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39화 (3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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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급스러운 룸 안은 널찍했다.

    대여섯 명이 신나게 놀 수 있는 곳에 혼자 차지했지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돈을 쓰기로 결심한 이상 아낄 필요는 없었다. 나는 있는 놈이 더 하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자리를 차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웨이터가 들어와 테이블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마셔본 적 없는 비싼 양주와 술잔, 안주 등을 놓는 게 전부였다. 어차피 진정한 세팅은 따로 있었다.

    다행히 소 실장 덕분에 나는 어색한 초이스를 하지 않아도 됐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공손하게 허리를 접고 인사하는 웨이터에게 들은 게 있는 나는 팁을 주기 위해 지갑을 열었다.

    아, 히밤. 한 장뿐이네?

    만 원짜리가 닥 한 장 있었다.

    5만 원짜리를 주기에는 좀 과하다 싶었다. 돈지랄을 할 생각은 아니었기에 나는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웨이터에게 찔러 주었다. 왠지 웨이터의 허리가 조금 더 펴진 것 같았다.

    의미심장한 눈빛을 살짝 보이며 고개를 끄덕인 웨이터가 조용히 룸을 나갔다.

    왜 저러지?

    조금 의아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내 신경은 온통 어떻게 스폰서 제안을 할지에 쏠려 있었다. 인터넷으로 봤던 글과 달리 실전은 전혀 달랐다.

    "하아. 역시 인생은 실전인가. 미치겠네, 진짜."

    연습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설상가상이란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홀복을 입은 늘씬한 미녀가 룸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소진이에요."

    나도 남자인지라 노출이 심한 옷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검은색 드레스는 짧았다. 엉덩이를 가리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

    다리부터 스캔하는 내 눈이 풍만한 가슴에 닿았다. 깊게 파인 덕분에 가슴골이 훤히 다 보였다. 가느다란 목을 지나니 예쁘장한 얼굴이 나타났다.

    이렇게 이쁜 애가 왜 이런 일을 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름답고 젊은 여자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궁금했다. 나도 모르게 여자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내 행동이 이상했는지 여자가 킥 웃으며 더욱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오빠. 오빠 이런데 처음이지?"

    "어? 어. 그런 게 티나나?"

    "티나지. 얘는 왜 이런데서 일할까. 그런 눈으로 빤히 바라보는데."

    "아……."

    눈치하나는 귀신이었다.

    순간 말문이 막힌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오히려 여자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알아서 술병을 따서 잔을 채우며 말했다.

    "돈 벌려고. 내가 명품에 환장하거든. 우리 집이 적당히 살기는 하는데. 내가 막 쓸 수 있을 정도까지는 아니라서."

    뭐지?

    가뜩이나 막혔던 말문이 더 공고하게 막혔다. 여자는 부끄러운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그녀는 정말 당당했다.

    최소한 가식 없는 건 확실했다.

    그 사이 술잔을 채운 여자가 잔을 들어내게 건넸다. 나는 그녀가 건네는 잔을 받으며 얼떨결에 잔을 부딪쳤다.

    "뭐해? 안 마셔?"

    "마셔야지. 그래. 일단 마시자."

    일단 술의 힘이라도 빌릴 생각이었다. 정말 맨 정신으로는 속내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단숨에 잔을 털자, 여자도 거침없이 술을 비웠다.

    거 잘도 마시네. 아직 간이 쌩쌩해서 그런가?

    그 뒤로 나와 여자는 별다른 말없이 잔을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했다.

    반 병 쯤 마시고 나자 살짝 정신이 알딸딸해졌다. 정신이 조금 풀리며 덕분에 말문도 같이 풀렸다.

    "근데 너 이름이 뭐야? 그냥 야야 거릴 수는 없잖아?"

    "오빠 벌써 취했어? 소진이라고 했잖아."

    "아, 그래?"

    미안하다. 긴장했다.

    소진이 자기를 소개할 때 나는 너무 긴장했던 터라 미처 듣지 못했었다.

    사과의 의미로 나는 소진의 잔을 채우고 내 잔도 채웠다.

    "자, 짠 하자."

    "오케이. 짠! 오늘 아주 끝까지 달리는 거야. 각오 해!"

    그거 보통 남자가 하는 말 아니냐?

    괜히 소진이 호기를 부린 게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 말술이었다. 누가 보면 술에 한 맺힌 것처럼 무자비하게 술을 퍼부었다.

    천만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내 간도 만만치 않게 싱싱했다.

    어느새 소진은 아예 내 옆에 딱 달라붙어 몸을 밀착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몸을 슬쩍슬쩍 만지며 흥분하게 유도했다. 작은 손길로 남자를 흥분시킬 줄 알았다.

    어째 술병이 늘어날수록 가까워지는 거 같다?

    어차피 여기는 체면을 차리는 곳이 아니었다. 나는 슬그머니 소진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내 행동에 소진이 씽긋 웃으며 말했다.

