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36화 (3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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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떡!

    꿈에서 깬 나는 악몽을 꾼 사람처럼 몸을 일으켰다. 순간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잠든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으으……."

    물먹은 솜 같은 몸 상태에 나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뱉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실제로 나는 식은땀으로 샤워를 하고 있었다. 새로운 버전의 보스가 녹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뭐 같은 싱크로율이라면, 골치 아프겠는데."

    잠시 혀를 차며 숨을 골랐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만 일단 냄새나는 몸을 좀 씻기는 해야 했다. 아무리 외부 세계와 단절한 채 살아가는 나였지만 더러운 건 참지 못하는 나였다.

    묵직한 철로 된 족쇄를 찬 것처럼 내 발이 무거웠다.

    간신히 욕실로 들어가 씻고 나왔지만 개운함은 없었다. 물론 땀을 씻어 내렸지만 정신적 피로는 사라지지 않았다. 머리가 띵 한 게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나는 소파에 풀썩 주저앉으며 냉장고에서 막 꺼내온 큰 생수병을 입에 물었다. 단숨에 차가운 물을 몸 안으로 들이 부었지만 멍한 정신은 쉬이 깨어나지 않았다. 마치 개발자가 경고하는 것 같았다.

    "섹스가 아니라 배틀이라는 말이네. 진짜 이제는……."

    소파 어깨에 목을 걸린 채 축 늘어져 있기를 30여 분.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두근거리던 심장 소리도 차분해졌고, 지끈 거리던 관자놀이도 가라앉았다.

    이제 좀 살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그 순간이었다.

    "아……."

    내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낮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물론 이유가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정보들이 내 머릿속에서 유전처럼 터졌다.

    놀람도 잠시 나는 벌떡 일어나 서재로 향했다.

    일단 적고 보자!

    나는 내 기억력을 믿지 않았다.

    서재의 방문을 뜯어낼 것처럼 돌진한 나는 책상에 자리를 잡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정보들을 마구잡이로 적기 시작했다.

    슥슥, 슥, 스윽.

    렙탑에 타이핑을 하는 게 더 빠를 수도 있었다. 안타깝지만 그럴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도식까지 있었기에 수기가 더 편한 점도 있었다.

    평소라면 왜 이런 방식일까 의문이 들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여유로운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서재 안에서 한동안 펜과 종이가 어울리는 소리가 오래도록 이어졌다.

    "으……. 그냥 칠까?"

    팔이 저렸다. 딱히 수기할 일이 없다보니 안 쓰던 근육들이 비명을 질렀다. 작은 갈등이 생겼지만 이왕 수기로 시작한 거 수기로 끝내고 싶었다.

    한 시간이 지났다.

    나는 내 고집을 저주했다. 팔은 부들부들 떨리며 기능을 상실했다. 결국 나는 렙탑을 챙겨와 타이핑을 시작했다.

    훨씬 수월했다.

    "흥흥, 진작 이럴 걸. 쓸데없는 고집은 개고생의 지름길이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도 잠시 나는 다시 집중했다. 벌써 머릿속에 샘솟았던 정보들이 희미해졌다. 확실히 나는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배고픔을 참으며 일종의 집필 작업에 몰두했다.

    물론 한계가 있었다. 나는 꾸르륵 거리는 아랫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 마침 맞게 작업도 끝이 났다.

    렙탑 우측 하단에 있는 시계를 확인해 보았다.

    [오후 2:03]

    "벌써 두 시야? 어쩐지……."

    창자가 끊어지는 거 같았다. 모든 감각이 죽고 미각만 살아 있는 것처럼 나는 먹는 걸 중요시 여겼다. 건강한 몸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보다 먹는 것이라 생각했다.

    마구잡이로 써 놓은 것들을 분류하고 정리해야했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었다.

    탁.

    처음 필기했던 종이를 끼운 채 렙탑을 닫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를 나섰다.

    [파종이 완료됩니다.]

    [발아를 시작합니다.]

    깜짝 놀란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이식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466시간.

    어느덧 200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대충 3할 정도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놀랄 일이 아니었다. 아마 진행 정도에 따라 지칭하는 말이 다른 것 같았다.

    "괜히 식겁했네."

    작은 부끄러움을 뒤로한 나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배가 너무 고팠다.

    ***

    점심시간이 지난 쌈밥집은 한산했다.

    나는 한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제육 정식을 주문했다. 몸이 허할 때는 고기를 먹어야했다. 음식을 기다리며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여기 저기 기웃거려 보았다.

    "별일 없네. 역시 나만 그랬구나."

    사람은 다 똑같았다. 특별해지고 싶은 공명심이 존재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원초적인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홀로 앞서간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키득키득 거렸다. 나도 쓸모 있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소소한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여전히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에효……. 이게 현대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인가?"

    아무리 내가 아더왕이 남긴 엑스칼리버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렇다 하더라도 의미가 없었다. 실전에 쓸 수 없는 무기는 고철만 못했다.

    고철은 그래도 무게만큼 값이라도 쳐주지.

    나는 그냥, 그랬다.

    차마 내 입으로 자학할 수 없었기에 나는 애꿎은 물만 벌컥벌컥 마셨다.

    오늘. 아니, 오늘은 할 일이 있으니까. 내일. 내일 반드시! 지르자. 꼭!

    안타까운 결심을 하며 나는 다시 빈 물 컵에 물을 채웠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어머, 자기 너무 야해."

