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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ss-64화 (64/200)

<-- Soul Fish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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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깨며 전투 침실에서 벗어났지만 내 얼굴에 핀 웃음꽃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양팔을 뻗어 소파와 어깨동무한 자세로 나는 계속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상징창에서 반짝이고 있는 헐벗은 선녀의 상징을 보고 또 보았지만 지겹지 않았다. 그만큼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건 매력적이었다.

"그럭저럭 쓸 만한 정도만 해도 대박인데. 이건 진짜, 어휴! 이렇게 운이 좋아도 괜찮으려나?"

너무 좋다보니 오히려 걱정이 생겼다.

나는 스스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내 운이 얼마나 더럽게 없는지 뼈저리게 경험했었다. 당연히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래놓고 발목이 잘려나가는 거 아냐?

"에이! 나도 이제 팔자 좀 펴보자. 언제까지 이럴래?"

더 이상 재수 없는 내 팔자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영웅들처럼 운명을 개척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지긋한 불행이라도 조금이나마 피해가고 싶었다. 아니, 피할 수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있는 그대로 즐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쓸데없이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던 걸 멈추는 방법은 간단했다.

나는 얼른 스마트폰을 손에 쥐며 보스 앱을 실행시켰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못하는 단순한 남자이다 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도박장 1회 출입권]

불안감을 피하려다 그만 악마의 유혹에 빠진 꼴이었다. 인벤토리에서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아이템이 하필이면 도박장 1회 출입권이었다. 아까 전에 일부러 얼른 넘긴 도박창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갑자기 실소가 터졌다.

"큭. 억지로 뭘 더 하려니까, 더 그런 건가?"

선택한 아이템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실을 받아들일 때 피하는 건 최악의 방법이라는 나 원장의 조언이 떠올랐다.

그래. 피한다고 뭐 되나. 그냥 나를 믿으면 되지.

어차피 평생 도박과 담을 쌓고 살아온 나였다. 더욱이 실제 도박도 아니었다. 고작 게임 안에 있는 작은 시스템에 이리저리 휘둘린 내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

"까짓것. 한 번 해보자고. 어차피 다 날려도 빚은 없잖아?"

가불이나 대출의 개념이 없는 보스다 보니, 나는 조금 더 가볍게 생각할 수 있었다.

편하게 마음을 먹은 나는 거리낌 없이 도박장 1회 출입권을 사용했다.

그 순간 내 눈앞이 또 다시 어둠으로 물들었다.

다행히 새까맣게 물들었던 시야는 금세 본래대로 돌아왔다.

단지, 공간이 변했을 뿐.

"여기가 도박장인가?"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도박장 내부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왔다. 이곳은 내 기억 속에 있는 장소였다.

가장 행복했던 어릴 적 그 시절의 문방구.

지금은 볼 수 없는 불량식품과 여러 조립식 장난감이 즐비했다. 물론 초등학생들이 주로 쓰는 학용품도 있었다. 찰흙과 색종이들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딱 3초 동안.

차올랐던 감회는 금세 지워졌다.

"더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해 줘서 참 고맙네."

박스에 담겨 있는 물건들을 무심히 지나치며 카운터로 걸어갔다. 유리 장식장 안에 아이들이 가지고 놀법한 반지와 목걸이 등이 보였다. 그 아래에는 그 당시 부의 상징과도 같았던 종이곽에 든 샤프가 있었다. 추억의 물건들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내 눈빛은 여전히 무심했다.

어릴 적 꽤 크다고 느꼈던 문방구는 성인의 몸이 되자 참 작게 느껴졌다.

고작 몇 발자국 만에 카운터에 도착한 나는 무심히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머니가 회춘하셨을 리는 없고. 당신이 탐욕의 정령인가?"

"반가워요. 난 마하스라고 해요. 그런데 첫 손님을 위해 나름대로 준비를 했는데. 마음에 안 드나 봐요?"

"썩 좋은 기억이 아니라서 말이야. 그런데 도박은 어떻게 하는 거지?"

나는 괜히 친한척하는 마하스의 말을 뚝 잘랐다. 어차피 그래봤자 눈앞의 존재는 몽마였다. 싸워야 할 존재인 몽마와 친해져서 딱히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

마하스는 내 태도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싱그럽게 미소 지으며 친절한 목소리를 뽑아냈다.

"어머! 그랬어요?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나름 첫 손님이라고 신경 썼는데. 내가 실수했네요."

"사과는 됐고. 어떻게 하냐니까."

"신경질은……. 사람 무안하게. 알았어요. 그리고 도박이 아니라 뽑기에요. 여기 보이죠?"

