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78화 (78/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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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아는 제법 똑똑한 여자였다.

    내 생각과 달리 리아는 오토바이를 타고 바로 우리 집까지 이동하지 않았다. 중간에 내린 다음 그들에게 일당을 주고 돌려보내더니,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택시를 타고 징검다리처럼 이동했다. 이런 수고로 인해 나와 리아의 이동 동선을 확인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물론 덕분에 아침 해가 뜨는 걸 봐야했지만.

    내가 샤워를 하는 사이 리아는 아침을 사러 잠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나와 리아는 식탁에 마주 앉아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나는 정성들여 익힌 달걀의 노른자를 터트리며 나이프로 빵을 잘라 폭 찍어 먹었다. 달걀노른자의 고소함이 입 안 가득 퍼지며 침샘을 더욱 자극했다. 바짝 구운 베이컨도 한 점 썰어 먹으니 이보다 좋을 게 없었다.

    자연스레 내 목소리가 노른자를 닮아갔다.

    "써니 사이드 업은 오랜만이네. 이 근처에 이거 파는 집이 있었나?"

    "따로 부탁했어요. 팁을 더 주는 조건으로. 음. 셰프 실력이 괜찮네요. 이정도면."

    "어딘지 알려줘. 다음에 나도 팁 주고 따로 주문하게. 이거 진짜 괜찮네."

    아침 식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더하며 즐겁게 이어졌다.

    누구도 보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꽤 어려운 전투를 치른 나는 물론이고, 그것을 지켜봤던 리아도 정신적으로 꽤 피곤했다. 지금은 잠시 쉬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깔끔히 접시를 비운 나와 리아는 취향대로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 거실 소파에 각자 자리를 잡았다. 사실 이대로 눕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시차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피곤해도 오늘 하루 버텨야했다.

    시원한 탄산수를 한 모금 마신 나는 커피를 마시며 나를 힐끔거리는 리아를 바라보았다. 나와 시선이 부딪치자 리아가 화들짝 놀랐다.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돌리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괜찮네.

    일단 눈치가 빠르고,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줄만했다. 물론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지만, 크게 문제가 생길 여지는 없어 보였다.

    내가 휴대폰을 꺼내들자 다시 나를 힐끔거리는 리아의 시선을 뒤로한 채 나는 보상을 확인해 보았다. 우선순위는 명확했다. 그녀의 호기심을 풀어주는 것보다 내 궁금증을 푸는 게 먼저였다.

    일단 책부터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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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력의 책]

    + 책 습득 시 5 능력치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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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의 책]

    + 책 습득 시 1 기술치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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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땡이네?

    사구 파토 나도 판을 먹을 수 있는 장땡이었다. 능력의 책과 기술의 책은 레벨을 한 단계 올리는 것보다 더 좋았다.

    아니지. 업하면 활력이랑 정력 같은 게 오르니까. 그래도 렙차 페널티가 없으니. 쌤쌤인가?

    어쨌든 좋다는 것에는 변화가 없었다.

    "중요한 건 이제 어질 50을 찍는다는 거니까."

    순수 속도 50을 찍는다는 사실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제부터 내 삽입 공격 횟수는 기본이 2회였다. 더블 어택이 터지면 최대 한 번 공격에 3번의 타격이 가능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 미소를 짙게 그리며 나는 상징을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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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채찍의 상징]

    + 결코 흥분하지 않는 귀족의 위엄.

    + 치명 피해 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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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러네. 치명이 안 떴네.

    생각해보니 검은 채찍을 상대할 때 치명타가 터지지 않았다. 그때 당시에는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지만, 검은 채찍의 상징을 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검은 채찍이 가지고 있는 몽마의 고유 특성 때문인 게 분명했다.

    일단 킵. 쓸 만해 보이기는 한데. 좀 애매하지?

    장땡까지는 아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사구파토나, 땡잡이정도? 땡도 아니고, 끗도 아닌 어중간한 그 어디에 위치한 느낌이었다.

    상징을 확인한 나는 살짝 미소를 줄이며 칭호와 업적을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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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험가]

    + 최초의 평민 관문 몽마 사냥.

    + 타격력 25 상승.

    + 마법력 25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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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편 절단]

    + 가학성 공격 내성 15%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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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호는 오륙 따라지였지만, 큰 실망을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성체 파괴자가 워낙 사기여서 말이지.

    그래도 업적은 꽤 괜찮았다. 언제 또 다시 검은 채찍 같은 사나운 몽마와 싸울지 몰랐다. 그때 15%의 가학 내성은 큰 힘이 될 것 같았다.

    "그나저나 업을 못해서 좀 아쉽네."

    "다 확인하신 건가요?"

    아, 맞다. 쟤가 있었지.

