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89화 (89/200)
  • <-- Bribe or Gift -->

    아쉽지만 리아는 내 흥미를 그대로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내가 흥미를 보이기 무섭게 그녀가 손을 뻗으며 내 시선을 붙잡았다.

    "잠깐만요! 일단 위치는 알아냈어요. 난지 캠핑장? 아무튼 한강 근처에 나타났대요. 하지만 지금 가면……."

    "왜? 지금 가야지. 칼리큘라의 재현일 텐데."

    "……고영 씨."

    내 짓궂은 농담에 리아가 살짝 눈을 흘겼다. 그녀로서는 최선을 다한 질책이었다.

    리아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진짜 거기 지금 엄청날 것 같은데? 평민들은 다 알몸으로 그 자리에서 섹스 배틀을 해야 되잖아? 난데없는 누드 비치. 아니, 누드 캠핑장이 됐겠네?"

    "……한국의 모든 언론사에 자신의 알몸을 찍히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렇겠죠."

    "아아. 그 뜻이었어?"

    리아의 일침에 확실히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지금은 갈 수 없었다. 간다고 해도 늦은 밤에 가야했다.

    "근데 밤에 가면. 그때가 되면 기자들이 없나?"

    "덜하긴 하죠. 당직 한 명만 남기고 자러가니까요. 기자도 잠을 자야죠."

    "사람들은?"

    "사람들도 아직 관망 중인 것 같아요. 일본은 AV 배우가 도전하는 걸 생중계하던데. 가까운데 많이 다른 것 같아요. 한국은."

    과연 성진국. 대단하네.

    아무리 노력해도 성진국의 상상력을 이길 순 없었다. 그들은 애초에 DNA가 달랐다. 니뽕 DNA는 진짜 뽕맞지 않고서는 따라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거긴 성진국이니까."

    "……네?"

    "걔들은 원래 그래. 섬나라 특성이잖아. 그래도 대단하네. 생중계로 섹스 배틀을 중계하다니. 모자이크는 어떻게 했지?"

    "아, 그건 카메라 워킹으로 처치했대요. 이후에 발매할 AV는 모자이크해서 발매한다고 해요."

    "혹시 품번 알아?"

    "……고영 씨."

    "농담이야, 농담. 왜 정색을 하고 그래?"

    진담이었다. 솔직히 궁금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다행히 난 금세 옆 나라에 대한 관심을 접을 수 있었다. 예전에 나름 내 병을 고치기 위해 많이 찾아봤지만 아니었다. 아랫도리 친일파도 다 한때였다.

    "그럼 허수아비. 아니지. 난 허수어미를 사냥해야겠지?"

    "진짜 사냥하시게요?"

    "궁금하기는 해. 사냥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허수어미는 오늘 사냥이 끝나고 한 번 가보자고."

    "알겠어요. 일정을 고려해서 잡을 게요. 아무래도 저번처럼 도망쳐야 할 거 같으니까요."

    "부탁 좀 할게."

    지난 번 명동에서 탈주극 때 리아의 활약은 대단했다. 덕분에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라면 재미있는 도주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믿음을 보이자, 리아가 슬그머니 꽁꽁 감췄던 본론을 꺼내들었다.

    "저기, 고영 씨."

    "응? 왜. 할 말이 남았어?"

    "그게, 그러니까요. 아! 선물! 선물이 있어요.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거 같아서. 팀장님이 죄송하다고……."

    선물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들었다.

    이윽고 내 보스 앱에 거래창이 떴다. 거래창 위에는 2개의 물건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처음 보는 물건의 정보부터 살펴보았다.

    --------------------

    [풍차 관리인의 상징]

    + 동네 처녀를 모두 굴복시킨 평민의 관록.

    + 삽입 공격 위력 15% 증가.

    --------------------

    흠칫했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지 않으면 신음이 튀어 나올 것 같았다. 그만큼 눈앞의 상징이 탐이 났다.

    최선을 다해 속내를 숨긴 나는 슬쩍 리아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다행이네.

    리아는 그저 생글생글 웃을 뿐이었다. 딱히 내 속내를 짐작한 것 같지는 않았다.

    표정 관리에 성공한 덕분에 약간의 연기를 할 수 있었다.

    "꽤 괜찮네. 그런데 이거 평민 등급인데. 어떻게 구한 거야?"

    상징보다는 상징을 구한 경위가 더 궁금하다는 듯 묻자, 리아가 재빨리 내 의문을 풀어주었다.

    "봉인석에서 나왔다고 했어요. 물론 우리는 판매자에게 구한 거구요. 그걸로 방송을 내보내서 시청률 대박을 터트렸으니까. 딱히 손해는 아니었다고 해요. 인지도를 올려서 오히려 좀 이익이었대요."

    리아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항까지 다 말해주었다.

    "그래? 거참 대단하네. 어떤 면에서 보면."

