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79화 (7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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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큐에 기절한 리아는 쉬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저지르고 보니 조금 난감한 상황이었다. 리아의 발그레한 볼을 찰싹 소리가 나게 때렸지만,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게 무슨 기분 좋은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때마침 소연이가 오랜만에 연락을 했고, 덕분에 나는 어색한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잠시 후 나는 약속 장소인 청담동의 한 카페에 들어섰다.

    "오빠! 여기!"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소연이가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소연이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며 걸음을 옮겼다. 이내 소연이가 옆자리고 옮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맞은편에 앉아 있는 현아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오빠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어떻게 문자 한 통 없어요?"'

    "다시 말 올리기로 한 거야? 머리 아프다. 하나로 통일해."

    "치. 얄미워."

    들쑥날쑥한 현아의 말투에 핀잔을 주자 그녀가 입술을 쭉 내밀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현아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야? 난 또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숨도 안 쉬고 뛰어 왔잖아?"

    "진짜? 정말 숨도 안 쉬고 뛰어 온 거야? 우리 오빠가?"

    "장난은 그만하고. 아무튼 무슨 일인데?"

    자신의 애교가 통하지 않자, 소연이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마도 철벽도 이런 철벽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현아는 그저 소연이가 무안스러운 상황이 즐거운지 키득키득 거렸다.

    얄미운 현아를 향해 살벌한 눈빛을 쏘며 현아의 입을 막은 소연이가 은근하게 내 허벅지로 손을 뻗으며 다시 철벽에 도전했다.

    "우리 오빠. 그동안 나 안 보고 싶었어?"

    "어."

    "어? 지금 어라고 한 거야? 어?"

    "애교 떨지 마. 이제 와서 무슨 애교야? 볼 거 안 볼 거 다 본 사이에."

    "하긴, 그건 그렇다."

    내 퉁명한 대답에 소연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현아도 꺄르르 웃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두 여자의 웃음은 주문했던 커피가 나오고 나서야 그쳤다.

    소연이가 더욱 내 허벅지 깊숙한 곳으로 자신의 손을 밀어 넣으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어때? 오랜만에 봤는데, 한 번 빼줄……야!"

    "됐네요."

    슬쩍 얼굴을 들이미는 소연이의 이마를 검지로 밀어내자, 자존심이 상한 소연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현아는 여전히 소연이의 굴욕을 즐겼고, 나는 여전한 두 여자의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적당히들 하지. 그러려고 날 부른 거야?"

    "그건 아니고. 오빠. 혹시 오늘 시간 좀 내 줄 수 있어?"

    "시간?"

    "응. 나랑 현아랑 사냥을 좀 가려는데. 보디가드가 필요해서. 글쎄 있잖아. 어제 이런 일이 있었다?"

    소연이의 이야기가 장황하게 이어졌다. 거기에 현아의 추임새까지 더해지니 슬쩍 머리가 아파왔다.

    다행히 내 머리의 한계를 넘기 전에 소연이가 짤막하게 바라는 걸 꺼냈다.

    "그래서 그런데, 오빠가 우리 사냥할 때 지켜주면 안 돼? 어제처럼 변태 만나면 어떡해? 진짜 우리 알몸 사진 인터넷에 다 퍼질 뻔 했다니까?"

    "진짜야. 정말 시껍했다니까? 글쎄 잡아 놓고 보니까, 우리 얼굴까지 다 나오게 찍은 거 있지?"

    배고프다고 삐악거리는 참새 같은 두 여자의 수다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조금 귀찮았지만, 막상 거절하기도 뭐했다. 더욱이 지금 당장 할 게 없어 조금 심심한 것도 한몫했다.

    어차피 얘들한테 도움도 좀 받았고.

    더 이상 두 여자의 수다를 듣고 있는 것보다 그냥 몸으로 때우는 게 더 나았다.

    "아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좀 떠들어. 니들 여기 전세 냈냐?"

    "오! 진짜? 진짜지?"

    "언니! 얼른가자!"

    소연이과 현아는 빛의 속도로 태세 전환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식간에 내게 다가온 그녀들은 사이좋게 내 팔을 하나씩 붙잡으며 다급함을 몸으로 표현했다.

    뭉클, 뭉클!

    "그래. 가자. 가."

    내 선언에 소연이와 현아가 더욱 내게 달라붙었다. 양 팔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이 더욱 또렷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두 여자에게 둘러 싸여 카페를 나서며 나는 살짝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 보았다.

    그곳은 움직이지 않았다.

    솔직히 조금 기대했는데. 뭐, 그래도 희망이 있으니까.

    딱히 실망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

    충북의 한적한 계곡에서 난데없는 전투가 벌어졌다.

    인간과 몽마의 싸움이었다. 다만 공평한 싸움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인간은 둘이었고, 몽마는 하나였다.

