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07화 (107/200)
  • <-- Pink Mike -->

    ***

    결투장.

    원래부터 보스 앱에 있던 항목이었다. 다만 그동안 참가자들이 등록을 거의 하지 않아 있으나 마나한 기능이었을 뿐이었다. 그랬던 것이 시간이 흐르자 자연스레 조금씩 조금씩 활성화 되었다.

    근래에 들어서 꽤 활성화된 결투장은 간단했다.

    조건에 부합하는 불특정 참가자에게 결투 신청을 받고, 승낙하면 대전 일정이 잡히는 방식이었다. 이때 승낙할 경우 가계약처럼 인식되어 결투를 반드시 치러야했다. 만약 48시간 내에 치르지 않을 경우 부전패를 당하며 경험치가 깎였다.

    굳이 대전을 잡는 이유는 명확했다.

    참가자의 안전.

    결투장을 통해 대전이 잡힐 경우 그 순간부터 두 대전자는 임시적으로 만인전에 등록된 참가자처럼 인식됐다. 한 마디로 몸에 위해를 가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며 불특정 다수와 결투를 치르는 것에 대한 안전장치가 되어 주었다.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결투장이 더욱 활성화 됐다고도 할 수 있었다.

    결투 신청 조건은 음격, 지역, 성별 등 꽤 다양했지만, 나는 두 가지밖에 등록하지 않았다.

    하나는 15단계 이상의 음격이었고, 다른 하나는 경기 지역 이내였다.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한 참가자가 결투를 제한하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나는 결투를 승낙했다.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핑크 마이크라는 별명으로 결투장에 등록한 여자의 결투 신청을 수락한 나는 임시로 나타난 채팅창에서 그녀와 자잘한 추가 조건을 협의하기 시작했다. 보통 세팅이라 부르는 이것은 일종의 약속 시간과 장소를 잡는 걸로 이해하면 쉬웠다.

    까다로운 보스는 장소와 시간을 입력해야 해당 결투를 결투장에 등록했다. 기권에 대한 기준을 잡기 위한 일종의 제한 장치였지만, 은근히 귀찮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핑크 마이크는 쿨하게 내가 지정한 장소를 승낙했다.

    [핑크 마이크 : 그럼 등록할게요.]

    [어썸 바나나 : 알겠습니다.]

    핑크 마이크가 제안한 시간과 장소를 선선히 받아들이자, 이내 나와 핑크 마이크의 결투가 결투장에 등록됐다.

    약속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에 나는 옷을 챙겨 입고 바로 집을 나섰다. 내가 집을 나가려고 할 때 미야프가 소파 앞에 숨고 날 힐끔 거렸지만 다가오거나 떼를 쓰지는 않았다. 관심은 말 그대로 관심일 뿐이었다.

    어차피 허수마비와 일전을 치르는 게 아닌 이상 미야프를 대동한 채 섹스 배틀을 할 생각은 나도 없었다.

    한 시간 뒤 나는 핑크 마이크가 예약해 놓은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다행이네."

    솔직히 결투 장소로 호텔이면 감지덕지였다.

    그동안 대부분 결투 장소는 모텔이었다. 조금 유난한 내 성격 상 모텔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미 결정된 위치를 바꿀 순 없었다.

    나름 이유가 있었다.

    처음 나는 호텔을 예약하고 그곳에서 결투를 치렀다. 문제는 결투에서 이긴 다음이었다. 내 무자비한 공격을 감당할 참가자는 없었고, 당연히 일격에 기절한 여자는 꽤 오랫동안 호텔 방을 차지했다.

    회전율이 좋지 않은 건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결투 신청자에게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내 깔끔 떠는 성격이 많이 죽었지만,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청결과 효율 중 나는 효율을 선택해야 했으니까.

    그간 서러움 아닌 서러움을 회상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예약한 방문 앞에 도착했다. 일정 거리 안에 결투 대상이 진입하면 보스 앱을 통해 알림이 뜨기에 내가 문 앞에 서기 무섭게 문이 열렸다.

    문 사이로 분홍색 마이크가 그려진 가면이 보였다.

    "반가워요.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나 역시 엘리베이터에서 내기 무섭게 리아가 구해주었던 가면을 썼기에 얼굴을 숨길 수 있었다.

    방안은 조금 어두웠지만, 그렇다고 앞을 못 볼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몇 걸음 옮겼을 때 핑크 마이크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한 잔 할래요? 아니면 바로 저기로?"

    핑크 마이크는 한 손에 술잔을 들고 있는 채로 다른 한 손으로 침대를 가리켰다.

    "차를 가져와서 술은 어렵겠네요. 바로 시작하죠."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어차피 저도 일이 있어서 술을 마실 수는 없어요."

