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96화 (9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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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의 별 기사 제목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한강에 나타난 진짜 '괴물'의 정체는?]

    [허수어미를 보낸 '발광남'은 누구인가?]

    [다시 살아난 허수어미! 전격해부!]

    [이번에도 세계최초! 게임 강국 한국의 저력!]

    [게임 종족의 유전자는 이번에도 이길 수 없는 것인가?]

    이미 인터넷과 뉴스에는 나와 관련된 소식으로 도배된 지 오래였다.

    기사에는 저마다 발광하는 심령사진 한 장이 들어가 있었다. 바로 LED가 켜진 우비를 입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마치 상상속의 외계인 같은 내 모습에 별의별 댓글이 따른 건 당연했다.

    자체 발광남이나, 허수어미 겁간남. 심지어…….

    "발광 질럿이라니. 에효! 그나마 내 얼굴이 안 팔린 걸 다행으로 여겨야하나?"

    종종 특이한 별명을 지으려는 이들이 있었지만, 대체로 내 별명은 한 가지로 좁혀지고 있었다.

    한발남.

    한발에 모든 걸 해결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바로 한강에서 발광하는 남자의 약자였다. 한강에 나타난 발발이 코스프레하는 남자라는 말도 있었지만.

    어쨌든 정말 유치한 별명이지만 불평을 터트릴 수가 없었다.

    그만큼 잘 지은 별명이었다. 시기적절하게 리아가 스위치를 킨 덕분에 나는 진짜 자체 발광하는 빛무리처럼 사진이 찍혔고, 그 배경으로 한밤중인 한강이었다. 벌써부터 이 사진은 사람들에게 패러디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것도 빛의 속도로.

    "지금 형광등 같은 사진이 문제가 아니지. 어떡하지?"

    "후! 당분간 자제하는 게 좋겠어요. 너무 위험해요. 이미 허수마비가 있는 곳에는 기자들로 쫙 깔렸어요."

    내 옆에 말없이 앉아 있던 리아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녀의 말 대로였다. 비단 우리나라 기작들뿐만 아니라 외신들까지 특파원을 보내며 타칭 발광남의 정체를 캐기 위해 난리였다.

    비록 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사진이었지만, 내 모습이 계속 TV에 나오는 게 탐탁지 않았다. 그렇다고 변호사를 통해 사진을 내리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신경질적으로 리모컨을 누르는 게 전부였다.

    "36렙 이상은 없다고?"

    "네. 35레벨까지가 끝이에요. 퍼즐이 아직 들어맞지 않은 건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리아가 답답하다는 기색을 드러내며 답했다. 오히려 그녀가 나보다 더 답답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가볍게 손을 저으며 리아를 달랬다.

    "됐어. 이번 기회에 조금 쉬지 뭐. 잘 됐어.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래도 계속 알아볼게요.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그럼."

    보스 앱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제작되어 있었다. 아니, 그것이 프로그래밍 언어인지 아닌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모르는 이상 몽마를 검색하기 위해서는 손으로 직접 해야 했다.

    진짜 좀 쉬면서 머리로 앱을 사용하는 연습이나 할까?

    사람은 다 똑같았다. 달리면 걷고 싶고, 걸으면 눕고 싶어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내 귀차니즘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얼마나 효율적일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차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정점에 달한 지금 밖에 나가서 사냥을 하는 건 너무 위험이 컸다. 게다가 은근슬쩍 내가 침실을 통해 사냥하던 모습을 목격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기에 더 조심해야했다.

    "템 노가다. 아니, 스킬 노가다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참아요. 정말 분위기가 장난 아니에요. 고영 씨 덕분에 보스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 같다는 예측이 돌 정도라니까요?"

    "에이, 어차피 간보는 시간이 끝나서 그런 거지."

    "그런 것 치고는 콘돔 회사들의 주가가 떨어지는 게 심상치 않아요. 이제는 콘돔보다 경험치가 필요하니까. 기본적인 섹스 라이프를 즐기기 위해서라도."

    "흠. 그건 그렇겠네. 사정 면죄부가 없으면 부부 생활도 어려워졌으니까."

    생각해보니 꽤 심각한 문제였다. 이제는 섹스를 하기 위해 몽마와 섹스를 해야 했다. 비록 몽마와 섹스 하는 건 단순한 섹스가 아니라 섹스 배틀이었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부부 생활이 가능할까 싶었다.

    내 고민을 읽었는지 리아가 담담히 첨언했다.

    "꼭 나쁜 건 아니에요. 오히려 불륜이 줄어들 수도 있고. 부부가 파티를 맺고 번갈아가며 몽마를 사냥하는 건 꽤 재밌지 않아요?"

