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57화 (57/200)
  • <-- Taming -->

    ***

    진짜 해도 해도 너무했다.

    분명 백과사전에는 몽마의 등급과 희귀도에 따라 길들이는 조건이 변한다고 적혀는 있었다. 다만 대부분의 몽마의 경우, 특히 귀족 이하의 몽마의 경우 단일 조건이 걸린다고 되어 있었다.

    단일 조건은 개뿔이.

    "두 개의 조건. 까짓것 인정해. 인정하는데. 근데 이건 아니잖아? 10대를 맞으라고? 씹대를 처맞으라고? 장난해? 내가 마조야? 마조냐고!"

    나는 맞는 마조키스트가 될 바에는 차라리 쎄리는 사디스트가 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발악을 했지만 몽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내 몸 위에 돌아누운 몽마는 엉덩이와 꼬리로 내 엑스칼리버는 주무르는 것으로 포문을 열었다.

    ['줄무늬 다람쥐'에게 87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아, 물약 빨아야겠네.

    보스의 안내를 듣는 순간 나는 쓸데없는 지출에 속이 쓰렸다. 이전 다람쥐에게 받았던 피해가 맥뎀이기를 바랐지만 부질없었다. 맥뎀은 고사하고 민뎀이었던 모양이었다.

    "드럽게 꼬였네."

    한 번 사용한 맹약의 반지는 되돌릴 수 없었다. 성공 유무와 상관없이 1회성 아이템이었고, 나는 그저 쓰린 속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맹약 조건을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몽마의 활력을 절반 이하로 만들어야했기에 나는 뚱한 표정으로 공격을 시도했다.

    파항! 파항!

    어? 이 소리는…….

    ['줄무늬 다람쥐'에게 313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줄무늬 다람쥐'에게 309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도둑 삽입까지 터지며 치명타가 2연격으로 들어갔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제발. 제발!

    ['줄무늬 다람쥐'가 절정에 올랐습니다.]

    ['320 경험'을 획득합니다.]

    "아……."

    절정에 몸부림치며 사라지는 몽마를 올려다보며 나는 뒤늦게 자책했다. 너무 안이했다. 그 안이함이 동화 한 개를 태워 버렸다.

    첫 타에 59%의 확률인 크리티컬이 터지고, 30%의 확률로 연속 공격을 하는 것까지는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다만 두 번째 공격이 크리티컬로 터지며 10%의 확률을 뚫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봤자 핑계지. 아, 진짜. 짜증나게……."

    이미 실패한 일에 미련을 둬봤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음울한 얼굴로 청동 상점을 열었고, 맹약의 반지 하나를 다시 구매했다.

    이윽고 옷을 챙겨 입은 나는 서슬 퍼런 눈빛으로 다음 몽마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이 다람쥐 새끼 테이밍 못하면 성을 간다!"

    오기가 샘솟듯이 솟구쳤다.

    ***

    도심 속 한적한 야산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나는 스마트폰에 나온 미니 맵을 보며 3번째 사냥을 위해 움직였다. 은근히 악바리 기질이 있다 보니 오늘 안에 어떻게든 결판을 내야했다. 다행히 이름 모를 야산은 앞선 북한산에 비하면 놀이터에 불과했다.

    "검색 조건은 하나라도 분류할 수 있는 방식은 여러 개인데. 나도 참 무식하게……."

    몽마 검색은 검색 엔진과 유사했다. 비록 검색 방법이 음격 하나뿐이었지만, 검색된 결과를 나열하는 방법은 다양했다. 내 위치를 기준으로 근접한 몽마나 혹은 수평선 기준으로 낮은 순서대로 출력하는 방식 등이 있었다.

    덕분에 3번째 몽마를 찾아가는 길은 확실히 수월했다.

    한적한 동네 뒷산을 산책을 하듯 느긋하게 오르고 있을 때 내 귓가에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흠칫.

    나는 그대로 멈춘 채 몸을 숙였다. 사람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당연히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 사냥을 하려는 이들이 있을지도 몰랐다.

    숨죽은 채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을 때 내 미간이 찌푸렸다.

    아씨. 늦은 건가?

    얼핏 사람 형체가 보였다.

    입맛을 다신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안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부러진 나뭇가지가 뒤엉켜 있는 뒤편에 몸을 숨긴 나는 머리만 살짝 내밀고 눈앞의 상황을 확인해 보았다.

    그 순간 내 눈이 부릅떠졌다.

    "흡!"

    헐, 미친. 얘들 뭐야?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 신음을 두 손으로 틀어막으며 눈앞의 엄청난 장면에 집중했다.

    야산 중턱에 있는 구릉에는 세 사람. 아니, 두 사람과 한 몽마가 있었다. 당연히 셋은 모두 알몸이었다. 그들은 지금 2:1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두 남자와 한 몽마의 대결은 치열했다.

