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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ss-112화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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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째깍, 째깍.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한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거실을 배회하는 나는 거실 벽에 달려 있는 시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에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던 리아가 한심하단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고영 씨. 그만 좀 불안해해요. 어차피 고영 씨가 우승할 확률이 99%에요."

    "나머지 1%는. 99%는 100%가 아냐."

    "그렇다고 이런다고 뭐가 변하는 건 아니잖아요? 차라리 나가서 아무나 붙잡고 섹스 배틀을 해달라고 해요. 그게 낫겠네요.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 보다는."

    지금 리아는 내 모습이 평소와 너무 다르다고 힐난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나도 내 모습이 평소와 너무 다르게 신경이 곤두섰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나도 그러고 싶다고! 그런데 아무도 결투 신청을 안 하잖아? 혹시라도 있나 싶어서 결투장에 등록해 놨는데, 아무도 신청을 안하는 걸 어떡해?"

    소강석의 도움으로 남들은 꿈에도 못 꿀 엄청난 결투행을 하는 도중에도 나는 결투장에 나를 등록해 놓았었다. 혹시라도 누가 결투를 신청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3일 동안 내게 결투를 신청한 사람은 없었지만.

    내가 다시 몸을 틀어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며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일 때 리아가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근데 왜 나하고는 하자고 안 하는 건데요? 이번 달에 나랑 한 적이 없잖아요?"

    뭐지? 이 불만 가득한 투정은?

    고막이 멀쩡하다면 누구라도 느낄 정도로 진한 서운함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리아를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받은 그녀가 얼굴을 붉히는 게 보였다.

    어라? 저거 지금 부끄러워하는 거 맞지?

    자정을 향해 시침이 달려가고 있다는 걸 잠시 잊은 나는 짓궂은 미소를 입에 걸었다. 그뿐 아니라 슬쩍 리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바로 옆에 앉았다. 내 허벅지와 자기 허벅지가 스치자 리아가 화들짝 놀라며 옆으로 엉덩이를 밀었다.

    나는 리아가 도망친 만큼 그녀에게 다가가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이렇게 내외해? 너 설마……."

    "아니거든요! 당신 안 좋아하거든요!"

    "뭐야. 난 그저 욕구 불만이냐고 물으려고 한 건데."

    "씨이……."

    울상을 짓는 리아가 참 순진해 보였다.

    나는 내 시선을 피하며 무릎 위에 올린 손을 꼼지락거리는 리아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속삭이듯 말했다.

    "시간 없으니까. 얼른 하자."

    "네? 어, 어어!"

    "얼른 승낙해! 3분도 안 남았다고!"

    "예, 승낙! 승낙? 어머! 꺄악!"

    단숨에 티셔츠를 벗으며 소리치자, 리아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러든 말든 나는 바지까지 벗으며 순식간에 알몸이 됐고, 리아는 손가락 사이로 내 알몸을 야무지게 훑어보았다.

    이제 와서 내숭은…….

    사실 지난 한 달 동안 리아에게 결투를 부탁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계약서가 존재했고, 그것은 곧 꽤 오랜 시간 함께 지내야한다는 걸 의미했다. 오래 알고 지내야 할 사람과 너무 사적으로 얽히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내 평소 지론이었다.

    물론 이런 내 지론을 무시할 수도 있었다. 만약 자유 임무를 핑계로 리아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식이면 그녀가 거절할 리가 없었다. 그녀는 나에 대한 호감과 호기심을 모두 품고 있으니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누군가의 순수한 감정을 이용하여 내 배를 채우고 싶지 않았다.

    나를 지탱하는 기준을 넘지 않기 위해 욕심을 꾹 눌러 참았지만, 리아의 서운한 감정을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더 안 좋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저지르는 게 나았다.

    어느새 알몸이 된 리아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 어떤 때보다 강렬한 기대감이 그녀의 눈에 어려 있었다. 아니, 기대감만이 아니었다.

    리아가 제대로 흥분했다.

    "나를 좀! 날 좀! 제발!"

    "뭐를? 어떻게 해달라는 건데?"

    리아가 손을 뻗으며 날 잡아 먹으려는 암컷 사마귀처럼 분했지만, 나는 도리어 허리를 젖히며 그녀의 손에서 벗어났다.

    짓궂은 내 물음에 리아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이내 고개를 거칠게 흔들며 소리쳤다. 그녀의 인내심이 바닥났다는 증거였다.

    "박아줘! 날 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줘!"

