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74화 (7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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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스가 나를 유혹했다.

    ['청동 경험 거울'을 구매하시겠습니까?]

    "물론! 싸그리! 다! 단숨에……잠깐! 취소! 취소!"

    지름신의 잔뜩 흥분한 목소리도 잠시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 보스는 내 속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엄청난 실수에 빠지지 않았다.

    경험치 거울은 속임수였다.

    가슴에 손을 얹고 심장의 두근거림을 잠시 느끼던 내 입에서 깊은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재고는 괜히 재고가 아니구나. 와, 식겁했네. 이거 완전 조삼모사. 아니, 조삼모이네. 큰일 날 뻔 했어."

    내가 청동 경험 거울을 사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지금 45개의 동화를 모두 경험치로 바꿔도 업이 불가능했다. 현재 내 필경은 8,100이었고, 현재 경험치는 2,060에 불과했다. 4,500을 더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지금 당장 레벨업이 불과한 상황에서 굳이 경험치 거울을 구매하는 건.

    "미친 짓이지. 어차피 블랙 휩과 싸울 때 상태는 변화가 없잖아? 실수할 뻔 했네. 그러고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기꾼의 부적.

    차라리 그 돈으로 경험치 뻥튀기 아이템을 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동화 5개라고 해봤자, 겨우 500 경험이잖아? 지금이야 경험치가 별로. 아니. 아니지. 보스몹들은 경험치가 천 단위잖아? 이거 잘하면? 그리고 나 한 장 있지 않나? 하루가 아니라 한 마리라서 그냥 처박아 놓은 게?"

    마침 전에 사 놓은 사기꾼의 부적은 멀쩡히 남아 있었다.

    혹시라도 퀘스트 보상 경험치까지 뻥튀기 해준다면 이쪽이 훨씬 나았다.

    "입장료는 좀 아깝지만. 그냥 적선했다 치지 뭐."

    미련을 버렸다. 아니, 버릴 수밖에 없었다.

    말은 담담하게 한 주제에 나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지하 창고를 뒤졌다. 꿈속에서 팔이 저리다는 게 느껴질 때까지 하나하나 물건을 잡아 정보를 확인해 봤지만, 내 흥미를 돋우는 건 없었다. 대신 흥분하기는 했다.

    안 좋은 쪽으로.

    "아오! 하나 같이 이따위야?"

    마지막으로 확인한 물건을 거칠게 던져 놓으며 괜히 성질을 부렸다. 재고는 괜히 재고가 아니었다. 이건 그냥 단오절 야시장에서 파는 잡동사니 보다 못했다.

    시간과 돈을 버리고 얻은 내 결론은 하나였다.

    고물.

    "……됐어. 호구 안 된 게 어디야?"

    되도록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지만, 딱히 별 효과는 없었다.

    나는 구석에 있는 상자 위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앙칼진 고양이를 흘끔 한 번 보고 그대로 계단을 올랐다. 괜히 더 있어봤자 미련만 생길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암이 생길지도.

    결국 정품의 중요성을 느끼며 현실로 돌아왔다.

    "……에효."

    큰 기대를 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생각할수록 열 받았다. 사행성을 넘어 사기까지 치는 보스에 치가 떨렸다.

    그 와중에도 스마트폰을 더듬거리며 집어든 나는 버릇처럼 상태창을 열어 현재 상태를 확인하려고 했다.

    물론 그런 뻘짓은 하지 않았다. 대신 기술창을 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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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용 기술]

    + 성투 입문

    + 구강 삽입 : 2성

    + 도둑 숨기 : 1성

    + 활력 회복 : 3성

    + 도둑 삽입 : 2성

    + 속옷 도둑 : 1성

    + 성기 강화 : 1성

    + 색기 강화 : 1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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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용 기술]

    + 광속 자지술 : 1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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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유 기술]

    + 절대 삽입술 : 1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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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여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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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천치나 바보나 한 끗 차이였다.

    레벨업을 하지 못한 이상 기술치는 당연히 그대로였다.

    나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기술창을 닫았다.

    "한동안 기술창을 신경 쓰지 말아야겠다."

    어차피 필수라고 생각하는 기술은 모두 익힌 상황이었다. 다른 기술을 배워도 딱히 더 효율적이라고 볼 수 없었다. 기술을 쓴다는 것은 결국 공격권을 한 번 소모하는 것이었다. 공격권을 소모하는 건 결국 최종 피해가 감소하는 걸로 이어졌다.

    특히 일명 평타라 칭하는 삽입 공격을 주 공격 패턴으로 삼는 내게는 공격권이 더 소중했다.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버프를 많이 쓸 수 없겠지. 2개만 해도 몇 대를 손해 보는 거야? 게다가 나중에 가면 어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이야 공격 횟수가 기본 1회에서 도둑 삽입이 터지면 2회로 늘어나는 정도였지만, 그건 말 그대로 지금일 뿐이었다. 일단 속도 수치를 50까지만 올려도 추가 공격 횟수를 얻을 수 있었다. 만약 속도가 100이 된다면 기본 공격 횟수만 4회였다.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였다.

