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83화 (83/200)

<-- To the Bl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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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정복]

+ 악마 종족 몽마에게 주는 피해 10%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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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얻은 업적의 설명은 간단했다. 쓸데없는 부연 설명이나, 업적 획득과 관련된 정보는 없었다.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지. 이게 왜 나왔는지.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모르겠다.

아니 굳이 답을 알아야하나?

생각해보니 꼭 이유를 알아야하는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좋은 게 좋을 때도 있는 법이었다. 어쨌든 나는 새로운 업적을 달성했고, 그 덕분에 추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이나 하자."

"네?"

"오늘 레벨 하나 올릴 수 있을 것 같거든. 이제 스물 네 마리 남은 건가?"

나도 모르게 생각이 입으로 튀어나왔지만, 당황하는 일은 없었다. 내 얼굴은 꽤 두꺼웠고, 자연스레 대화를 이었다. 나란히 걷고 있던 리아도 딱히 의아한 얼굴은 아니었다.

거짓말은 아니니까.

실제로 거짓말도 아니었다. 사냥 전 앱을 통해 이 캠퍼스에 총 25마리의 몽마가 있는 걸 확인했었다. 그 몽마를 모두 사냥한다면 최소한 음격 한 단계를 올릴 수 있었다.

능청스레 속마음을 숨긴 나는 보스 앱을 통해 가장 가까운 몽마의 위치를 확인해 보았다.

막 지도를 확대하고 위치를 확인했을 때 리아의 순수한 감탄이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대단하네요. 당신은."

"또 뭐가?"

"그렇잖아요. 20레벨을 넘긴 사람도 없는데, 당신은 벌써 30레벨이 넘었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오늘 또 레벨 하나를 올리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해요. 10레벨만 넘어도 레벨 올리는 게 정말 힘들던데."

리아의 경외와 한탄이 뒤섞인 말에 실소를 참지 못했다.

"내 레벨을 어디 가서 떠들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한 가지 팁을 주지. 어때?"

"팁이요?"

"그래, 팁."

"좋아요. 근데 정말 그런 팁이 있어요?"

리아가 순진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당연히 팁은 있었다.

나는 지갑에서 5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리아의 손에 쥐어줬다.

"자, 팁이야. 착하네, 리아."

"……이게 한국식 조크인가요?"

"요즘 유행하는 거지. 아재 개그라고."

리아가 어이없는 눈으로 나를 째려보았지만, 내 얼굴은 여전히 뻔뻔했다.

이윽고 다음 사냥감이 나타났고,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

두 시간.

내가 24마리의 몽마를 사냥하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마지막 25번째 몽마만을 남겨두었지만, 내 얼굴은 처음 사냥을 시작했을 때 보다 더 안 좋아진 상태였다.

캠퍼스 교정 벤치에 리아와 나란히 앉은 나는 그녀가 건네준 편의점표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짜증을 뱉었다.

"돌겠네."

"제 실수에요. 사람들의 끈기를 너무 낙관했어요. 몽마가 사라지면 흥미도 식을 줄 알았는데……."

리아의 말 대로였다. 학생들은 몽마가 사라졌지만, 흥미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흥미를 보였고, 지금에 와서는 그들의 흥미가 흥분으로 돌변한 상황이었다.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교정을 돌아다니는 학생 파파라치가 쫙 깔린 이상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사냥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도주 준비조차 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사냥하는 걸 누구 한 명이라도 알아차리는 순간.

"포위되겠지."

"……아마도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리아가 고개를 숙인 채 물었다.

내 대답은 깊은 한숨이었다.

"후! 아깝네."

"그래도 아까 레벨업 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아쉬워요?"

"아쉽지. 고작 24마리밖에 못 잡았으니까. 보통 하루에 두 탐씩 뛰었는데."

14번째 응원 단장을 사냥하며 내 레벨은 29로 오른 상태였다. 어찌 보면 만족할만한 성과였지만, 내 욕심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못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2탐. 즉, 50마리 정도의 몽마를 잡아야 성이 풀릴 것 같았다.

"흠……. 그러면 밤에 하는 건 어때요? 그래도 밤이 되면 학생들이 더 적지 않을까요?"

"이거 낮과 밤이 바뀌겠는데."

리아의 의견이 타당했다. 괜히 낮에 사냥하는 건 밤에 사냥하는 것보다 신상이 드러날 확률이 더 높았다. 생활 패턴이 변하겠지만, 그것보다 사냥에 대한 갈망이 더 컸다.

나는 남은 커피를 단숨에 비우며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그럼 일단 쉬자고. 한 마리 남은 건 해 떨어지면 잡자고."

"어어? 어디로 가려구요?"

"어디긴? 호텔이지."