    인내심이 바닥난 것은 리아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대로 리아의 품을 파고 들었다.

    소심한 가슴이 처음으로 짓눌러졌고, 뜨거운 입술이 다음 차례였다. 내 허리를 감은 리아의 허벅지 안쪽이 바르르 떠는 사이 마지막을 향해 내 엑스칼리버가 향했다. 이윽고 흠뻑 젖은 그녀의 아래가 내 물건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아흑! 허엉! 더! 더!"

    내 허리를 감고 비명을 지르는 리아의 모습은 거칠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아래를 들썩였다. 조금이라도 더 내 몸에 가까이 달라붙고 싶은. 아니, 조금이라도 더 내 물건이 그녀의 몸속을 파고들길 바라는 움직이었다.

    어쨌든 리아의 의도는 성공했다.

    살 얼은 빙판보다 더 미끄러운 리아의 속살은 아무런 저항 없이 날 받아 들였다. 나는 저항 없는 그녀의 속살을 계속 파고들었다. 너무 깊숙이 파고들었는지 그녀의 속살이 움찔거리며 내 행군을 막아설 정도였다.

    물론 이미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엑스칼리버를 막을 수는 없었다.

    "헉, 헉!"

    "아흑! 잠깐! 아악! 제, 제발! 흑!"

    리아의 얼굴로 거친 숨을 떨구며 나는 더욱 힘을 쥐어짜냈다. 그때마다 리아가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처럼 바스러졌다.

    정신없이 머리를 흔들며 리아가 애원했지만, 나는 그녀의 애원을 묵살했다.

    결국 리아는 무자비한 쾌락의 폭력에 무너지고 말았다.

    "아악! 조, 졸라 좋은! 아흥! 허억! 자지야! 당신……아아아앙!"

    엄청난 유언을 남기고.

    보스의 판정을 들으며 움직임을 멈춘 나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잘하면 포로 상태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좀 많이 아쉬웠다.

    사실 그동안 나는 상대의 흥분도를 올리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저 무지막지한 데미지를 때려 박으며 쾌락을 강제했을 뿐이었다. 그랬던 것이 방금 리아와 결투에서는 조금 다른 방향을 보였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조금만 더 했으면 가능했을지도 몰랐는데."

    비록 리아의 흥분도를 최고조로 오르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얻은 게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가능성을 보았다.

    약점을 매우고 새로운 장점을 장착할 가능성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다.

    이 세상에 경험만큼 소중한 스승은 없으니까.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니, 길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죽어라 하면 늘겠지. 그게 섹스든 공부든. 뭐가 됐든 말이야. 아직은 부족하지만."

    경험의 부재.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고자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아쉬움도 잠시 나는 절정에 올라 실신한 리아를 조심스럽게 소파에 눕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게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른 게 더 중요했다. 꽤 큰돈을 주고 샀던 소파가 수해를 입기 직전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마른 수건을 가지고 돌아온 나는 리아의 애액으로 점철된 소파를 구해낼 수 있었다. 하물을 덜렁거리며 뛰어다닌 덕분이었다.

    뒤처리를 말끔하게 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느새 이마에 맺은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쳤다.

    내 땀방울이 내 손등에 짓이겨지는 그 순간이었다.

    [2회차 자유 임무를 종료합니다.]

    [2회차 자유 임무를 집계합니다.]

    [기본 보상 '7,710 경험'을 획득합니다.]

    [음격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우승 보상 '퀴네의 사슬 갑옷 1개'를 획득합니다.]

    [3회차 자유 임무를 시작합니다.]

    자정이 지났다.

    우승 보상을 받은 나는 더 이상 안절부절하지 않을 수 있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를 내질렀다.

    우승 세레모니도 잠시 내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근데 1레벨 보상인데. 겨우 7천7백이라고? 1회차 때 1만4천이 넘었는데?"

    레벨이 올랐는데 레벨업 보너스 효과가 낮아진 이유는 한 가지였다. 금세 그 이유를 알아낸 나는 한쪽 눈을 찡그렸다.

    "아, 히밤. 다음 레벨이 될 때까지 부족한 경험치만 주는 거구나."

    차마 쌍욕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막았다. 진짜 화가 났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처음 1회차 자유 임무를 수행할 때 신경 썼어야 했지만, 그때는 너무 흥분하며 미쳐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이번 경우처럼 손해를 보고 말았다.

    만약 내가 자정 직전에 레벨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경험치를 사용했어도, 나는 자유 임무 보상을 받으며 레벨이 올랐을 게 분명했다.