내 재촉에 마하스가 나를 살살 어르고 달래며 널찍한 종이 한 장을 쑥 내밀었다. 어릴 적 50원주고 한 장씩 뽑았던 조그마한 종이 뽑기였다. 반으로 접혀 스테이플러에 박혀 있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내 작은 미소에 마하스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에이, 말은 그렇게 했으면서. 좋죠? 그렇죠?"

"흠.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아무튼 아무거나 뽑으면 되나?"

"치……. 맞아요. 당신은 지금 한 장 마음대로 뽑을 수 있어요. 물론 다음부터는 금화 한 개씩 받을 거예요."

마하스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다음에도 뽑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이런 뽑기는 대부분 꽝일 테니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하스의 새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며 넌지시 물어 보았다.

"보상은 어떻게 되지?"

"킥! 궁금하죠? 자! 내가 딱 한 번만 말해 줄게요. 잘 들어요!"

"듣고 있어."

"흥. 새침하긴. 아아, 알았어요. 무슨 인간 눈빛…….흠흠. 그럼 설명해 줄게요. 기본적으로 이 뽑기 판은 매달 자정에 새로운 걸로 바꾼답니다. 그리고 1등은 1명, 2등은 2명, 3등은 4명, 4등은 8명, 5등은 16명. 총 31개분의 상품이 있어요."

마하스의 설명은 꽤 길었지만, 들어서 손해 볼 이야기는 아니었다.

길고 긴 마하스의 말이 끝났을 때 나는 피식 웃으며 조소를 날렸다.

"그러니까 뽑기 개수는 무한대고. 그 중 31개만 당첨이고. 그것도 1등이랑 2등 빼고는 상점에서 살 수 있는 것들?"

"딩동댕! 정답입니다! 3등은 능력과 기술 초기화 사탕 2개구요. 4등은 강화제 2개구요. 5등은 경험치 거울 3개!"

"차라리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이 더 높겠네."

확률로 치면 애초에 비교가 안됐다. 조금 불공평한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그 생각을 지웠다. 세상에 공정한 도박은 없는 법이었다.

어차피 금화가 썩어나지 않는 이상, 다시 할 일은 없으니까.

공짜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런 유치한 속임수에 당할 생각이 없었다.

"그럼 한 장 뽑고 바로 돌아가면 되나?"

"에이, 그래도 몇 개 뽑아 보시지. 알았어요. 그렇게 보지 마요. 이곳에서 나가고 싶으면 출입문을 나가만 돼요. 그러면 꿈에서 깰 테니까."

"오케이. 그럼 줘 봐. 바로 뽑지, 뭐."

"여깃습니당! 갓 블레스 유!"

어처구니가 없었다. 몽마는 본질적으로 악마였다. 악마가 신의 가호를 비는 건 꼭 저주를 하는 것처럼 들렸다.

괜히 한 마디 했다가는 저 수다스러운 몽마가 계속 떠들 것 같았다.

대충 뽑고 말자.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었기에 나는 대충 가운데 있는 뽑기를 손에 쥐고 판에서 뜯어냈다.

그 순간 내 귀에 빵빠레가 들어왔다.

"우와! 1등! 1등이에요!"

"어, 그래."

나는 팔짝팔짝 뛰며 손뼉을 치는 마하스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보았다. 아무래도 무슨 수작을 부린 것 같았다. 엄청난 행운이 내게 연속으로 올 리가 없었다.

내 의심 가득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마하스는 싱글싱글 웃을 뿐이었다.

하긴, 저래 보여도 악마지.

"1등 당첨이 특별한 무기였나?"

"네! 여깄습니다, 고객님. 다시 한 번 축하드려요! 진짜요!"

언제 꺼내들었는지 마하스는 양손으로 알록달록한 포장지로 포장된 상자를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 촌티 나는 상자를 한손으로 집었다. 장난감 인형이 들어갈 만큼 제법 큰 상자였지만 무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이었다.

['영혼의 낚싯대 1개'를 획득합니다.]

쥐고 있던 상자가 사라지며 보관창에 새로운 아이템이 들어왔다.

갑작스런 상황에 잠시 멈칫한 사이 마하스가 카운터 위에 풍만한 가슴을 올린 채 머리를 들이 밀었다.

"뭐에요? 뭐가 나왔어요? 나도 보여줘요! 제발요!"

조잘조잘 떠드는 마하스의 수다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 시끄러.

볼일을 끝낸 나는 일단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아니, 저 나불나불 거리는 주둥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중에 기회 되면 보자."

"어어? 어! 저기요! 님! 님아!"

내가 냉정하게 몸을 돌리자, 마하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카운터 밖으로 못 나오나 보네.

애달픈 마하스의 외침을 뒤로한 채 나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문방구의 문턱을 넘었다.

