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99화 (99/200)
  • <-- Oh Happy Day -->

    ***

    오늘 사냥은 50마리로 끝이었다. 50마리나 사냥했는데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자, 의욕이 사라지며 더 사냥하기 귀찮아졌다.

    한 타임으로 사냥을 끝낸 나는 그대로 집으로 향했고, 자정이 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리아는 의욕을 잃은 내 모습이 자기 탓이라 착각했는지 의지를 불태우며 몽마 검색을 위해 자신의 사무실로 떠났다.

    당연히 착각이었다.

    나는 결코 의욕을 잃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의욕이 끓어 넘쳤다.

    "게다가 자정이면 자유 임무 결과가 나오니까."

    자유 임무의 결과 때문에 사냥에 집중을 못한 걸 리아가 오해했지만 굳이 그녀의 착각을 바로잡아 줄 생각은 없었다. 오늘은 조금 혼자 있고 싶었고, 조용히 확인하고 싶은 것도 있었다.

    대충 씻고 나와 소파에 앉은 나는 일단 오늘 얻은 업적부터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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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마 사냥꾼]

    + 치명 증폭 10%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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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난 효과는 아니었지만 있으면 좋은 정도는 됐다.

    "사냥하는 몽마 숫자를 카운트하는 거 같은데. 규칙을 모르겠단 말이지."

    몽마를 막 절정에 보냈을 때 업적을 얻었기에 업적 달성 조건을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정확한 조건을 알 수는 없었다. 전투 기록을 모두 세어 보면 되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귀찮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 여기며 업적창을 닫았다.

    가만히 앉은 나는 하염없이 맞은 편 벽에 걸린 시계만 바라봤다.

    차칵, 차칵.

    시계의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두근, 두근.

    그때마다 내 심장이 뛰었다.

    "후우……. 우승할 수 있겠지? 지금이라도 나가서 한 마리라도 더 잡을까? 에이, 아니지. 그랬다가는 리아에게 들키면?"

    리아와 내 사이는 처음보다 확실히 좋아졌다. 다만 그뿐이었다. 그녀와 관계가 좋다고 해서 나만이 알고 있는 보스에 관한 비밀을 모두 알려주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혹시라도 사냥 중 자유 임무 달성을 하게 되면 내가 혼잣말을 하거나 놀란 표정을 지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어리숙한 리아라지만 그녀는 기자였다. 기자의 촉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일단 내가 먼저 어떤지 확인을 하고 나야, 리아에게 알려줄지 말지 결정할 수 있었다.

    오늘 사냥을 일찍 끝낸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조금 양심이 찔렸지만 똑같은 상황이 온다고 해도 같은 결정을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시계의 바늘이 하늘을 찌르는 그 순간이었다.

    "엉?"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내 입에서 멍청한 소리가 튀어 나왔다.

    아니었다.

    약간의 시간차이가 있을 뿐,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

    [1회차 자유 임무를 종료합니다.]

    [1회차 자유 임무를 집계합니다.]

    [기본 보상 '14,710 경험'을 획득합니다.]

    [음격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우승 보상 '퀴네의 사슬 투구 1개'를 획득합니다.]

    [업적 '최초의 우승'을 획득합니다.]

    [2회차 자유 임무를 시작합니다.]

    "아……!"

    짜릿한 성취감이 내 전신을 휘감았다. 그동안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나는 우승했고, 보상을 쟁취했다.

    히죽히죽 웃으며 능력창을 열었다. 당연히 속도에 5개의 능력치를 투자한 나는 업적을 확인해 보았다. 최초의 우승이라는 이름의 업적 정보를 확인하는 순간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뒤죽박죽이던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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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우승]

    + 모든 기술 숙련 시간 10% 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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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 이게 무언가 싶었다. 진짜 있으나 마나한 업적이었다. 기술 숙련도를 올려주는 거야 좋지만…….

    "……에게? 10%로 누구 코에 붙이라고!"

    사실 스킬 숙련도를 높이는 건 내게 영 실속 없는 일이었다. 내 전투 스타일은 그냥 벌리고 넣는 게 전부였다. 스킬을 거의 사용하지 않으니 숙련도를 올릴 거리가 없었다.

    떨떠름한 얼굴로 입맛을 다신 나는 업적창을 닫으며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그곳에는 내가 지난 한 달간 궁금해 죽을 뻔 했던 아이템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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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네의 사슬 투구]

    + 연격의 달인 노예 검투사 퀴네의 유품.

