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09화 (109/200)

<-- Pink Tsunami -->

***

김아연과 만난 뒤로 나는 한 가지 망상을 꿈꾸게 됐다.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젯밤 결투행의 피곤함을 소파에 누워 풀면서 보스 앱을 실행했다. 이윽고 금화 상점을 열어 내 망상의 정점을 찍는 아이템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씁쓸한 사탕]

이 맛없는 사탕은 무려 금화 20개짜리 아이템이었다. 다만 효과가 끝내주었다. 바로 스탯 초기화 아이템이니까.

만약 내게 금화가 많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이 씁쓸한 사탕을 통해 스탯 100 달성 업적을 독점할 수도 있었을 텐데.

물론 이런 망상은 말 그대로 망상이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그 이유는 바로 내 지갑에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꼭 스탯 초기화를 해서 다른 스탯을 100으로 찍는다 해도 업적을 얻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혹시 모르지. 스탯 초기화하는 순간 업적이 없어질지도"

최초의 동정에도 첫 패배 시 파괴 조건이 있다 보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심심했다.

나는 너무 심심했고, 동시에 실망스러웠다.

언제부터인가 점점 내게 결투 신청을 하는 이들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벌써부터 그것이 실감할 정도로 나타날 줄은 몰랐다. 언제부터인가 하루에 10번의 결투를 채우는 것도 힘든 지경이 됐다.

"사람들이 보스를 진지하게 대한다고 좋아해야하나. 아니면 덕분에 고렙에게 들이대지 않으니 실망해야하나."

모든 일이 그렇듯 이번 일에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했다.

나는 되도록 좋은 쪽으로 생각했다. 사람들의 보스를 진지하게 여기도 제대로 뛰어든다면, 결국 인프라가 커질 게 분명했다. 섹스 배틀이라는 인프라가.

그럴 경우 지금 당장은 결투를 신청하는 이들이 없겠지만, 나중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내게 도전하는 이들도 있을 게 분명했다. 어찌됐든 지금 상황은 참가자들이 성장해 나아가는 과도기였다. 조금 허기진 과도기였지만, 그렇다고 이제 겨우 성장하기 시작한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건전한 사고를 통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다.

2회차 자유 임무가 은근히 날 압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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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자유 임무]

+ 최대한 많은 참가자를 절정에 오르게 하라.

+ 임무 현황 : 288/30

+ 기본 보상 : 음격 1단계 상승

+ 우승 보상 : 퀴네의 사슬 갑옷

+ 자유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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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이 닷새 밖에 남지 않은 지금 나는 하루 평균 18번의 결투를 치른 상황이었다. 물론 실제 결투 횟수는 이보다 많았다. 다만 중복 집계가 안되다 보니 실제 전투 인원 숫자보다 조금 적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많은 숫자였다.

섹스였다면 이미 한 줌의 골수로 녹아버렸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섹스 배틀은 섹스가 아니었고, 확실히 체력적이나 정신적으로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그 덕분에 꽤 많은 결투를 치르고 모두 승리할 수 있었다.

다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한 장의 인증샷 때문에.

나는 보스 앱을 닫고 인터넷 창을 열었다. 거기에는 리아가 알려준 외국 사이트의 글 하나가 열려 있었다. 보스 앱을 캡처 해 놓은 한 장의 사진을 보는 순간 내 미간에 깊은 골짜기가 생겼다.

"이 새끼는 밥만 처먹고 결투만 하나. 고작 보름 된 애가 무슨 240명을 넘게 보냈어?"

슬프게도 더 이상 자유 임무는 나 혼자 독점하는 게 아니었다. 이제 다른 참가자들도 슬슬 평민으로 승급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비록 내 레벨에 절반에 불과하지만, 인프라의 차이로 인해 나보다 훨씬 빠른 페이스로 임무 카운트를 늘리고 있었다.

자유 임무에 대해 한 마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리아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은근슬쩍 미리 정리해 놓은 1차 직업과 2차 직업의 기술 관련 리포트를 리아에게 건네며 다른 인증 사례를 부탁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서운함을 토로했지만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리아의 꽤 좋은 수완 덕분에 나는 이 프랑스 놈 말고도 또 다른 이들이 나를 맹렬히 추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짜 세상은 넓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사건이었다.

"후우……."

"바닥 꺼지겠어요. 무슨 한숨을 그렇게 쉬어요?"

