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70화 (70/200)
  • <-- Lia Cooper -->

    ***

    진심으로 고민했다.

    삼촌한테 전화 할까?

    마음 같아서는 진상에게 나도 진상 짓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딱히 법으로 어떻게 처리하기도 애매한 것도 한 가지 이유였지만, 그보다 서른이나 돼서 삼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꼴사나운 것 같았다.

    결국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암사자처럼 내 앞에 다가온 리아를 향해 날카롭게 쏘아 붙였다.

    "이 봐요.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리아가 허리를 직각으로 접었다. 그녀는 대뜸 사과부터 날렸고, 덕분에 난 화낼 타이밍을 잃고 말았다.

    얘 뭐지? 외국 애들은 눈을 보고 말하는 게 예의 아니었나?

    내 상식이 오발탄을 발사할 때 리아가 재빨리 다시 한 번 용건을 꺼내들었다.

    "다시 한 번 부탁할게요. 취재를 허락해주세요. 결코 그쪽 얼굴이나 개인 정보가 기사에 언급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이 여자가 날 호구로 아네.

    콕 집어 기사를 언급하는 리아의 화술에 넘어갈 정도로 난 어수룩하지 않았다.

    나는 살짝 몸을 틀며 냉정하게 리아의 제안을 거절했다.

    "기사에는 안 나가겠지만, 당신네 방송사가 준비하는 다큐멘터리에는 나가겠지. 안 그래?"

    굳이 대답을 들을 가치가 없었다.

    이만하면 충분히 예의를 차렸다고 생각한 나는 벙찐 얼굴로 서 있는 리아를 그대로 지나쳤다. 쓸데없는 관심에 휩쓸려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뒤늦게 정신 차린 리아가 다시 내 옆으로 달려오더니 걸음을 맞추며 빠르게 나를 설득하려했다.

    "아니에요! 진짜 아니에요! 참고 자료로만 쓸 게요. 네? 그래도 안 돼요? 얼굴 사진 한 것도 안 낼 거라니까요? 진짜에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싫은데?

    "원하시면 인터뷰 피도 서운하지 않게 지급할게요. 정말 간단한 정보면 돼요. 아니. 한 가지만요. 딱 한 가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면 손으로 만지면 몽마가 죽는지. 네?"

    아이고, 그게 목적이었어?

    리아의 속셈을 알게 되자, 발걸음이 더 가벼워졌다. 리아는 그 뒤로도 나를 쫒아오며 시끄럽게 굴었지만, 나는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무시한 건 아니었다.

    택시의 뒷좌석에 앉은 나는 창문을 내리며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리아를 향해 마지막으로 내 의사를 전달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인터뷰를 거절한 겁니다. 만약 나와 관련된 이야기가 기사나 방송을 통해 나온다면. 그때는 내가 취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억하심정으로 나올 수 있었기에 단호하게 대처해야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했는데, 열 받는다고 기사 쓰는 건 아니겠지?

    작은 걱정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괜히 취재를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단호하게 끊어내는 게 더 나았다.

    나는 당분간 몽마 사냥에 오롯이 집중하고 싶었다.

    ***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지옥으로 변하는 곳이 있었다.

    바로 신도림이었다.

    하필 내가 고른 사냥터가 신도림역이었다. 워낙 오랜만에 방구석 폐인에서 벗어나다보니 미처 잊고 있었다. 이곳이 지옥이라는 것을.

    "후! 진짜 아찔했네. 몽마가 돌아 다니는 대도 무슨 사람이……."

    신도림역은 늦은 오후부터 지옥으로 차원 이동을 준비했다. 괜히 조금 더 싼 모자랑 선글라스를 준비하려다 지옥의 구렁텅이에 휩쓸릴 뻔했다. 다행히 퇴근 시간 전에 사냥을 끝마치며 마지막 탈출 열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그래도 성과는 쏠쏠했다.

    우선 25마리의 소매치기를 사냥한 덕분에 7,500의 경험치를 얻었다. 그 덕분에 오늘 하루 음격을 2단계나 올릴 수 있었다. 게다가 쏠쏠한 득템까지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이거 내일이면 기승위를 배우겠는데? 흠. 근데 이거 좀 기다려 볼까?"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길을 걷는 와중 살짝 고민이 됐다. 지금 당장 사냥에 무리가 없다보니 스킬 포인트를 아끼고 싶었다. 나중에 당장 필요한 스킬이 있는데 못 배우는 불상사는 없어야했다.

    "그래. 그냥 놔두자. 괜히 성급하게 썼다가, 피 볼라."

    결국 당분간 스킬 포인트를 아끼기로 결정했다. 딱히 사냥에 어려움이 없는데 굳이 스킬 포인트를 쓸 이유가 없었다.

