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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ss-97화 (9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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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야프라고 이름 지은 허수마비를 소환한 지 2주정도 흘렀다.

    그동안 꽤 많은 일이 있었다. 1주일이면 계약한 자동차를 받을 수 있다고 뻔뻔스레 거짓말한 자동차 딜러의 얼굴도 봤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몽마 검색을 했지만 마의 35레벨을 넘는 몽마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도 받았다. 덕분에 시간이 널찍해지다보니 삼촌네와 식사 자리도 가졌다.

    아, 나 쌤과 저녁도 먹었지.

    아직 조금 어색했지만 나 원장과 관계도 고백 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어쨌든 다양한 일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큰일은 따로 있었다.

    "야! 너 진짜 이롤 안와? 제대로 한 번 해볼까?"

    "미약! 미약!"

    "아오! 저게 진짜!"

    지금 나는 미야프와 아침부터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나와 미야프가 친해져서 노는 게 아니었다. 이것은 일종의 싸움이었다.

    소파 위로 도망쳤던 미야프가 내 다이빙 캐치를 피해 소파를 훌쩍 뛰어 넘었다. 그러더니 날쌘 다람쥐처럼 2층 계단을 향해 달려갔다. 사람으로 치면 유치원. 아니, 유아원생에 불과한 모습이었지만 몽마는 몽마였다.

    후다다닥……철퍼덕!

    물론 몽마도 가끔 계단을 오르다 넘어질 때도 있었다.

    "미아아악!"

    "고거 참 쌤통이다!"

    도톰한 발등으로 계단을 찍고 자빠지는 미야프의 모습에 쾌재를 불렀다. 그동안 쌓였던 짜증이 조금이나마 풀어지는 것 같았다. 넘어져 눈물을 글썽이는 미야프를 향해 걸어가며 콧노래를 부르는 내 모습을 통해 내가 그동안 얼마나 쌓이게 많은 지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득도할 뻔 했지.

    처음 미야프를 소환한 뒤로 나는 한 번도 미야프를 소환 해제하지 않았다. 차마 아이템 노가다에 동원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친밀도를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소용없었다.

    종속된 몽마는 사냥을 함께하지 않으면 친밀도가 오르지 않았다.

    결국 사냥할 때 데리고 다니는 게 좀 마음에 걸린 내가 미야프의 친밀도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였다.

    그것은 바로 청동 상점에서 구매한 요리를 먹이는 것이었다.

    오늘도 나는 44개의 요리를 한 개라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노력이 하늘에 닿았는지 미야프가 넘어졌고,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녀석의 목덜미를 잡았다.

    덥석!

    "잡았다, 이것아! 제발 좀 처먹으라고!"

    "미약! 미야약! 압!"

    퍼억!

    "아악! 이게 진짜!"

    미야프는 내가주는 음식을 고개를 저어가며 거부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발버둥을 쳤다. 역시나 오늘도 미야프의 뒤꿈치에 정강이를 차이는 걸 피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몽마 새끼.

    처음에는 귀여운 외모에 넋이 나갔지만, 지금은 조막만한 육체의 말도 안 되는 힘에 넋이 나갔다.

    다행히 나름 쉬면서 운동을 한 덕분인지 아직까지 조금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게 언제까지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미야프가 발버둥치고 있는 사이 나는 더욱 손아귀에 힘을 주며 간신히 스마트폰을 꺼냈다. 짜증나게도 종속에게 앱으로 먹이를 줄 수 없었다. 일전에 줄무늬 다람쥐에게 도토리를 줄 때처럼 직접 먹이를 소환해서 입에 넣어야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 지금 내 발목을 제대로 잡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던 내 오른손에 작은 찐빵 크기의 음식이 나타났다. 그래도 음식이라도 향긋한 냄새가 풍겼다. 아쉽지만 내가 이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전투 중에만 가능했다.

    나도 모르게 입안에 침이 고였지만 그보다 미야프에게 먹이는 게 더 급했다.

    "제발 좀 먹으라고!"

    "먁먁! 먀먀먁!"

    "……아주 지랄 발광을 하는 구나."

    고개를 빛의 속도로 도리도리하면서도 발버둥치는 걸 쉬지 않는 미야프의 오기도 대단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2차 전직을 위해서 이 빌어먹을 악마의 친밀도를 높여야했고, 그것을 위해 손가락을 깨물려가며 억지로 입안에 요리를 밀어 넣었다.

    으드득!

    물론 이가 갈리는 걸 참을 수는 없었다.

    미운 네 살이라는 말이 몽마에게도 적용되는 걸 깨달으며 드디어 미야프의 입안에 요리를 넣는데 성공했다. 당연히 처음은 아니었다. 그동안 아무리 다람쥐처럼 도망친다고 해도 나도 근성하나는 꽤 강했다.

    [종속 '허수마비'가 먹이를 섭취합니다.]