    "재밌긴. 내가 가장 이해 안되는 게, 자기 배우자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키스하고 그래도 일이라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이야. 진짜 개소리 아닌가?"

    "어머? 그게 왜요? 일이잖아요?"

    "단순히 돈을 버는 걸 직업이라고 하면, 매춘은? 포르노 배우는? 남들이 뭐라 하던 내가 싫어."

    "고영 씨……. 은근히 소유욕이 강하네요?"

    "그럴지도."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는 리아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며 답했다. 그녀의 말대로 난 소유욕이 강했다. 남들이 뭐라던 내가 싫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내가 가진 걸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이 됐든지.

    갑자기 분위기가 가라앉자, 나는 화제를 돌리는 것으로 반전을 시도했다.

    "그것보다 리아. 어제 제안했던 거. 생각 있어?"

    "그게요……."

    어제 나는 리아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었다. 다름 아닌 이번에 테이밍한 허수마비에 대한 정보를 넘겨줄 테니, 내가 전에 받았던 풍차 관리인의 상징을 하나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바로 답할 수 없다며 시간을 달라했고, 나는 한나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에 다시 물어 보았다.

    내 생각과 달리 리아는 시간이 더 필요한 듯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왜? 싫어?"

    "아뇨. 그럴 리가요. 상부에서는 무조건 얻어 오라는데. 그런데……."

    "그런데?"

    "고영 씨가 바라는 상징 매물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리아의 솔직한 대답에 입맛을 다시지 않을 수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내가 받은 선물은 처음 상징을 우연찮게 얻은 이들이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을 때 리아의 방송국에서 운 좋게 구매한 것이니까.

    아쉽지만 여기까진가 보네.

    슬슬 보스 아이템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었다. 처음 보스가 등장했을 때는 그저 허상에 가까운 것이었다면, 이제는 실상에 근접한 상태였다. 당연히 사람들은 추이를 지켜보려고 했고, 이전처럼 좋은 물건은 운 좋게 얻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데요, 고영 씨. 회사 입장이 아니라 그냥 제 생각으로는. 외부로 알리는 건 위험해요. 정보 누출 가능성도 있고. 결국 고영 씨와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연관됐다는 증거가 될 테니까요."

    "언론의 정보원 정체를 밝히면 안 된다는 건 불문율 아냐? 그런데도 그래?"

    "세상 사람이 모두 법과 질서를 지키는 건 아니니까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세상 사람들은. 아니, 인간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였다. 어떤 식으로든 리아의 회사와 내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리아의 생각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고마워, 리아."

    "아니에요. 저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사항이에요. 분명 눈앞에 성과로 보면 좋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거든요."

    "그래. 그렇게 알고 있을 게. 대신 다른 선물을 줄 테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해."

    "네? 다른 선물이요?"

    선물이라는 말에 리아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알기 쉬운 그녀의 태도에 부드러운 미소가 내 입가에 걸렸다.

    "조만간. 정말 조만간 좋은 선물을 줄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봐."

    내 애매모호한 말에 리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녀가 실망한 기색을 뿌려도 어쩔 수 없었다. 포장까지 제대로 하려면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조금이 아니라, 조금 오래 걸릴지도…….

    사실 선물을 포장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아직 나도 장담할 수 없었다.

    ***

    잠정 휴업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지금 굳이 사냥하며 날 노출할 위험을 높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귀족이 된 나는 몽마 사냥을 통해 경험치를 얻을 수 없었다. 동급 이상 레벨의 몽마가 아니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부디 동렙 몽마라도 하루 빨리 나타나길 비는 게 전부였다.

    물론 강화제를 구매하는 식으로 레벨을 다운 시킬 수 있었다. 그러면 레벨 페널티가 없는 상황으로 돌아가 다시 경험치를 올리는 게 가능했지만, 난 레벨 다운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언제 새로운 게 나타날 줄 알고?

    게다가 나는 약해지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 한두 달은 더 지나야 내 고집이 꺾일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리아가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몽마를 찾아 나서자, 자연스레 난 또 다시 혼자가 되었다. 딱히 외롭지는 않았다. 지난 두 달여간 꽤 많은 일이 있었고, 그 다양한 경험이 날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어 준 덕분이었다.

    조금 더 성숙해졌지만 고질적인 호기심은 어쩔 수 없었다.

    "리아가 돌아갔으니까……."

    리아는 내 펫이 된 허수마비를 보고 싶어 했다. 동시에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녀는 눈으로 보는 순간 욕심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다며 허수마비를 소환하려는 나를 말렸다.

    "그래봤자 며칠 가지 않아 후회하겠지."

