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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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격 제한을 30단계까지 확장합니다.]
[평민 기능 '자유 임무'를 추가합니다.]
[평민 기능 '전투의 혼'을 추가합니다.]
[평민 기능 '도박'을 추가합니다.]
[평민 기능 '조합'을 추가합니다.]
[평민 기능 '침실'을 추가합니다.]
좀 당황스러웠다.
"이래도 되나? 밸런스 따위는 아주 그냥……."
레벨 제한이 풀린 건 둘째였다. 추가 시스템은 하나 같이 범상치 않았다.
살짝 우려가 들었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레벨은 누구나 올릴 수 있는 거잖아?"
분명 보스는 게임 같았다. 동시에 게임 같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최소한 노력한 만큼 보상 받을 수 있으니까."
쓸데없는 걱정을 털어낸 나는 새로운 기능을 하나씩 확인해 보았다.
시작은 자유 임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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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임무]
+ "도전하라, 그리고 쟁취하라."
+ 자유롭게 도전 가능한 임의의 임무.
+ 한 달마다 갱신되며, 성적에 따른 차등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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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은 간단했다. 매달 말일까지 도전 가능한 서브 퀘스트였다. 도전에 성공하면 보상이 있었고, 실패해도 징벌이 없었다. 다만 랜덤으로 생성되는 퀘스트와 경쟁을 해야 한다는 뉘앙스가 조금 마음에 걸렸다.
아무튼 그냥 꼴리면 도전하고, 아니면 말라는 거지?
일단 확인해야 할 게 남았기에 나중에 더 생각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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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의 혼]
+ "사냥하라, 그리고 단련하라."
+ 자유롭게 선택 가능한 자연의 영혼.
+ 전혼 성장을 통해 능력 강화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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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의 혼도 마찬가지였다. 이것도 불확실성이 컸다. 경험치나 동전을 지불하면 영혼 사냥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랜덤으로 전투의 혼을 얻을 수 있었다.
사냥이 아니라 그냥 돈 주고 사는 거 같은데.
오히려 구매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영혼 사냥을 통해 얻은 전투의 혼은 다른 전혼을 흡수하여 성장이 가능했다.
결국 돈을 쓰라는 말이었다.
"이건 좀 그런데.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완전 복불복인데?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겠지만."
탐탁지 않았다.
전혼은 일종의 장비와 같았다. 아니, 특화된 상징이라 보면 더 정확했다. 게다가 이것은 딱 하나밖에 착용할 수 없다보니 개인의 성향이 짙게 묻어나는 결과로 이어질 게 분명했다.
한 마디로 전혼은 참가자의 성격과 같았다.
"우선순위가 얘로 넘어갔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전혼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정보창을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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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 "금화 한 개의 가치가 있을까?"
+ 자유롭게 소환 가능한 탐욕의 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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갬블.
"……사행성 쩌네."
어릴 적 학교 앞 문방구에 있는 종이 뽑기가 자연스레 연상됐다. 추억의 종이 뽑기처럼 도박은 금화 한 개를 소모하여 장비 아이템 중 하나를 얻는 기능이었다. 아니, 기능이라고 하기도 뭐했다. 이것은 그냥 악마의 유혹일 뿐이었다.
자고로 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지.
평소에도 딱히 도박에 흥미가 없다보니 빠르게 다음 창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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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
+ "절구가 있으면 한 번 빻아 보지?"
+ 자유롭게 조합 가능한 유한한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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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네.
짧은 설명을 읽어 내려가며 내가 든 첫 생각이었다. 하나 같이 참가자들을 꼬시는 시스템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절구는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쨌든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청동 절구에 아무 물건이나 넣고 빻는 방식인 듯 했다.
"아니지. 아이템을 조합하는 것도 결국 가치를 투자하는 거니까. 그래도 뽑기보다는 낫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대망의 마지막 시스템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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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
+ "구색은 갖춰야지?"
+ 자유롭게 개조 가능한 성투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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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다!
바로 이거였다. 침실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부터 은연 중 기대했다. 그 작은 기대가 내 머릿속에서 폭죽처럼 터졌다.
침실은 튜토리얼 때처럼 일종의 꿈 속 가상공간이었다. 다만 그곳에서 전투를 치를 수 있었다. 그것이 중요했다.
"……쪽팔릴 걱정하지 않고 닥사할 수 있겠다."
개조를 할 수 있다는 말이 있었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내게 중요한 건 남들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사냥할 수 있다는 게 전부였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자신의 침실로 상대를 소환하려면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더 강해야했다.
