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17화 (11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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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장이 풀렸다.

    나와 김아연은 동시에 맥이 탁 풀리며 기운이 빠졌다. 터질 듯한 흥분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적대감이 가득한 짜증밖에 남지 않았다.

    솔직히 시끄럽게 계속 울리는 초인종 소리를 무시하고 싶었다.

    그냥 쌩까고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말 할 수가 없었다. 이미 흥분이 가라앉은 김아연의 눈빛이 너무 섬뜩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지금 살인자보다 더 섬뜩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김아연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신의 발로 바닥에 선 김아연이 살기어린 눈빛으로 가운을 찾더니 거칠게 뒤집어썼다. 대충 끈을 동여맨 그녀가 성큼성큼 거실을 가로질러 갔다. 나는 멀뚱히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개싸움 나는 건 아니겠지? 아차!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나는 알몸이었다.

    뒤늦게 내 상태를 깨달은 나는 정말 바람처럼 움직였다.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가 들릴 때 내 옷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내 옷을 모두 챙긴 나는 그대로 욕실로 뛰었다. 다행히 집안 구경을 했기에 문제는 없었다.

    내가 욕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 이게 뭐야? 아주 개판이네. 이런 거지같은 곳이면 말했어야지!"

    "지랄하네. 미친년아. 니가 스캔들 조심해야 한다며? 그래서 소름 돋지만 우리 집에 초대한 거 아냐? 개념 없어도 이렇게 개념 없을 줄이야. 넌 양심도 없니? 뭐가 이렇게 무식해?"

    "뭐? 무식? 지금 말 다했어?"

    "다했다. 왜? 무식한 년한테 무식하다고 하면 기분 나쁜가?"

    김아연의 반격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나는 샤워기를 틀었다. 덕분에 두 여자가 싸우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는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에 머리를 적셨다.

    마음속으로 김아연을 응원하면서.

    느긋하게 샤워를 끝낸 나는 김아연이 미리 준비해 놓은 남성용 가운을 찾아 입고 거실로 나왔다.

    다행히 김아연과 눈치 없는 년의 싸움은 끝나 있었다.

    하긴, 아파트에서 싸워서 신고 들어가면. 완전 개쪽일 테니까.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김아연이 쪼르르 다가와 팔짱을 끼며 나를 소개했다.

    "여긴 어썸 바나나. 저긴 전에 말했던 개."

    "풉! 무슨 바나나?"

    눈치 없는 년은 예의도 없었다.

    비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는 아이돌의 모습에 나는 김아연이 개라고 소개한 걸 지적하지 않고 넘어갔다. 나는 결코 대인배가 아니었다. 차라리 소인배로 사는 게 더 좋았다.

    "제대로 조져. 할 수 있지?"

    "마른걸레나 준비해."

    혼자 뭐가 그리 웃긴지 배를 잡고 웃는 여자를 뒤로하고 김아연이 내게 속삭였다. 나는 단호하게 답하며 결과를 예고했다. 마치 베이브 루스가 홈런을 예고할 때 이런 기분인가 싶었다.

    김아연이 팔짱을 들고 아직도 웃고 있는 여자를 향해 걸어가 내기에 대한 조건을 다시 한 번 언급했다. 여자는 키득키득 거리며 가볍게 손을 까딱거리며 답했다. 진지하지 못한 그녀의 행동이 좀 경박스러워 보였다.

    아까 전까지 내가 앉아 있던 소파에 앉아 있던 여자가 김아연의 말을 대충 흘려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가슴을 흔들며 내 앞까지 성큼성큼 걸어왔다. 확실히 아이돌이라 그런지 몸매하나는 굉장했다.

    아차, 내가 무슨 생각을.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자의 본능에 잠시 넋을 놓았지만, 금세 정신을 차린 나는 팔짱을 낀 채 내 앞에 서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내 싸늘한 시선에 코웃음을 치며 여자가 입을 열었다.

    "아무튼 소개는 해야겠죠? 마리라고 부르면 돼요."

    "통성명이나 하자고 귀한 시간을 낸 게 아닌데. 굳이 인사를 해야 합니까?"

    이제 겨우 20살이나 됐을까 싶은 여자였다. 물론 이마부터 코까지 가린 가면 때문에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어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어린 여자와 말싸움이나 하고 싶어 시간을 만든 게 아니었다.

    내 심드렁한 대답에 마리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쪽 얼굴. 기억해 두죠."

    "마음대로."

    나는 가면을 쓰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유명 인사가 아니기에 내 얼굴을 알아볼 리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상대가 연예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정체를 모르는 사람과 대면하게 된다면 다시 가면을 쓸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나를 아는 사람과 만날 수도 있었으니까.

