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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ss-72화 (7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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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데미지였다. 지금까지 이렇게 낮은 데미지는 처음이었다.

    "아니지. 튜토리얼. 그러니까 초기엔 이보다 못한 데미지도 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건 정말 아니었다.

    내가 내 공격력에 실망하고 있는 사이 소매치기 두목이 기분 나쁘게 피식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저주라……. 흥! 잔재주는."

    기분 나쁜 멘트는 덤이었다.

    조소를 날린 몽마가 슬쩍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반쯤 일어선 그녀가 손을 뻗어 내 엑스칼리버를 쥐었다. 이내 그녀의 입에서 처음 듣는 언어가 흘러 나왔다.

    무슨 주문이라도 읊는 건가?

    ['소매치기 두목'에게 1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1.

    하나마나한 공격이었다.

    1회전이 끝나며 내 활력이 208이 회복되며 활력이 2,468까지 올랐다. 조루로 변한 데미지를 제외하면 모든 상황이 내게 웃어주었다. 호재 속에서도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무언가 있어. 분명 무언가가.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피어났지만, 나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고민해 봤자 머리만 아플 게 분명했다. 나는 스스로를 믿었다.

    다만 공격 패턴을 바꿔야했다. 지금까지 반쯤 봉인했던 기술을 꺼내들었다. 바로 구강 삽입이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새로운 기술을 꺼내들었지만, 나는 기술을 채 발동도 못하고 집어 넣어야했다.

    [현재 체위 고정 상태입니다.]

    [다른 체위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아, 식판.

    불안감의 정체를 확인했다. 체위 고정이었다. 소매치기 두목은 조금 특이한 기술을 가진 듯 했다.

    이유가 어찌됐건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이제 내게는 2가지 선택이 남았다. 하나는 처음처럼 무작정 삽입 공격을 이어나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속옷 도둑을 통해 몽마의 옷을 벗겨버리는 것이었다.

    잠시 고민했지만, 결정은 빨랐다.

    일단 벗기자고!

    소매치기 두목의 최대 활력이 얼마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미약한 데미지로 전투를 지속할 수 없었다. 어차피 체력이 낮다면 몇 턴 소비해도 상관없었다. 다만 체력이 높다면 몇 턴을 소비해서더라도 반 토막 난 데미지를 평소대로 올려야했다.

    [기술에 실패합니다.]

    빌어먹을 30퍼센트.

    방금 전 30%의 확률은 뚫었지만, 이번 30%의 확률은 뚫지 못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다음 턴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내 기술사용 실패에 소매치기 두목이 코웃음으로 조소를 대신하고 공격을 해왔다.

    이번에도 방금 전과 같은 공격이었다. 다른 점은 엑스칼리버를 2번 그러쥐는 게 전부였다. 2번 공격하니 2배의 피해였다. 그래봤자 2의 데미지를 받은 게 전부였지만.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이쯤 되니 분명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속셈이 있어 보였지만, 그 속셈을 알 수는 없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한 번 강체 탈의를 시도하는 게 전부였다.

    [기술에 실패합니다.]

    "아오!"

    연이은 기술 실패에 슬슬 열이 올랐다. 생각보다 30%의 확률은 높았고, 그 뒤로 두 번이나 기술을 더 실패하고 말았다.

    무엇을 준비하는 지 몽마의 세 번째 공격은 세 번 내 물건을 쥐는 게 전부였다.

    결국 2회전부터 찔끔 피가 달면 만피를 채우는 상황이 반복됐다.

    5회전에 접어든 나는 반쯤 오기에 휩싸여 속옷 도둑을 시전했다.

    [기술에 성공합니다.]

    ['소매치기 두목'의 '하의'를 탈의합니다.]

    하의?

    묘한 메시지에 대한 의문은 곧 풀렸다.

    내 기술에 당한 소매치기 두목의 바지가 커터 칼로 난도질 한 것처럼 찢어지기 시작했다.

    부욱! 북! 찌익!

    다양한 소리를 내며 걸레가 된 검은 정장 바지는 통풍 한 번 제대로 될 것 같았다.

    여기저기 하얀 살결이 드러났지만, 내 표정은 더욱 굳어져 갔다.

    "……속옷까지 입고 있는 건 반칙 아냐?"

    어이가 없었다.

    소매치기 두목은 새하얀 속옷을 입고 있었다. 내 손바닥도 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속옷의 방어력이 드럽게 높아 보였다.

    "내가 더럽고 치사해서."