    "치. 한국이 너무 고리타분한 거죠. 우리는 가식 없는 거예요. 그리고 전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섹스는 맛있는 요리와 같아요. 괜히 침대 밑에 숨겼다가는 그 맛있는 요리에 곰팡이가 필 테니까요."

    "나도 어느 정도는 동의해. 물론 다는 아니고. 아무튼 너랑 섹스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싶은 건 아니고. 근데 이거 선물 맞아? 뇌물 같은데?"

    움찔!

    뇌물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고 묻는 순간 리아의 몸이 눈에 보일 정도로 경직됐다.

    역시 뇌물이네. 도대체 뭘 바라는 거야?

    그리 기쁘지 않았다. 물론 누군가 내게 잘 보이고 싶어 한다는 건 좋았지만, 그것이 곧 무언가를 바란다는 의미이기에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오히려 살짝 부담이 됐다.

    짧게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한 곳에 두지 못하는 리아를 향해 다그치듯 물었다.

    "도대체 뭐야. 뭘 바라는데, 이런 걸 줘?"

    "……바라는 거 없어요. 그냥 고영 씨랑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다는 게 윗분들의 판단이에요."

    "입술에 침 좀 발라야겠다. 그 말을 내가 믿을 거 같아? 내가?"

    "지금이라도 바를까요?"

    리아가 백치미를 드러내며 어떻게든 화제를 돌리려고 노력했다. 그녀의 노력은 가상했지만, 썩 효과가 좋지는 않았다. 나는 말장난에 놀아날 만큼 물렁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싸늘한 눈빛을 쥐어짜내며 더욱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엉뚱한 소리로 넘어갈 생각하지 말고. 그냥 말 해. 뭘 바라는 거야?"

    "……진짜 아닌데. 진짜에요."

    대답하지 않았다. 거의 한계까지 리아를 몰아 붙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리아는 냉철한 기자보다는 귀여운 리포터에 가까운 이미지였다.

    뭐, 실제로도 애가 좀 물렁하기도 하고.

    내가 말없이 핸드폰을 보고 있자, 결국 리아가 백기를 들었다.

    "후……. 진짜 이건 뇌물이 아닌데. 이건 우리가 제대로 된 정보를 드리지 못해서 사과의 의미로 전하는 건데. 진짠데."

    "근데? 진짜 그랬으면 그렇게 말을 늘일 필요가 없겠지."

    "그러니까, 그게요. 이건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일종의 배상금이구요. 그리고……."

    "그리고?"

    "저걸 받은 다음날 고영 씨에게 컨설팅을 받아 보라는 지시가 내려왔거든요."

    나는 더 이상 리아를 추궁하지 않았다. 이쯤하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컨설팅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았다.

    내가 방송에 관해 무얼 안다고?

    조금 많이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사실부터 확인하고 싶었다.

    "오케이. 알았어. 근데 이건 그 컨설팅이란 게 뭔지 확인하고 받을게."

    "……네."

    리아도 시기가 좀 애매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는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리아의 입에서 본사에서 내려온 지시에 대해 흘러 나왔다.

    "아까 상징으로 대박을 터트렸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담당자가 누군지 몰라도 지금 똥줄이 타겠네."

    "맞아요. 진짜 부담감에 파묻혀서 죽을라고 그러더라구요. 아무튼 상부에서 이번에 흐름을 탄 걸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 해요. 마침 정부에서도 보스에 대해 대대적으로 알리고, 개방하는 쪽으로 방침을 세웠거든요. 아, 정부는 우리나라 정부에요."

    멋지네, 네덜란드.

    리아의 부연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잠시 숨을 몰아 쉰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사람들의 흥미를 가져와야하는 상황이 됐는데. 마침 어떤 사람이 자기가 테이밍한 펫을 팔겠다고 제안을 해왔거든요."

    "그럼 전처럼 사면되는 거 아냐? 그게 뭐라고 나한테까지 의견을 구하는 거야?"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돈 많은 방송사에서 그냥 구매하면 해결되는 문제였다. 그걸 고민하는 게 말이 되지 않아 보였다.

    내 생각과 달리 상황은 조금 더 복잡했다.

    "근데 그 사람이 너무 비싼 값을 불러요. 그것도 우리 경쟁사와 줄다리기를 하면서."

    "쯧. 그래서 살지 말지 고민되는 상황이다?"

    "네. 적당한 가격이면 그냥 사겠는데, 10만 유로는 너무……."

    "……미친 거 아냐?"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10만 유로는 그래도 됐다. 자그마치 1억 원이 넘는 큰돈이니까.

    리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했다.

    "미쳤죠. 만약 거래를 했는데,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부장이 엄청 깨질 걸요? 근데 경쟁사는 제안을 받아들였나 봐요."

    "그래서 고민이다? 만약 경쟁사에게 좋은 소스를 뺏긴 거면. 어차피 징계를 먹는 건 마찬가지니까?"