"결국 선공을 뺏기면 침실이고 나발이고 그냥 쌩으로 한다는 말인데. 뭐, 어때? 레벨 올리면 되지. 쪼렙이 고렙 들이 박을 일 있나?"
나는 쉽게 생각했다. 어차피 되도록 안전한 사냥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자연스레 침실에서 전투를 할 가능성이 높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할 문제였다.
"지금은……."
일단 바지부터 입어야했다.
아래가 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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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집에 들어왔지만 나를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정신없이 달리나 보네."
고작 10여일 밖에 안 됐지만 있던 자리가 없어지니 기분이 묘했다.
그것도 잠시 나는 오늘도 내 건망증을 탓하며 소파에 앉았다.
"그나저나 이거 진짜 어디 문제 있는 거 아냐? 왜 이렇게 깜빡깜빡 하지?"
점액 고양이를 처음 사냥할 때 나는 종속을 해제한 상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혹시라도 회피 때문에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할까 우려했었다.
처음 한 마리를 상대해 보고 대충 감이 잡히고 나면 펫을 깨우려고 했지만, 사냥에 빠진 나는 그걸 새까맣게 잊은 채 부뚜막 고양이 까지 사냥해 버렸다.
"근데도 회피가 뜬 게 천운이었지. 아씨. 그냥 나한테만 보이면 좋은데. 이거 무슨 포켓몬 데리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돌아다닐 때 괜히 펫을 소환 해제하는 게 아니었다. 내 펫이지만 보는 건 자유였다. 사람들의 이목을 받는 게 성가시다 보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건 그거고.
"침실에 이런 기능이 있을 줄은 몰랐네?"
택시를 타고 돌아오며 보스 앱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의외의 기능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창고였다. 침실에는 나만이 쓸 수 있는 개인 창고가 있었다.
보스의 보관창은 물품 보관 개수가 정해져 있었다. 소비템의 경우 10개가 최대였고, 장착템은 20, 잡템은 30개 이상 가질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창고가 크게 쓸모가 있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앱을 통해 창고로 아이템을 넣고 빼기를 반복하고 있을 때 내 눈에 꽤 오래도록 보관된 제고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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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러진 옥비녀 : 1개
+ 헐벗은 수귀의 상징 파편
+ 헐벗은 견족의 상징 파편
+ 헐벗은 시랑의 상징 파편
+ 헐벗은 해인의 상징 파편
+ 헐벗은 선녀의 상징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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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혹시?"
튜토리얼에서 임무 보상으로 받은 잡템 아닌 잡템들이었다. 아이템 조합이 가능한 절구에는 딱히 제한이 없었다. 침실 구석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놓여 있는 청동 절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곰팡이가 핀 것처럼 푸른 청동 절구의 절굿공이를 손에 쥐는 순간 청동 절구에 대한 상세 정보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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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절구]
+ 주요 기능 : 동일 상징 3개.
+ 조합 재료 : 장착 물품을 제외한 모든 물품.
+ 평민 등급까지 조합 및 생산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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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쓸 만한데?
나쁘지 않았다. 내게 쓸모없는 상징 3개로 랜덤 상징 하나를 얻을 수 있는 건 좋았다. 물론 거래 가치가 없는 상징이 그 대상일 테지만.
"게다가 아무 잡템도 조합을 시도 할 수 있다는 말이지? 평민 계급 내에서."
대충 감을 잡은 나는 시험 삼아 가지고 있는 갈색 줄무늬 꼬리 장식 3개를 인벤토리에서 꺼내 절구통에 넣었다.
호기심 반, 기대감 반.
어차피 팔아도 돈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지만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게 바로 도박의 힘인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마음에 들지 않은 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절굿공이를 움켜쥐었다. 절굿공이를 손에 쥔 나는 있는 힘껏 공이를 내려쳤다.
쾅! 쾅! 쾅!
[조합에 성공합니다.]
['동전 1개'를 획득합니다.]
"어?"
이것 봐라?
욕심이 동했다. 오줌 마려운 사람처럼 서둘렀다. 이번에는 다른 잡템을 하나씩 넣어 보았다. 점액 고양이에게서 얻은 것과 언제 얻은 건지 기억도 안 나는 붕대 하나였다.
쾅! 쾅! 콰직!
[조합에 실패합니다.]
내 운이 그렇지.
이번에는 꽝이었다. 그래도 소득이 있었다.
"동일한. 이게 그 뜻인가?"