급히 나를 뒤따라오던 리아가 내 대답에 말이 없었다. 의아함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 같았다.

요거, 요거.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괜한 오해를 사양하고 싶은 나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누가 해 준데?"

"뭐, 뭐요! 내가 뭐요!"

더욱 붉어진 피부색으로 부끄러움을 표시하며 리아가 나를 쌩 지나갔다.

거의 뛰다 시피 교문으로 달려가는 리아의 뒷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튼 여자들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존재였다.

여자라는 동물은.

***

결론부터 말하면 리아의 생각이 정답이었다.

밤늦은 대학은 확실히 낮보다 한산했다. 물론 아예 인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세상이 세상이다 보니 도서관 불은 밤늦도록 꺼지지 않았다.

다른 이유로 학교에 있는 애들도 간간히 보였지만. 흐흐흐.

보스 앱을 통해 몽마의 위치를 찾아가는 도중 살짝 상기된 얼굴의 리아가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 학생들도 참 정열적이네요."

"왜이래, 더치걸께서."

"어머? 그거 차별이에요. 다 그런 건 아니거든요?"

"누가 뭐래?"

"……못됐다. 진짜."

내 능청스러움에 리아가 쀼루퉁한 얼굴로 패배를 선언했다. 그녀의 행동이 좀 귀엽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여자. 몇 살이지? 이거 외국인은 나이를 모르겠으니, 원.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다른 인종의 나이와 얼굴을 잘 구분하는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반대로 백인이나 흑인도 타 인종의 나이와 얼굴을 갈 알아보지 못했다.

여자의 나이를 묻는 건 만국공통으로 적용되는 실례였기에 지금까지 묻지 않았지만, 이미 만리장성은 아니어도 바위 하나 쌓은 사이였다.

"근데 리아. 당신 나이가 어떻게 돼?"

"나이요? 그게 왜요?"

동그랗게 눈을 뜨며 반문하는 리아의 얼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너도 한국 사람이구나.

조금 머쓱한 기분이 들었지만 내가 우리 문화에 익숙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꽤 귀여운 표정을 짓길래. 설마 서른 넘어서 그런 깜찍한 얼굴을 하는 건 아닌가 하고. 그건 아니잖아. 그치?"

"뭐라구요?"

아, 한판을 채웠구나.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굳이 씩씩거리는 리아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녀의 전신에서 감히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아우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조금 더 빠르게 걸으며 살짝 리아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아냐. 아무것도. 실례했네. 괜찮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잖아? 힘내."

"실례 아니거든요? 이봐요!"

실례 맞구만.

리아가 아예 달리다 시피 나를 쫓아왔다. 당연히 잡힐 리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남자였고, 유전자의 힘은 위대했다.

학생 식당 뒤편에 도착한 나는 품에서 멋들어지게 권총을. 아니, BB탄총을 뽑았다. 총구의 끝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몽마가 서 있었다.

팡. 딱.

"그럼 사냥하고 올게."

리아의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미 나는 침실로 이동한 상태였다. 침대 위에는 여전히 속옷을 입고 있는 몽마가 앉아 있었다.

치어리더가 입는 유니폼의 전형을 보여주는 몽마의 모습에 살짝 혀를 찼다.

은근히 성가시네.

공격은 가능했지만 속옷을 입고 있는 상대에게는 50%의 데미지밖에 줄 수 없었다. 당연히 마음에 안 들었다. 더욱이 나중에 천 재질이 아닌 갑옷을 입고 나오는 몽마가 나타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안녕? 난 박고영이라고 해. 널 보내줄 남자지."

친절한 미소를 보이며 나는 몽마를 향해 걸어갔다.

2회전 뒤 나는 침실 밖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순간 두 가지 상반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취소해! 당장 취소해!"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음울한 한기에 몸을 돌리니 잔뜩 화가 난 리아가 보였다. 왜 이렇게 화내는 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연스레 내 목소리가 조금 퉁명해졌다.

"왜 이래?"

"방금 나보고 뭐라고 그랬……어? 벌써 잡은 거예요?"

"어. 왜 그러냐니까? 빨리 말해. 퀘 떴어."

"퀘스트? 퀘스트가 나왔어요? 어떤 퀘스트에요?"

뭐냐, 이 여자.

리아는 워커 홀릭이었다.

어느새 수첩을 꺼내들고 필기 준비를 끝낸 리아의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못 말리겠다, 진짜.

픽 실소를 흘린 나는 빠르게 리아가 원하는 건 들어주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알려줘도 상관없기에 선선히 답한 것도 있었다.

"부단장이 나온다는데? 밑에 애들이 망가져서 대회 못 나간다고. 아무튼 이런 쓸데없는 없는 이야기는 빼자. 하여튼 개발자가 좀 미친 놈 같아."