    물론 인생에 만약은 없었다. 나는 미리 경험치를 소비하여 비축하지 않았고, 그 결과 레벨이 더 낮았던 1회차 때보다도 더 낮은 경험치를 보상으로 받고 말았다.

    후회는 언제나 늦은 법이었다.

    "하아……. 내가 그렇지, 뭐. 내가. 젠장!"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일이천도 아니고, 자그마치 1만4천이었다. 1만4천의 경험치를 단순한 무지로 날렸다는 사실은 꽤 오랫동안 남을 것 같았다.

    너무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계속 우울해 있을 순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실수를 통해 배운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새겨 보았다.

    "에이, 됐어. 이미 터진 걸 어떡해? 내가 시간을 돌릴 수도 없고. 됐어. 됐……되긴 뭐가 돼! 아오! 진짜 미치겠네!"

    ……그럴 리가 없었다.

    결국 나는 한동안 덜컹 거리며 난리를 쳐야했다. 혼자 열을 내고 나니 그제야 좀 머리가 식었다. 물론 내 얼굴은 여전히 일그러져 있었지만.

    간신히 마음을 다잡은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눈을 감았다. 이제 더 이상 스마트폰이 없어도 보스 앱을 실행할 수 있었다. 그동안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아직 조금 어색하지만 물품창에 있는 퀴네의 사슬 갑옷 정보를 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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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네의 사슬 갑옷]

    + 연격의 달인 노예 검투사 퀴네의 유품.

    + 삽입 공격 1회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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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좋아. 아주 좋아.

    내가 가지고 있는 주식이 휴지 조각에서 반 토막까지 올라간 기분이었다.

    나는 미간에 잡힌 주름을 조금 덜어내곤 퀴네의 사슬 갑옷을 저주의 단검과 교체했다. 이름은 갑옷이었지만, 분류는 무기였다. 애초에 장식이 아닌 물품은 칼이든 방패든 그냥 무기로 취급하는 보스였다.

    퀴네의 사슬 갑옷이 무기 슬롯에 올라가는 순간 뜻밖의 상황이 나타났다.

    [퀴네의 장비를 모두 장착했습니다.]

    ['삽입 공격 횟수'가 1회 증가합니다.]

    번쩍!

    "아! 세트 효과!"

    두 눈이 번쩍 뜨이며 경악스런 외침이 튀어 나왔다. 당연했다. 그만큼 나는 크게 놀란 상태였다.

    솔직히 이런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다. 다만 이정도로 큰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무슨 노예급 세트 아이템이 이렇게 좋아?"

    퀴네의 사슬 투구와 갑옷은 모두 노예 등급 아이템이었다. 고정관념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상점에서 파는 물품들은 등급이 높으면 더 효과가 좋은 편이었다.

    어쨌든 나는 더 이상 미간을 찌푸리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사라졌다. 고작 경험치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박이 터졌기에.

    히죽 히죽 웃으며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도 나는 해야 할 일은 잊지 않았다. 우선 능력창을 열어 새로 얻은 5개의 능력치를 모두 체력에 투자했다. 이제 내 체력은 30이나 됐다.

    스탯 투자를 끝낸 나는 기술창을 열었다. 그동안 꽤 레벨을 올린 상태라 잔여 스킬 포인트가 6개나 됐다. 일단 그 중 3개를 소비하여 혈류 증가를 마스터했다. 남은 스킬 포인트로 하나의 기술을 더 배울 수 있었지만, 딱히 필요한 스킬이 없다는 생각에 그대로 스킬창을 닫았다.

    그제야 나는 상태창을 열어 새롭게 변한 내 능력치를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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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활력 : 2,145/2,145

    + 정력 : 1,000/1,000

    + 경험 : 0/2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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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격력 : 528

    + 마법력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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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어력 : 106

    + 항마력 :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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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중률 : 176

    + 회피율 :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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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도 : 66

    + 치명 증폭 : 295%

    + 치명 저항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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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하얀 독수리가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활력을 가질 수 있었다. 비록 더 이상 올리기 어려워진 타격력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보다는 업적 효과와 궁합이 잘 맞는 방어력 덕분에 웃을 수 있었다.

    그때 내 미간이 다시 찌푸려졌다.

    "으윽! 뭐, 뭐야!"

    갑자기 내 하물에서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꿈틀, 꿈틀!

    더 이상 엑스칼리버는 없었다.

    엑스칼리버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이게 뭐야!"

    한 자루의 전기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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