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01화 (101/200)
  • <-- Cat Fight -->

    ***

    사람이 바뀌기라도 한 것일까.

    결투가 끝난 이후로 모지현의 태도가 확실히 이상했다. 정확하게는 날 대하는 태도가 이상해졌다. 그녀의 경호원이나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 나를 대하는 태도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온도 차이가 극명했다.

    그 증거 중 하나로 나는 수억을 호가하는 비싼 스포츠카를 모지현 대신 몰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 날 계속 흘끔거리는 모지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조금 사나운 말투로 쏘아 붙이고 말았다.

    "뭡니까? 할 말 있으면 해요. 그렇게 훔쳐보지 말고."

    "아니, 아니. 그게요. 드릴게 있어요."

    드릴 거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말았다. 자신감의 화신이었던 그녀가 존댓말을 쓴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분명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문제가 생길 건덕지라고는 결투밖에 없기에 내 속은 더욱 답답해졌다. 아무리 나라도 이러면 결투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누가 내게 간섭하는 게 싫은 것만큼 나는 누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도 싫어했으니까.

    그렇다고 모지현에게 대놓고 묻자니,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괜히 물었다가 코가 꿰일 수도 있었고, 재수 없으면 그녀의 고분고분한 태도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최소한 오늘까지는 지금처럼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이율배반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에 나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귀족의 위엄에 넉다운 된 것도 아니고. 도대체 이유가 뭐지?

    입을 다문 상태에서도 고민은 계속 됐다. 그 놈의 호기심은 이 와중에도 식을 줄 몰랐다.

    내가 말없이 고민하고 있을 때 모지현이 쭈뼛쭈뼛한 모습으로 말을 꺼냈다. 그녀답지 않은 정말 조심스럽고 공손한 태도에 내 눈살이 또 찌푸려졌다.

    "저기, 고영 씨."

    언제 봤다고 고영 씨라는 지.

    은근슬쩍 친근한 호칭을 부르는 모지현의 모습에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속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낼 정도로 난 어수룩하지 않았다.

    되도록 담담한 표정과 말투로 모지현의 부름에 응답했다.

    "말해요. 어디 불편한데 있어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드릴게 있다고요."

    아, 그랬지.

    얼마나 내가 딴 생각에 몰두했는지 깨달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살짝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랬죠. 그것보다 바람 좀 쐴 까요?"

    "네. 편할 대로 하세요."

    머리가 복잡한 상황에서 운전대를 잡다가 사고를 낼 것 같았다.

    다행히 모지현은 내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잠시 후 나와 모지현은 해안 도로에 설치 되어 있는 등받이 없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그나저나 줄게 있다니. 무슨 말이에요?"

    "아! 이거요. 원래 그 계집애랑 싸우기 전에 드리려고 했던 거예요."

    모지현이 자기의 휴대폰을 내게 보여주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녀의 미소를 볼 수 없었다. 내 눈에는 오직 그녀의 휴대폰에 떠 있는 두 상징의 정보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나의 상징은 내가 잘 알고 있는 상징이었고, 다른 하나의 상징은 처음보지만 내게 필요한 상징이었다.

    풍차 관리인의 상징과 방탕한 광대의 상징.

    이 두 상징은 모두 삽입 공격의 위력을 올려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풍차 관리인의 경우 15%의 데미지 증가가 있었고, 방탕한 광대는 이보다 낮은 10%의 데미지 증가가 있었다.

    그렇게 구하려고 해도 더 이상 구할 수 없었던 상징의 등장에 놀란 나는 모지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말았다. 나란히 앉아 있는 상태에서 얼굴을 돌리니 자연스레 내 얼굴과 그녀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뒤늦게 내 거친 숨결을 느낀 모지현이 쑥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며 내 시선을 피했다.

    부끄러워하는 모지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자칫 잘못했으면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아 버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뜨거운 기운이었다. 아무래도 나도 남자이긴 남자인가 보다.

    다행히 실수를 범하지 않은 나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고 진심을 담아 답했다.

    "고마워요. 잘 쓸게요."

    예의 상 한 번 거절하는 행동 따위는 없었다.

    철판을 얼굴에 깔고 답하는 내 모습에도 불구하고 모지현은 고개를 끄덕일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모지현에게 두 개의 상징을 넘겨받은 나는 그대로 상징을 장착했다. 이로써 8개의 제단이 모두 채워졌다. 새로운 상징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40레벨이 되거나, 기존의 상징을 파괴해서 자리를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눈앞의 여자가 재벌가의 자제가 아니었다면 그냥 키스를 퍼부었을 정도였다. 물론 언제 본래 성격으로 돌아갈지 모르는 로열패밀리를 건들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대가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모지현 씨랑 내기한 사람을 제대로 보내겠습니다."

    "아, 음……. 네. 부탁할게요. 그리고 그냥 지현이라고 부르셔도 되는데."

    살짝 망설이는 기색이 모지현의 얼굴에 언뜻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게다가 그녀의 얼굴에는 찰나이기는 했지만, 싫다는 기색까지 피어났었던 것 같았다.

