히려 랭커라면 전투를 빨리 끝내는 것에 일가견이 있어야겠지."

    "그쵸. 그래야 한 마리라도 더 사냥할 수 있으니까."

    "그걸 알기에 방송사에서도 무리하면서까지 출연자를 추가로 섭외한 것 같은데.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군."

    확실히 늙은 할배라 그런지 시야가 넓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막 입장하는 두 대전자를 바라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번째 경기는 좀 지루했다.

    "유두만 빨다가 끝났네요. 그것도 두 사람이 똑같이."

    리아의 평가대로 지루한 애무의 연속이었다. 남자와 여자 모두 서로의 몸을 애무만 하다 끝났다. 남자는 여자의 유두를 집요하게 노렸고, 여자도 남자의 유두를 집요하게 노렸다.

    결국 레벨이 더 높았던 남자가 승리했다. 헐떡이며 인터뷰를 하는 남자의 모습을 통해 막상막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찔끔찔끔 데미지를 줬나 보네. 둘 다 체력에 많이 투자해서 기본 스킬 데미지로 싸운 거고. 똑같은 타입이 맞붙으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덕분에 잘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방송국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죠. 다음 경기만 화끈하다면요."

    "그럼 다행이네. 다음 경기는 화끈할 테니까."

    내 단호한 대답에 라이언 할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어제부터 느꼈는데. 자네는 두 사람의 능력이 보이기라도 하나?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지?"

    "원래 똥개는 무서울수록 더 크게 짓는 법이니까요."

    "허! 그것참, 현답이군. 하지만 그냥 성격이 저 모양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럼 내가 틀린 거죠."

    내 담담한 대답에 라이언 할배가 언뜻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잠시 라이언 할배가 부드러운 입매를 보이며 물었다. 흥미를 느낀 목소리였다.

    "그뿐인가?"

    "그뿐이죠."

    "그렇군."

    왜 저러지?

    라이언 할배가 내 대답에 활짝 웃는 게 이상했지만, 때마침 들린 욜란테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망의 빅 매치가 곧 시작됩니다! 하룻밤 사이에 난리도 아니었죠? 도박사들은 머신 씨에게 조금 더 가능성을 본 모양인데요. 리즈 씨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볼까요?"

    "세상엔 장님이 많다는 갈 세삼 알게 됐어요."

    "어머? 유명한 도박사들이 모두 눈뜬장님이라는 건가요?"

    "네. 차라리 쓸모없는 그 눈을 떼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건 어때요?"

    캬. 저 여자 화끈하네.

    남자들의 표정이 모두 나와 같았다.

    리즈의 혀는 정말 날카로웠다.

    욜란테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번에는 그녀의 왼편에 서 있는 머신을 향해 마이크를 들이 밀었다.

    "리즈 씨가 이렇게 생각한다는데. 머신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자야 원래 말만 앞서지."

    "우우우!"

    "와아아……!"

    머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야유와 환호가 일어났다.

    욜란테도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금방 표정을 수습하고 다시 한 번 머신에게 물었다.

    "어머? 그러시다가 지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만큼 이길 자신이 있다는 말로 생각하면 되나요?"

    "물론! 저런 입만 산 여자에게 질 정도로 난 약하지 않아!"

    "우우우……!"

    처음에는 야유와 환호가 비슷했지만, 이번에는 야유가 확실히 더 컸다.

    욜란테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지금 이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갈 생각이었다. 그녀가 정면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그럼 두 선수 모두 무대 위로 올라가 주세요! 말이 필요 없죠? 바로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이번에는 환호가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다.

    한 번 터진 환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리즈의 모델 같은 알몸이 드러나자 환호는 더욱 커졌다. 머신의 마초 같은 알몸이 드러나자 간간히 비명소리까지 환호에 더해졌다.

    내 옆에 앉은 라이언 할배가 허탈한 목소리로 두 선수의 몸을 보고 느낀 점을 내뱉었다.

    "멋지군. 그리고 부럽군."

    "리즈는 가슴이 좀 빈약한 걸 제외하면 진짜 늘씬한 몸매인데. 저건 좀……."

    "왜? 저런 몸이 싫은가?"

    "너무 둔해 보이잖아요? 쓸데없이 근육을 키워봤자. 무슨 소용이에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뭐, 그냥 재수 없어서 그런 것도 있어요. 여자였자면 질질 싸게 만들었겠지만. 운 좋게도 남자니까. 그냥 속으로 삭혀야죠."

    "하하하! 그런가? 그렇군! 아무튼 보기 좋지 않나? 인간의 육체란 말일세. 젊음이 그대로 느껴져서 참 좋군."

    라이언 할배의 말처럼 리즈와 머신의 몸은 역동적인 느낌이 들었다. 앞선 네 명의 선수와 달리 완전히 알몸이라 그런 것도 있었다.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두 사람의 몸이 확실히 멋지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관객들의 눈이 모두 아름다운 남녀의 나체에 꽂혔을 때였다.

    머신의 굵직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스튜디오를 울렸다.

    "레벨이 다가 아니란 걸 보여주마!"

    열심히 떠드네 구팔이륙.

    리즈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침대에 벌러덩 누운 머신을 내려다보며 조소를 머금었다.

    "황송하게 여겨. 너 따위를 상대해주는 걸."

    오. 설득력 있는데?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리즈의 말대로 그녀는 굳이 상대하지 않아도 될 머신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머신보다 무려 9,822나 높은 순위를 가지고 있었다.

