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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ss-122화 (122/200)

<-- Senior Trip -->

다행히 리아의 삐침은 오래가지 않았다.

금세 감정을 추스른 리아가 얼굴을 붉혔다. 방금 전 행동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손으로 부채질을 하던 그녀가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고영 씨 레벨이 몇이에요? 오늘 한 방에 33만5천을 벌었잖아요? 어? 세상에! 맙소사!"

오늘 경매 결과를 생각하며 말을 잇던 리아의 얼굴에 놀람이 드러났다. 그 놀람은 곧 경악으로 변했다. 그녀가 허탈한 얼굴로 날 바라보며 온몸으로 부럽다는 기세를 뿌렸다.

반면 내 입에서는 깊은 한숨밖에 흘러나오지 않았다. 콧잔등을 잔뜩 찡그린 채로.

"……하아."

조금 날카로운 내 반응에 가볍게 물었던 리아가 놀라 흠칫했다.

괜히 리아를 놀라게 한 것 같아 나는 서둘러 손을 저으며 말을 이었다.

"에효. 하나 올랐다. 하나. 49렙이야, 이제."

"네? 에이, 장난하지 말고요. 말이 안 되잖아요? 갑자기 필경이 그렇게 늘어난다는 걸 저보고 믿으라고요?"

'  "필경이 늘어난 게 아니라. 렙제에 걸렸어."

"아! 계급 제한이요?"

"어."

내 짤막한 대답에 리아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잠시 말문이 막힌 리아를 대신해 담담히 내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때마다 그녀의 얼굴에 놀람이 덧씌워졌다. 참 표정이 솔직한 그녀다운 반응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내 설명을 들으며 다양한 감정을 표출했던 리아의 얼굴에 황당함이 마지막으로 맺혔다.

"진짜 대단하네요. 비꼬는 거 아니에요. 진짜……. 진짜 대단하네요."

"뭐가 대단한데?"

"뭐긴요. 고영 씨를 말하는 거죠. 언제나 보스가 판단한 것 이상을 보여주잖아요?"

"응? 무슨 말이야, 그게?"

리아의 감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차마 대놓고 무슨 개소리냐고 묻지는 못했지만, 인상을 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표정을 읽은 리아가 작게 웃더니 이내 반짝이는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렇잖아요. 지금까지 고영 씨는 보스가 이정도면 되겠지. 하고 해 놓은 걸 계속 앞서갔잖아요. 검은 채찍을 사냥할 때나 그나마 보스의 안배 안에 있었지. 그 뒤로는 계속 벽에 막혔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

리아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그녀의 말처럼 나는 항상 벽을 마주했다. 생각해보면 벽을 마주했다는 사실 자체가 보스의 예상을 벗어났다는 걸 의미했다. 패치 전에 새로운 콘텐츠를 즐기는 건 불가능하니까.

나는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아직 서비스를 안 해주는데 내가 어쩔 거야."

"그렇죠. 아무튼 왕족 승급 퀘스트는 어떻게 돼요?"

"그게 좀 애매해. 한 벌 볼래?"

내 물음에 리아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내가 보낸 퀘스트 스샷을 확인하는 순간 리아의 얼굴이 나와 비슷하게 변했다. 그녀도 좀처럼 이해가 안가는 모양이었다. 수수깨끼 같은 퀘스트 설명은 고운 그녀의 이마에 골까지 파이게 만들었다.

한참을 혼자 고민하던 리아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음. 저도 모르겠네요. 일단 왕족 몽마를 사냥하라는 거 같기는 한데. 그것 말고는 모르겠어요. 감조차 못 잡겠는데요?"

"나도 마찬가지야. 아무튼 왕족 몽마가 나오면 바로 알려줘. 내가 퀘스트를 받은 이상 서둘러 패치를 하겠지. 지금까지 그랬듯이."

"어? 진짜 그럴듯한데요?"

이번에는 리아가 내 말에 토끼눈을 떠야했다.

나는 귀여운 표정을 짓는 리아를 뒤로하고 맥주병을 집어 들었다. 너무 떠들었더니 목이 좀 말랐다. 이미 미지근해진지 오래였지만 갈증을 푸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후……. 근데 넌 아무렇지 않아?"

"네? 뭐가요?"

"보통 눈앞에 엄청난 보물을 얻은 사람이 있으면 좀 욕심이 나지 않나? 어차피 쓸데없는 경험치를 나눠달라고 할 법도 하잖아? 근데 넌 그런 쪽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라서. 진짜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괜히 모른척하면서 덫을 놓는지. 궁금하다는 거예요?"