    나는 사무적인 어조로 더욱 살벌한 눈빛을 보내는 마리를 향해 말을 이었다.

    "결투 조건부터 확실하게 합시다."

    "좋아요. 당신이 이기면 내가 가진 상징을 넘기고. 내가 이기면 저 재수 없는 여자가 뉴스에서 하차하는 걸로. 설마 지고도 약속을 어기는 건 아니겠지?"

    "걱정하지 마. 내가 5살이나 어린 애한테 사기를 치겠니?"

    "지금 나이 가지고 유세떨어? 데뷔는 내가 더 빨랐다는 거 몰라?"

    "그만!"

    여자들의 말싸움은 정말 골이 지근거렸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지만, 그런다고 기가 죽을 여자들이 아니었다. 다만 그녀들도 빨리 대결을 펼쳐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한 공간에 오래 있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차피 보스에 넣을 조건은 없었다. 그저 신뢰를 기반으로 해야 했다. 물론 그 신뢰가 그녀들의 자존심에 근원을 두겠지만.

    나는 두 여자가 다시 싸우기 전에 얼른 마리에게 결투를 걸었다. 마리는 당연히 결투를 승낙했다. 이미 내 레벨이 높다는 걸 들었는지 우선 공격권을 놓쳤음에도 딱히 놀라지 않았다.

    그 사이 김아연이 거실 한켠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고 보니 딱히 가구가 없고 카펫만 있는 널찍한 거실은 섹스 배틀을 하기에 최적화된 공간 같았다.

    미리 이렇게 만든 건가?

    작은 궁금함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거실의 중심으로 걸어갔다. 원형 무늬가 있는 곳에 중심에 서니 꼭 사격 판을 밟고 있는 것 같았다. 마리도 거리낌 없는 얼굴로 내 앞으로 걸어와 나를 마주보았다.

    나는 전투를 위해 입고 있는 가운을 벗었다.

    마리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조금 달랐다. 그녀는 입고 있던 외투와 치마를 벗었지만 그뿐이었다. 래쉬가드와 레깅스 차림이 된 그녀는 더 이상 옷을 벗지 않았다.

    볼륨감 넘치는 몸매를 한층 더 강조하는 옷차림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준비 안합니까? 그러다 시간되면 강제로 벗겨집니다."

    "뭐야? 고렙이라며? 그런데 이것도 몰라?"

    내게 물은 게 아니었다. 마리는 고개를 돌려 거실 벽에 들을 기대고 있는 김아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아연은 어깨를 으쓱거리는 걸로 대답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참 못된 여자였다. 김아연은.

    독하네. 아주 뒤통수를 제대로 치겠다?

    어쨌든 나는 대충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좀 어이가 없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마리라는 여자는 개인 전투복이 있었다. 방어력이 좀 낮아 보였지만.

    가슴과 음부를 가리고 있다지만 내게 문제될 건 없었다. 어차피 공격이 가능한 곳은 그 두 곳이 전부가 아니었다. 마리의 입은 컸다. 내 물건을 넣어도 될 만큼.

    아래가 힘들면 위를 쓰면 되지, 뭐.

    게다가 내게는 절대 삽입술이 있었다. 덕지덕지 옷을 끼워 입는다고 해도 문제될 건 없었다. 물론 강철 정조대를 찬다면 사정을 달라지겠지만, 마리의 레깅스는 딱딱한 정조대가 아니라 신축성 좋은 레깅스였다.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작을 알렸다.

    "그럼 시작합니다."

    "마음대……뭐야! 인테리어 했다는 말은 없었잖아!"

    뒤늦게 빨딱 선 내 전기톱을 발견한 마리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표독스런 마리의 눈초리를 받은 김아연이 코웃음을 치며 손가락을 저었다.

    "눈깔에 좆 박았니? 저거 보면 몰라? 저거 자연산이거든?"

    "지랄하고 있네. 어디서 개수작이야! 이게 무슨 자연……산이네?"

    김아연의 대답을 신랄하게 되받아친 마리가 당차게 내 전기톱 앞으로 걸어와 무릎을 굽히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내 그녀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손을 뻗어 요리조리 만져보았지만 자연산이라는 결과는 변하지 않았고, 그녀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리기 시작했다.

    멍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마리를 향해 하품을 날렸다.

    "이거야 원. 결투 한 번 하기 까다롭네."

    살짝 비꼬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놀란 눈으로 내 얼굴과 전기톱을 번갈아보며 정체불명의 탄성을 터트릴 뿐이었다.

    결국 지루함을 참지 못한 나는 혀를 차며 선빵을 날렸다.

    "어이, 아가씨."

    "어. 어? 네?"

    "구경은 그만하고, 그냥 맛이나 봐요."

