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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ss-92화 (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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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이브의 얼굴이 더욱 썩어 문드러진 것은 당연했다. 단순히 표정만 변한 게 아니었다. 그녀의 기세가 일순간 고삐 풀린 태풍처럼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기세가 점점 더 난폭해지고 있을 때 퀴이브가 서서히 몸을 돌렸다. 처음 전투를 시작할 때처럼 내 몸과 그녀의 일자로 뻗은 다리가 십자가를 만들었다.

    나와 몽마의 몸이 겹쳐지며 그랜드 크로스가 만들어지는 순간.

    "파고들어라, 그리고. 망가트려라!"

    퀴이브가 저주어린 일갈을 날리며 양손에 쥐고 있던 수술을 허공으로 던졌다.

    단순한 악담이 아니었다.

    그것은 저주였다.

    팡팡! 파파팡!

    허공으로 솟구친 퀴이브의 응원 수술이 폭죽처럼 터졌다. 어릴 적 생일 파티를 할 때 케이크를 앞에 두고 쐈던 폭죽처럼 수술이 사방으로 폭사해 날아갔다. 언뜻 열심히 축구 경기를 응원하는 서포터들이 던진 휴지 폭탄 같았다.

    사방으로 흩날리던 수술이 이내 내 몸으로 날아들었다. 마치 내 몸이 자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날아와 달라붙은 수술이 밧줄처럼 내 몸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화려한 마법 쇼에 취해있던 나는 그제야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뭐야, 이거!"

    전신에 힘을 주고 몸을 움직여 보았지만 이미 수술에 묶인 내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 나를 더욱 대경실색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쉬이익!

    "썅! 빼! 빼라고!"

    한 가닥의 수술이 내 요도를 파고들었다. 물론 완전히 끝까지 파고든 건 아니었다. 다만 기생충이 달라붙은 것 같은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그동안 나름 다수의 몽마와 싸웠다지만 이런 경악스런 공격은 없었다. 몽마는 섹스 배틀이라는 룰에 철저히 따랐고, 행위만 놓고 보면 쾌락을 탐구하는 것뿐이었다.

    이번은 아니었다. 고통과 억압을 즐기는 부류가 없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나는 아니었다. 나에게 지금 이 공격은 수치심밖에 들지 않는 괴롭힘일 뿐이었다.

    부르르……!

    "끄으윽!"

    전신이 경련하며 낮은 신음이 흘렀다. 결코 쾌락에 따른 신음이 아니었다. 내 신음에서 느낄 수 있는 건 오직 고통이었다.

    [흥분도가 최저치를 돌파합니다.]

    [철벽 상태가 됩니다.]

    결국 내 흥분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보스의 판정이 떨어지는 순간 퀴이브의 공격이 끝났다. 내 몸을 파고들던 수술은 다시 하늘하늘 날아올라 퀴이브의 손아귀로 돌아갔다. 그 중에는 내 요도를 파고들었던 빌어먹을 수술도 포함되어 있었다.

    "후……."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움직여 보았다. 다행히 내 뜻대로 움직였다. 내 몸이 무사하다는 생각에 안심할 수 있었다.

    그것도 잠시 이내 의문이 들었다.

    왜 데미지가 안 뜨지? 회피한 거면 미스라도 떠야하는 거 아닌가?

    확실히 이상했다. 몽마가 공격에 성공했으면 내가 받은 피해를 보스가 집계해서 알려주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 내가 방어에 성공했다면 성공했다고 알려야했다.

    그런데 보스가 판정하는 건 흥분도 밖에 없었다.

    그때 양손을 허리에 올린 채 날 내려다보고 있던 퀴이브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걸렸구나!"

    걸려? 도대체 뭐가……이런 젠장!

    뒤늦게 아차 싶었다.

    흥분도.

    이 빌어먹을 시스템은 나와 상성이 좋지 않았다. 일단 흥분도가 100이 되어 포로 상태가 되면 추가 피해를 받아야 했다. 공격은 할 수 있지만 전투 상태 때보다 보통 한 배 반에서 두 배 사이의 데미지를 받았다.

    흥분도가 0이 되는 것도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 경우 추가 피해는 없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존재했다.

    "철벽 상태가 되면 공격이 불가능하니까."

    내 짧은 읊조림에 퀴이브가 재수 없게 웃었다. 진짜 재수 없었다. 웃고 있는 퀴이브도, 공격할 수 없게 된 나도. 정말 재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흥분도는 아직도 내 유일한 약점이었다.

    경험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건가.

    씁쓸했다.

    나름 노력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오만이었다. 경험은 곧 시간을 의미했다. 시간은 인간이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물론 포기는 없었다. 공격을 할 수 없지만 공격권은 가지고 있었다. 예상외로 전투가 길어지게 됐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니까. 오케이. 니 꼴리는 대로 해 봐. 다 받아 줄 테니까."