    내 자지가 뽕도 아닌데 왜 이러지?

    모지현이 나를 대하는 반응은 확실히 이상했다. 단순히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오르가즘을 느끼게 해 준 상대라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알 수 없기에 가슴이 답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하루라도 빨리 모지현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그 바람은 의외로 빨리 이루어졌다.

    외딴 산속에 있는 고풍스러운 별장에 들어서는 순간 모지현이 진짜 모지현으로 돌아왔다.

    "어머? 지현 씨. 일찍 왔네요?"

    "주인공이니까요. 잘 지냈죠?"

    "그럼요. 오늘 기대할게요."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별장에 들어서기 전 모지현이 건넨 가면을 쓴 나는 모지현이 본모습으로 돌아가 회원들과 대화를 나누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쓸 수 없었다. 1층 전체가 하나의 공연장처럼 꾸며진 모습에 넋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확실히 별장의 구조는 신기했다.

    중앙에는 검은 원형 무대가 있었고, 그 옆으로 소파가 둥그렇게 둘러치고 있었다. 심지어 한쪽에는 자쿠지가 보글보글 기포를 토해냈고, 입구 반대쪽 벽에는 갖가지 술이 가득한 미니바가 자리 잡고 있었다. 비록 미니가 미니 같지 않았지만.

    방안 곳곳에 있는 침대와 기구들을 살펴보고 있을 때 누가 내 손을 잡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모지현이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그녀의 맞은편에 있는 여자를 발견하고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험험."

    헛기침을 했지만 이미 늦었다.

    다행히 내 얼굴에 깔린 철판은 처음 보는 사모님들의 시선에도 녹아내리지 않았다.

    나는 정중하게 오른손을 사선으로 내리며 허리를 굽혔고, 별장에 오기 전 모지현의 충고대로 오늘 모임에서 쓸 닉네임을 이름 대신 밝혔다.

    "반갑습니다. 어썸 바나나입니다."

    "풉!"

    "호호호!"

    모지현의 앞에 서서 날 위아래로 감정하듯 살펴보던 사모님들이 깔깔 거리며 웃었다. 심지어 모지현도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끅끅 거릴 정도였다.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거리는 걸로 소개를 마쳤다.

    숨넘어가듯 폭소를 터트리던 사모님 중 한 명이 간신히 웃음을 그치곤 내게 손을 내밀며 자신을 소개했다.

    "이상은이라고 해요.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미스터 어썸 바나나."

    "반갑습니다. 그런데 저만 닉네임을 씁니까?"

    "아뇨. 오늘 이곳에 초대된 남자들은 모두 가명을 써요."

    "이거 성차별입니다."

    내 농담에 또 다시 사모님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잠깐 보았음에도 확실히 그녀들은 젊어 보였다. 아니, 이너 서클 중 젊은 축에 속하는 여자들이 만든 모음이니 젊은 건 당연했다. 다만 모지현처럼 자신들의 나이보다는 훨씬 젊어 보였다.

    역시 돈이 좋구만.

    그 뒤로 나는 모지현의 손에 이끌려 18명의 여자들과 통성명을 나누었다. 물론 이름을 다 기억할 필요는 없었다. 이 자리는 이름보다 몸을 더 기억하는 자리였으니까.

    간단한 통성명을 끝낸 나는 모지현과 함께 미니바라고 칭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바에 앉았다. 그녀가 주로 마시는 술을 여자 바텐더에게 시키는 사이 나는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모지현이 살짝 뚱한 목소리로 물었다.

    "뭘 그렇게 봐요?"

    "주인과 개요."

    직설적인 내 대답에 오히려 모지현이 놀라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내 누구도 내 말을 못 들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더니, 힘차게 고개를 돌려 바텐더를 노려보며 주의를 주었다.

    사람들과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또 다시 본래의 모습을 잃은 모지현의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뭘 그렇게 놀래요? 그냥 농담인데."

    "……농담 아니잖아요."

    "농담 맞아요. 그것보다 스무 명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맞아요. 스무 명. 그 계집애가 항상 늦게 와요. 재수 없는 년. 어머!"

    "됐어요. 이 자리에서 무슨. 그냥 대놓고 쌍년이라고 해도 돼요."

    괜히 자기가 말해놓고 놀라는 모지현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내가 손을 저었다. 다행히 내 거리낌 없는 태도가 먹혀들었는지 그녀는 방긋 웃으며 내게 황금빛 술이 든 잔을 건넸다.

    내가 막 모지현이 건넨 술잔을 받아 입으로 가져갈 때였다.

    "호스트가 너무 늦었잖아요! 어서 와요, 강혜 씨."

    "어머, 미안해요. 갑자기 급한 회의가 있어서 그랬어요."

    "주말인데도 그래요?"

    "그러게 말이에요. 요즘 너무 바쁘네요, 호호!"

    가식의 결정체가 느껴지는 대화소리는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까지 들렸다.