"발동 조건은요? 아니, 보상은 어떻게 돼요?"

"조건이 뭐겠어? 생각을 좀 해봐."

너무 들뜬 리아를 바라보며 나는 내 머리를 검지로 톡톡 때렸다.

다행히 리아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녀는 금세 스스로 해답을 찾았다.

"……아! 25마리. 아니, 사냥터 전체 섬멸?"

"둘 다일 확률이 높아. 전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거든. 소매치기. 기억나?"

"당연하죠. 우리가 처음 만났잖아요. 그때."

몸은 왜 배배 꼬는데?

"아무튼 일정 조건이라지만, 그냥 사냥터에 있는 애들 하루 안에 잡으면 뜨는 거 같아. 더 강한 놈으로. 이번에는 좀 빠른 편이지만. 보통 100마리 언저리였어."

"그럼 두 가지로 구분하는 게 낫겠네요. 사냥터 청소와 사냥 횟수로. 근데 저기. 저기요……."

"그냥 물어 봐. 답할지 말지는 내가 결정할 테니까."

너는 제발 포커치지 마라. 얼굴이 톡이네, 톡이야.

선수 치며 고개를 끄덕이자, 리아가 활짝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요. 레벨이 몇인지 물어봐도 돼요?"

"지금 물어본 건 레벨을 물어본 게 아닌가봐?"

"아이, 그러지 말구요."

'웬 앙탈?"

"앙탈 아니거든요! 그냥 물어 본 거거든요?"

"아아, 됐어. 아니면 아니지, 왜 발끈하고 그래?"

나도 참 한 마디도 지지 못하는 구나.

다시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리아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나였지만, 쟤도 쟤였다. 둘 다 정상은 아니었다.

나는 혼자 꽁하는 리아의 이마에 꿀밤을 먹이며 담담히 내 레벨을 알려주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 이야기였다.

"29. 아직 30은 못 됐어."

"……거짓말. 안 속아요!"

"뭐래? 진짜 29야. 괜히 어디 가서 소문내지 말고. 항상 계약서를 기억해. 무슨 말인지 알지?"

"진짜 29레벨이에요? 진짜? 정말로?"

대놓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리아였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보스 앱을 실행했다. 능력창을 열고, 그대로 리아의 얼굴에 들이 밀었다. 물론 스탯을 가리는 걸 잊지는 않았다.

"몇 번을 말해. 진짜야. 봐라. 진짜지."

"맙소사……."

"예수는 교회 가서 찾고. 좀 비켜줄래?"

"네? 아!"

리아의 뒤편을 가리키며 말했지만, 그녀는 바로 내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다고 눈치가 없는 여자는 아니었다. 그녀는 이내 몸을 돌려 내가 가리킨 방향에서 걸어오는 몽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응원단 부단장이었다.

"금방 끝내고 올게."

"……네."

리아를 지나치며 더욱 짧아진 치마를 입고 오는 몽마를 향해 걸어갔다. 슬쩍 위아래로 스캔해 보니 딱히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쉬워 보였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팔짱을 꼈다.

"밖에 돌아다닐 때 팬티를 입어야 한다는 거 몰라?"

아쉽게도 부단장은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보스 급은 아니네. 쩝.

대화가 안 되는 몽마는 한 마디로 격이 떨어졌다. 대충 중간 보스쯤 될 것 같았다. 그래봤자 딱히 소용이 없겠지만.

나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걸어오는 부단장의 가슴을 검지로 찔렀다.

물컹!

부드러운 풍선을 찌른 느낌과 함께 나는 침실로 이동할 수 있었다.

침실에 진입한 나는 침대 위에 다리를 꼰 채 앉아 있는 몽마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몽마도 뽕을 써?"

몽마라고 모두 터질 듯한 가슴을 가진 건 아니었다.

부단장이 그러했다.

나는 아직 빈유의 미학을 알지 못했다.

그냥 큰 게 좋았다.

***

사냥이 끝났다.

어느덧 자정이 넘었다.

"오늘 다 합쳐서 쉰 두 마리를 잡은 건가?"

응원 단원 50마리, 응원 부단장 2마리.

오늘 내가 사냥한 몽마들의 숫자였다.

새벽에 접어든 교정을 둘러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침형 인간도 모자라서, 새벽형 인간이 되겠네."

"어쩔 수 없을 거예요. 당분간은. 힘들면 그냥 정체를……."

"그건 기각. 난 조용한 게 좋아.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야."

"피. 결국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정체를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리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기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은 한동안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과연 대중의 호기심이 사라지는 날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결국 언젠가 한계에 봉착할 게 분명했다.

다만.

"그때까지라도 조용히 지내고 싶으니까."

지금 현재가 중요했다.

나는 마지막 휴가가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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