    "언제 시작하려나 했는데. 오빠도 남자네?"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은. 남자는 다 똑같다는 말이지. 그렇게 쭈뼛 거리지 말고. 그냥 대놓고 만져. 나중에 시간 다 돼서 물고 빨지 말고. 어차피 즐기러 온 거잖아? 본전은 뽑아야지."

    얘 진짜 쩌네.

    소진의 쿨내에 술이 깰 정도였다. 그녀는 거침이 없었다. 애초에 내숭을 떨 줄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소진의 말대로 행동했다. 그녀의 어깨에 걸치고 있던 손을 아래로 내렸다. 이내 매끈한 겨드랑이를 지나 그녀의 가슴을 손에 쥐었다.

    뭉클.

    오? 생각보다 크네?

    나는 의외의 볼륨감에 놀랐다.

    문제는 내 속내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점이었다.

    소진이 피식 웃으며 내 가랑이로 손을 뻗었다.

    불쑥!

    "음? 오빠도 꽤 쓸 만한 거 가지고 있네?"

    "너 귀신이냐? 어떻게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다 알아?"

    "오빠 어디 가서 사업하지 마라. 도박도 하지 말고. 무슨 남자가 표정을 못 숨겨? 얼굴에 다 써 있네요."

    "……그러냐?"

    나는 괜히 민망해서 혀를 찼다. 그 와중에도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소진의 가슴을 주물렀다. 그녀도 내 손길에 맞춰 내 물건을 오물거렸다.

    그것도 잠시 소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오빠. 벌써 취한 거 아니지?"

    "왜? 그게 꿈쩍도 안 해서?"

    "이상하다. 2차 갈 거 아니었어?"

    당연하다는 듯 묻는 소진의 말에 나는 실소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마음만은 주색잡기의 제왕이지. 근데 그게 안 된단다. 얘야.

    술이 들어가서였을까. 아니면 소진이 편해서였을까.

    나는 부끄럼 없이 속에 감추고 있던 말을 꺼내들었다.

    "나 고자다."

    "……아저씨. 그런 개그하면 사람들이 아재라고 흉봐요."

    소진이 피식 웃으며 내 코를 꾹꾹 눌렀다. 그 모습이 마치 집사에게 애정 표현하는 고양이 같았다.

    나는 썩소로 답하며 소진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 안 선다고. 불능이야."

    내가 대뜸 고자 아웃을 하자 소진이 벙찐 얼굴을 한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녀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여자 끼고 노는 술집에 불능인 남자가 오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실제로 소진은 이런 경우가 처음이었는지 당황스러운 기색을 온몸으로 뿜어냈다. 내 시선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도 힘들었는지 슬쩍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쉽사리 정신 차릴 기미가 없는 소진의 모습에 나는 그녀의 볼을 장난스럽게 톡 치며 화제를 돌렸다.

    "너 알바할 생각 있어?"

    나도 모르게 낚싯대를 드리우고 말았다. 아무래도 취기가 문제인 듯 싶었다.

    "어? 무슨 알바?"

    목표가 미끼를 물었다.

    ***

    3일이 지났다.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묘한 설렘을 느꼈다.

    "결국 저질렀나."

    돌이켜 생각하니 정말 나도 대책이 없는 놈이었다. 아무리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라지만…….

    "처음 만나자마자 대뜸 스폰 할래라니. 나도 미쳤지."

    뺨 맞아도 할 말 없는 상황이었지만 여자는 요즘말로 참 쿨했다.

    사흘 전 상황을 떠올리며 피식 웃던 나는 편안한 옷차림을 한 채 거실 소파에 앉았다. 조금 뒤면 약속한 시간이었다. 어차피 벌어진 일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걔는 걔고. 나는 나고. 트레이닝만 끝나면 더 볼일 없으니까."

    처음 만난 사이는 의외로 장점도 있었다. 나는 일면식도 없는 여자에게 내 사정을 솔직하게 털어 놨다. 어차피 일 끝나면 보지 않을 사이라는 생각이 컸다.

    "그리고 똑똑하고. 매달 10회에 명품 빽, 구두, 옷. 이렇게 사달라고 하는 거 보면 법쪽으로도 좀 아는 거 같은데."

    우리의 거래는 간단했다. 소진. 아니, 진소연은 내 훈련을 매월 10번씩 도와주고, 나는 그녀에게 매달 명품 세트를 하나씩 선물하면 됐다. 혹시 걸리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깔끔한 거래였다.

    이런 거래가 가능한 이유가 있었다. 소연이 술집에서 일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그녀는 자신의 허영을 채우고 싶어 했다.

    27살이지만 꽤 오래 휴학을 한 덕분에 아직 대학을 다니고 있는 그녀는 벌써 술집에서 일 한지 3년이나 됐다. 등록금을 벌겠다는 생각도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치장하고 즐겁게 놀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해 처음 이 일에 뛰어 들었다.