"응? 언제 왔어?"

"지금 왔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사람 오는 걸 몰라요?"

조금 쌜룩한 말투의 주인공은 리아였다.

여전히 서운함을 표시하며 거실로 들어선 리아가 2층에서 날 관찰하고 있는 미야프에게 인사하고는 내 옆에 앉았다.

"또 그거 보고 있었어요?"

"외국이라도 가야하나 싶다. 이러다가 역전 당하겠어."

"진작 알려줬으면 제가 무슨 대책이라도 세웠잖아요."

"괜히 나 혼자 적용되는 걸 알려줬다가 내 정체가 밝혀질 까봐 그랬지. 그래서 미야프도 공개하지 않은 거잖아."

나도 이유가 있었다. 그저 리아가 싫어서 알려주지 않은 게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내 개인 신상을 온 국민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리아도 내 말의 진위를 모르지 않았는지 입술을 삐죽거렸을 뿐 더 이상 무어라 하지 않았다.

"알았어요. 그래도 이제 며칠 안 남았잖아요? 아슬아슬하지만 괜찮을 거 같던데. 아니에요?"

"아니야. 이젠 결투 신청이 안 들어와. 소문이 났나 봐."

"아……. 소문이 나긴 났죠. 요즘 어썸 바나나에 대한 이야기가 파다하니까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리아의 대답에 나는 또 다시 한숨을 쉬었다. 정말 가슴이 답답했다. 다른 걸 몰라도 이번 자유 임무의 보상만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진짜 사람일은 모르겠어요. 레벨이 높은 게 오히려 페널티로 작용할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말이다. 중복도 안 되니 방법도 없고. 답답하네. 답답해."

"흐음……."

리아가 심각한 내 표정을 보며 신음을 흘렸지만 그런다고 해결책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잠시 내 눈치를 살피던 리아가 이내 다시 말문을 열었다.

"아! 그것보다 고영 씨. 전에 말했던 파파라치 방지용 스카프 말이에요."

"음? 아, 그거. 구할 수 있겠어?"

"네. 이야기가 잘 돼서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기능을 추가하면 꽤 비싸질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얼만데?"

"아, 생각보다 싸다고 해야 하나. 전에는 되게 비싼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동안 진척이 많이 돼서 가격이 많이 내렸어요. 스카프 한 장에 약 300파운드? 원화로 하면 43만 원 정도 해요."

에게?

생각보다 얼마 하지 않았기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답해 주었다.

"난 또 몇 억 한다고. 전에 말했던 추가 기능까지 해서 주문 해줘.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까. 최대한 좋은 걸로."

담담한 내 대답에 순간 리아의 얼굴이 살짝. 정말 아주 살짝 일그러졌다.

"너 뭐야, 그 표정?"

"내가 뭘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말은 안했지만, 표정으로 말했잖아. 진짜 재수 없다고."

내 추궁에도 불구하고 리아는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그럼 그렇게 알고 계약을 진행 할게요. 대금은 바로 준비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실래요?"

나름 발뺌하려는 것 같았지만 소용없는 몸부림이었다. 이렇게 말을 돌리는 게 결정적인 증거였다.

물론 그렇다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수는 없었다.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계약 진행 의사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계좌나 줘. 바로 보낼 테니까. 그나저나 물건은 괜찮은 거야?"

"직접 확인……한 건 아니고. 파견 나가 있는 우리 회사 특파원이 대신 확인을 해 줬어요. 여기 그 사람이 찍어서 보내준 사진이에요."

"오! 이거 괜찮네? 전에는 심령사진 같아서 좀 그랬는데. 이걸 쓰면 스카프밖에 안 나오는 건가?"

"네. 스카프의 직물 소재가 빛을 반사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그래요. 그래서 다른 주변 물체는 나오지 않아요. 물론 완벽한 건 아니지만."

"그게 어디야. 아무튼 부탁할게."

이어진 내 취향과 관련된 내용을 수첩에 다 적은 리아가 수첩을 주머니에 넣더니 은근슬쩍 일전에 지나가듯 제안했던 걸 다시 한 번 물었다.

"근데 고영 씨. 전에 말했던 그거 정말 관심 없으세요?"