    핑크 마이크가 술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입고 있던 가슴에 손을 가져갔다. 결투가 끝나야 다른 참가자에게 신청을 받을 수 있기에 나도 서둘러 옷을 벗었다. 금세 나와 핑크 마이크의 가면을 제외하고 몸에 걸치고 있는 게 사라졌다.

    나보다 앞서 가운을 벗어 던진 핑크 마이크가 침대로 걸어가는 걸 슬쩍 보니 꽤 몸매가 좋았다.

    30대는 아니겠네.

    관리의 힘이 아니라 그냥 싱그러운 육체였다. 팔과 턱에 주름도 없었고, 발바닥과 팔꿈치로 매끄럽기 그지없었다.

    잠시 잘 익은 복숭아 같은 핑크 마이크의 엉덩이를 감상하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침대로 향했다.

    얼른 끝내야지.

    나는 이미 몽마 사냥은 반쯤. 아니, 9할쯤  포기한 상태였다. 열심히 정보를 수집한 리아가 40레벨까지 몽마 정보를 구해왔지만, 이미 나는 40레벨이었다. 게다가 40레벨 몽마는 한 번 사냥하면 하루 뒤에나 리젠 됐고, 그나마도 군집을 이루는 게 아니라 듬성듬성 떨어져 있었다.

    결정적으로 경험치가 400밖에 안 주는 게 문제지.

    이제 나는 결투를 통해 레벨업을 해야 하는 신세였다. 몽마 사냥을 통해서 레벨을 올리려면 한 세월이었고, 차라리 레벨 페널티가 없는 결투가 훨씬 나았다. 20레벨 참가자를 절정으로 보내는 400 경험치를 얻을 수 있으니까.

    핑크 마이크가 편한 자세로 누워있는 침대에 막 다다랐을 때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결투에서 지면 이전 레벨의 필경 20%가 날아가지만, 이기면 10%밖에 못 얻는 걸 보면. 이거 꼭 다단계 같네.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랬다. 일정 레벨 이상이 되면 몽마를 통한 사냥이 힘들어지고, 나처럼 결투를 통해 레벨을 올려야했다. 이것은 결국 다른 참가자들이 애써 몽마를 사냥해서 모은 경험치를 강탈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씁쓸한 기분이 들자,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뱉고 말았다.

    "……고렙들의 치킨 게임인가."

    "무슨 말이죠?"

    "아, 미안합니다. 잠시 딴 생각을 하다 보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좀 씻고 오시는 게 어때요?"

    팔짱을 낀 채 상체를 침대 머리에 기댄 핑크 마이크가 살짝 마땅찮다는 기색을 드러냈다. 어느 정도 이해는 됐다. 나도 상대가 더러우면 싫었으니까.

    사실 집을 나서기 전에 막 샤워를 했었기에 또 씻을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나는 어차피 금방 결투가 끝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잠깐 동안 두 번의 샤워를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고집 아닌 고집을 부리게 됐다.

    "금방 끝납니다. 냄새납니까?"

    "그건 아니지만……. 알겠어요. 그럼 시작해요."

    여전히 마땅찮은 기색을 드러내는 핑크 마이크의 대답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침대 위로 올라가며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나와 그녀가 접촉하는 순간 보스가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당연히 나는 우선 공격권을 획득했고, 자연스럽게 핑크 마이크의 무릎을 잡고 옆으로 벌렸다. 스르륵 핑크 마이크의 가랑이가 벌어지며 그녀의 음부가 고스란히 내 눈앞에 드러났다.

    내가 삽입을 준비하는 사이 핑크 마이크는 살짝 패닉에 빠진 눈빛이었다. 딱히 당황스러운 신음을 내뱉은 건 아니지만 분명 그녀는 당황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우선 공격권을 얻을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이 여자도 똑같네.

    핑크 마이크의 분위기를 캐치한 나는 조소가 나왔다. 대부분 결투를 시작하면 그녀처럼 당황했다. 분명 조건을 통해 내 레벨이 더 높을 가능성도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그 점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말없이 차분하게 자세를 잡을 뿐이었다. 상대가 당황하든 말든 나와는 상관이 없었다.

    핑크 마이크의 벌어진 가랑이 사이에 자리를 잡고 엑스칼리버의 조준이 끝나는 순간.

    푸욱!

    "흑!"

    나는 그대로 흠뻑 젖은 핑크 마이크의 핑크 안에 엑스칼리버를 밀어 넣었다.

    지금까지 대부분. 아니, 모든 참가자들은 내 일격에 몸을 튕기며 근육을 긴장시키는 모습이었다.

    핑크 마이크는 달랐다. 작은 신음을 내뱉기는 했지만 꽤 건조한 신음이었다. 그녀는 크게 몸을 출렁이지도 않았고, 발가락을 오므리지도 않았다. 그저 숨을 들이켠 채 아랫입술을 살짝 깨무는 게 전부였다.

    의외로 레벨이 높나?