    쪽수가 많은 쪽은 당연히 소연이와 현아였다. 다만 두 사람이 유리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만큼 그녀들이 상대하는 몽마의 겉모습이 엄청났다.

    "뭐 저렇게 생겼지? 이거 완전 촉수물인데? 어흐!"

    두 여자의 사냥하는 모습을 십여 걸음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내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진짜 영화에서나 보던 특수 분장 괴물 같은데 실제로 눈앞에 있으니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메마른 고목.

    지금 소연이와 현아가 사냥하는 몽마의 이름이었다. 여러 개의 가지는 꼭 촉수처럼 생겼고, 실제로도 촉수처럼 사용됐다. 소연이와 현아는 몽마의 촉수 같은 가지를 자신의 음부에 넣은 채 공방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아흥! 힐 좀 줘!"

    "아흑! 흑! 잠, 흑! 깐! 만!"

    "하하……."

    교성을 터트리며 몸을 꼬면서도 두 여자는 대화를 이어나갔고, 덕분에 나는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몽마란 걸 알아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그냥 엄한 나무로 자위하는 변태로 보이겠네.

    굵은 나뭇가지를 음부에 넣고 몸을 들썩이는 알몸의 두 여자.

    솔직히 변태 같았다. 아니, 변태 맞았다. 결코 평범한 성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저런 몽마를 사냥할리가 없었다.

    "취향이야 어떻든 상관없지. 그나저나 신기하네. 2:1이라."

    두 여자의 성적 취향이 어떻든 내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나는 전투 자체에 관심이 더 쏠렸다. 결투는 해봤지만, 다른 참가자가 몽마를 사냥하는 장면은 처음이었다.

    "확실히 팀을 먹고 싸우는 게 안전하기는 하겠네. 두 번 공격하고 한 번 공격 받는 거니까."

    전투 순서는 간단했다. 선공을 잡은 소연이가 첫 공격을 날리면 다음 차례는 몽마였다. 몽마의 반격을 받은 다음 마지막으로 현아가 공격을 하거나 지원을 하는 등의 행동을 취했다. 현아의 턴이 끝나면 그렇게 1회전이 끝나는 것 같았다.

    흥미로운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소연이가 딜러고, 현아가 힐러인가? 아! 그건 아닌가 보네."

    첫 공방을 통해 얻은 추측이 2회전을 시작하며 무너졌다. 소연이가 음부에서 불꽃을 뿜어내며 몽마의 가지를 불태우는 공격까지는 이전과 같았다. 다만 현아는 이전처럼 활력 회복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현아 또한 소연이처럼 불꽃 조이기 공격을 통해 몽마를 공격했다.

    그제야 대충 감이 왔다.

    "둘 다 힐 스킬을 배웠구나. 공격 스킬도 마찬가지고. 이야, 이거 괜찮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만큼 두 여자의 선택은 탁월해 보였다. 거기에 그녀들은 손발까지 착착 맞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마른 고목의 사냥이 끝났다.

    "끄어어어어……."

    "휴! 크리 터졌을 때 식겁했네."

    "언니 괜찮아요?"

    "아, 괜찮아. 진짜 너 말대로 피옵 붙은 상징 올리길 잘했네."

    두 여자는 옷을 입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내게 다가왔다.

    당당하게 알몸을 드러내며 다가오는 두 여자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안 추워? 옷 줄까?"

    "됐어. 어차피 또 벗을 건데. 그보다 어땠어, 우리?"

    소연이는 내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반대로 되물었다. 현아도 내 평가가 궁금했는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대답을 재촉했다.

    나는 대답하기에 앞서 두 여자에게 코트를 차례로 입혀주었다.

    "아이, 괜찮다니까?"

    "어차피 또 벗을 건데. 어차피 겨울도 아니고."

    "그래도 입고 있어. 과년한 애들이 뭐하는 거야? 적당히들 하자, 적당히."

    짐짓 낮은 목소리로 꾸짖듯 말하자, 소연이와 현아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그녀들은 내 말에 기분이 상한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는 두 여자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걸음을 옮겼다. 그와 동시에 솔직한 소감을 내뱉었다.

    "놀랍네. 이런 식으로 싸우는 건 상상도 못했거든."

    "그치? 우리도 놀랐다니까? 처음에 그냥 반쯤 장난 식으로 반려를 맺은 건데. 이러다가 정분나겠어?"

    "어머? 언니. 정분은 이미 났죠. 이러기에요?"

    소연이의 너스레에 현아가 눈을 흘기며 삐죽 쏘아붙였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든 나는 걸음을 멈춘 채 현아와 소연이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이거 설마?

    "너희들……."

    "앞서가지 마. 그 정도는 아냐."

    "에이, 오빠. 농담도 구분 못하면 우리가 뭐가 돼요?"

    "아니지? 뭐,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선수 치는 두 여자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괜히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둘 다 지력 기반으로 스탯 트리를 탔나 봐?"