    + 삽입 공격 1회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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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스! 예쓰! 이예에에쓰!"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좋아 죽겠다는 게 어떤지 알 것 같았다.

    특히 내 마음을 가장 설레게 한 것은 노예 검투사라는 글자였다.

    얼른 장비창을 연 나는 퀴네의 사슬 투구를 장착해 보았다. 치명의 반지가 있던 자리가 투구 모양의 아이콘으로 변했다.

    그깟 크리 10 따위. 버려, 버려.

    치명의 반지가 없어도 내 치명도는 60이 넘었다. 굳이 치명 수치에 연연한 필요가 없었다. 그보다 내 공격 횟수가 1회 늘어나는 게 백만 배 더 좋았다.

    아, 백만 배까지는 아니지.

    어쨌든 3대 때릴 거 4대 때리게 되면, 3분의 1. 즉, 33%의 공격력이 증가한 셈이었다. 반면 치명도 10은 27%의 공격력이 증가한다고 볼 수 있었다. 크리 데미지는 치명 증폭이 늘어난 덕분에 2.7배의 데미지를 주니까.

    "어? 생각보다 별론가?"

    실제로 계산해보니 크게 차이가 나는 것 같지 않았다. 노예 계급 아이템이 평민 계급 아이템에 비해 효과가 더 높다는 건 놀라웠지만.

    자연스레 들뜬 기색이 가라앉았다.

    "아니지. 이건 평타로만 계산했으니. 실제로는 더 크지. 뭐,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물론 내 계산이 정확한 건 아니었기에 계속 침울해할 필요는 없었다.

    아쉬움을 털어낸 나는 2회차 자유 임무를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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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회차 자유 임무]

    + 최대한 많은 참가자를 절정에 오르게 하라.

    + 임무 현황 : 0/30

    + 기본 보상 : 음격 1단계 상승

    + 우승 보상 : 퀴네의 사슬 갑옷

    + 자유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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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세트 아이템이라는 것을.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물었다. 투구를 얻은 이상 갑옷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변수가 존재했다.

    결투는 상대적이었다. 내 레벨이 높다고 무조건 우승한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나보다 레벨이 낮지만, 더 많은 결투에서 승리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새로운 몽마도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앞으로 한 달간 몽마 대신 사람을 사냥하는 것도……."

    어감이 좀 이상했지만, 어쨌든 결심이 섰다.

    내 결심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주는 일이 그 순간 벌어졌다.

    [참가자의 음격 집계를 종료합니다.]

    [만인전을 개방합니다.]

    [만인전 수장에 등극합니다.]

    [칭호 '만인전의 주인'을 획득합니다.]

    이건 또 뭐지?

    난데없는 만인전이라는 말에 황급히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바로 보스 앱의 변화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반짝이는 팝업 창을 누르는 순간 만인전에 대한 정보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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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인전]

    + 가능성을 증명한 이들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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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고 굵었다. 이것만으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그간 경험을 통해 백과사전에 자세한 사항이 추가됐을 거라는 걸 나는 모르지 않았다.

    예상대로 백과사전에 추가 사항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일단 만인전은 일종의 랭킹 시스템이었다. 상위 1만 명의 참가자를 추스르고 일종의 혜택을 주는 식이었다. 다만 그 혜택이라는 게 엄청났다.

    "……칭호고 나발이고. 육체와 정신을 모두 보호해 준다고? 이게 가능한가?"

    보스의 등장 이후 이미 한 번 무너진 적이 있었던 내 상식이 또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지금까지 내가 배운 게 모두 쓸모없어진 느낌이었다. 분명 엄청난 혜택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엄청난 허탈감을 느꼈다. 끝없는 우주에서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여실히 느낀 탓이었다.

    다행히 허탈감은 금세 가셨다. 평소 내 생활신조 덕분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러니까 나는 핵폭탄을 맞아도 안 죽는다 이 말이지?"

    물론 직접 확인해 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분명 1만 명이 만인전에 소속되었다고 했다. 당연히 그 1만 명 중 또라이도 있을 게 분명했다.

    굳이 미친 짓을 내가 할 필요는 없었다.

    "아무튼 그건 내일 아침에 뉴스로 확인하고. 그보다 칭호라."

    나는 얼른 새로 얻은 칭호를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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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인전의 주인]

    + 만인전의 수장.

    + 공격력 25% 증가.

    + 방어력 25%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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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히 놀라거나 기뻐하지 않았다. 이미 퍼센트의 거짓에 대해 경함한 탓이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칭호를 탐험가에서 만인전의 주인으로 교체해 보았다.