    남자 한 명은 등이 따갑지도 않은지 바닥에 누운 채 몽마의 허벅지를 조이고 있었다. 다른 한 남자는 몽마의 입을 공략하고 있었고, 몽마는 꼬리와 엉덩이로 반격하며 나름 치열한 공방을 이어나갔다.

    "으윽! 새꺄! 빨리 조지라고!"

    "아씨! 이거 회피 졸 높다니까! 안 박혀!"

    얼핏 들리는 두 남자의 대화를 통해 대충 상황이 짐작됐다. 20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두 남자는 쪼렙이었다. 그들은 대박을 노리고 모험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뻔히 보였다.

    쟤들도 속옷이 있는 줄 몰랐구만.

    처음 줄무늬 다람쥐를 상대할 때 내가 떠올랐다.

    뭐, 나는 보험이라도 있었지. 쟤들은…….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 결국 몽마 아래에 깔려 있던 남자가 두 눈을 까뒤집으며 게거품을 물었다.

    "끄르륵……."

    "야! 이 새꺄! 정신 차리라고!"

    친구로 보이는 남자가 악다구니를 썼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니, 기절한 사람은 대답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혼자 남은 남자는 어떻게든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다. 그는 비웃음을 흘리는 몽마의 머리를 붙잡은 채 입안에 빨딱 선 자신의 물건을 밀어 넣었다.

    푸욱!

    "죽어! 제발 좀 죽으라고!"

    남자가 되도 않는 악다구니를 쓸 때 상황은 더욱 최악으로 치달아 버렸다.

    줄무늬 다람쥐는 나도 모르고 있었던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몽마는 남자의 물건을 입에 가득 머금은 채 더욱 요사스러운 눈빛을 뿌렸다. 단순히 눈빛만 변한 게 아니었다. 몽마는 남자의 엉덩이를 두 팔로 휘감으며 남자가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윽고 몽마에게 구속당한 남자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씨발! 오럴 패링……커억!"

    아, 카운터에 당했구나. 그것보다 기술 이름 한 번 골 때리네.

    몽마의 목이 살짝 볼록 튀어 나오는 순간 남자도 친구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쓰러졌다.

    단숨에 두 남자를 쥐어짠 몽마의 입가와 엉덩이 골짜기 사이에는 하얀 무언가가 보였다.

    "……저걸 잡아야하나. 말아야하나."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허여멀건 액체가 무엇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결국 나는 비위가 더 상하기 전에 몸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할 때였다.

    쉬이잉!

    시원한 바람이 내 얼굴을 때렸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다시 몽마를 향해 시선을 돌린 나는 다시 한 번 크게 눈을 떠야했다.

    "……레벨업?"

    찬란한 광채가 줄무늬 다람쥐의 전신을 파고들었다. 덕지덕지 붙어 있던 이물질들도 말끔히 사라진 상태였다. 생기를 되찾은 몽마의 모습이 의미하는 건 한 가지뿐이었다.

    호기심이 동했다.

    꾸부정한 허리를 펴며 나는 쇼핑백에서 물총을 꺼내들었다.

    "얼마나 강한 지 한 번 붙어 보자."

    내 목소리가 채 사라지기 전에 물총에서 발사된 물줄기가 말끔해진 몽마의 얼굴을 더럽혔다.

    [17단계 몽마 '줄무늬 다람쥐'가 전투를 승낙합니다.]

    [17단계 몽마 '줄무늬 다람쥐'가 전투를 시작합니다.]

    [공격 우선권 획득에 성공합니다.]

    "역시!"

    나는 전직 시험을 치를 때 알게 된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시험관은 몽마도 일종의 참가자라고 했었다. 그랬기에 나는 눈앞의 몽마가 레벨이 올라봤자 나보다 낮을 것이라 짐작했다.

    내 짐작은 틀리지 않았고, 나는 공격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

    전투를 승낙한 몽마는 재빠르게 달려와 나를 알몸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익숙한 상황이었기에 딱히 당황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빨린 두 남자가 전투가 끝날 때까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뿐이었다.

    레벨이 올라도 몽마는 기본자세를 유지했다.

    기승위.

    나를 올라탄 몽마였지만, 나는 똑같은 실수를 할 수 없었다.

    "기껏 자세를 잡았는데 미안."

    영혼 없는 사과를 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몽마의 머리를 강하게 잡았다. 반달처럼 휘어진 눈으로 몽마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도 미소로 화답하며 공격을 시작했다.

    "자, 벌리렴."

    나는 자애롭게 말하며 잔뜩 성난 엑스칼리버로 몽마의 입술을 짓눌렀다. 몽마가 살짝 입을 벌렸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허리를 앞으로 밀었다.