    스킬 포인트를 뒤로한 나는 이번에 얻은 5개의 스탯 포인트를 모두 속도에 투자했다.

    언제 어질 50찍나 했는데. 생각보다 금방 되겠는데?

    깔끔한 능력창을 보니 괜히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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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격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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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력 : 100 + 15

    + 지력 : 0 + 15

    + 체력 : 0 + 15

    + 속도 : 20 + 15

    + 정확 : 0 + 15

    + 행운 : 0 + 15

    + 잔여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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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력창을 확인한 김에 상태창도 열어 보았다.

    상태창 역시 능력창 못지않게 날 뿌듯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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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활력 : 2,552/2,552

    + 정력 : 610/610

    + 경험 : 6,760/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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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격력 : 258

    + 마법력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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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어력 : 28

    + 항마력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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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중률 : 139

    + 회피율 :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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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도 : 61

    + 치명 증폭 : 125%

    + 치명 저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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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경험치가 마음에 들었다.

    "조금 더 사냥할 걸 그랬나? 2마리만 더 잡으면 또 레벨 하나 오르는 건데. 아쉽네."

    사냥할 때는 미처 경험치를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섹스 배틀이 치열해서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필드에서 사냥을 시작하며 마음이 급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어느새 집 근처에 도착한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걸음을 빨리했다.

    "일단 좀 씻자. 하도 뛰 댕겼더니 땀이, 어휴."

    첫 탐 이후 집에 들렀을 때 씻지 않고 나온 게 후회됐다. 그때 씻었으면 이렇게 찝찝하지는 않았을 텐데.

    상쾌한 샤워를 위해 거의 뛰다 시피 달려와 우리 집 대문 앞에 섰을 때였다.

    "저기요!"

    순간 오한이 들었다.

    "설마……."

    나는 흠칫 놀란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니…….

    "……기는 개뿔!"

    설마는 언제나 옳았다.

    리아였다.

    우리 집 맞은 편 길 위에 집 잃은 고양이처럼 쪼그려 앉아 있던 그녀가 휴가 나온 남친을 본 것처럼 달려왔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그녀는 숨도 쉬지 않고 뛰는 것 같았다.

    리아가 내 앞에 멈추는 순간 그녀의 몸에 밀려 날아온 바람이 시원하게 내 얼굴을 때렸다.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지 리아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뒤엉켜 있었고, 옷은 진공 포장된 것처럼 쫙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더욱 야시시 해 보였지만,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아우, 땀 냄새.

    땀은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나도 땀 냄새가 심했지만,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무의식적으로 미간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내 얼굴을 오해한 리아가 더욱 조심스럽게 부탁을. 아니, 애원을 해왔다.

    "이렇게 무턱대로 취재 요청하는 게 예의가 아니란 건 알아요.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전 아직도 그쪽 이름도 모르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니었다.

    나는 썩소를 뿌리며 리아에게 전제 조건이 잘못됐음을 지적했다.

    "이 봐요. 쿠퍼 씨."

    "리아라고 불러주세요."

    "됐습니다. 미스 쿠퍼. 내가 취재에 응할 생각이 없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닙니까? 언론의 자유를 등에 업고 스토킹을 해도 되는 겁니까?"

    사실 이 정도는 통상적인 취재 과정에 들어가는 범위란 걸 나도 알았고, 그녀도 알았다. 단지 내가 지금 얼마나 불쾌한지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 강경한 태도에 리아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포기하는 건가?

    살짝 안도감이 들었다. 기자에게 끈질김은 미덕이었다. 어쨌든 기자인 리아가 귀찮게 달라붙으면 나라고 해도 마땅한 대책이 없었다.

    겨우 피어난 안도감은 채 피지도 못하고 사그라졌다.

    "좋아요. 알겠어요."

    분명 내가 바라던 대답이었지만, 리아의 표정에서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눈살을 찌푸린 나는 위화감을 없애기 위해 말문을 열었다.

    "그럼 포기하는 거롤 알겠습니다."

    괜히 딴 소리 하기 전에 튀자.

    대답을 듣기도 전에 몸을 돌려 대문을 활짝 열었다. 아쉽게도 대문은 다시 닫히지 않았다.

    리아의 담담한 목소리가 내 발목을 잡았다.

    "아뇨. 포기하지 않아요."

    아, 히말라야.

    순간 속에서 욱하는 감정이 솟구쳤다. 더 이상 예의고 나발이고 차릴 기분이 아니었다. 진상도 이런 개진상이 없었다.

    다시 몸을 돌리며 싸늘한 눈빛으로 리아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내 눈빛을 피하지 않고 받아쳤다.