    "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 지. 의견을 좀 구해보라고 연락이 왔어요. 진짜 선물이랑 관계없어요. 그냥 우연이었어요."

    "아아, 알았어. 이건 잘 받을게."

    그제야 리아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풍차 관리인의 상징 2개'를 획득합니다.]

    거래가 무사히 끝났지만, 동시에 거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가 리아를 향해 거래를 신청했다.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거래를 수락했다. 다시 거래창이 뜨자, 나는 그 위에 3개의 물품을 올려놓았다.

    "받아."

    "이, 이거는……!"

    "뭐해? 그냥 받아. 어차피 안 써."

    "진짜죠? 진짜 받아요?"

    "내가 두 번 말하는 거 정말 싫어한다고 그랬던 거 같은데."

    "받았어요! 물리기 없기에요!"

    리아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래를 받아 들였다. 그녀가 놀란 건 당연했다. 내가 거래창 위에 올린 건 다름 아닌 인벤토리에 처박혀 있던 종속 3종 세트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소매치기는 그냥 팔까? 1,250이나 주네?

    문득 2개 있던 소매치기의 가락지를 본 나는 살짝 마음이 동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이정도 경험치는 그냥 사냥으로 얻으면 됐다.

    "너무 실망하지는 마."

    "네? 실망이라뇨! 이거면 충분. 아니, 넘쳐요! 진짜 감사해요!"

    "글쎄다……. 일단 옵션이나 확인해 보고 허리를 굽히든 말든 해."

    내 심드렁한 말에 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펫을 본적이 없는 그녀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반면 기껏 테이밍하고 쓰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현실적인.

    잠시 후 펫의 능력은 확인한 리아가 웃는 것도, 그렇다고 우는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좀 시시하지?"

    "……네. 좀 많이."

    단순히 종속의 효과만 봤을 때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종속을 만드는 게 꽤 어려웠다. 나만해도 전혼이 없었으면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 꽤 고생을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참고로 난 줄무늬 다람쥐를 쓰고 있어. 물론 소환하지는 않고. 기본 효과만 받는 식이지만."

    "그래도 딱히 문제가 없을 것 같네요. 지금 상황에서 펫을 데리고 다니면 할리우드 탑스타보다 더 이목을 끌 테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하던 리아가 갑자기 쭉 입술을 내밀었다. 슬쩍 고개를 내밀어 보니 그녀가 소매치기의 가락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타격력 10을 올려주는 대신 방어력 5가 깎이는 애매한 성능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평민 등급이 고작 이정도인 건 너무해요. 이건. 확률도 낮은데. 조건도 맞추기 어려운데. 근데 겨우 이 정도라니."

    "없는 것 보다는 낫잖아?"

    "그래도……."

    "어차피 나중가면 작은 차이가 오히려 커 질 걸? 아무튼 이러면 컨설팅은 제대로 해준 건가?"

    "물론이죠! 잘하면 엿 먹……. 아니. 방금은 실수에요. 아무튼 우리 입장에서는 최고의 상황이에요. 근데 이렇게 빌려줘도 정말 괜찮아요?"

    "누가 빌려준데?"

    "네? 그럼 왜……?"

    "그냥 가져. 어차피 그거 3개 팔아봤자 2,400 경험치밖에 더해? 음? 생각보다 좀 많네? 에이, 됐어. 그냥 가져. 그동안 고생도 했고. 앞으로도 고생할 테니까. 미리 선물 받았다고 생각해."

    뒤늦게 계산을 해보자 살짝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미 준 것을 다시 뺏는 치사한 짓은 하지 않았다. 하루에 1만6천이 넘는 경험치를 얻다보니 통이 좀 커진 느낌이었다.

    리아가 감격한 얼굴로 슬쩍 내게 다가왔다.

    내 옆에 바짝 붙어 앉는 리아의 모습에 나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말했다.

    "피곤해. 저리가."

    "……누가 뭐래요? 흥!"

    아닌 척은.

    딱 봐도 리아의 검은 속내가. 아니, 음탕한 속내가 보였다. 그동안 말은 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녀도 여자란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규칙 하나. 물질적인 걸 주고 받은 걸 대가로 자면 안 된다. 이게 내 신조야."

    잠시 깬 적도 있지만.

    "근데요. 고영 씨. 보스의 물건은 물질적인 게 아니지 않아요?"

    "어?"

    의외의 일격에 난 순간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니 보스의 아이템은 현실에 존재하는 물건이 아니었다. 게임은 그래도 서버 컴퓨터 하드디스크에라도 데이터가 남아 있지만.

    내가 말문이 막힌 채 미간을 찌푸리자, 리아가 은근히 고소하단 얼굴로 콧대를 높였다. 그녀의 웃는 얼굴에 무어라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미간에 잡힌 주름이 이마까지 퍼졌음에도 내 입은 열릴 기미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리아의 은근한 추파를 무시하는 것뿐이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