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15화 (11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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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수어미를 사냥한 다음날 세상은 또 한 번 들썩였다.

    단순히 허수어미가 사냥됐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이미 사람들은 허수어미가 사냥된 전례를 알고 있었다. 비록 오해였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용암을 뒤집어 쓴 것처럼 놀란 이유는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터트린 속보 때문이었다.

    ['고난과 노력 퀘스트!' 전격 해부!]

    [이번에도 한국! 도대체 이 나라는 무엇인가?]

    [허수마비의 활력은? 자그마치 1만!]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당연히 관심을 집중했고, 그렇게 나는 또 한 번의 이슈 몰이를 할 수 있었다.

    오늘도 결투장 매칭을 돌려놓고 소파에서 백수 짓을 하고 있는 나는 스마트폰으로 시시각각 쏟아지는 기사를 읽으며 피식 피식 웃었다.

    "리아도 그렇지만. 김아연도 꽤 대단하단 말이야."

    고난과 도전에 관한 정보는 리아만 가진 게 아니었다. 물론 내가 그녀의 뒤통수를 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리아가 내게 정보를 다른 곳에도 넘길 것을 권유했다. 그녀는 자기가 터트리는 것도 좋지만, 그랬다가는 남들의 의심을 살 것이라 우려했다. 한국에서 벌어진 일을 뜬금없이 네덜란드에서 보도하는 건 너무 말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나도 리아의 말에 동의했다. 그녀의 말처럼 특종도 좋지만 그 전에 나와 리아의 연결 고리가 드러나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결국 리아는 전 세계에 유명한 언론사에 익명 제보를 남기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으며 나를 설득했다. 나는 그녀의 설득에 너무도 쉽게 넘어갔고, 그녀의 말대로 전 세계 언론사에 고난과 도전에 대한 정보를 보냈다. 정보를 풀어도 따라할 수 없다는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리아에게는 따로 보상에 관한 정보를 주기로 했다. 그 대신 그 정보는 며칠 시간을 두고 터트릴 예정이었다. 이미 유럽에서는 그녀의 방송사가 내 덕분에 보스에 관해서는 적이 없기에 급할 게 없었다.

    남들보다 앞서나가는 만큼 그만큼 적이 늘었다고 했지. 나도 조심해야겠어.

    나는 리아의 충고를 충실히 따랐다. 다만 한국의 언론사는 약간의 사심이 들어갔다. 그래도 인연이 있는 사람이 낫다는 생각에 김아연이 있는 방송국으로 보냈다.

    물론 김아연에게 직접 정보를 주는 방법도 있었다. 그 방법을 통해 나름 사심을 채울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괜히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다가 본래 목적을 잃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김아연도 핑크 마이크에 대해 숨겨야하는 입장이었기에 나는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언론사에 제보를 하고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기사의 댓글을 읽으며 괜히 뿌듯해 했다.

    [그냥 쩐다. 쩔어. 난 붕대녀한테 관광 당하는 중인데.]

    [윗놈 수준이 딱 울나라 남자들 수준임ㅋㅋ]

    [누가 나도 좀 허수어미처럼 시원하게 안 긁어주려나?]

    [나도. 처음에 몽마랑 할 때는 잘생기고 그래서 좋았는데. 이젠 그것도 시들시들해.]

    [와. 요즘 여자들 쩌네, 쩔어. 졸라 쩌네 ㅅㅂ]

    [쪼잔하게 시비트는 조루 새끼 등장]

    [ㅋㅋㅋ 남자의 적은 역시 남자]

    [여자의 적이 여자 아님? 남자의 적은 첨 들어보네.]

    [어쨌든 넌 조루.]

    [근데 왜 남자라고 생각하지? 여자일수도 있잖아?]

    [여자가 꼬추 팬티 차고 쑤시는 것도 나름 좋은데 ㅋㅋ]

    [상상하지마! 이 변태 새끼야!]

    "진짜 난리도 아니네."

    댓글을 읽다 지친 나는 휴대폰을 옆으로 밀어 놓으며 눈을 비볐다. 기사에 달린 댓글뿐만 아니라 인터넷 커뮤니티도 난리였다. 대부분 내 정체를 밝히려는 이들의 난장 토론이 주된 이야기다보니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다행히 내 정체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없었다. 파파라치들에게 찍힌 사진이야 심령사진 같았고, 그 밖에 알려진 정보는 전무했다. 정보가 없으니 제대로 된 접근이 불가능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막무가내식 추측이 있었지만 누구도 논리적이지 못한 의견에 지지를 표하지 않았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했고, 논리보다 자신의 감을 믿는 부류도 있으니까.

    어쨌든 진지하게 나와 리아를 엮는 이들은 없었다.

    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할 때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일단 위험할 가능성이 존재함을 인지하고 나니 신경이 쓰였다. 객관적으로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하나의 문제를 무사히 넘기니 또 하나의 문제가 내 앞에 나타났다.