    쑤욱!

    갑작스런 일격에 몽마가 사레가 들린 듯 컥컥 거렸다. 얼굴을 벌겋데 달아올랐고, 입가는 침으로 번들거렸다.

    ['줄무늬 다람쥐'에게 371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상당한 데미지였다. 다만 확신은 없었다. 고작 한 단계였지만 레벨업은 적잖은 변수가 됐다.

    "16렙짜리는 거의 백퍼 반타작 이상 깠을 텐데. 이거 좀 애매하네."

    상대의 잔여 활력을 볼 수 없다는 게 이렇게 답답했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대로 진행하기로 결심했다.

    레벨 하나 올랐다고 피가 100넘게 오르진 않겠지. 그리고 중독도 있으니까.

    물론 지금 몽마가 중독에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률이 높은 건 맞았다. 어림짐작으로도 중독에 걸리지 않고, 활력이 50% 이상일 확률은 거의 없어 보였다.

    내 공격이 끝나고 공격권을 얻은 몽마는 다른 패턴을 보였다. 엉덩이로 비비면서 꼬리로 쥐어짜는 공격이 아니었다. 몽마는 입으로 당한 걸 입으로 갚을 생각인 듯 했다.

    "으음……."

    다시 내 물건을 입에 넣고 혀를 날름거리는 몽마 덕분에 나는 때 아닌 호강을 했다. 나도 모르게 몽마의 가슴을 주물렀다. 물론 전투에 직접적인 효과를 바라고 취한 행동은 아니었다.

    아, 좋으다.

    몽마의 공격에 좋았던 기분은 보스의 안내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줄무늬 다람쥐'에게 92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역시 1레벨은 거기서 거기네.

    큰 차이가 없음을 확인한 나는 더욱 가벼워진 마음으로 테이밍을 시도할 수 있었다.

    공격을 포기한 채 물품을 사용했다. 당연히 맹약의 반지였다. 아까 전처럼 두 개로 나눠진 가락지가 나와 몽마의 왼손 약지에 끼어졌다.

    똑같은 안내가 떠올랐다.

    ---------------------

    [맹약의 조건]

    + 몽마의 활력을 50% 이하로 줄여라.

    + 몽마를 공격하지 않고 10회전을 버텨라.

    --------------------

    아니,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조건창의 나타난 조건의 색이 달랐다. 첫줄은 불그스름한 빛을 가지며 꼭 성공했다고 시위하는 것 같았다.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던 나는 한결 더 마음이 가벼워졌다.

    "오케이. 이제 버티면 되는 거지?"

    나는 왼편에 상태창을 열어 놓은 채 내 행동을 결정했다.

    무조건 방어. 방어. 또 방어.

    공격하면 안 된다는 조건이 조금 답답했지만 나는 성질을 꾹 누르며 몽마의 공격을 받아냈다.

    ['줄무늬 다람쥐'에게 52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줄무늬 다람쥐'에게 55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방어에 성공합니다.]

    "나이스! 회피도 뜨네?"

    짜증의 연속이던 와중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3번. 정확하게는 4번의 공격 중 한 번을 피할 수 있었다. 이것만해도 큰 위안이 됐다.

    [568/720]

    활력도 아직 충분했다.

    "잘하면 물약 안 빨고 버틸 수도?"

    은근한 희망이 보였다.

    나는 실실 웃으며 내 물건을 입에 넣는 몽마를 내려다보았다.

    "쭈웁, 쭈웁!"

    "그래. 많이 먹어라."

    ['줄무늬 다람쥐'에게 65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그래. 이정도 쯤이야.

    내가 살살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였다.

    퍼억!

    "으윽!"

    ['줄무늬 다람쥐'에게 138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빌어먹을 크리티컬.

    치명타가 터지며 기분 좋은 쾌감이 짜증나는 고통으로 변했다. 순간 뿌리가 뽑혀나가는 고통을 뒤로하며 나는 상태창부터 확인했다. 갑작스런 일격에 불현듯 걱정이 들었다.

    [460/720]

    "휴……. 아직 반도 넘게 남았네. 하긴, 치명타라고 해봤자 2배잖아?"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 있던 식은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 진작 칭호를 바꾼 게 신의 한 수였다.

    칭호 안 바꿨으면, 으으!

    어쨌든 벌써 절반의 공격을 버텼다. 이쯤이면 조건을 만족한 것과 다름없었다.

    그 사이 몽마는 나를 눕히며 다시 엉덩이 공격을 시작했다.

    씰룩, 씰룩.

    몽마가 돌아가는 맷돌처럼 엉덩이를 돌렸지만 데미지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줄무늬 다람쥐'에게 55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방어에 성공합니다.]