    [종속 '허수마비'의 먹이 소화까지 60분 남았습니다.]

    "후……. 이제 딱 10개째인가?"

    10개째 먹이를 먹였음에도 불구하고 보스는 평소와 같았다. 살짝 기대했던 게 무너졌지만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아직도 내게는 34개의 능력치 1을 올려주는 요리가 남아 있었다.

    어쨌든 먹이를 먹이는데 성공한 나는 더 이상 미야프의 목덜미를 잡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손에서 힘을 뺏고, 미야프는 부드럽게 바닥에 착지하며 야무지게 요리를 씹어 먹었다.

    "촵촵! 촤촤촵! 미야푸!"

    "……잘도 처먹네."

    일단 먹이를 먹인 이상 1시간은 무슨 짓을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한 번 잡았을 때 배가 터지도록 먹였을 게 틀림없었다. 물론 보스가 그것 용납하지 않겠지만.

    "보스 이전에 저 얄미운 게 가만히 있지 않겠지. 밥 먹었다고 무슨 호랑이 힘이 솟구치니, 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는 냉장고로 향했다. 아침부터 너무 뛰었더니 목이 너무 말랐다. 그러고 보니 미야프를 소환한 뒤로 반 강제적으로 꾸준한 운동을 하는 셈이었다.

    시원하게 생수 한 병을 비우는 사이 미야프도 식사를 끝냈다. 배가 부른 녀석은 슥슥 통통한 자기 배를 문지르며 2층으로 올라갔다. 여느 때처럼 2층 손님방 침대에서 대자로 뻗어 잘게 분명했다.

    진짜 개팔자가. 아니, 몽마팔자가 상팔자였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처음 미야프를 소환하고 닷새 동안 나는 녀석의 그림자도 잡지 못했다. 술래잡기를 한 지 6일째가 되고 나서야 어느 정도 녀석의 움직임에 익숙해졌는지 머리카락이라도 잡을 수 있었다. 마침내 7일째 되는 날 나는 처음으로 녀석의 입에 먹이를 쑤셔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탈진했지만."

    그렇게 첫 성공을 한 뒤로 나는 하루에 한두 개씩 먹이를 먹이는데 성공했다. 게다가 오늘은 벌써 한 개를 먹였고, 잘하면 세 개까지 먹일지도 몰랐다. 익숙해진다는 건 그만큼 위력적이었다.

    "한창 렙업 해야 할 때 템 노가다를 하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별 수 없지, 뭐."

    처음 사냥을 못할 때는 정말 몸이 근질근질 해서 참을 수 없었다.

    결국 다음날 바로 사냥을 재개했고, 50마리의 응원 단원을 사냥하고 남은 건 응원 단원의 상징 한 개가 전부였다.

    1,800 경험짜리 상징 하나를 얻은 내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진 건 당연했다. 다행히 리아가 측은한 눈빛으로 날 보며 구매할 의사를 밝혔고, 나는 선선히 동화 10개에 팔아 치웠다. 아니, 팔아 치우기로 했다. 그녀는 외상으로 내 손에서 상징을 가져갔다.

    어제까지 200마리의 몽마를 사냥하고 4개의 상징을 얻었지만, 내 손에 들어온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늘 동화 40개를 준다고 했으니 주겠지, 뭐."

    딱히 걱정하지는 않았다. 외상이든 가불이든 어쨌든 공짜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나는 먹여 살려야 할 망할 펫이 있었다.

    슬쩍 시계를 보며 조금함을 드러낸 나는 오랜만에 임무창을 열어 보았다. 자유 임무 종료 시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상태였다. 슬며시 고개를 드는 기대감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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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회차 자유 임무]

    + 최대한 많은 몽마를 절정에 오르게 하라.

    + 임무 현황 : 576/30

    + 기본 보상 : 음격 1단계 상승

    + 우승 보상 : 퀴네의 사슬 투구

    + 자유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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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보상을 받을 조건을 만족한지 이미 오래였다. 그보다 우승 보상이 신경 쓰였다. 우리네 인생이라는 게 그렇듯 미래를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한 달. 아니, 도중에 얻었으니 한 달도 아니지. 아무튼 나도 진짜 게임 폐인처럼 사냥했네."

    오늘도 템 노가다에 나서면 600마리 사냥 고지에 오를 게 확실시 됐다. 아니, 실제로 내가 사냥한 몽마는 600마리가 넘을 것 같았다. 튜토리얼과 자유 임무를 받기 전에도 꽤 많은 사냥을 했으니까.

    막 자유 임무창을 닫았을 때였다.

    내 휴대폰 화면에 의외의 이름이 떠올랐다.

    [소강석 실장]

    "이 사람이 왜……?"

    고급 룸살롱을 여럿 가지고 있는 소강석의 전화는 확실히 의외였다. 전화번호를 교환하기는 했었지만, 사실 실제로 연락을 주고받는 일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소강석의 의도를 유추해 보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결국 나는 손가락을 찍 그으며 통화를 수락하고 전화기를 귀에 가져갔다.