    다시 핸드폰을 쥔 나는 오늘 아침 온 문자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았다.

    [고영 씨. 저 승진했어요. 그래서 그런데 앞으로 고영 씨 담당이 바뀔 것 같아요.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예 팀장에게 온 문자였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몇 번을 다시 읽고 나서야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예 팀장의 문자를 받은 지 벌써 몇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쉬이 답장을 보낼 수 없었다.

    왜 차인 거 같을까.

    묘한 기분이 들었고, 그것은 착각 같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진상짓을 할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짤막한 글귀를 적었다.

    [축하해요. 나중에 밥이라도 한 끼 사요. 좀 서운하니까.]

    몇 번을 쓰고 지우길 반복하고 나서야 보낸 답문은 꽤 삭막했다. 서운한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나도 사람이었고,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핸드폰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지만 예 팀장의 답문을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의외의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Pink Mike : 님. 시간 있음?]

    바로 김아연이었다.

    나는 연습을 위해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소식창을 열었다. 집중력이 자칫 끊어지는 순간 암전됐지만 그동안 경험 덕분인지 나름 빠르게 답장을 할 수 있었다.

    [@Awesome Banana : 있음.]

    [@Pink Mike : 그럼 나 좀 헬프. 미친년 하나 있는데 좆되게 만들고 싶음.]

    "아, 진짜."

    내 집중력이 깨졌다.

    김아연 거침없는 말에 내 집중이 깨진 건 당연했고, 그뿐 아니라 그녀의 이미지까지 깨져 버렸다. 기껏 남겨 놓은 코딱지만 한 이미지였지만 그녀는 그것마저 용납하지 않았다.

    [@Awesome Banana : 나 말 막하는 여자는 싫은데.]

    [@Pink Mike : 어머? 그랬어요? 난 몰랐네. 호호호!]

    [@Awesome Banana : 가식 떠는 건 더 싫음.]

    [@Pink Mike : 뭐 어쩌라고?]

    ……에효.

    사람은 참 간사했다. 김아연처럼 청순하고 단아한 인상의 여자는 욕은커녕 화도 안낼 것이라 지레짐작하게 만들었다. 얼굴과 성격은 전혀 관련이 없지만, 인상이 주는 고정관념은 어쩔 수 없었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Awesome Banana : 입에 걸레 문 거 같아서 졸라 매력적이다고.]

    [@Pink Mike : 까고 있네. 헛소리 그만하고 나 좀 도와 줄 수 없음?]

    조금 심한 김아연의 말에 나도 모르게 욱하고 말았다. 다행히 감정을 그대로 글자로 옮기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보다 3살이나 어린 여자에게 막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근데 박고영 대 김아연으로 만나는 게 아니잖아?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김아연은 서로 숨긴 신분으로 만났고, 그렇게 만들어진 인연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현실의 박고영과 김아연이 아니라, 보스의 어썸 바나나와 핑크 마이크로서.

    이렇게 생각하니 딱히 화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박아연이 왜 이런 식으로 날 대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현실의 자신이 아니라 핑크 마이크로서 나를 대하고 있었다.

    마음가짐이 변하니 화날 일도 없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다시 머릿속으로 글자를 그렸다. 덩달아 내 말투도 조금 더 가벼워졌다.

    [@Awesome Banana : 도와 달라는 사람이 뭐 이렇게 고자세야? 협박하냐?]

    [@Pink Mike : 협박하면 안 됨? 좀 해주지?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Awesome Banana : 뭐? 나 때문이라고?]

    [@Pink Mike : 그래. 당신 때문이지. 당신이 구하는 물건 가진 년을 아는데. 그년이 팔라니까 뻐팅기잖아?]

    [@Awesome Banana : 그래서 한 방 제대로 먹여주려고? 그것도 빅엿으로?]

    [@Pink Mike : 빅유닛으로 먹이려는 거지. 어때? 생각 있음? 걔도 유명함. 나보다 더 유명함. 땡기지?]

    어. 땡기네. 그것도 무쟈게.

    솔직히 흥미가 동했다. 김아연이 아는 사람이라는 말과 자신보다 유명하다는 말이 더해지면 결과는 금방 나왔다. 지금 그녀가 헐뜯고 있는 여자는 연예인일 확률이 높았다.

    그것도 엄청 유명한 탑이겠지.

    아무리 방구석 폐인 출신이라지만. 아니, 방구석 폐인 출신이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내 20대를 책임진 건 TV였고, 그 안에 나오는 연예인이었다. 물론 그 중 짧은 치마를 입고 발랄하게 움직이는 여자 연예인이 내 위안거리였다.

    지금은 방구석 폐인과 고자에서 모두 탈출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식은 건 아니었다.

    나는 김아연의 제안에 슬쩍 호기심을 드러냈다.