    거기에 회피 성공까지 터지며 내 마음을 더욱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활력 회복이 참 효자네. 효자야."

    처음으로 활력 회복 스킬의 진면목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전체 활력의 5%라지만 10턴이면 50%를 회복하는 수치였다. 거기에 누더기 붕대녀의 상징 효과로 3%가 추가되니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몽마를 도발해 보았다.

    "어이, 아가씨. 힘 좀 내는 게 어때?"

    "치르, 치르!"

    "어? 너 내 말 알아 듣……으음!"

    내 도발이 끝나기 무섭게 몽마가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울었다. 순간 놀랐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불같이 화난 몽마는 처음 보는 기술을 시전했다.

    몽마가 내 몸 위에 사선으로 주저앉으며 속옷을 옆으로 밀었다. 하늘을 보고 서 있던 엑스칼리버는 무기력하게 몽마의 속살에 포위되었고, 나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압박감에 신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엑스칼리버를 완벽하게 먹어치운 몽마가 허리를 숙이더니 내 얼굴에 작지만 모양이 예쁜 가슴을 들이 밀었다. 위아래를 동시에 공격하는 몽마의 신기술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몽마의 부드러운 가슴과 엑스칼리버에서 느껴지는 끈적끈적한 압박감이 더해지며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냈다.

    "으으윽……!"

    짙은 신음을 토하며 나도 모르게 와락 주먹을 쥐었다. 어떻게든 흥분도가 올라가는 건 막아야했다. 다행히 포로 상태로 접어드는 건 막을 수 있었다.

    고맙다, 소연아. 현아야. 이게 다 니들 덕분이다.

    속으로 트레이너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순간이었다.

    ['줄무늬 다람쥐'에게 197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헐, 시발. 뭐라고?"

    육성으로 욕지거리가 터졌다. 50 언저리였던 데미지가 거의 4배로 뛰었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다급히 상태창을 확인해 보았다.

    [293/720]

    애매했다.

    앞으로 2번의 공격을 더 받아내면 조건을 만족할 수 있었다. 문제는 방금 공격 같은 게 한 번 더 온다면 위험했다. 이미 낮은 확률에게 발등을 찍힌 전례가 있다 보니 내 고민이 길어졌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안전제일. 빌어먹을 안전 불감증은 지겹다, 지겨워. 그냥 빨포 하나 빨자."

    어차피 공격만 하지 않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아쉬웠지만 안전한 길을 택했다. 인벤토리에서 빨간 물약을 누르며 복용을 선택했다.

    ['빨간 물약'을 사용하여 '활력 100'을 회복합니다.]

    3연속으로 방금 전 필사기를 맞으면 그때는 어쩔 수 없는 거라 생각했다.

    물론 그 정도로 내가 재수 없지는 않겠지만.

    다행히 바로 다음 공격을 받으며 나는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줄무늬 다람쥐'에게 53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예쓰! 됐어!"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잔여 활력은 240이나 됐다. 한 번의 공격을 받고도 남았다.

    이윽고 몽마는 가장 자주 사용한 엉덩이 사이에 엑스칼리버를 놓고 비비는 기술을 시전했다.

    아흐, 좋으다. 좋으다.

    미끌미끌하고 폭신폭신한 느낌의 향연에 나도 모르게 헤벌쭉 입을 벌렸다.

    ['줄무늬 다람쥐'에게 124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휴……. 그래도 좀 간당간당 했네. 뭐, 빨포를 안 빨았어도 괜찮았겠지만. 그건 결과론 적인 이야기니까. 어쩔 수 없지."

    빨간 물약을 먹지 않았어도 충분히 버틸 수 있었지만,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에도 이번과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물약을 빨 것 같았다. 뭐든 안전한 게 제일이였다.

    솔직히 조금 가슴이 철렁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가슴을 졸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가 막 긴장을 느슨하게 풀었을 때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맹약의 조건을 모두 만족합니다.]

    고럼, 고럼. 내가 어떻게 했는데.

    히죽히죽 웃으며 몽마를 바라보고 있을 때 몽마의 눈빛이 돌변했다. 순간 찬물을 뒤집어 쓴 느낌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내 전신을 휘감았다.

    내 육감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몽마가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더니 내 얼굴을 향해 풀스윙으로 던졌다.

    퍽!

    반지에 정통으로 이마를 헌납하는 순간이었다.

    ['줄무늬 다람쥐'가 맹약을 거절합니다.]

    ['줄무늬 다람쥐'와 맹약에 실패합니다.]

    "야! 이건 아니잖아!"

    "찌르, 치르!"

    울분을 토했지만 돌아온 건 몽마의 조소뿐이었다. 사라진 맹약의 반지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진짜 울고 싶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