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80화 (8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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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냥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차 안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핸들을 잡고 있는 내 옆에는 소연이가 앉았고, 그 뒤에는 현아가 앉아 있었다. 그녀들은 차에 오르기 무섭게 꾸벅꾸벅 졸더니, 이내 저마다 새우잠을 자기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더욱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그렇게 잠든 두 여자는 차가 멈추고 나서야 잠에서 깼다.

    부스스한 몰골의 소연이가 반쯤 감은 눈으로 날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히……. 오빠 미안. 깜박 잠들었네?"

    "눈곱이나 떼고 말해."

    내 핀잔에 소연이가 화들짝 놀라며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녀는 보조석 천장에 있는 햇빛 가리개를 거칠게 내리더니 이내 물티슈를 꺼내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소연이가 서둘러 몰골을 회복하고 있을 때 뒤이어 현아가 잠에서 깼다. 그녀는 앞좌석 사이로 고개를 불쑥 들이 밀더니 소연이와 똑같이 배시시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 수고했어요!"

    "너희 밖에 나가면 자매 같다는 말 많이 듣겠다. 그치?"

    "어! 어떻게 알았어요? 오빠도 나랑 언니랑 자매처럼 보여요?"

    살짝 돌려 말했더니 현아가 엉뚱한 소리를 해댔다.

    다행히 막 물티슈를 내려놓고 화장을 고치고 있던 소연이가 현아의 부족함을 채워주었다.

    "얼굴이 엉망이라는 말이야. 얼른 고쳐."

    "아악! 난 몰라! 보지 마요!"

    소연이가 불쑥 내밀은 손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 현아가 비명을 지르며 꿩처럼 몸을 숨겼다.

    그 모습에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커피 좀 사올게. 뭘로 마실래?"

    나중에 밥이나 먹자는 말과 맞먹을 정도로 의미 없는 물음에 소연이와 현아가 쌍으로 장고에 빠졌다.

    잠시 후 골똘히 고민하던 두 여자의 입이 거의 동시에 열렸다. 아무래도 한 살이라도 젊은 탓인지 현아가 소연이보다 조금 빨리 답했다.

    "전 자바칩 프라푸치노요!"

    "그거 별다방 거잖아? 나 별다방 커피 싫은데. 그럼 난 그냥 그린티 프라푸치노."

    "그냥 레쓰비나 마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자연스레 내 말투가 퉁명해졌다. 살짝 거칠게 문을 닫은 나는 당연하다는 듯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아, 등 따갑게.

    내 발 걸음은 끝까지 당당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너무 따가웠다. 두 여자의 간절한 시선을 이기지 못한 나는 결국 조금 더 걸어서 별다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제야 따끔거리던 등이 평화를 찾았다.

    생소한 커피 두 잔. 아니, 두 컵과 얼음 동동 띄운 커피 한 컵을 들고 차에 돌아왔을 때 소연이와 현아는 평소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거참, 대단하네.

    확실히 여자들의 화장은 대단했다. 옆집 백조 같았던 모습이 불과 몇 분 사이에 세련된 커리어 우먼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변신에 성공한 두 여자에게 손수 커피를 건네며 놀람을 표했다.

    "너희들 진짜 대단하다. 몇 분 만에 완전 딴 사람이 됐네?"

    "어? 까만 게 제거예요."

    "대충 먹어."

    "이거 마시는 건데……."

    "얘는. 오빠 잘 마실게. 덕분에 편하게 오고, 이런 것도 얻어 마시네?"

    커피가 바뀌었다는 현아의 눈치 없는 말을 소연이가 재빨리 끊으며 더 이상 내 미간이 찌푸려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저마다의 커피를 차 안에서 마시는 묘한 상황이 연출됐다.

    물론 조용한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근데 어디로 가야 해? 일단 너희랑 만났던 동네로 오기는 했는데."

    "응? 응……."

    별 의미 없는 내 물음에 소연이가 살짝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러더니 현아와 눈빛으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이상한 행동에 내 눈이 가늘어졌다.

    이것들 무슨 꿍꿍이야?

    내 시선을 느낀 소연이가 움찔하더니 이내 엄한 창밖만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려 뒷자리에 앉아 있는 현아를 보았다. 그녀도 내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뭐가 있긴 한 거 같은데. 도대체 뭐야?

    딱히 걱정이 되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나와 두 여자의 관계는 가벼운 편에 속했다. 다만 쉬이 말 못할 정도의 이야기라는 게 신경이 쓰였다.

    "둘 다 뭐해. 어울리지 않게. 그냥 할 말 있으면 해. 내 귀는 열려 있으니까."

    "헤……."

    "어울리지도 않는 그런 웃음을 때려치고."

    소연이와 현아가 동시에 무방비에 가까운 미소를 흘렸지만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

    내 칼 같은 대답에 현아가 입술을 삐죽이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와, 나쁜 남자. 때려치래."