    "막말로 신나게 버프 써서 원킬 내면 뭐해? 그냥 버프 없이 두 번 공격하는 게 더 이득인데."

    겉모습에 취해서는 안 됐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실속이었다. 내실을 다져야 달릴 때 넘어지지 않는 법이었다.

    그 뒤로도 나는 이런 저런 상태를 확인했다. 물약은 얼마나 남았는지, 경험치로 혹시 살 게 있는지. 이것저것 확인해 봤지만 딱히 당장 급한 건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소파 저편으로 던지는 것으로 점검을 끝냈지만 내 얼굴은 오히려 더 어두워졌다.

    "그 전에 블랙 휩을 사냥한 다음은 어쩌지? 지금도 내 소문이 인터넷에서 알음알음 퍼지고 있는데. 여기에 블랙 휩까지 사냥하면. 으으!"

    생각만 해도 오한이 들었다. 지금은 마스크맨이니 뭐니 내 별명을 자기들 마음대로 붙이며 흥미 위주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검은 채찍을 잡게 되면 흥미가 흥분으로 변할 게 분명했다. 검은 채찍 사냥을 위한 마지막 난관은 꽤 높아 보였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몽마. 사람들의 관심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나. 이 두 가지가 합치면, 결국 신드롬이겠지."

    남들의 지나친 관심은 내 움직임에 족쇄로 작용할 것이고, 행동에 제약이 걸리며 자연스레 지금처럼 빠른 레벨업은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발생해서는 안 됐다. 나는 남들의 관심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고 싶었다.

    결국 어떻게 해서든 내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로 검은 채찍을 사냥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게 가능할까? 아무리 새벽에 사냥을 시도한다고 해도. 사람이 없을 리가 없잖아?"

    단순히 늦은 시각까지 유흥을 즐기는 이들의 눈만 문제되는 게 아니었다. 그들 말고도 새벽부터 일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단적인 예로 환경 미화원들이 그랬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흔적 없이 사냥하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파파라치도 있고. 아니, 아니지. 이이제이라고 했잖아? 이거 잘하면 가능할 지도?"

    불리한 내 상황을 돌이켜보다 보니 한 가지 묘수가 떠올랐다. 물론 이게 묘수가 될지, 패착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시도는 해볼 만했다.

    기기제기.

    기레기는 기레기로 제압한다.

    다른 사람의 칼로 누굴 죽이는 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펜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뜯어 낼 수 있는 건 최대한 뜯어내야겠지."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그대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이번에는 내가 리아를 필요로 했다.

    ***

    오대기.

    내게 리아는 5분 대기조였다. 그녀는 집으로 들이는데 필요한 시간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 집 앞에서 죽치고 있던 그녀 덕분에 나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거실에서 그녀와 마주앉을 수 있었다.

    그래도 손님이었기에 리아에게 시원한 얼음 물 한 잔을 대접한 나는 소파에 갑의 자세로 앉은 채 대뜸 본론을 꺼냈다.

    "아직도 날 취재할 생각입니까?"

    "……네. 어떻게 하면 응할지 그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그렇단 말이지?

    리아는 선선히 내 물음에 답했고, 나는 조금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

    나름 거만하게 다리를 꼬며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리아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릎을 바짝 붙인 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 방법이란 건 찾았습니까?"

    "……아직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답한 리아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자책하는 리아와 달리 나는 오히려 작게 미소 지었다. 그녀의 태도를 보아하니 최소한 기레리가 말하는 낚시꾼들과는 다른 것 같았다.

    최소한 취재원은 존중한다는 말인데.

    취재원에 대한 존중이 있다면 내가 바라는 걸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았다. 나는 내 개인 신상 정보만 퍼지지 않으면 상관없었다.

    어차피 보스에 대한 걸 알려준다고 해도. 과연 따라할 수 있을까?

    지난 며칠 동안 인터넷과 언론 등을 관찰한 결과 튜토리얼에서 벌어진 격차가 쉬이 좁혀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정보 몇 가지를 공개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우화 속 토끼를 능가하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이상 지금 격차를 꽤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 한 가지.

    신뢰가 문제였다.

    나름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리아였지만, 나는 그녀를 믿을 수 없었다. 애초에 만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사람을 믿을 정도로 나는 착하지 않았다. 30년을 살아오며 내가 믿고 있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으니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잠시 내려앉은 어색한 침묵을 옆으로 밀어내며 여전히 살짝 불안해하는 리아를 바라보았다.

    "첫째. 내 개인 신상 정보는 그 어떤 방식으로도 외부로 흘러 나가지 않는다."

    "네?"

    리아가 뜬금없는 내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나는 리아가 놀라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원하는 조건을 이어나갔다.