    오기고 뭐고 이젠 짜증나서 못 참을 것 같았다. 다음 턴부터 그냥 평타로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2겹에서 1겹으로 줄었으니, 데미지가 좀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다.

    어쨌든 5번째 내 공격이 끝났다.

    소매치기 두목의 얼굴이 만개한 것도 그때였다.

    "이걸로 마지막이다!"

    왠지 모르게 몽마의 목소리가 후련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이번 공격은 5의 피해를 받는 것에 그쳤다. 턴이 넘어가며 내 활력은 또 다시 최대 활력인 2,600으로 올랐다.

    공격권을 회수하자마자 나는 그대로 공격했다.

    퍽! 퍽!

    ['소매치기 두목'에게 91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소매치기 두목'의 '속옷'을 탈의합니다.]

    ['소매치기 두목'에게 111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소매치기 두목'의 '허리띠'를 파괴합니다.]

    아! 맞다!

    뒤늦게 머리가 번쩍 했다. 헐벗은 선녀의 상징 효과였다. 삽입 공격 시 15%의 확률로 파괴와 20%의 확률로 탈의가 가능한 걸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헐벗은 선녀의 상징을 장착한 이후에 사냥한 몽마는 소매치기뿐이었고, 소매치기는 침실 안에서 알몸으로 전투에 임했다. 입은 게 없으니 파괴하거나 탈의할 게 없는 게 당연했다.

    무언가 놓친 게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생각은 곧 끊어지고 말았다.

    "감히! 나를!"

    성난 소매치기 두목의 눈빛이 변했다. 변한 건 눈빛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자세가 살짝 커졌다.

    공격 기회를 잡은 소매치기 두목이 갑자기 내 발목을 잡더니 그대로 벌렸다. 몽마의 억센 힘에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나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쩍!

    졸지에 조금 다른 의미의 쩍벌남이 되고 말았다. 이건 남자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는 자세였다. 타의에 의해 가랑이를 벌린다는 건 정말 치욕적이었다.

    빌어먹을 몽마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잡고 있던 내 다리를 침대와 수직이 되게 세웠다. 자연스레 내 허리가 접혀지며 더욱 치욕스러운 자세로 변했다.

    마치 나를 뒤집어진 의자로 만든 소매치가 두목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가랑이 사이로 교차하며 앉았다. 내 머리 위를 밟고 있는 새하얀 발목을 물어뜯고 싶고 싶었다.

    히바우도. 이거 꼭 강간당하는 것 같잖아?

    여성 상위의 새로운 버전에 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내가 수치심에 몸을 부들부들 떨든 말든 몽마는 잔인했다. 자세를 잡은 그녀는 그대로 허리를 아래로 내렸다. 그 와중에도 껄떡이던 엑스칼리버가 그녀의 몸 안으로 자취를 감췄다.

    푸욱! 푸욱! 푸욱!

    엑스칼리버는 아무런 반항을 하지 못한 채 몽마의 속살에 먹히고, 또 먹혔다. 그녀는 엑스칼리버를 품을 때마다 속살을 바짝 조였고, 그때마다 내 입에서는 숨넘어갈 듯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흑! 억! 흐억!"

    다행히 무자비한 공격은 금세 끝났고, 접혔던 내 허리가 다시 펴질 수 있었다.

    수치스러운 자세를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소매치기 두목'에게 83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소매치기 두목'에게 121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소매치기 두목'에게 451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단숨에 655의 활력이 날아갔다. 물론 턴이 종료되며 208의 활력을 회복했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경시할 수 없는 데미지였다.

    "얼추 450의 데미지인가? 어! 잠깐만."

    미간을 찌푸리며 재수 없게 웃고 있는 소매치기 두목의 얼굴을 보고 있을 때 문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강한 한 방이었지만, 이게 만약 연계 기술이라면. 그렇다면 진짜 강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No였다.

    총 5번의 의미 없는 공격에 마지막 제대로 된 공격이었다. 6번의 공격동안 655의 피해를 줬다는 말이었다. 적, 한 턴에 내 피를 120정도씩 깍은 것과 같은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회복력을 생각하면 한 턴에 330정도 데미지를 받은 건가?"

    이렇게 생각하니 방금 공격이 크게 위협적이지 않게 느껴졌다. 그 순간 전투 시작부터 날 감싸고 있던 위화감이나 불안감 같은 게 싹 사라졌다.

    이번 전투. 이길 수 있어!