    [@Awesome Banana : 누군데?]

    [@Pink Mike : 그건 말해줄 수 없지. 혹시라도 이거 캡처해서 뿌리면 어떡해?]

    [@Awesome Banana : 올. 똑똑하네.]

    [@Pink Mike : 나 원래 똑똑함. 그래도 유도신문은 안 당함.]

    [@Awesome Banana : 드럽게 똑똑하긴.]

    [@Pink Mike : 됐고. 어쩔 거임? 할거임? 말거임?]

    당연히 해야지.

    굴러들어온 복을 걷어찰 정도로 난 물욕에 초연하지 않았다. 물론 성욕도 마찬가지였다. 난 욕심이 좀 많았다.

    [@Awesome Banana : 할거임. 근데 어떻게 하면 됨?]

    [@Pink Mike : 간단함. 내가 자리를 만들면 와서 그년 아가리에 좆을 쑤셔 주면 됨.]

    [@Awesome Banana : 그냥 한 방에 보내는 게 낫지 않나?]

    [@Pink Mike : 왜? 반하게 하려고?]

    움찔.

    지난 달 제주도 여행에서 알게 된 걸 리아를 통해 대중에 공개한 게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뒤늦게 김아연이 아나운서라는 것도 떠올랐다. 그녀는 보스에 관해 꽤 많은 정보를 알았고, 그 중에는 결투 후유증에 대한 것도 존재했다.

    [@Awesome Banana : 조금?]

    [@Pink Mike : 하여튼 남자들은. 그년이 당신한테 달라붙는 건 싫으니까. 그건 안 되고. 그냥 아가리나 찢어 줘. 정말 재수 없는 년이라니까? 싸가지도 없고.]

    내 대답에 살짝 흥분한 김아연이 엄청난 말을 쏟아냈다. 진짜 아나운서가 할 말은 아니었다. 아니, 그냥 보편적으로 여자가 남자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이었다.

    덕분에 내 반응이 약간 느렸다.

    [@Awesome Banana : 오케이. 위치 문자로. 아니, 이걸로 보내.]

    [@Pink Mike : ㅇㅋ 땡큐!]

    채팅을 끝낸 나는 눈을 떴다.

    그렇게 오래 되지 않은 거 같은데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나는 띵한 머리를 짚으며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무거운 머리를 몇 번 흔들고 나서야 정신이 맑아졌다.

    "어휴. 이거 자주 하면 안 되겠네. 아니, 더 자주해야하나? 그나저나 꽤 피곤하네."

    소파에 등과 목을 기댄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물론 보스 앱을 머리로 구동시키지는 않았다. 그저 감은 눈 위에 손등을 올린 채 잠시 피로를 씻어 보았다.

    여간 피곤한 게 아니었지만, 나는 계속 쉴 수 없었다. 금세 울리는 휴대폰 때문이었다.

    드르륵!

    머리에 올린 손을 내린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살짝 눈을 뜨니 방금 온 메시지가 보였다. 물론 일반 문자가 아니라 보스 앱에 탑재 되어 있는 소식창이었다.

    장소와 시간을 기억한 내가 다시 휴대폰을 내려놓으려고 할 때였다.

    [@Pink Mike : 아, 그리고 있잖아? 그년이랑 좀 오래 하면 안 될까? 최대한 데미지를 조금 주고. 그년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할 때 보내버릴 수는 없나?]

    도대체 무슨 사이야?

    이건 완전 웬수가 따로 없었다. 김아연과 그 정체불명의 연예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도대체 얼마나 사이가 안 좋으면 이럴까 싶었다.

    머리가 여전히 무거운 감이 있었기에 나는 핸드폰을 양손으로 쥔 채 김아연에게 답장을 보냈다.

    [@Awesome Banana : 최대한 노력은 해보겠는데. 기대는 하지 마. 아마 안 될 거야.]

    [@Pink Mike :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아무튼 그년이 지가 지면 가지고 있는 상징을 내놓는다고 했으니까. 무조건 이겨! 무조건!]

    [@Awesome Banana : 쓸데없는 걱정은 집어넣으시고. 근데 당신은 뭘 주기로 했는데? 내기가 걸렸음 내놓는 게 있어야 할 거 아냐?]

    [@Pink Mike : 나? 별 거 아냐. 그냥 지금 하는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기로 했어.]

    [@Awesome Banana : 프로그램? 예능?]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소파에서 등을 뗐다. 물론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이미 나를 상대한 적이 있는 김아연은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좀 과한 거 아닌가? 사람일은 모르는 건데.

    다만 나는 조금 성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 생각을 단숨에 바꿔주는 답변이 그때 날아왔다.

    [@Pink Mike : 아니. 뉴스.]

    김아연은 성급한 게 아니었다.

    미쳤네, 이년.

    이 여자는 그냥 미쳤다.

    그것도 제대로 미친 게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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