    "아무튼 무슨 이야긴데, 그렇게 뜸을 들여?"

    단도직입적인 내 물음에 소연이와 현아가 또 다시 서로 눈치를 봤다. 아무래도 서로 총대를 메라고 미루는 듯 보였다.

    두 여자가 소리 없는 총성을 날리는 건 가만히 지켜 볼 내가 아니었다.

    "다 이거 다 마셔간다. 다 마시면 집에 갈 거야."

    "씨이……. 맨날 이런 건 나한테 시켜!"

    "난 은퇴 했잖아? 넌 아직 현역이고."

    "나도 은퇴했거든!"

    "너 가끔 가게 나가잖아? 아냐?"

    "그건 그냥 놀러가는 거지! 소 실장님이 할 이야기도 있다고 그러니까."

    내 재촉에 두 여자의 총에서 소음기가 떨어졌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의문은 금세 풀렸다.

    현아가 길게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내 눈치를 살폈다.

    "저기, 오빠. 화내지 마요. 알았죠?"

    "일단 들어 보고."

    "힝, 무서운데."

    "하! 됐어. 내가 말 할게. 이게 어디서 끼를 부려?"

    심드렁한 내 말에 현아가 살짝 몸에 밴 여우짓을 날렸다.

    그게 소연이의 심기를 어지럽힌 것 같았다.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더니 빠르게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내들었다.

    "사실 심각한 일은 아냐. 그냥 오빠가 누굴 한 번 눌러줬으면 좋겠어."

    "뭘 눌러? 야야. 여자애가 말 좀 이쁘게 해."

    "됐어. 내 성격 알면서 그래? 난 저 계집애처럼 여우짓 같은 건 못해. 아무튼 그래줄 수 있어?"

    "……그러냐? 근데 너도 내 상태 알잖아? 알면서 이런 부탁을 하면 어떡하냐."

    "괜찮아. 그냥 섹스 하라는 게 아니라, 섹스 배틀을 해달라는 거니까."

    응? 웬 섹스 배틀?

    소연이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그녀가 일했던 가게. 예전에 예 팀장을 만났던 그 고급 술집의 에이스가 성투의 세계로 이적하려는 걸 막아달라는 말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를 들을수록 내 얼굴에 어이없다는 기색이 진해졌다.

    "그러니까 나보고 그 에이스라는 여자랑 결투를 하라는 말이야?"

    "떡실신 시켜주면 더 좋고. 계집애가 세상 무서운 줄 몰라."

    "언니. 다혜 걔는 그럴 수밖에 없어요. 가게에 오자마자 에이스가 됐잖아요? 콧대는 또 얼마나 높은데요?"

    "아, 잠깐만. 근데 꼭 그래야 돼? 아니, 결투해서 이긴다고 꼭 가게에 남는다는 법이 없잖아?"

    나는 두 여자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솔직히 이해가가지 않았다. 내 생각에 결투의 승패와 화류계 은퇴는 별개의 문제 같았다.

    이번에는 현아가 내 의문을 풀어 주었다.

    "본보기죠, 뭐."

    "본보기?"

    "걔가 호구 하나 물어서 나가는 거거든요. 그거야 상관없는데, 아무튼 애들 물 흐려놓으니까. 소 실장님이 기를 한 번 꺾어 놓으려는 거예요. 이것 봐라. 넌 최고가 아니다. 세상에 고수는 많다! 뭐, 애들한테 딴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도 있고. 내 영향력이 이 정도다. 뭐, 이런 거?"

    "그런 것도 있고. 소 실장이 한 번 깽판치려고 그러는 거 같은데? 결투 장면을 녹화해서 그 호구한테 보내주는 거 아냐? 니가 돈 처발라서 파트너로 삼으려는 애가 이것밖에 안 된다. 섹스랑 전투랑 다르다. 그냥 우리 가게에 있을 때나 에이스다."

    이야, 그 아저씨 은근히 뒤끝 있네.

    예전에 봤던 소강석은 꽤 젠틀해 보였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 것 같았다. 아직 내 눈은 경지에 오르지 못한 듯 싶었다.

    어쨌든 상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걸 제외하면.

    나는 소연이를 향해 다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근데 너 말대로 결투 동영상을 찍으면? 내 쪽이 팔리는 거잖아?"

    "…….사실 동영상을 찍지는 않을 거예요. 그 애도 영상을 찍는 건 탐탁지 않아 할 테니까."

    대답은 소연이가 아닌 현아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다시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계속 말해 보라는 시선을 현아에게 보냈다.

    "그럼? 녹화를 안 하면 어떤 식으로 알려주는데? 아니, 알려준다고 그 사람이 믿겠어?"

    "음, 쇼케이스?"

    뭐라고? 무슨 케이스?

    그제야 요 앙큼한 여자들이 왜 이 말을 꺼내기 힘들어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상황을 이해한 나는 더 이상 두 여자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운전석에 등을 기댄 나는 담담히 내 생각을 알렸다.