    리즈의 오만한 말이 끝났을 때 사위는 조용했다. 묘한 긴장감이 무대 위 뿐만 아니라 스튜디오 전역에 퍼져 있었다. 방청객들뿐만 아니라 VIP에 있는 이들도 긴장된 얼굴로 랭커들의 결투를 지켜보았다.

    리아도 긴장됐는지 내 손을 꽉 잡은 채 마른침을 삼켰다.

    나는 피식 웃으며 리아의 머리를 잡아당기고는 그녀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그렇게 긴장하지 마. 조금 있으면 괜히 억울할 테니까. 어떤 면에서 첫 경기와 비슷할 거야."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쉿! 시작한다."

    동그랗게 뜬 눈으로 되묻는 리아의 입을 막은 채 나는 무대 위로 고개를 돌렸다. 리즈가 막 공격을 시작하려는 게 보였다. 그녀의 공격은 가슴도, 엉덩이도, 음부도 아니었다.

    바로 발이었다.

    리즈가 슬쩍 무릎을 굽히며 발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리즈의 입가에 살짝 비틀린 미소가 맺혔다. 그녀의 미소가 가학성을 보였다. 그것은 이어진 공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최대한 높이 무릎을 굽힌 리즈가 단숨에 발을 뻗었다. 그녀의 발바닥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머신의 굵은 하물이었다.

    "모울레 봄바!"

    네덜란드어를 모르지만 대충 기술명을 알 것 같았다.

    리즈는 순간 춘리로 변했다. 그녀는 한쪽 발로 쉴 새 없이 머신의 하물을 밟고 또 밟았다. 그 모습이 마치 방아로 곡식을 빻는 것처럼 느껴졌다.

    야무진 발바닥 폭격에 그대로 노출 된 머신이 거친 숨을 뱉더니 결국 신음을 토하기 시작했다.

    "……커억! 컥! 윽! 으드득! 으헉!"

    이빨이 으스러질 정도로 깨물었지만 딱히 소용이 없어 보였다.

    머신의 눈동자가 점점 풀리는 모습이 대형 화면을 통해 흘러나오자 관객들은 낮은 탄식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다들 이 경기의 결과를 짐작한 모양이었다.

    나라도 다르지 않았다.

    "끝났네."

    "……네. 끝났네요. 정말 일방적으로."

    담담한 내 말에 허탈한 목소리로 리즈가 답했을 때였다.

    결국 머신이 패배를 인정하는 흰 수건을 날렸다.

    찌익! 찍!

    "어우!"

    "와아아!"

    머신의 하물이 정액을 토하자 관객들이 신음과 환호를 터트렸다. 확실히 성별에 따라 극명하게 반응이 갈렸다.

    어쨌든 머신의 하물에서 뿜어져 나온 정액은 슬로우 비디오처럼 날아 리즈의 가슴과 얼굴에 묻었다.

    리즈는 눈썹하나 찡그리지 않았다. 그저 무덤덤한 얼굴로 침대에서 내려와 카메라 앞에 섰다. 그러더니 자신의 턱에 묻은 머신의 정액을 검지로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소스를 맛보는 셰프처럼 혀로 머신의 정액을 맛본 리즈의 입은 금세 열렸다.

    "비리비리한 맛. 별로네요."

    "우와아아아……!"

    더 이상 반응이 갈리지 않았다.

    리즈의 엄청난 한 마디에 스튜디오가 떠나갈 것처럼 울렸다. VIP석에 앉은 이들이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뒤늦게 욜란테가 놀란 얼굴을 하고 있다가 리즈에게 다가서며 마이크를 들이 밀었다.

    "와! 정말 끝내줬어요, 리즈! 정말 멋지네요. 아, 이런. 일단 이걸로 좀 닦아요. 피 대신 다른 게 묻어 있네요."

    능청스런 욜란테의 진행에 다들 더욱 큰 함성을 질렀다.

    리즈는 욜란테가 건네는 물수건을 받아 들곤 자신의 몸을 대충 닦았다. 그 사이 진행 요원이 그녀에게 가운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진행 요원에게 물수건을 건네며 가운을 받아 들고 그대로 입었다.

    욜란테가 리즈를 향해 마이크를 다시 밀어 넣으며 소감을 물었다.

    "일단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겠네요. 아무리 그래도 같은 랭커잖아요? 랭커 사이에도 이렇게 큰 격차가 있나요?"

    "당연해요. 랭커라도 다 같은 랭커가 아니에요."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  "어렵지 않아요. 나는 더 이상 평민이 아니에요."

    "어머! 그럼 귀족 작위를 얻은 건가요? 귀족으로 승급하신 게 맞나요?"

    욜란테의 호들갑스런 물음에 리즈가 씽긋 웃었다. 전혀 차갑지 않은 그녀의 미소로 충분했다. 그녀의 계급은 귀족이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스스로 귀족임을 밝힌 사람이 리즈가 처음이라 순간 스튜디오 안이 정적에 빠져들었다.

    나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랭킹 4위라서 한가락 하는 줄 알았지만. 여기까지 따라왔을 줄이야.

    은연 중 풀어져 있던 마음가짐이 단단히 조여졌다.

    그때 내 경각심을 더욱 일깨우는 일이 벌어졌다.

    리즈가 날 바라보며 더 없이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어썸 바나나. 사실 난 당신을 만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머저리랑 엮이고 말았네요. 그래서 말인데. 나와 한 번 겨뤄 볼 생각이 있나요?"

    차분하고 부드러운 말이었지만, 이것은 제안 따위가 아니었다.

    아주 발칙한 도발이었다.

    ========== 작품 후기 ==========

    오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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