    "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어.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연예인 할 정도로 예쁜 것도 아니잖아? 그런 내가 큰돈을 벌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이 한 마디로 나는 소연이가 어떤 사고방식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나름 경력이 있다 보니 쓸 돈도 어느 정도 모아 놓은 상태였다. 어차피 에이스도 아니었고, 밑에서 파릇파릇한 어린 애들이 치고 올라오는 상황이었다.

    "슬슬 은퇴를 준비하는데 내가 얻어 걸린 건가?"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무슨 상관이랴. 그냥 기술만 좋으면 되지. 어차피 즐기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걔는 진짜 왜 하는 거지?"

    솔직히 소연의 생각이 궁금했다. 명품 세트의 값이 중고차 한 대 값이라지만 그녀의 재력도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다. 만약 나였다면 은퇴할 때 제대로 한 몫 잡거나, 아예 깔끔하게 정리했을 것 같았다.

    속내를 알 수는 없었지만 크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처음 이야기한 대로 길어야 세 달이었다. 그 뒤로 우리의 인연은 끝났다.

    "설마 고자가 궁금해서……. 에이, 너무 나갔다. 애가 좀 골 때리기는 해도 그 정도는 아니겠지."

    과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털어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나는 소연이를 기다리는 동안 인터넷에 접속했다. 주제는 당연히 보스였다. 이곳저곳 기웃거렸지만 여전히 전직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묘한 뿌듯함을 느끼며 웹 서핑을 계속했다.

    이런 저런 아이템 스샷이나, 스킬 설명 등을 보고 있을 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왔구나."

    시계를 보니 딱 약속 시간 5분전이었다. 최소한의 믿음이 생겼다. 시간 약속은 신뢰의 시작이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문을 열어 주었고, 잠시 후 현관문을 열고 소연이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내 입이 살짝 벌어졌다.

    소연이는 요가복 차림이었다. 파란 상의와 회색 하의는 쫙 달라붙어 그녀의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심지어 가슴 부위는 검은 망사로 되어 가슴 윗부분을 그대로 드러낼 정도였다.

    "와! 오빠 집 좋네? 나도 이런 집 하나 살까? 오피스텔은 영……."

    "너 그러고 온 거야?"

    "응. 왜? 이상해?"

    이상하긴. 고맙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탱글탱글하게 올라간 소연이의 엉덩이를 감상했다. 몸매가 참 이뻤다. 가느다란 허리 라인과 탄탄한 허벅지 라인의 조화가 예술이었다.

    화장을 연하게 한 덕분에 얼굴도 그날 보다 더 이뻐 보였다. 물론 정말 엄청난 미소까지는 아니었다.

    소연이의 엉덩이에 넋을 놓고 있을 때 그녀가 대뜸 몸을 돌렸다.

    자칫 기분이 상할 법도 했지만 소연이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근데 오빠. 여기 욕실이 어디야? 나 학원에서 바로 온 거라 좀 씻어야하는데."

    "저기. 2층에도 있는데 거기보다 저기가 조금 더 커."

    "오, 땡큐! 그럼 나 금방 씻고 올게!"

    "어, 천천히 씻어. 나도 다시 씻어야겠다."

    "오키!"

    나는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긴 채 2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정말 깔끔하게 몸을 씻고 1층 거실로 내려왔지만, 소연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여자들의 금방은 남자들의 금방이랑 다르니까.

    욕실에서 은근히 들리는 물소리를 들으니 괜히 목이 탔다. 나는 냉장고를 열어 시원하게 물병을 비웠다. 큰 병 하나를 단숨에 비웠지만 갈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시간이 차곡차곡 흘렀다.

    40분 쯤 지났을까.

    드디어 욕실 문이 열리며 소연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또 다시 마른침을 삼켜야했다.

    하얀 타월로 몸을 가린 소연의 자태는 아름다웠다. 물기어린 머리카락을 감고 있는 수건조차 색정적이었다. 특히 그녀의 잘 뻗은 다리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소연이가 살금살금 걸어오는 와중에도 나는 그녀의 맨살에서 눈을 데지 못했다. 잘하면 허리를 구부릴 뻔했다. 그만큼 조금만 숙이면 그녀의 은밀한 곳이 다 보일 것 같았다.

    "오빠도 남자네? 눈에서 아주 불이 나오겠어?"

    "당연히 남자지."

    "어머 자존심 상한 얼굴이네? 에이, 오빠앙."

    눈치하나는 귀신같은 소연이가 슬쩍 내 팔에 달라붙었다. 자연스레 그녀의 가슴이 느껴졌다.

    이상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린 채 그녀의 가슴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마침 살짝 내려간 타월 덕분에 그녀의 수줍은 꼭지가 보일 정도였다. 덕분에 그녀의 맨살을 훤히 볼 수 있었다.

    "……너 뽕이였냐?"

    소연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유구무언에 내 미소도 함께 사라졌다.

    새로운 사실이 나를 혼돈으로 몰고 갔다.

    그토록 풍만했던 가슴이 뽕이라니…….

    내 상실감은 사라진 소연이의 가슴만큼 엄청났다.

    이것은 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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