반쯤 확신한 나는 똑같은 잡템 3개를 청동 절구에 넣었고 그대로 빻았다.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쾅! 쾅! 콰직!
[조합에 실패합니다.]
"……이게 아닌데."
확신이 무너진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고민에 빠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고민한다고 풀린 문제가 아니었다.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을 깨달았다.
"에이, 그냥 점 백짜리 화투지. 그냥 재미잖아?"
나도 모르게 처음 도박에 빠져들어 패가망신의 입구에 다다른 사람들처럼 말했다.
핑계를 찾은 나는 남은 6개의 잡템을 2번에 나눠서 절구통에 넣고 빻았다.
쾅! 쾅! 콰직!
[조합에 실패합니다.]
쾅! 쾅! 콰직!
[조합에 실패합니다.]
"……히발라야."
정체불명의 욕실이 내 입에서 튀어 나왔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빌어먹을 조합은 그냥 복불복이라는 것을.
살짝 짜증이 났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불로소득이었다. 굳이 공짜에 목맬 필요는 없었다.
"동화 하나라도 얻은 게 어디야? 팔아봤자 돈도 안 되는 건데."
보스는 조금 특이했다. 보통 게임은 잡템이라지만 그것도 모아서 팔면 꽤 돈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안타깝지만 보스는 그렇지 않았다. 보스의 잡템은 말 그대로 잡템이었다. 무게로 재서 파는 고물 중의 고물과 같았다.
이렇게라도 쓸데가 있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근데 이거 쪼렙들한테 마구잡이로 사들이면……? 에이, 아니다. 그래서 얼마나 벌겠다고. 그 짓을 귀찮아서 어떻게 해?"
살짝 욕심이 나기도 했지만 금세 고개를 저었다. 복불복에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확률만 봐도 딱히 높아 보이지 않는데, 굳이 모험을 할 필요는 없지 싶었다.
"그것보다 이걸 질러? 말어?"
욕심이 사라진 자리에는 다시 욕심이 차올랐다. 이왕 지르기 시작한 거 끝까지 질러보고 싶었다.
결과는 이미 고민하는 순간 정해진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상징 파편을 하나씩 청동 절구에 넣었다.
한 개, 두 개, 세 개.
그리고 네 개.
청동 절구는 배가 고픈 지 5개의 파편을 모두 받아 들였다.
"이러면 안 지를 수가 없잖아?"
갑자기 헛웃음이 흘러 나왔다. 이렇게 무언가 있는 것처럼 상황이 흘러가면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가지고 있어 봤자 쓸데도 없는 거."
큰 욕심은 없었다. 운 좋게 조합에 성공하면 대박이고, 아니면 좋은 경험했다고 치면 편했다.
내 마음이 담담해졌을 때 나는 미련 없이 절굿공이를 쉬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쾅! 쾅! 쾅!
[조합에 성공합니다.]
['헐벗은 선녀의 상징 1개'를 획득합니다.]
불끈!
환호는 없었다.
나는 주먹 쥔 양손을 들어 올린 채 소리 없는 환호를 질렀다. 이래서 사람들이 도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나 싶었다.
"졸라 짜릿하네."
짜릿한 쾌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참지 못하고 조합에 성공한 상징을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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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벗은 선녀의 상징]
+ 비정규직 노예의 열망.
+ 주요 능력 5씩 상승.
+ 삽입 공격 시 15% 확률로 대상 장비 파괴.
+ 삽입 공격 시 25% 확률로 대상 장비 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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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엄청났다.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는 옵션이 3개나 달려 있었다. 특히 범용성이 넓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오케이. 평생 가자.
나는 얼른 상징창을 열어 헐벗은 선녀의 상징을 활성화 시켰다. 고민 따위는 없었다. 이건 무조건 써야하는 대박템이었다.
그래. 고생 끝에 낙이 와야지. 절망이 있으면 쓰나.
히죽히죽 웃으며 새로 얻은 상징을 보고 또 보았다.
"어? 근데 노예 계급인데. 이렇게 좋아도 되나? 아니. 그 전에 이거 튜토리얼에서 나온 몹 아닌가?"
뒤늦게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
참가자는 이제 튜토리얼을 할 수 없다.
튜토리얼 몽마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이 두 가지 사실이 하나로 합쳐지며 하나의 결론을 도출했다.
"……이거 나밖에 못 갖는 거야? 그런 거야?"
어, 그런 거야.
자문자답하는 순간 짜릿한 전율이 휘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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