"안 돼. 우리나라는 속인주의라니까? 그리고 내가 네덜란드 방송에 출현해도 우리나라 법은 피할 수 없다니까? 전에도 말했잖아. 우리나라는 음란물 찍기만 해도 범죄가 된다고."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 입장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아니, 이건 제안이 아니라 함정에 더 가까웠다.

내 냉정한 대답에 리아가 입술을 삐죽이며 토라진 얼굴로 변했다.

"음란물이라뇨! 아니거든요? 섹스 배틀 관련 프로그램이거든요?"

"그게 그거지. 그리고 내가 가서 교관으로 참여한다고 쳐. 그래도 내가 섹스 배틀을 하기는 해야 할 거 아냐. 시범이라든가. 뭐 그런 걸로."

"그건 그렇죠……."

"그래서 안 되는 거야. 그러면 내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잖아?"

"왜요? 얼굴 가리고 하면 되잖아요. 왜 고영 씨 정체가 드러난다고 확신해요?"

"하……. 리아. 당연한 거 아냐?"

영문을 모르겠다는 리아의 표정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잠시 숨을 고른 나는 리아의 어리둥절한 눈동자를 똑 바로 보며 말을 이었다.

"원샷원킬이야. 내 공격을 버틸 사람이 있을 거 같아?"

"……그건 모르는 거예요."

"아니. 아는 거야. 결투를 좀 했더니 업적이 생겼거든. 일종의 결투 스페셜리스트라고 해야 하나."

"네?"

"아무튼 아직은 아냐. 엑스칼리버는 자비가 없거든."

단호하기 그지없는 내 대답에 결국 리아가 어깨를 늘어트렸다. 다행히 더 이상 귀찮게 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 시간이 오늘까지겠지만.

어쨌든 리아의 제안을 받을 수는 없었다. 법적인 문제는 둘째 치고 시간 낭비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굳이 네덜란드에 가서 쓸데없이 TV쇼에 출현하느니, 차라리 한강에 있는 허수마비를 사냥하는 게 더 나았다.

"그나저나 얼른 왔음 좋겠네. 그래야 허수마비를 사냥하지. 세계 최초로."

"저기요, 고영 씨.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왜 허수마비를 사냥하시려는 거예요? 따로 경험치를 줄지 안줄지도 모르는데."

"Because it is there."

"네?"

"그냥 그게 거기 있으니까. 굳이 모든 일에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

싱거운 내 대답에 리아의 얼굴이 순간 멍해졌다.

실제로 내가 허수마비를 사냥하려는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저 지금까지 상대한 몽마와 인간 중 가장 활력이 많은 개체이기도 했고, 또한 원킬을 내지 못했다는 것에 화가 나기도 했다. 다만 이것은 이유라고 할 게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그냥 잡고 싶었다.

길을 걷다가 발밑에 있는 작은 돌멩이를 무의식적으로 걷어차는 것처럼.

여전히 리아는 내 변덕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지만, 굳이 더 이상 부연설명을 하지 않았다.

리아의 얼굴에서 눈을 떼고 다시 휴대폰에 눈을 돌릴 때였다.

딩동. 쾅쾅!

조금 요란한 소리가 우리 집 현관에서 터졌다.

나는 혼자 고민에 빠진 리아를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에 있는 인터폰을 확인했다.

"쟤들이 왜 왔지?"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얼굴 두 개가 작은 화면에 잡혔다.

조금 의아했지만 일단 문을 열어주었다.

쿵쿵 거리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이내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화장품 냄새가 내 코를 간지럽혔다.

"오빠, 안녕?"

"오빠. 안녕하세요."

"어, 그래. 근데 니들이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당연하다는 듯 슬리퍼를 찾아 신으며 거실로 향하는 두 여자의 정체는 바로 지연이와 현아였다.

내 말을 자연스럽게 씹으며 거실로 두 여자가 들어갔을 때 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고개를 돌리니 지연이와 현아가 푸른 눈의 리아를 발견하고 얼음처럼 굳어 있는 게 보였다.

"큭! 짜식들. 외국인 처음 봐?"

실소를 터트리며 두 여자에게 다가가 농담을 건넸지만, 그녀들은 쉬이 당혹스러움을 걷어내지 못했다.

반면 리아는 고개만 갸웃거렸을 뿐 딱히 당황한 얼굴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 끝에 멈춘 두 여자들 앞으로 걸어가더니 이내 예의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리아 쿠퍼입니다."