    보상을 확인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리아의 존재가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제법 당황스러울 상황이었지만, 겉으로 티를 내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았다. 이제 나도 꽤 뻔뻔한 사람이었다.

    "그럼 궁금한 거 물어 봐."

    "일단 오늘 사냥한 특수 몽마의 전반적인 정보가 필요해요. 대략적이라도 좋아요."

    "대략적이라도 좋은 게 아니라 대략적일 수밖에 없지. 알잖아? 특수 몽마는 보스 앱으로도 검색할 수 없는 거."

    "후우. 말 꼬리 잡지 마시고. 그냥 좀 알려주면 안 돼요?"

    리아가 살짝 날카로워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이거 무서워서 장난도 못 치겠네.

    어깨를 으쓱거리는 걸로 리아의 분노를 외면한 나는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고 담담히 말문을 열었다.

    "일단 모험가라는 칭호를 주네."

    내가 정보를 풀기 시작하자 리아가 어느새 렙탑을 꺼내들더니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행동하나는 진짜 빨랐다.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게 아니라 손끝이 좀 야무진 그녀였다.

    칭호와 업적에 이어 나는 상징 정보까지 넘겼다. 능력의 책과 기술의 책도 마찬가지였다. 아이템에 관한 정보는 굳이 끌어안고 있어 봤자 큰 이득이 없었다.

    내 말이 끝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입력을 끝낸 리아가 크게 상기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후아! 진짜 엄청나네요. 진짜."

    "아직 전투 기록이 남았잖아?"

    "당신 기록도 불러줄 건가요?"

    "그럴 리가 없다는 거 잘 알 텐데?"

    작은 밀당이 이어졌지만 소용이 없었다. 밀당을 하려면 일단 상대도 밀거나 당겨줘야 했다. 나는 그냥 바위였다. 바위.

    나는 검은 채찍에게 받은 피해 수치와 기술사용 여부는 물론이고, 거기에 속성에 관한 이야기까지 알려주었다.

    "근데 이걸로는 너무 불안전한 정보 아닌가?"

    "그럼 당신이 공격한 수치도……."

    "수고했어."

    살짝 질긴 리아의 관심을 딱 잘라낸 나는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소파에 벌러덩 들어 누웠다. 리아는 입술을 살짝 씰룩거리더니 이내 빠르게 기입한 정보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녀의 타자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잠시 눈을 감고 안락함을 즐긴지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누가 내 가슴에 손을 올리고 흔드는 게 느껴졌다.

    "저기요? 저기요!"

    "음? 아. 깜빡 잠들었나 보네."

    뒤늦게 졸았다는 걸 깨달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졸음이 쏟아져도 지금은 참아야했다. 괜히 잤다가는 밤과 낮이 뒤바뀔 수도 있었다.

    크게 하품을 한 나는 내 옆에 앉는 리아를 보며 물었다.

    "몇 시야?"

    "9시요. 그렇게 피곤해요? 일반 몽마는 백 마리를 잡아도 멀쩡했잖아요?"

    "멀쩡한 건 아니지. 그래도 확실히 더 피곤한 건 맞네. 일종의 정신노동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지금 머리가 좀 무거워."

    "오호!"

    리아는 새로운 걸 알았다는 듯 다시 렙탑을 펼치더니 빠르게 내 말을 타이핑했다.

    저런 거 보면 참 대단하네.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서 그런가?

    리아의 사정을 대충 알고 있기에 그녀가 출세욕에 눈이 멀어 저러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즐기는 걸 순수하게 좋아했다. 그랬기에 아프리카의 오지 마을이나, 동남아시아의 특이한 마을 등을 돌아다니는 게 가능했다.

    열정이 없으면 그건 죽어도 못하겠지.

    리아에 대한 친밀도가 1 상승했지만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였다.

    졸음을 쫒기 위해 욕실로 들어가 찬물로 세수를 하고 나왔다. 그 사이 리아는 타이핑을 끝내고 다시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의 옆에 앉았다.

    "아, 그러고 보니 평민 계급 봉인을 해제한다고 했는데. 뭐 달라진 거 있나?"

    "음……. 그래요? 당신이 씻는 동안 좀 뒤져보거나 검색해 봤는데. 딱히 달라진 건 없는데요? 여전히 다른 나라의 특수 몽마는 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래?"

    이상했다.

    뭐가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닌가? 그러면 안 되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나는 더 높은 레벨의 몽마가 필요했다. 31레벨 이상의 몽마가 없다면 더 이상 사냥은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리아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저기……."

    "왜? 뭐 또 궁금한 게 남았어?"

    도리도리.

    멈칫!

    끄덕끄덕.