    "네, 박고영입니다."

    "박 사장님. 저 소강석입니다."

    "예. 그런데 무슨 일로?"

    "혹시 오늘 시간되십니까?"

    진지하기 그지없는 소강석의 물음에 잠시 망설였다. 물론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선선히 특별한 일이 없다고 말했고, 소강석은 긴히 할 말이 있다고 답했다.

    묘하게 떨리는 소강석의 목소리를 느낀 나는 굳이 소강석과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전화로 이야기해도 됩니다."

    "아닙니다.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아뇨. 내가 가죠. 그때 그 가게로 가면 됩니까?"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당연히 제가 찾아뵙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의미 없는 실랑이가 이어졌지만, 승자는 결국 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부탁하는 사람이 고집을 부릴 수는 없으니까.

    결국 약속 장소를 따로 잡는 것으로 통화가 끝났다. 조금 뜨거워진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나는 턱을 괬다. 통화가 끝날 무렵 소강석의 목소리에는 조급함까지 실려 있었다.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편안한 사냥을 위해 구매한 차를 몰아 소강석과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운전하여 도착한 목적지에는 고풍스런 한옥 건물이 있었다. 유려한 필체로 정문 위에 한자로 된 현판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잘 가꿔진 정원수도 꽤 공을 들인 티가 났다.

    길을 따라 오르니 널찍한 마당이 나왔고, 이내 직원이 나와 내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내게 차키를 넘겨받은 직원이 나를 안내했다. 직원을 따라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본채와 조금 떨어진 한적한 정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나타나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소강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날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박 사장님."

    "됐어요. 부담되게. 그냥 편하게 밥 먹는 자리라서 나온 겁니다."

    "하하! 물론입니다."

    나를 정자 위로 안내한 소강석이 정자세로 기다리고 있는 직원에게 음식을 내오라 시켰다.

    잠시 후 나는 말 그대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큰 상을 마주하고 앉을 수 있었다.

    소강석은 내게 식사부터 권했고, 나는 마다하지 않았다.

    밥 먹고 나서 말하겠지.

    대충이나마 소실장의 의도를 알았기에 나는 순순히 젓가락을 들고 각양각색의 궁중정식을 맛보았다. 꽤 비싸보였지만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게 아니다보니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음식도 담백하게 간이 되어 내 입맛에도 딱 맞았다.

    정말 배가 터질 정도로 먹은 뒤에 딱 맞춰 직원 네 명이 정자로 올라왔다. 그들은 식사가 끝난 상을 재빠르게 정리했다. 이윽고 처음 보는 직원이 다과상을 들고 나타났다.

    정말 순식간에 잔칫상이 다과상으로 변했다.

    차는 향긋했고, 과일은 상큼했다.

    입안을 찻물로 깔끔하게 씻은 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내 눈치를 살피는 소강석을 바라보며 직설적으로 물었다.

    "부탁할 게 뭡니까? 도대체 얼마나 큰 부탁이길래 소 실장님이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는 겁니까? 일단 들어나 봅시다."

    내 직설에 소강석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그것도 잠시 소강석은 표정을 풀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 고민이 있음이 고스란히 드러날 정도였다. 그 뒤로 몇 번이나 더 한숨을 내쉬고 나서야 그의 입이 열렸다.

    "염치 불구하고 말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박 사장님."

    "그러니까 도대체 뭘요? 투자금이 필요합니까?"

    "아닙니다. 돈 문제가 아닙니다."

    전혀 뜻밖의 대답이었다. 꽤 돈이 많은 알부자에 속하는 나는 살아오면 부탁이라는 이름의 사기를 꽤 많이 겪어 보았다. 그랬기에 나도 모르게 소실장의 부탁을 돈 문제로 결부시키고 말았다.

    그 생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뭐, 기분 나쁘지는 않네.

    일단 돈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 나는 마음을 풀었다. 자연스레 내 목소리도 처음보다 부드러워졌다.

    "돈 문제가 아니라……. 그거 말고 부탁할 게 있습니까?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난 딱히 소실장님을 도와줄 능력이 없는 거 같은데요."

    "아닙니다. 박 사장님만이 가능합니다."

    "아아, 들어본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말 하는 게 어때요?"

    여전히 쉽사리 본론을 꺼내놓지 못하는 소강석의 모습에 도리어 내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부탁이기에 저 바위 같은 남자가 이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의문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드디어 소강석이 본론을 꺼내들었다.

    "……섹스 배틀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푸훕!"

    막 한 모금 마셨던 찻물을 그대로 뿜고 말았다.

    내가 뿜어 버린 찻물이 소강석의 얼굴에 튄 건 당연했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광복 7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잠깐이라도 오늘이 어떤 날인지 되새겨 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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