리아가 내 장황한 말을 야무지게 잡아서 딱 잘라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궁금했다. 리아가 내게 바라는 게 아무것도 없는지.

리아가 아무런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로 아무런 말없이 날 바라보았다. 한동안 날 바라보던 리아가 이내 눈을 깜빡이더니 평소의 눈빛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눈매가 살짝 휘며 호선을 그렸다.

"솔직히 욕심은 나요. 하지만 남의 돈에 욕심을 낼 이유가 없잖아요? 그리고……."

"그리고?"

"전에 고영 씨가 직접 그랬잖아요. 단순히 레벨만 높아봤자 소용이 없다고. 중요한 건 숙련도라고. 보스는 숙련도와 업적 싸움이라고."

리아의 말대로 예전에 지나가듯 해주었던 조언이 맞았다.

나야 한 번 해주고 까먹었지만, 리아는 가슴에 아로새긴 모양이었다.

실제로 나는 보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숙련도와 업적이라 생각했다. 몽마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참가자들에게 풀리는 경험치가 점점 늘어나는 것과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참가자들의 레벨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만렙이 된다면 스탯이나 스킬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중요는 하겠지만 개성이 되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특히 강함이 차이를 결정짓는 요소는 더욱 더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차별성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건 정공법밖에 없는 기술의 숙련도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기술의 숙련도는 어찌할 수 없어 보였다. 시간이 흐르면 그 차이가 벽을 만들 것 같았다.

나도 숙련도가 좀 문제는 문제였다. 워낙 막강한 데미지로 몽마를 손쉽게 사냥하다보니 기술 숙련도는 여전히 낮았다. 게다가 개성을 나타낼 고유 기술의 숙련도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괜히 입안이 씁쓸해졌다.

"맞지. 나도 숙련도는 올리는 게 어려우니까. 내가 이정도인데 돈으로 경험치 사서 레벨 올린 사람들은 오죽할까?"

"근데요, 고영 씨."

"그냥 물어 봐. 괜히 낯간지럽게 이름 부르지 말고."

"치. 근데 고영 씨는 누구나 금방 만렙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지."

날 흘겨보는 리아를 향해 난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리아는 내 생각과 다른 얼굴이었다.

"글쎄요. 전 생각이 좀 달라요. 30레벨에 접어든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그때 정체기가 온대요. 물약을 먹지 않으면 사냥하기 힘들고. 둘이 사냥해서 얻는 경험치는 너무 적고. 일종의 딜레마라고 해야 하나?"

이건 금시초문이었다.

내가 부연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내자 리아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렙따 당하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설마 강화제를 사서 무기에 바르고?"

"네. 그동안 구매를 망설이던 장비를 사거나, 강화제를 사거나 하는 방식으로 레벨을 떨어트리고 다시 레벨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한 번 지나왔던 길은 더 쉬우니까요. 게다가 기술 숙련도를 올리는 걸 보면 그런 방법도 나쁘다 할 수 없고요."

"그래서 하고자하는 말이 뭐야?"

현재 상황이 어떤지는 알았다. 다만 리아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자연스레 내 목소리 톤이 좀 높아졌다.

리아는 잠시 숨을 가다듬더니 이내 담담히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아무튼 고영 씨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런 일은 꽤 나중이라고 생각해요. 아직도 1단계 허수마비를 사냥한 사람이 없잖아요? 솔직히 고영 씨를 보면 좀 재수 없어요."

"……갑자기 왜 그런 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건데?"

난데없는 힐난에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리아를 바라보았다.

리아는 내 눈빛을 피하지 않은 채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그동안 쌓인 감정을 이번 기회에 풀어내려는 기세였다.

"금수저가 흙수저 생활을 알까요?"

"당연히 모르지. 근데 그건 왜?"

"그렇죠. 근데 제가 볼 땐 고영 씨는 금수저에요. 보스에 한해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리아가 하고자하는 말은 간단했다.

당신은 보통 참가자가 얼마나 힘들게 사냥하는지 몰라!

반박하기 어려웠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했다.

나는 일반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비정상적인 존재가 바로 나라는 사람이었다.

"고영 씨는 사냥할 때 물약을 쓴 적이 거의 없죠? 다른 사람들은 아니에요. 그들은 쥐똥만한 경험치를 얻자고 물약을 마구잡이로 먹어요. 레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효율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고요. 그래서 더 강해지려고 렙따를 강행하는 거예요."