    "역시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네. 탐험가는 441이고, 마인전의 주인은 448인가? 뭐, 방어력이랑 항마력도 10씩 오르니 좀 낫기는 낫지만."

    만인전의 주인으로 바꾼 칭호를 다시 탐험가로 교체하지는 않았다. 다만 얼마나 갈지는 의문이었다. 자주 칭호를 바꿔가며 어느 것이 더 효율적인지 그때그때 판단해야 할 듯 싶었다.

    귀차니즘에 발목 잡힐 것 같다만. 뭐.

    어차피 중요한 것은 칭호가 아니라 내가 갑자기 죽을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랭킹 1만위 안쪽에 있는 동안이지만. 근데……."

    묘한 안정감을 느낄 때였다.

    갑자기 내 물건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장미의 가시로 막 귀두를 긁고 찌르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뜨거운 열기까지 느껴졌다.

    내 물건이 뻣뻣해지는 상황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얼른 바지를 내리고 팬티까지 함께 내렸다.

    그 순간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내 거가. 내 물건이……. 섰어? 왜?"

    엑스칼리버는 더 이상 평화주의자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내 스스로 물건을 세웠다.

    그 충격은 꽤 오래갔다.

    흐르는 내 뜨거운 눈물과 함께.

    이제 나는 고자가 아니었다.

    ***

    고작 하루.

    단 하루 만에 세상이 변했다. 아니, 타올랐다.

    만인전의 등장으로 지금 온 세상이 경악하고 있었다. 실제로 언론 매체는 끊임없이 속보라는 타이틀을 달고 기사를 내보냈고, 사람들은 경악과 불신을 보내며 이성을 부여잡으려 노력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람들의 노력은 금세 수포로 돌아갔다.

    내가 예상한 대로 또라이가 나타났기에.

    역시 세상은 넓었고, 또라이는 많았다.

    만인전에 입성한 이들 중에도 그런 미친놈이 존재했다. 말석에 불과했지만 미국의 스무 살짜리는 스스로 랭커임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그가 촬영한 영상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지며 논란을 지우고 새로운 논란을 만들어냈다.

    "뭐, 그렇게까지 또라이는 아니었나? 머리가 아니라 다리에 총을 쐈으니."

    랭커가 촬영한 동영상은 정말 신기했다. 그는 자신의 허벅지에 총을 쐈고, 그가 쏜 총에서 발사된 총알이 피부에 닿자마자 힘을 잃고 떨어지는 걸 영상으로 담았다. 덕분에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청바지에 총알구멍이 뚫렸지만.

    당연히 해당 영상에 대한 진위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물론 채 한 시간이 되지 않아 진위 여유는 종식됐다. 그 또라이가 TV에 나와 생방송으로 똑같은 행동을 취했으니까.

    어쨌든 물리법칙을 위배하는 일에 과학계는 물론이고 일반 사람들도 난리가 난 건 당연했다.

    심지어 달리는 열차에 뛰어든 미국의 미친놈보다 더 미친 영국 놈이 있었지만, 다행히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총알은 랭커의 피부를 뚫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지만, 육중한 기차는 랭커를 짓밟고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결국 만인전이 생긴 지 채 하루가 되지 않아 랭커 순위가 변하고 말았다.

    "아무튼 그 미친 놈 때문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돼서 다행인가?"

    결국 랭커는 방어만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한 마디로 랭커가 총에 맞으면 죽지 않지만, 랭커가 총격전에서 총에 맞으면 그냥 골로 간다는 의미였다.

    무조건적으로 랭커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위험을 끼치지 않는 상황에 한해서만 보호한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안심할 수 있었다.

    초인의 등장이니 뭐니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나와는 관련 없는 이야기였다.

    내게는 그보다 태어나 처음으로 겪은 아름다운 아침이 더 중요했다.

    "……모닝 발기란 게 이런 거구나."

    아아, 세상은 정말 아름다웠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태산처럼 솟아난 엑스칼리버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물론 내 발기. 아니, 활기찬 모습에 리아가 조증인지 아닌지 의심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그저 세상이 아름다웠고, 그것은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이틀 연속 내 물건은 모닝 발기를 몸으로 실천했다.

    이 세상은 정말 아름다웠다.

    미야프가 계단을 내려오다 자빠져 울부짖기 전까지는.

    후다다닥! 쿵! 철퍼덕!

    "먀아아악! 미야아악!"

    "하아……."

    귀여움의 결정체는 고작 며칠 만에 지랄의 결정체로 변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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