    물품창을 보니 미치광이의 부적 하나가 남아 있는 게 보였다. 순간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도리어 편해졌다.

    다시 미소를 되찾은 나는 미치광이의 부적을 쓰는 걸로 공격권을 사용했다.

    내 담담한 기색에 퀴이브가 눈살을 찌푸리는 게 보였다.

    "자. 얼른 공격해 봐. 아니면 밤 샐 때까지 그 엿 같은 기술만 쓰든지."

    역시 경쟁이 따르는 무언가에는 흔히 맨탈이라 부르는 정신력이 중요했다. 냉정을 되찾자 딱히 불리한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몽마든 뭐든 대부분의 공격 기술은 섹스 배틀을 위해 상대를 흥분시키는 경향이 강했다. 그 말은 곧 공격을 한 번 받으면 내 흥분도가 1이라도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였다. 공격을 하지 않으면 그냥 지금 상태를 유지하겠지만.

    결국 방금 전 퀴이브의 공격은 결과를 잠시 뒤로 미루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안타깝지만 내 머리는 가끔 중요한 걸 까먹는 경향이 있었고, 그 경향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인상을 찌푸렸던 퀴이브가 조소를 날리더니 그대로 뒤로 물러났다. 내 발끝에 선 그녀가 이내 벌러덩 누웠다.

    "아! 아아!"

    낭랑한 퀴이브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처음 무슨 짓을 하나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퀴이브는 활력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기껏 깎아 놨던 그녀의 활력이 야금야금 차올랐다.

    "……이걸 생각 못 했네. 됐어."

    살짝 탐탁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화는 나지 않았다. 걱정도 들지 않았다.

    그 증거로 나는 공격권을 회수하자마자 기술을 사용했다. 보조 기술을 사용하는 건 공격으로 인식되지 않았기에 문제가 없었다. 광속 자지술이 시전되며 엑스칼리버를 더욱 발기. 아니, 활기차게 만들었다.

    일말의 망설임을 보이지 않고 기술을 사용하나 내 모습에 퀴이브가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그런다고 그녀의 뜻을 따라줄 마음은 쥐똥만큼도 없었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퀴이브가 다시 바닥에 등을 대며 누웠다. 아직 활력을 다 회복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광속 자지술 다음은 성기 강화였다.

    이로써 내 준비는 끝났다.

    반면 퀴이브는 아니었다. 그녀는 다시 공격권을 회수했지만 여전히 반격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의 젖꼭지를 스스로 애무하며 콧소리가 잔뜩 낀 신음을 터트렸다.

    "흐응! 흐으응!"

    자가 발전도 아니고…….

    어이없는 자가 버프에 내 왼쪽 볼이 씰룩거렸다. 좀 어이가 없었다. 어쨌든 공격권은 다시 내게 넘어왔다.

    지금까지와 달리 바로 공격권을 쓸 수 없었다. 2가지 버프를 쓴 이상 이제 남은 건 공격뿐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여전히 포로 상태였다.

    잠시 내가 뜸을 들이자 퀴이브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얄미운 퀴이브의 조소에 반응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반응할 겨를이 없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지금 내 머릿속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을 고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미 활력은 다 채웠고, 버프도 쓸건 다 썼다.

    결국 그냥 공격을 포기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이거라도 써야지."

    허무하게 공격권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대로 도둑 숨기를 시전했다. 기술을 배운 뒤 처음 써보는 기술이었다.

    기술을 사용하는 순간 전신이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아니, 없는 것 같았다. 내 착각과 달리 퀴이브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어디서 잔재주를!"

    퀴이브의 거친 반응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의문은 의문이었고, 그 사이 그녀의 반격이 시작됐다.

    순간 응원 수술이 반짝거렸다. 반딧불 수천마리가 달라붙은 것 같았다. 자체 발광하는 수술이 이내 주변으로 퍼지며 마치 가로등처럼 주위를 밝혔다.

    파핫!

    얼씨구?

    붉은 빛이 넓게 퍼지며 내 몸에 스며들었다. 시원한 느낌이 사리지고 조금 뜨끈한 느낌이 들었다. 딱 아랫목에서 몸을 지지는 정도의 온기였다.

    그제야 퀴이브가 얼굴을 펴며 미소를 뿌렸다.

    "꼴좋구나!"

    "자꾸 혼잣말 하는 버릇이 있나 본데. 그거 장애거든? 병원엘 좀 가보지?"

    퀴이브가 왜 저러는 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흥분도가 적정치를 유지합니다.]

    [전투 상태가 됩니다.]

    오케이. 됐다. 이제.

    진심으로 기뻤다.