    방해꾼이 사라진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즐기며 물품창에 고이 모셔 놓은 허수마비의 가락지를 클릭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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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수마비]

    + 친밀도 : 혐오

    + 모든 주요 능력 5씩 상승.

    + 기술 주머니 보유.

    + 1단계 몽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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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 주머니]

    + 기술 공유가 가능한 주머니.

    + 전수 받은 기술 저장 및 사용 가능.

    + 보관 기술 :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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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번을 확인해봤지만, 매번 웃음이 나왔다. 그만큼 허수마비는 뛰어난 종속이었다. 내 기술을 한 가지를 공유하고 그것을 제때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의미였다.

    거기다 올 스탯까지.

    뭐하나 빠지는 게 없는 명품이었다. 왜 1단계인지 의아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레벨보다는 내실이 더 중요했다.

    펫 정보를 확인한 나는 지갑을 열어 보았다. 물론 현실의 지갑이 아니었다. 금화, 은화, 동화가 들어있는 보스 전용 지갑이었다.

    금화 4개, 은화 6개, 동화 44개.

    남들이 보면 부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아니었다. 펫의 친밀도를 높여야하는 내게는 이것으로는 부족했다. 그래봤자 돈 구할 때가 있는 건 아니지만.

    입맛을 다시며 살짝 아쉬움을 표한 나는 종속창을 열었다.

    이제 새로운 종속을 소환해 볼 시간이었다.

    화아악!

    허수마비를 종속창에 올리는 순간 내 왼손 약지에 눈부신 빛이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내 손가락에 빛의 고리가 만들어졌다. 이윽고 차츰 빛이 가라앉더니, 붉은 가락지가 내 손에 끼워져 있었다.

    정말 신기한 현상이었지만, 내 시선은 딴 곳을 향해 있었다.

    그곳에는 잘 익은 사과처럼 붉은 머릿결과 따스한 불꽃같은 붉은 눈동자를 가진 아이가 서 있었다. 아이는 분홍빛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하얀 원피스를 입은 상태였다. 작디작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게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멍한 눈으로 네다섯 살 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바라고 있을 때 연지곤지를 입술에 바른 것 같은 아이가 내 눈이 딱 마주쳤다.

    그 순간 아이의 포동포동한 눈살이 크게 찌푸려졌다.

    어? 왜 저러지. 저건 꼭…….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왜, 왜 혐오스러운 눈빛이지?"

    보통 아이가 보일만한 반응이 아니었다. 아니, 결코 아이가 가질 수 없는 감정이었다.

    마치 페도필리아를 본 것 같은 아이의 눈빛에 내 어깨가 축 늘어지고 말았다. 도대체 왜 이런 반응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특히 저렇게 예쁘고 귀여운 아이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에 괜스레 가슴이 아팠다.

    혹시나 싶어 슬쩍 한 걸음 아이에게 다가가 보았다.

    후다닥! 철퍼덕!

    "미야아악! 미야아악!"

    내가 한 걸음 다가가기 무섭게 아이가 도망쳤다. 식탁 의자 밑으로 들어가 넘어진. 아니, 숨은 아이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아이의 비명에 놀란 나는 되레 뒷걸음치며 양손을 펼쳐 보였다.

    "아니야! 안 갈게! 나 여기 있을게!"

    크게 놀란 내가 당황함을 뿌리는 모습에 아이가 안심했는지 더 이상 비명은 지르지 않았다. 비명은.

    아이의 입에서 칠판 긁는 소리가 나오던 것이 멈췄지만, 눈빛은 여전히 혐오란 감정이 가득했다. 게다가 잔뜩 식탁 아래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꼭 궁지에 몰린 아기 고양이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애꿎은 시간만 흘러갔다.

    혹시라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까 싶어 다시 한 번 다가가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크게 실망한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털썩.

    "도대체 왜 그러냐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소파에 주저앉은 채 한탄을 해봤지만, 아이의 경계심은 풀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깊은 한숨을 몇 번이나 내쉬었을까.

    포기라는 감정이 슬금슬금 내게 다가왔을 때였다.

    드디어 아이가 날 싫어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인간이 아니라 몽마였지. 저 녀석은."

    내 마음을 쏙 뺏어간 아이는 인간이 아니었다. 녀석은 허수마비였다. 그 말은 곧 몽마라는 의미였다.

    비록 내게 종속되었다지만 몽마는 몽마였다. 당연히 보스의 규칙에 얽매어 있었다. 그 시스템의 이름은 바로 친밀도였다.

    "……빌어먹을!"

    처음 길들인 몽마의 친밀도는 1부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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