    내가 고개를 돌리고 묻자, 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 할 말이 있음을 몸으로 알렸다. 살짝 상기됐던 얼굴은 어느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쟤가 왜 저러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뭔데? 답답하게 그러고 있지 말고. 그냥 말 해. 어차피 결정은 내가 하잖아?"

    "후우……. 저기요. 그러니까……."

    "아, 쫌! 답답하게 그러지 말고 그냥 말 하라니까!"

    리아의 망설임에 괜히 내 속이 답답해졌다.

    나도 모르게 날선 목소리가 튀어 나왔고, 리아가 움찔하며 내 시선을 피했다.

    어깨를 움츠리는 리아의 모습에 나는 괜히 짜증을 냈다는 후회가 들었다. 미안한 마음에 차분히 목소리를 다듬으며 리아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나름의 사과 표시였다.

    "미안해.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식이면 내가 답답해서 못해. 그러니까 그냥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말 해. 계약서에 사인했잖아?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가 아니면 들어 줄……."

    "나랑 한 번 해요."

    "응?"

    "나랑 한 번 하자고요!"

    리아의 뜬금포에 나는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순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제대로 들었나 의심이 들었지만, 연이은 리아의 외침에 의심은 곧 사라졌다.

    이 여자…….

    "미쳤니?"

    내 솔직한 속마음에 리아가 더욱 얼굴을 붉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다시 한 번 말했다.

    "나랑 자자고!"

    "내가 왜!"

    "그건……! 그러니까. 그니까요. 그래! 당신이 알려준 정보의 정확도를 높이려면, 데이터가 필요해요!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에요. 나랑 한 번 자요. 섹스 배틀로!"

    아하, 그 말이었어?

    그제야 리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내 공격을 직접 받고, 그 전투 기록을 통해 편차를 줄이려는 것 같았다. 나름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기는 개뿔. 구라를 쳐도 제대로 쳐야지.

    솔직히 코웃음이 나왔다. 검은 채찍보다 레벨이 낮은 리아가 내 정보를 분석하는 건 불가능했다. 편차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편차가 커지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을 제외하더라도 저렇게 얼굴을 붉히고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을 할 이유가 없었다.

    오냐, 그렇게 하고 싶다면. 해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오는 여자 막는 남자는 세상에 거의 없었다. 물론 나도 아니었다. 이미 한 번의 상처를 입은 이후 내 성격은 삐뚤어진지 오래였다.

    "후회 안할 자신 있어? 앞으로 일에도 영향 안 주고?"

    "……네."

    "좋아."

    "네? 꺅!"

    순간 공주님 자세가 된 리아가 비명을 지으며 내 목을 두 팔로 감았다.

    나는 리아가 놀라든 말든 말이 없었다. 그저 침실로 걸어갔고, 그녀를 침대 위에 던져 버렸다. 또 다시 리아가 비명을 질렀다.

    놀람도 잠시 리아는 금세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녀는 내가 보고 있는 와중에도 당당히 옷을 벗었다. 늘씬한 몸매와 달리 조금 아쉬운 가슴이 드러났고, 이어서 꽤 굴곡진 골반이 나타났다.

    망설임 없이 내 앞에서 옷을 벗는 리아의 행동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아, 네덜란드.

    리아는 유럽의 성진국 중 하나인 네덜란드 여자였다. 지금까지 그녀의 내숭에 깜짝 속았다. 내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아주 요절을 내주마!

    나도 거리낌 없이 옷을 벗었다.

    이윽고 알몸이 된 나는 바로 결투 신청을 날렸다. 리아가 결투 신청을 받기 무섭게 내 엑스칼리버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내 엑스칼리버를 보며 아주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슬금슬금 침대 위를 걸어와 내 물건을 입에 넣은 리아는 사탕을 빨듯이 혀를 날름거렸다. 그녀는 천천히 즐기고 싶은 모양인 듯 싶었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 물건을 정성스레 빨아 먹는 리아의 머리를 잠시 쓰다듬은 나는 이내 그녀의 몸을 잡고 반대로 돌렸다. 그녀의 작지만 탄력적인 엉덩이가 내 눈앞에 드러났다. 그 사이의 비소는 결투 시스템 덕분에 흠뻑 젖은 지 오래였다.

    "자, 그럼 시작하자고."

    리아가 무어라 내 말에 대답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녀가 입을 열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푸욱!

    "흑! 급하……아아아앙!"

    일격.

    리아의 무릎이 그대로 풀렸다. 그녀의 몸이 앞으로 쓰러지며 다리가 살짝 벌어졌다. 침대에 쓰러진 그녀의 몸은 부들부들 감전 당한 사람처럼 떨고 있었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오므린 채 파르르 떨고 있는 리아의 모습은 마치 벼락 맞은 고양이 같았다.

    오래도록 리아를 파고든 벼락이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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