그 순간 또 다시 눈앞이 새까맣게 변하더니, 이내 시야가 회복됐다.

"이거 참 신기하단 말이야. 꿈을 꾸는 게 아니라, 꼭 공간을 휙휙 넘나드는 느낌이야."

어느새 거실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좀 신기했다.

놀라는 와중에도 내 손은 본능적으로 스마트폰을 찾았다. 핸드폰이 손에 들어오자, 망설임 없이 보스 앱을 실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방금 전 얻은 1등 상품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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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낚싯대]

+ 모든 전혼을 낚아 올릴 수 있는 낚싯대.

+ 하루 1회.

+ 비전투 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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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참. 나한테 이런 새뻑이 올 줄은 몰랐는데."

솔직히 실감이 안 됐다. 내게도 이런 행운이 오는 날이 죽기 전에 올 것이라 상상조차 못했다.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대박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놀라는 와중에도 내 손은 움직이고 있었다. 능숙하게 화면을 조작하니 이내 장비창이 나왔다. 나는 저주의 단검 대신에 영혼의 낚싯대를 장착해 보았다.

"어? 아아."

영혼의 낚싯대는 장착이 불가능한 아이템이었다. 그 순간 몇 가지 정보가 내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몇 줄 안 되는 정보 덕분에 의문을 말끔히 지울 수 있었다.

"그러니까 비전투 무구란 게 그 뜻이었어?"

전투용으로 쓸 수는 없다보니 장착이 불가능했다. 다만 사용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영혼의 낚싯대 자체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인식되는 것 같았다.

다시 보관창으로 돌아가서 영혼의 낚싯대를 손으로 누르자, 새로운 창이 내 앞에 나타났다. 아니, 꼭 새로운 창이라 할 수 없었다. 내 눈앞에 나타난 창은 전혼 사냥창이었다. 이 사냥창 하단에는 낚싯대 모양의 아이콘이 하나 나타나 있었다.

"이걸 누르면 되나?"

나름 눈치가 있다 보니 자연스레 어떻게 사용하는지 느낌이 왔다.

검지로 낚싯대 아이콘을 누르는 순간 바로 사냥이 시작됐다.

촤르륵!

전혼 사냥창의 중앙에 위치한 사각 액자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그 모습이 꼭 슬롯머신 같았다. 아니,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슬롯머신이었다.

빠르게 바뀌던 액자 속 그림이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림이 멈추며 전혼 사냥이 끝났다.

철컥.

['하얀 독수리의 영혼 1개'를 획득합니다.]

중앙 액자 안에는 하얀 깃털이 인상적인 날렵한 눈매의 독수리 한 마리가 나타나 있었다. 그게 끝이었다. 액자는 금세 검은 색으로 돌아갔고, 다시 전혼 사냥을 하기 위해서는 은화나 금화가 필요했다.

나는 조금 늦게 결과를 인식할 수 있었다.

"잠깐. 하얀? 하얀색이면……!"

두 눈을 부릅뜬 채 보관창을 열었다. 그곳에는 방금 사냥한 하얀 독수리의 전혼이 말없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전혼의 정보를 확인하게 위해 다가가는 내 손가락이 잘게 떨렸다.

이윽고 내 손가락이 전혼에 닿자, 전혼의 정보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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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독수리의 영혼]

+ 등급 : 귀족 2단계

+ 성장 : 2,500/4,000

+ 효과 : 활력 1,700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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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하, 하하하!"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제는 이렇게 운이 좋아도 되나 하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기뻤다.

한참을 혼자 웃고 나서야 나는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너무 크게 웃다보니 흐른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핸드폰을 조작했다. 까먹기 전에 하얀 독수리의 영혼을 전혼창에 장착해야했다.

['하얀 독수리의 영혼'을 장착합니다.]

전혼 장착을 끝낸 나는 바로 상태창을 확인했다. 도저히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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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력 : 2,420/2,420

+ 정력 : 577/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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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격력 : 258

+ 마법력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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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어력 : 25

+ 항마력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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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중률 : 136

+ 회피율 :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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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명도 : 61

+ 치명 증폭 : 125%

+ 치명 저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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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활력이 3배로 폭증했다. 상징과 종속으로 자잘하게 능력치가 올랐지만, 내 눈은 활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고질적인 조루 활력을 극복한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벌떡!

"아, 도저히 못 참겠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고작 계급 하나 올랐을 뿐인데, 엄청난 변화가 나를 찾아왔다. 평민이 이럴 지언데, 귀족이 되면 어떨까 싶었다. 넘치는 활력만큼이나 내 의욕도 넘쳤다.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는 다시 현관문을 열어 젖혔다.

오늘 밤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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