    승리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확신을 얻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튕겼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서 그런지 몸놀림이 더 날래 보였다. 효과음이 경쾌한 건 덤이었다.

    퍼억! 퍼억!

    ['소매치기 두목'에게 397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소매치기 두목'에게 481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더블 어택 앤 크리티컬!

    단숨에 878의 데미지를 소매치기 두목에게 선사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당황이 드러났다.

    여유가 사라진 몽마는 공격권을 받자마자 반격을 시도했다.

    푸욱!

    엑스칼리버의 뿌리까지 삼킨 몽마가 허리를 비틀며 최대한 쥐어짜려고 노력했다.

    ['소매치기 두목'에게 164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딱히 성과가 없었다.

    내 활력은 전투를 시작한 이후로 2천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냥 일방적이었다. 만약 하얀 독수리의 영혼이 없었다면 지금과 전혀 다른 결과를 받았겠지만, 삶에 만약은 없었다.

    "자, 그럼 마무리를 해 볼까?"

    놀림이 가득한 내 말에도 불구하고 소매치기 두목은 말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이를 가는 게 전부였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그녀도 느낀 것 같았다.

    나는 소매치기 두목이 진짜를 느끼길 바라며 힘차게 허리를 올려쳤다.

    퍽! 퍼억!

    ['소매치기 두목'에게 210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소매치기 두목'에게 454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아쉽게도 마무리에는 실패했다.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소매치기 두목의 얼굴은 물론이고, 목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고지가 머지않았다.

    이미 승패가 결정 났음에도 몽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소매치기 두목'에게 159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방금 전과 같은 심층 삽입 공격의 피해는 민뎀이라도 터진 듯 더 적었다.

    어차피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기에 나는 공격권이 돌아오자마자 공격을 시도했다. 아쉽게도 추가 삽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 추가 삽입은 필요하지 않았다.

    퍽!

    "이이익!"

    ['소매치기 두목'에게 199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소매치기 두목'이 절정에 올랐습니다.]

    [전체 임무 '소매치기 두목의 분노'를 완료합니다.]

    [기본 보상 '경험 2,500'을 획득합니다.]

    [추가 보상 '동화 주머니 1개'를 획득합니다.]

    [음격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소매치기 두목은 절정에 오르면서도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나름대로의 반항인 듯 싶었다. 그러든 말든 절정에 오른 이상 사라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위기 없는 평온한 전투였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버릇처럼 이마를 손등으로 훔쳤다.

    "이거 좀 피곤하네."

    상대의 능력치를 모른다는 건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됐다. 만약 소매치기 두목의 최대 활력 정도라도 알 수 있었다면 이렇게 긴장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아쉽지만 보스는 편리한 게임이 아니었다.

    긴장이 풀리며 나도 모르게 침대에 드러누웠다. 등에서 푹신한 느낌이 들며 편안함이 느껴졌다. 안타깝지만 그 편안함은 오래가지 않아 사라졌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 만에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아쉬웠지만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어느새 사람들의 이목이 내게 쏠려 있는 상태였다. 멀리서도 나를 향해 걸어오는 이들이 보일 정도였다. 내 주위를 지나가던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있었다.

    나는 더욱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며 그대로 유흥가를 가로질러 달렸다.

    대낮의 활주극이 이어졌다.

    벌써 오늘만 3번째였다.

    ***

    다행히 좀비 떼에 잡히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다.

    집 앞 큰 도로까지 택시를 타고 온 나는 차비를 지불하고 내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휴! 아슬아슬했어. 아, 근데 이것도 문제네."

    걸음을 옮기는 와중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처럼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을 받아야 한다면 차를 산 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내 차로 인해 더 불편하고 불안한 상황을 겪을지도 몰랐다.

    이미 대금까지 치른 상황에 구매한 차를 물릴 수도 없었기에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괜히 돈만 날리는 거 아냐? 아냐. 아니지. 이제부터는 달라져야지. 그냥 쓰자. 그것보다……."

    지금 내게 차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천천히 걸어가던 걸 멈추고 몸을 돌렸다. 리아도 내가 걸음을 멈추자 따라서 몸을 세우는 게 보였다. 진짜 근성하나는 높이 살만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아무리 리아가 끈질기게 날 쫓아다닌다고 해도, 나는 그녀가 바라는 걸 들어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제 풀에 지치겠지.

    저러는 것도 한때라 생각했다. 리아가 따라오든 말든 신경을 끊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자존심의 유통기한은 대게 짧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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