    내 말에 마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순간 무슨 이야긴지 이해하지 못한 듯 싶었다.

    마리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더 이상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던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고 고정했다. 그제야 그녀는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지 깨달은 눈빛을 보였다.

    이미 늦었다.

    나는 더욱 손아귀에 힘을 주며 전기톱을 마리의 입 앞으로 가져갔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반하여 입을 벌리고 있었다. 결투로 인한 일종의 제약이었다.

    마리가 떨리는 눈빛으로 소리쳤지만.

    "하지. 하지 마! 하지 마……어억! 컥!"

    나는 봐주지 않았다.

    마리의 입안은 표독스러운 모습과 달리 부드러웠다. 그녀의 도톰한 입술도 그랬고, 그녀의 혀도 그랬다. 게다가 숨과 침이 뒤섞이며 뜨겁고 끈적끈적한 느낌이 내 전기톱을 휘감았다.

    "읍! 으읍! 으흐응……."

    내 물건에 입은 물론이고 목구멍까지 막힌 마리가 무어라 소리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가득찬 그녀의 입은 목소리를 뱉어낼 수 없는 상태였다.

    나는 더욱 마리의 머리를 끌어 당겼고, 그녀의 입술이 내 살에 닿았다. 검은 음모가 입술에 닿은 마리가 치를 떨었지만, 그런다고 손에 준 힘을 풀 내가 아니었다. 풀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살짝 허리를 튕겨 내 불알이 그녀의 턱에 닿게 만들었다.

    더욱 치욕스런 표정이 된 마리의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을 내려다볼 때 묘한 쾌감이 일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학성이 눈을 뜬 것 같았다. 괜히 마리를 더욱 괴롭히고 싶었다.

    그때 내 눈에 이상한 모습이 잡혔다.

    저거 왜 저래? 왜 갑자기……. 설마!

    마리의 눈동자가 서서히 초점을 잃기 시작했다. 단순히 공격의 여파가 아니었다. 이것은 분명 절정에 오르기 직전에 보이는 전조 현상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이어진 보스의 판정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마리'에게 1,387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마리'가 절정에 올랐습니다.]

    ['630 경험'을 획득합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지자, 나는 뒤늦게 마리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미 맛이 간 마리가 본능적으로 내 물건을 물고 빨려고 했지만, 나는 그녀의 행동을 느낄 상황이 아니었다.

    아씨.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버프로 도발할 걸.

    뒤늦게 자책이 들었다.

    본래 김아연과 짠 시나리오대로라면 버프를 걸며 마리를 도발하는 방식이었다.

    천민까지라면 방어를 선택하는 방식을 통해 턴을 넘길 수 있지만, 평민이 된 이상 그것이 불가능했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혹시라도 결투 승부를 조작하는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보스의 고육지책이었다.

    귀족이 된 나는 당연히 방어를 선택하여 턴을 넘길 수 없었고, 공격이나 기술. 혹은 물품을 사용하는 것밖에 선택할 수 없었다. 당연히 쓸데없는 소비를 할 생각이 없는 나는 김아연의 말대로 버프를 사용하여 한 방 데미지를 더 키우는 한편, 마리의 자존심을 건들 생각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결투 후유증까지 걸리게 만들 생각이었는데.

    그랬던 계획이 순간 욱하는 마음에 그대로 어그러져 버렸다.

    내 실수이다 보니 나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김아연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김아연은 내게 화내지 않았다. 그녀도 마리가 구강 삽입 한 방에 맛이 갈 줄은 몰랐는지 꽤 놀란 얼굴이었다.

    나는 절정에 올라 쾌감에 몸을 떠는 마리의 입에서 내 물건을 빼냈다. 침으로 범벅된 하물이 조명을 받아 번들거렸지만,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김아연을 향해 다가갔다.

    어쨌든 내 실수였기에 사과를 하려고 했지만, 나보다 김아연이 먼저 어찌된 일인지 물어왔다.

    "뭐야? 저년 왜 저래? 아니. 그것보다 처음은 버프로 시작하기로 했잖아?"

    "그랬지. 근데 좀 재수가 없잖아? 그래서 한대만 치려고 했는데. 그런데……."

    내 솔직한 말에 김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마리를 싫어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충분히 이해한다는 얼굴이었다.

    김아연의 표정을 살피던 나는 그제야 안심한 얼굴로 말을 이을 수 있었다.

    "……나도 원킬이 날 줄은 몰랐지."

    솔직한 내 한 마디에 김아연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기색이 어렸다. 어이없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구강 삽입이 이렇게 큰 데미지를 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반쯤 장난으로 던진 돌멩이에 맞아 죽은 개구리의 눈은 여전히 풀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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