    "내가 그런 제안을 받을 거라 생가한 건 아니지?"

    "소 실장님이 도와만 준다면 평생 VIP로 해준댔어요. 공짜! 공짜요!"

    "나 돈 많다. 내 돈 내고 먹고 마실 수 있다."

    "아니, VIP면 예약 없이도 된다니까요? VIP전용 룸이 따로 있어요!"

    "가게가 거기뿐인 것도 아니고. 그리고 내가 그런데 갈 일이 어디 있냐? 전에 소연이 만날 때 간 게 처음이야."

    "헐, 단 호박."

    약간의 틈도 주지 않는 내 대답에 현아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현아의 귀여운 행동에 실소를 흘린 나는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근데 현아야. 너 소연이랑 같은 가게에서 일했다고 하지 않았어? 근데 어떻게 소강석 그 사람을 알아?"

    "네? 킥! 왜 몰라요. 업장만 다르지 관리는 다 소 실장님이 하시는데."

    "아, 그런 거였어?"

    "네. 그런 거였네요. 근데 정말 해주시면 안 돼요? 나 그 재수 없는 계집에가 질질 싸는 거 보고 싶은데."

    그렇게 예쁜 입에서 그런 말 하는 건 반칙 아니냐?

    룸미러로 현아를 보고 있던 나는 너무 놀라 고개를 돌렸다. 내 시선에도 현아는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이제는 현아가 어떤 애인지 조금 감이 왔다.

    백치미.

    애가 좀 모자라 보였다.

    나는 속내를 숨기며 나름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 말 남자들 앞에서 하지 마. 침대 위라면 모를까. 그러면 너무 싸보여ㅇ."

    "치. 우리 아빠처럼 말해."

    "헛소리도 하지 말고. 무식해 보여. 그리고 아빠가 뭐냐? 아빠가."

    "왜요? 아빠를 아빠라 부르지!"

    "그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아빠 같을 수 있어? 넌 아빠랑 그……. 그러니까."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그래도 금기시 되는 걸 내 입으로 올릴 수가 없었다. 그저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내 목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였다. 나는 아직 순진하고 순수했다. 아니, 그런 편이었다.

    반면 현아는 달랐다.

    "섹스요?"

    "……그래. 아무튼."

    "킥! 오빠 얼굴 빨개졌어요. 디게 귀엽다."

    대충 대답을 얼버무리자 현아가 불쑥 상체를 좌석 사이로 내밀더니 고개를 도렬 나를 바라보았다. 가슴을 들이미는 그녀의 도발적인 행동에 나도 모르게 허리를 젖혔다. 그런다고 좁은 차안에서 도망갈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설상가상.

    게다가 옛말이 이번에도 맞아 들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르자 소연이가 눈을 빛내며 달려들었다. 그녀는 내 바지춤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이내 내 물건을 조물조물 거렸다. 진퇴양란이 따로 없었다.

    그때 현아가 내 귀를 살짝 깨물며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빠. 카섹스 해 봤어?"

    "으윽!"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현아에게 시선을 빼앗긴 사이 소연이가 발칙한 행동에 들어간 상태였다. 현아의 이빨을 내 귀로 느끼는 것과 거의 동시에 소연이의 입술을 내 물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위에서는 뜨거운 입김이 느껴지고, 아래에서는 질척한 타액이 느껴졌다.

    위험해!

    다행히 이성이 끊어지지는 않았다. 그만큼 장소가 좋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청담동 한 복판에 주차해 놓은 차 안에서 그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한 나는 양손으로 도발적인 현아의 어깨를 잡고 밀어냈다.

    "그만! 너희들 자꾸 그러면 큰일 난다?"

    "큰일 좀 한 번 나봤으면 좋겠다. 오빠. 응? 나 큰일 좀 나게 해줘용!"

    "소연아. 입 떼! 빨지 마! 야!"

    내가 밀어낸다고 그냥 밀릴 여자들이 아니었다. 현아는 슬쩍 가슴골을 들어내며 다시 달려들었고, 소연이는 더욱 입술에 힘을 주며 내 물건을 빨아들였다.

    자연스레 실랑이가 이어졌지만, 그래도 남자의 근력을 여자가 이길 수는 없었다.

    "이왕 할 거면 편하게 하자. 내가 오늘 아주 니들 경험치 쪽쪽 빨아주마!"

    "그냥 여기서 쭉쭉 빨아 먹어도 되는데."

    내 단호한 선전포고에 소연이가 아쉽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현아도 혼자 구시렁거렸지만, 내 표정은 더욱 단호해질 뿐이었다.

    결국 소연이와 현아가 포기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오늘 작살을 내주마!

    한 시간 뒤.

    다짐은 다짐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소연이와 현아는 사이좋게 튼실한 작살에 꽂힌 활어처럼 전신을 부들부들 떨어야했다.

    ========== 작품 후기 ==========

    오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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