조금 어눌한 발음이었지만 알아듣는 데는 문제가 없는 우리말이었다.

그제야 소연이와 현아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숙였다.

"하, 하이! 헬로우! 나이스 투 미츄!"

"……웰컴!"

난데없는 소연이와 현아의 영어 회화 콜라보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슬쩍 두 여자들의 뒤로 걸어간 나는 그녀들의 머리에 손을 얹히며 말했다.

"니들 뭐하냐? 그리고 현아야. 니가 왜 웰컴인데? 여기 우리 집인데?"

"오빠. 누구야?"

"설마 애인?"

"애인은 무슨. 그냥 흠……. 매니저?"

나름 리아와 내 관계를 함축한 설명이었지만, 소연이와 현아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시시콜콜하게 다 설명하는 건 귀찮았기에 나는 대충 첨언을 하며 그녀들을 소파로 이끌었다.

"그냥 친구야. 서로 도와주는. 그것보다 너희들 진짜 무슨 일이야?"

"고영 씨.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친구 분들이야 이야기 나누세요."

"응? 더 있다가도 되는데."

"아니에요. 제대로 된 계약도 이행 못하고 있는데. 다른 거라도 열심히 해야죠. 그럼 오늘 중으로 계좌를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어, 부탁해."

묘하게 날이 선 것 같은 리아의 얼굴과 목소리였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내게는 그녀보다 아직도 얼어 있는 소연이와 현아가 더 소중했으니까.

리아를 현관까지 배웅하고 돌아오자 그제야 소연이와 현아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았다.

내가 소파에 앉기 무섭게 소연이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어이, 박고영 씨. 능력 있는데?"

"흰소리 하지 말고. 무슨 일로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 왔냐니까."

"어머? 쑥스러워하는 거예요? 고영 오빠도 참. 우리 그런 걸로 내외하는 사이 아니잖아요?"

"현아야. 너까지 그러지 마라. 가뜩이나 요즘 피곤한데."

소연이에 이어 현아까지 날 놀리는 모습에 나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다행히 내 능청이 먹혔는지 현아가 토끼눈을 뜨며 물어왔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은 무슨. 그냥 보스 때문에. 사냥감이 없거든."

어깨를 으쓱이며 내가 답하기 무섭게 현아의 턱이 빠졌다.

"헐, 미친."

"야. 그래도 오빤데. 근데 정말 미친. 미쳤다, 저 인간. 그치?"

소연이도 현아와 동참하며 미친놈 보는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는 시샘과 분함이 가득한 두 여자의 눈빛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내가 무어라고 해 봤자 나만 손해였다. 이럴 때는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게 좋다는 걸 그간 경험을 통해 체득한 상태였다.

내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성을 내던 소연이와 현아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울상을 지었다.

"씨……. 평민으로 승급해서 복수하러 왔는데."

"언니. 돌아가자. 우리는 그냥 바릴 운명인가 봐."

"복수? 나야 언제나 환영이지. 어차피 레벨도 같잖아?"

어차피 내 레벨은 소연이와 현아에게 숨길 이유는 없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연이가 서슬 퍼런 눈빛을 뿌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걸 말이라고 해! 사냥감이 없다며! 그럼 40레벨이 넘었단 소리잖아!"

"맞아요! 맞아요!"

"아니지. 평민이라며? 그럼 20레벨일 테고. 둘이 합치면 40레벨이잖아? 그럼 동렙 아냐?"

내 중국식 억지에 소연이와 현아가 입만 뻐끔거렸다.

잠시 후.

울분이 담긴 소연이와 현아의 주먹이 내 가슴으로 날아왔다.

두 여자의 야무진 주먹이 내 가슴에 닿는 순간 둔탁한 소리와 기묘한 소리가 연이어 터졌다.

퍽! 지잉!

"꺄아악!"

"아악!"

나는 만인전 소속이었다. 장난 수준을 아주 조금 넘어선 두 여자의 공격은 말 그대로 보스에게 공격 판정을 받아 버렸다. 소연이와 현아가 반발력에 휩쓸려 그대로 뒤로 나뒹굴었고, 꼴사나운 꼴로 소파 아래에 처박히고 말았다.

"아, 나 랭커였지."

"으으……."

"어흑. 나쁘다. 진짜 나쁘다."

근육통을 호소하는 소연이와 현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였다.

순간 나도 참 얄미운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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