    "둘째. 나는 리아 쿠퍼를 통해 NPO에 보스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한다."

    세상에 눈치 없는 기자는 정말 드물었다. 이쯤 되자 리아도 빠르게 내 의도를 눈치 채며 품에서 수첩을 꺼내들었다. 이내 수첩을 펼치더니 볼펜으로 빠르게 내가 앞서 말했던 첫 번째 조건부터 적어 내려갔다.

    "셋째. 나를 취재하며 스스로 얻은 정보라도 내 허락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다."

    조금의 배려도 없이 내가 할 말만 했지만, 리아는 불만 표하지 않았다. 불만은 고사하고 오히려 희열을 느끼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빠르게 내 말을 수첩에 담았다.

    필기 속도가 빠른지 리아는 금세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3가지 조건이 끝인가요? 따로 바라는 게 없으신가요?"

    "마지막으로 NPO는 내가 요청하는 보스의 몽마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내게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 물론 내 개인 정보를 누출하지 않는 건 기본이었다. 다만 나는 전 세계에 뻗어있는 NPO의 정보력을 이용하고 싶었다.

    아무리 나라도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상급 몽마를 찾는 건 불가능하니까.

    내 마지막 조건까지 적은 리아가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표정을 수습했지만 안색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 이유가 곧 그녀의 입술을 타고 흘러 나왔다.

    "저기, 미스터. 마지막 조건 말이에요. 우리들도 몽마에 대해 많이 아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몽마의 외형, 위치, 특징 정도에요. 레벨도 추정일 뿐, 정확한 건 아니고요."

    "그 정도면 충분해. 난 레벨 높은 몽마의 위치가 필요하니까. 그리고 몽마의 특징? 당신들이 전투를 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내가 필요로 할까?"

    살짝 자존심이 상한 리아의 표정이 쌜룩해졌다.

    그런다고 내 입에서 사과가 나올 것 같냐?

    솔직히 가소로웠다. 저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 중 믿을만한 건 추청 레벨과 위치뿐이었다. 그들이 분석하고 예측한 몽마의 특징이 과연 얼마나 정확할 지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차라리 몽마의 외형을 보고 내가 추측하는 게 더 나았다.

    어설픈 분석보다 다양한 경험이 더 낫다는 게 내 지론이었다.

    괜한 자존심 싸움을 할 생각이 없었기에 나는 빠르게 결정을 촉구했다. 물론 약간의 말미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 조건이 이게 전부고. 내일 오전 중으로 계약서를 작성해서 보내드릴까? 아니면 그쪽에서?"

    "우리가 작성해서 내일 아침까지 보여드릴게요."

    "그럼 그렇게 합시다. 아. 괜한 장난질은 안하는 게 좋을 겁니다. 내가 이래봬도 꽤 좋은 변호사를 알거든요."

    "염려마세요. 그런 파렴치한 짓은 안하니까요. 그런데 계약 사항 위반에 대한 건 어떻게?"

    "음. 적당히 100만 달러 정도로 합시다. 마음 같아서는 1천만 달러로 하고 싶은데, 그쪽에서 거절할 것 같으니."

    심드렁한 내 대답에 리아가 입을 쩍 벌렸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백만 달러도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 천문학적인 액수에서 0을 하나 더 붙이는 내가 미친놈처럼 보인 것 같았다.

    쓸데없는 오해를 사양하고 싶었기에 지나는 듯 가볍게 한 마디 더 보탰다.

    "왜요? 내가 그 정도 돈을 감당 못할까봐?"

    "……솔직히 말하면, 그래요."

    "그러면 계약서에 1천만 달러의 위약금을 적어놔요. 변제책임에 대한 능력은 내가 입증할 테니까."

    작은 리아의 입술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진짜 찢어진 거 같은데? 아닌가?

    리아의 턱을 위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오른 손을 내밀었다.

    "그럼 내일 봅시다. 잊지 마요. 내일 아침까집니다."

    "예? 예. 알겠어요. 염려마세요. 태어나서 약속을 어긴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요."

    그건 좀 놀랍네. 아니, 진짜 대단하네.

    서로 한 가지씩 놀란 나와 리아는 만족하는 미소를 입에 걸고 악수를 나누었다. 이로써 나는 괜찮은 정보 루트 하나를 손에 넣을 가능성이 생겼다. 확실히 남는 장사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리아는 약속을 지켰다.

    ========== 작품 후기 ==========

    우선 댓글로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_ _)

    실수가 있었습니다.

    청동 거울이 아니라 황금 거울로 잘못 적어 놨네요;;;

    실수 안하려고 엑셀로 처리하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실수한 것 같습니다-_-;;

    일단 수정했습니다.

    나름 주말에 바짝 써 놓은게 쓸모없어졌지만 어쩔수 없지요.

    참고로 거울 구매하고 피박쓰는 걸 나중에 알게되는 걸로 했는데...

    망해쓰요.

    수정하다보니 오늘 시간이 다갔네요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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