    고개가 갸웃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어차피 결과는 변하지 않을 테니까.

    의아함을 지우며 나는 거칠지도, 그렇다고 부드럽지도 않은 삽입을 이어갔다. 엑스칼리버는 핑크 마이크의 속살을 마구잡이로 파헤쳤고, 그녀의 속살은 더욱 더 눈물을 흘렸다.

    찔걱, 찔걱.

    "흑! 흐윽!"

    꽤 많이 음란한 모습과 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마지막 공격임을 느끼며 최대한 깊숙이 핑크 마이크의 속살을 파고들었다.

    그 순간 핑크 마이크의 입이 크게 벌어지며 지금까지 내게 패한 이들과 같은 모습을 취했다.

    "어헉……!"

    일부러 깊숙이 핑크 마이크의 몸속을 헤집으려 하다 보니 자연스레 내 상체가 그녀의 상체와 근접해 있었다. 덕분에 나는 그녀가 뻗는 손을 피하지 못했다. 그녀는 내 목을 감싸더니 이내 내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파묻었다.

    유난히 검은 핑크 마이크의 젖꼭지가 내 눈앞에 자리하는 순간 그녀의 다리가 내 허리를 휘감는 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암컷 사마귀에게 잡아먹히는 모습이 됐지만, 나는 수컷 사마귀가 아니었다.

    398, 2421, 2513, 413, 1888, 2287.

    비록 추가 삽입은 터지지 않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핑크 마이크'가 절정에 올랐습니다.]

    ['380 경험'을 획득합니다.]

    [업적 '석녀의 절정'을 획득합니다.]

    [업적 '이백전 이백승'을 획득합니다.]

    [결투를 종료합니다.]

    보스의 안내를 들으며 놀란 얼굴이 된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핑크 마이크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분명 힘을 주었지만, 그녀의 손이 풀리지는 않았다. 풀리기는 고사하고 내가 힘을 줘서 몸을 일으키자, 오히려 그녀의 몸이 따라 올라왔다.

    여름날 나무에 붙은 매미를 따라하는 핑크 마이크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기절한 여자를……어?"

    억지로 팔을 풀다가 여자가 다칠까 염려된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침대에 엎드렸다. 조심스럽게 몸을 숙이며 살짝 고개를 돌려 핑크 마이크의 얼굴을 확인해 보았다. 그녀는 기절하지 않았다.

    약간 흐리멍덩하기는 했지만, 핑크 마이크의 눈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이런 적은 처음…….

    "아. 석녀."

    뒤늦게 업적을 달성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것도 잠시 나는 손을 뒤로 돌려 핑크 마이크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깍지 낀 손이 느껴졌다. 나는 탭을 치듯 그녀의 손을 탁탁 치며 말했다.

    "깨어 있으면 이것 좀 풀어 줘요."

    "아……."

    아쉬운 탄성을 흘리며 핑크 마이크가 손을 풀었다.

    나는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며 침대 위에 엉덩이를 붙였다. 내가 몸을 세우고 앉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기적을 목격한 사람처럼 그녀는 허공만을 바라 볼 뿐이었다.

    핑크 마이크가 결투의 후희를 즐기든 말든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 다른 것에 내 신경이 쏠려 있었다.

    그래도 얼추 1만에 가까운 데미진데. 어떻게 저렇게 멀쩡하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다.

    그동안 방금 받은 업적처럼 나는 200번의 결투를 했고, 모두 승리했다. 그 과정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주는 데미지가 크면 클수록 상대는 잠시 내게 호감을 갖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보름 전 제주도에서 모지현이나 조강혜가 잠시나마 혼동하기도 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까지 공격을 끝낸 뒤로 나는 조금 귀찮은 여자들의 구애를 받아야했다. 물론 처음 이 사실을 깨달은 뒤로 절정에 보낸 뒤 바로 도망쳤지만.

    어쨌든 그동안 수백 번의 임상 경험을 통해 내가 상대 전체 활력의 3배가 넘는 피해를 주면, 상대는 내게 무조건 적인 호감을 보인다는 걸 알았다. 그 정도가 배가 되면 될수록 상대가 갖는 감정의 크기가 커진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렇기에 지금 상황은 말이 되지 않았다. 아니, 말이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당신. 피가 도대체 얼마야?"

    조금씩 정신을 차리는 핑크 마이크가 내 물음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핑크 마이크의 활력은 최소한 3,300이 넘었다.

    "고작 19레벨에 활력이 3천이 넘는 경우가 있을 리가……설마!"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고개를 젓던 내 눈이 커졌다.

    어느새 절정의 여파에서 벗어난 핑크 마이크가 내 목소리에 반응했다. 그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애정 어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여자. 체력 괴물이야.

    확실했다.

    핑크 마이크는 더 이상 올릴 수 없을 정도까지 체력을 올린 게 분명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