    겉과 속이 다른 대화 소리에 고개를 저은 나는 그대로 술잔을 비웠다. 그제야 답답함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필요에 의해 찾아왔지만, 영 탐탁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었다.

    테이블에 잔을 놓고 모지현을 바라보니 그녀의 눈에서는 이미 불통이 튀고 있었다.

    나는 모지현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며 그녀가 흥분하지 않도록 했다.

    "저 여자가 그 쌍년?"

    "풋! 맞아요. 그 쌍년이에요."

    나와 모지현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호스트가 확인했는지 성큼성큼 걸어 다가왔다. 나도, 모지현도 쌍년의 존재를 느꼈지만 누구하나 내색하지 않았다. 물론 모지현과 대화는 축지법을 쓴 것처럼 순식간에 나타난 쌍년에 의해 여기서 끝내야했다.

    "어머, 지현아. 일찍 왔네? 그런데 여기서 혼자 뭐하고 있니? 같이 이야기도 하고 그러고 있지."

    "예의를 모르는 호스트라 그런지 뻔뻔하네. 그 모습도 오래가지 않겠지만."

    "글쎄, 정말 그럴까? 내가 오늘 누굴 데리고 왔는지 소문으로 들었을 것 같은데?"

    "아아. 듣기는 했어. 한 때 네가 데리고 놀던 애라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격 떨어지게 아랫물에서 놀던 애를 데리고 오면 어떡하니?"

    옴마야.

    모지현도 모지현이었지만 쌍년도 대단했다.

    두 여자는 말 속에 뼈. 아니, 식칼을 넣은 채 서로 마구 찔렀다. 진짜 피만 흐르지 않았지만 전쟁이 따로 없었다. 이미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은 지 오래였다.

    "하! 그 격 떨어지는 아이에게 박혀서 질질 싸지나 마렴."

    "격이 떨어지는 건 너도 마찬가지 같네. 아무리 그래도 싼티는 내지 말아야지. 안 그러니?"

    둘 사이의 분위기가 점점 그 열기를 더해가자, 주변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던 회원들이 흥미를 가지고 지켜봤다.

    싸우는 두 여자나, 싸움을 구경하는 여자들이나. 내 기준으로는 그냥 똑같아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내게 좋은 선물을 준 모지현이 그나마 낫기에 나는 모지현의 손을 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시간이 좀 바빠서 그런데. 얼른 시작하는 게 어때요?"

    "어머? 그랬죠. 미안해요, 고. 아니, 어썸 바나나 씨."

    "그냥 어바라 불러요. 요즘 말 줄이는 게 유행인데."

    "아예 오빠라고 부를까요?"

    나와 모지현의 대화에 주변 사람들이 작게 미소 지었다. 오직 한 사람. 쌍년만 제외하고.

    자기를 무시했다고 여겼는지 쌍년이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나와 모지현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너는 손님이랑 인사도 안 시켜주니?"

    "손님이라. 깜빡했네. 뭐가 그렇게 바쁜지 우리들을 기다리게 한 네가 손님 같아서 말이야."

    말장난이었지만 모지현의 말에는 힘이 실렸다. 특히 그녀가 우리들이라 지칭하는 게 은근히 효과적이었다.

    쌍년도 묘하게 흐르는 분위기를 모르지 않았는지 서둘러 맥을 끊으려 들었다.

    "정말 미안하지. 그래서 오늘 너랑 내기를 끝내면, 이 친구랑 같이 놀려고 했지. 아니면 따로 빌려주는 것도 가능하고."

    "흥! 고작 저걸?"

    "어머? 저거라니? 사람에게 무슨 무례니. 아, 넌 필요 없겠구나. 오늘 험한 꼴을 당할 테니까."

    "지현 씨."

    어떻게 붙기만 하면 싸움이 나는 두 여자의 모습에 결국 나는 다시 나서야했다. 남자들의 싸움은 박진감이 넘친다면 여자들의 싸움은 유혈이 낭자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모지현은 내가 손에 힘을 주자 더 이상 쓸데없는 싸움을 벌이려하지 않았다.

    물론 그냥 있을 모지현이 아니었다. 그녀는 콧대를 최대한 높인 채 쌍년에게 경고했다. 나름 같은 클럽의 회원이라 배려한다는 마음으로.

    "미리 말하지만 우리 오빠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오빠가 아니라 어빠입니다."

    "아주 만담을 하는 구나? 우리가 언제 입으로 싸웠니? 아예 바로 시작할까? 마침 무대도 비어 있는데?"

    쌍년이 모지현의 도발에 그대로 넘어가 버렸다. 그녀는 홀의 중심에 있는 검은 원통 무대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고, 그것은 나와 모지현이 바라던 일이었다.

    "좋아. 조강혜.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사형수의 소원쯤이야 들어줘야지라는 얼굴로 모지현이 답했다.

    모지현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것과 반대로 회원들의 눈동자에 흥분이 차올랐다.

    그렇게 파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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