    내 환한 미소에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던 퀴이브가 흠칫했다. 그녀도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늦었다. 이년아!

    퀴이브가 기술을 사용했으니, 당연히 이제 내 차례였다.

    전투 상태로 돌아온 나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퀴이브를 도발했다.

    "얼른 오렴. 제대로 박아 줄 테니까."

    "이익!"

    퀴이브가 이를 갈았지만 그뿐이었다. 보스의 규칙은 참가자뿐만 아니라 몽마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됐다. 그녀의 포지션은 그녀 마음대로 바꿀 수 없었다.

    결국 퀴이브가 쭈뼛거리며 걸어와 내 아랫배를 깔고 앉았다.

    처억.

    그 순간 나는 지체 없이 퀴이브의 허리로 손을 뻗었다.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부여잡은 채 공격을 준비했다. 아니, 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푸욱!

    "하악!"

    갑작스런 침략에 퀴이브가 크게 입을 벌렸다. 그녀의 쩍 벌어진 입은 내가 허리를 튕길 때마다 조금씩 더 크게 벌어졌다. 엑스칼리버에 파헤쳐지는 그녀의 살결처럼.

    철썩! 뿌직!

    "아악! 아아악! 그, 그마아아아항……!"

    뭐야, 이 소린?

    살과 살 사이에 물기가 끼어들며 요상한 소리를 냈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공격은 끝났으니까.

    그나저나 신음 소리 한 번 우렁차네.

    여전히 뜨거운 퀴이브의 속살에 내 엑스칼리버가 파묻혀 있었지만 보스가 판정을 내리는데 문제는 없었다.

    ['응원 단장'에게 611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응원 단장'에게 270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응원 단장'에게 577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응원 단장'에게 535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응원 단장'에게 496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헐, 대박."

    육성으로 터질 정도로 대박이었다. 30%의 확률을 뚫고 더블 어택이 터진 것도 터진 거였지만, 그보다 5번의 공격 중 무려 4번이 치명타였다. 물론 치명타가 터질 확률이 60%가 넘다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어쨌든 대박이었다.

    그보다 더 대박은 지금부터였다.

    ['응원 단장'이 절정에 올랐습니다.]

    [전체 임무 '단장님! 쟤가 우리 보냈어요!'를 완료합니다.]

    [기본 보상 '6,000 경험'을 획득합니다.]

    [추가 보상 '퀴이브의 속옷 상자 1개'를 획득합니다.]

    바들바들 떨던 퀴이브가 사라지든 말든 나는 히죽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치광이의 부적 효과가 임무 보상 경험치에도 적용되니 좋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추가 보상은 좀 애매했지만.

    흡족한 얼굴로 연신 끄덕이던 내 머리가 우둑 멈추고 말았다. 이어진 보스의 안내가 문제였다.

    [평민 임무 '작위 획득'을 완료합니다.]

    "뭐, 뭐라고? 이게 왜!"

    아닌 밤중에 홍두깨정도가 아니었다. 마치 홍두깨로 뒤통수를 세게 친 것 같았다. 물론 맞은쪽이 나였다.

    내가 경악하든 말든 보스는 무심하게 판정을 이어갔다. 확실히 보스는 프로페셔널한 존재였다.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기본 보상 '6,000 경험'을 획득합니다.]

    [음격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기본 보상 '은화 3개'를 획득합니다.]

    [추가 보상 '백은 절구 1개'를 획득합니다.]

    [추가 보상 '신성한 하사품 1개'를 획득합니다.]

    [칭호 '탐험가'를 획득합니다.]

    [귀족 계급 봉인을 해제합니다.]

    [업적 '곰의 괴력'을 획득합니다.]

    레벨이 오르든 말든. 부적 효과를 또 보든 말든.

    지금 내게 문제되는 건 그 따위 것이 아니었다.

    응원 단장이 귀족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 덕분에 억지로 뒤로 밀어 놨던 작위 획득 퀘스트를 깨야했다. 예상에도 없던 승급 퀘스트 클리어에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했던 말이 흘러 나왔다.

    "……아, 히발."

    귀족 계급을 얻은 이상 나는 더 이상 나보다 낮은 레벨의 몽마에게서 경험치를 얻을 수 없게 됐다. 물론 계급이 낮지만 나보다 레벨이 높거나 같은 몽마라면 사냥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단 동렙 이상이면 계급에 상관없이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다만, 지금 내 레벨보다 높은 몽마가 없다는 게 결정적인 문제였다.

    한 마디로 지금 나는…….

    "좆 됐네."

    좆. 아니, 망했다.

    그것도 제대로 망해 버렸다.

    내가 막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졌을 때였다.

    [전체 임무 '새로운 직업'을 생성합니다.]

    보스가 자비를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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