    "당연하지! 나 대학생이거든?"

    "저도요!"

    "됐고. 지력 기반은 꽤 힘들다던데. 대단하네."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시작할까 싶었던 나는 칼같이 그녀들의 말을 자르며 되물었다.

    내 물음에 소연이가 씽긋 웃으며 내 옆구리를 껴안았다.

    "힘들지. 근데 내가 템운이 있나 봐. 덕분에 꽤 강해졌다?"

    "저도 언니 덕분에 편했어요. 먼저 힐부터 배워서 좀 걱정이었는데."

    "천……만 다행이네."

    순간 나도 모르게 천생연분이라는 말이 나올 뻔 했다. 나야말로 천만다행으로 말을 바꿀 수 있었다.

    "그런데 엠이 부족하지는 않아? 지력 기반 스킬들은 하나 같이 엠이 엄청나던데."

    "응? 에이, 괜찮지 그럼. 우리도 인트 꽤 많이 찍었잖아?"

    "아……. 하긴, 그러네. 아니지. 그럼 피가 부족하지 않아?"

    "상징 중에 피 올려주는 게 있어요. 저랑 언니랑 150짜리 하나씩 껴서 버틸 만 해요. 힐도 있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즉흥적으로 지력 기반으로 간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녀들은 나름 고민을 했고, 방법도 찾았다. 그 노력 덕분에 나름 상위권에 머물 수 있는 것 같았다.

    근데 상위권 맞나? 랭킹 같은 게 없으니, 원.

    어느새 다음 식물형 몽마에게 근접했다.

    나는 두 여자가 걸치고 있던 코트를 다시 받으며 나름 건투를 빌었다.

    "그래도 조심해. 몽마들도 나름 한 방이 있으니까."

    "걱정 마!"

    "알아요!"

    내 걱정스러운 말에 두 여자가 활달하게 답했다. 그녀들은 냅다 메마른 고목에 달라붙더니 이내 나뭇가지 하나씩 손에 쥐고 자신들의 음무에 밀어 넣었다. 아까도 그랬지만, 참 대단한 여자들이었다.

    "신났네, 신났어. 아. 그런데 쟤들 저렇게 사냥해서 경험치를 얼마나 얻으려나?"

    문득 사냥 성과가 궁금했다.

    일단 사냥 방식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은 편에 가까웠다. 다만 경험치가 마음에 걸렸다.

    2명이서 사냥하면 몽마의 경험치를 반으로 나눠가졌다. 누가 더 데미지를 주고 말고 할 게 없이 공평한 배분이었다.

    "하지만 2명이서 사냥하는 거라 몽마가 가진 경험치의 절반밖에 얻을 수 없지. 결국 25%밖에 못 얻는다는 말인데……."

    한창 전투중인 두 여자에게 벌이가 어떠냐고 물어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두 여자가 전투를 끝내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전투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두 여자의 전투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나는 앞선 전투와 비교해 보았다.

    "아까도 3턴. 이번에도 3턴이네. 아니지. 아까는 3회전에서 소연이가 마무리했지만, 이번에는 현아가 마무리했으니. 좀 다른가?"

    약간의 차이지만 차이는 분명했다. 실제로 선공을 잡은 소연이가 전투를 마무리하면 몽마의 공격을 한 번 덜 받는 것과 같았다. 활력과 정력 관리가 생명인 두 여자의 사냥 방식이라면 앞선 사냥이 훨씬 이상적이라 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전투를 끝낸 두 여자에게 다가가 코트를 입혀주었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굳은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소연이와 현아가 뒤늦게 고마움을 표했다.

    나는 손을 젓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참았던 궁금증을 풀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근데, 소연아."

    "응? 왜 오빠?"

    "저거 잡아서 경험치 얼마나 얻어?"

    "아하, 그게 궁금했구나? 얼마 못 얻어. 점점 경험치가 짜지는 거 같아."

    나도 알고 있는 사항이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 고개가 다시 멈췄을 때 현아가 소연이를 대신해서 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원래 메마른 고목은 경험치를 300이나 주는데요. 그런데 우리는 파티 사냥이라 절반밖에 못 받아요. 그걸 또 반으로 나눠야하고."

    "……그럼 한 마리 잡아서 75씩 얻는다는 거야, 지금?"

    "응! 그래도 이거 꽤 쏠쏠해. 42마리만 잡으면 레벨 하나 올릴 수 있다니까?"

    "언니 43마리야. 16레벨 되려면 3,200이 필요해."

    왜긴 왜겠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좋다고 떠드는 두 여자의 모습에 괜히 내 가슴이 답답해졌다. 내 눈에 소연이와 현아는 최저 시급도 못 받으며 일하는 순진한 알바처럼 느껴졌다.

    근데 나 졸라 쎄구나.

    동시에 가슴이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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