    결국 하고 싶지 않은 대화를 이어나가야했다.

    "뭐하자는 겁니까?"

    "설득은 포기했지만, 취재는 포기할 수 없어요. 하지만 더 이상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멀리서 감시라도 하겠다는 말입니까?"

    "네."

    리아는 당당하게 답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한 점 부끄럼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 정도는 통상적인 취재 과정으로 인정되는 범위 안에 있기도 했다.

    물론 나는 아니었다. 내 사전에는 이것도 범죄였다. 쌍욕이라도 퍼붓고 싶지만, 너무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잠시 말없이 서로 눈빛만 교환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막혔던 말문이 다시 뚫리기 무섭게 나는 리아를 톡 쏘아붙였다. 쓸데없는 눈싸움은 사양하고 싶었다.

    "마음대로 해 보세요. 나도 마음대로 할 테니."

    꼴리는 대로 해 봐. 나도 한 진상 하거든?

    "네. 그럴 생각이에요. 도저히 놓칠 수 없거든요. 당신을."

    너 이미 내가 찍었다니까? 그냥 포기해. 그럼 편할 거야.

    "예, 예. 그러시든지, 말든지."

    내가 대가리에 총 맞았냐?

    "아! 혹시 이 근처에 묵을 만한 곳이 있나요?"

    24시간 감시할 거야. 그렇게 알아.

    "주택가에 그런 데가 있을 리가. 저기 도로 건너가면 찜질방이라고 하나 있을 겁니다."

    누가 그냥 두고 본데?

    "이런. 그럼 안 되겠네요. 알겠어요. 그런데 끝까지 이름은 안 알려주실 생각이세요?"

    됐고. 이름이나 까 봐.

    "그럼 바빠서, 이만."

    말 속에 담긴 칼날이 서슬 퍼랬다.

    나는 더 이상 설전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리아와 대화 때문인지 갑자기 피로가 느껴졌다. 얼른 차가운 물이 몸을 씻고 싶었다.

    쌩하니 돌아선 나는 감정을 실어 대문을 닫았다.

    쾅!

    "꺅!"

    나이스!

    작은 복수에 성공한 덕분에 짜증이 조금 가라앉았다.

    물론 나도 내 행동이 유치하다는 걸 알았다.

    알지만 어쩌겠는가.

    원래 남자는 유치한 것을.

    ***

    아침부터 재수가 없었다.

    "에이, 씨!"

    어제와 달리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보스 앱을 실행하고, 바로 전혼 사냥에 나섰다. 다만 성과가 좋지 못했다. 아니, 나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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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사냥꾼의 영혼]

    + 등급 : 노예 1단계

    + 성장 : 1/3

    + 효과 : 동물형 공격 10%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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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하급 중의 최하급.

    성장치가 고작 1밖에 되지 않는 전혼이 낚여 올라왔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가 전부였다.

    거칠게 스마트폰 화면을 조작한 나는 사냥꾼을 늑대의 먹이로 주었고, 그대로 스마트폰을 침대 위로 던져 버렸다.

    "어제 일진이 사납더니. 오늘은 시작부터 불안하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괜히 구시렁거리며 욕실로 향했다.

    불안한 기운을 없애기 위해 평소보다 더 오랫동안 샤워를 했지만 기분이 썩 나아지지는 않았다.

    어쨌든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침을 시작한 나는 서둘러 외출 준비를 했다. 필수품은 핸드폰과 지갑은 물론이고, 변장 도구까지 챙겼다. 변장 도구라고 해 봤자, 모자에 선글라스, 마스크가 전부였지만.

    밀회를 즐기는 연예인 코스프레를 끝낸 나는 어제 검색해 놓은 사냥감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았다. 귀찮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몽마는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한 번 사냥 당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다시 나타났다. 그러다 보니 매번 사냥감을 찾아야했다.

    "근데 천민 애들보다 평민 애들이 좀 더 게으른 거 같기는 하네."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전 검색했던 몽마를 다시 한 번 찾아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목적지를 정한 나는 더욱 걸음을 서둘렀다.

    평민 몹이라 누가 잡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사람일은 모르는 거니까.

    상쾌한 하루의 시작을 위해 힘차게 대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웬 노숙자가, 아니네."

    노숙자는 아니었지만 내 눈앞에 있는 여자로 보이는 생물은 노숙자에 가까운 행색이었다. 옷은 잔뜩 구겨져 있었고, 얼굴은 꼬질꼬질 했다. 그 와중에도 눈을 빛내는 게 기자는 기자인가 싶었다.

    우리 집 앞에서 비박을 한 노숙자. 아니, 기자 덕분에.

    좋았던 기분이 산산조각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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