이어진 리아의 부연 설명에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몽마가 주는 경험치가 레벨이 높아질수록 높아지지 않다보니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일이란 걸 난 모르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기술의 숙련도와 업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 게임의 끝은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숙련도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

"저도 힐난하려고 한 말은 아니에요. 그냥 그렇다고요. 지금 상황이. 그저 고영 씨가 평소에 그렇게 욕하던 국회의원들처럼 행동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에요."

"쩝……."

리아는 힐난하려고 한 게 아니라고 했지만, 이건 분명 힐난을 넘어 비난하는 게 맞았다. 그녀도 사람이었고, 내 태도가 좀 재수 없었나 보다.

입맛을 다신 나는 표정을 풀고 리아를 향해 담담히 내 실수를 인정했다.

"진짜 야무지게 찌르네."

"그래서 아팠어요?"

"좀 많이 아팠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어. 재수 없게 행동하지는 않을 게. 나도 뭐, 내가 잘난 거 아니까. 잘난 만큼 잘난 척을 하는 게 더 낫다는 말이지?"

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싱긋 웃어 보였다. 대답은 그걸로 충분했다.

오히려 다행이네. 이렇게나마 쌓인 감정을 풀어서.

인간관계란 건 어려웠다. 혼자 지낸 시간이 많은 나는 더욱 그랬다.

다행히 리아는 마음에 안 드는 걸 끝까지 참지 않았다. 만약 꾹 참다가 마지막에 터트렸다면 서로에게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 나와 리아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게 됐을지도 몰랐다.

별 거 아닌 사소한 일이라도 쌓이고 또 쌓이면 심각해지는 법이었다.

어쨌든 이번 기회에 그동안 쌓인 감정을 털어낸 나와 리아의 얼굴은 한결 개운해 보였다.

다행이네. 정말.

리아의 속마음을 알게 된 게 정말 천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다음날 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나는 자정이 다되어 갔을 때가 돼서야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조금 피곤했지만 딱히 잠이 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기술 상태나 한 번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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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기술]

+ 구강 삽입 : 3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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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 기술]

+ 도둑 숨기 : 1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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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기술]

+ 활력 회복 : 6성

+ 도둑 삽입 : 5성

+ 속옷 도둑 : 1성

+ 성기 강화 : 3성

+ 색기 증가 : 3성

+ 속도 증가 : 3성

+ 광속 자지술 : 3성

+ 강약 조절 : 2성

+ 맞아 줄래 : 2성

+ 무기 연구 : 2성

+ 동공 확장 : 2성

+ 혈류 증가 : 2성

+ 절대 삽입술 : 3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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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적.

내가 기술을 습득한 형태를 보면 기형적이라는 말이 딱이었다. 보통 참가자들과 달리 공격 기술과 방어 기술은 각각 한 개씩밖에 배우지 않았다. 그 외 모든 기술이 보조 기술이라는 건 확실히 독특했다.

물론 나처럼 보조 기술 위주로 배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만 그들은 근력을 올리지 않았다. 그런 이들은 대부분 복사 계열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숙련도가 참……."

개판이었다.

반쯤 사장된 구강 삽입과 완전히 사장된 도둑 숨기야 숙련도가 낮은 게 당연했다. 그래도 자주 사용한 지원 기술까지 낮은 너무하다 싶었다. 그나마 도둑 삽입이 5성이나 된 게 기적이었다.

무기 연구 효과가 특수 옵션에도 적용돼서 이렇게 된 거지만.

재미있는 건 무기 연구의 무기 성능 30% 상승효과가 퀴네의 사슬 투구의 1회 타격 추가 효과에도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1회 추가를 100%로 잡고 그 중 30%를 추가로 올려주니, 꼭 추가 삽입과 같은 효과가 됐다. 덕분에 나는 60%의 확률로 추가 삽입이 가능했다.

나는 한숨 나오는 기술창을 닫으며 남몰래 고민을 털어 놓았다.

"후……. 리아 앞에서 강한 척을 하기는 했는데. 10성을 만들어도 효과가 별로면 어쩌지?"

사실 숙련도를 올림으로써 얻는 부가 효과는 나도 몰랐다. 그저 백과사전에 10성 달성 시 숨어 있는 성능이 개방된다고 나와 있기에 막연히 짐작하고 있을 뿐이었다. 만약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변변찮은 추가 효과라면…….

"안 되는데. 그러면 안 되는데."

체면이 쓰레기통에 처박힐 수밖에 없었다.

결코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아니 됐다.

남자에게 허세는 정말 양날의 검과 같았다.

이 죽일 놈의 허세가 너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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