    "에이, 뭐가 야해요. 솔직한 거지. 선생님이 너무 보수적인 거예요. 요즘 시대에 누가……읍!"

    "야!"

    조잘조잘 떠드는 여자들의 목소리에 나는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친 채 몸을 돌렸다. 내 귀는 정확했다. 막 밥집으로 들어오는 여자는 역시 나 원장과 서 간호사였다.

    나는 괜히 건들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어이, 아가씨들. 시간 있어?"

    "어!"

    서 간호사의 입을 틀어막고 있던 나 원장이나, 상사를 놀리다 입이 막힌 서 간호사나.

    두 여자 모두 동그랗게 토끼눈을 뜬 채 그대로 멈췄다.

    나는 친절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얼어붙은 그녀들을 풀어 주었다.

    "땡."

    실패했다.

    여자들이 더욱 꽁꽁 얼어 버렸다.

    아, 진짜 아직 아재가 되면 안 되는데…….

    다행히 나와 오래도록 수다를 떤 경력이 있는 나 원장은 내 개그에 대한 내성이 강했다. 그녀는 서 간호사보다 한 발 먼저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린 그녀가 피식 웃으며 내 명치를 검지로 푹 찔렀다.

    "윽! 아프다, 나 쌤."

    "넌 좀 아파야 돼. 내가 그런 개그 하지 말라고 했지? 그냥 입 다물어. 어떻게 입만 열면 손해를 보니?"

    핀잔이 이리도 고맙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괜히 헤프게 웃으며 두 여자를 내가 앉아 있던 테이블로 안내했다. 그녀들도 불편해하지 않았다. 이게 다 소리 내고 먹지 않는 밥상머리 예절이 뛰어난 결과였다.

    다만 조금 서운한 게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맞은편에 앉은 나 원장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 쌤. 그냥 옆에 앉지?"

    "왜? 이쁜 서 간호사가 앞에 있으면 좋겠어?"

    "에이, 선생님. 그게 아니죠."

    중간에 서 간호사가 내게 눈치를 주며 끼어들었지만, 나는 미처 그녀의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알면 좀 그래주……읍!"

    "그냥 이거나 씹어 드세요. 박고영 씨. 헛소리 좀 작작 하시고요."

    나 원장은 바짝 독이 오른 눈썹을 보여주며 내 입에 씀바귀를 쑤셔 넣었다. 순도 100% 씀바귀는 진짜 썼다. 순간 독약을 먹은 것 같았다.

    내가 독기어린 눈으로 노려보았지만 나 원장은 태연했다. 되레 팔짱을 낀 채 콧방귀를 끼며 성질을 부렸다.

    어이, 나 쌤. 이거 내가 화낼 타이밍인데?

    우리 두 사람이 눈싸움을 하고 있을 때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눈치가 있는 서 간호사가 불쑥 끼어들었다.

    "두 분 다 그만하세요. 창피하게 왜 그러세요? 애들도 아니고."

    서 간호사는 강단이 있었다. 그녀의 일침에 나와 나 원장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야했다. 서 간호사의 시선을 피한 채 나는 목을 긁었고, 나 원장은 이마를 긁었다.

    우리 둘의 모습에 서 간호사가 킥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는지 알 수 없었다. 나 원장도 마찬가지였는지 의아한 눈으로 서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궁금한 걸 참지 못하는 나는 서 간호사에게 왜 웃었는지 물어 보려고 했다. 그럴 수 없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음식이 나와 우리의 입을 막아 버렸다.

    "이런! 씀바귀를 빼먹었나 봐요. 다시 가져다 드릴게요."

    "……네."

    서 간호사가 아주 작은 소리로 아주머니의 말에 답했다.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진 상태였다. 아주머니가 총총 걸음으로 주방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그녀가 깊은 숨을 토해내며 웃음을 터트렸다.

    "후아! 실수할 뻔 했어요. 이게다 두 분 때문이에요!"

    "……난 잘 못 없어. 이게 다 나 쌤이 주범이야."

    "시끄러워! 이번에 청양 고추에 도전해 볼래?"

    "미안. 먹자. 아, 맛있겠다."

    순간 로봇으로 변한 나로 인해 나 원장도 웃음이 터졌다.

    그 사이 식당 아주머니가 씀바귀를 듬뿍 가져다 주셨고, 나는 괜히 움찔하며 나 원장의 기색을 살폈다.

    덕분에 식사 자리는 더 없이 편안한 분위기로 변했다.

    다들 허기가 졌는지 금세 입을 먹는 용도로만 사용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입 안 가득 퍼지는 씀바귀 고유의 향이 내 식욕을 자극했다.

    내가 한 공기를 후딱 해치고 새로 추가한 공깃밥을 크게 퍼서 배추 위에 올릴 때였다.

    나 원장이 땡글땡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 굶었어? 오늘따라 잘 먹네?"

    "아 그럴 일이 좀 있었어. 이게 오늘 첫 끼야. 근데 나 쌤이랑 서 간호사도 이제 점심이야?"

    "응. 요즘 정신과가 활황이잖아. 덕분에 끼니 챙겨 먹는 것도 힘들어."

    그래서 얼굴이 좀 피곤해 보였나?

    내가 나 원장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때 서 간호사가 손목시계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쌤. 빨리 드세요. 30분 뒤에 예약이에요."

    "허……. 나 쌤. 그래도 밥은 챙겨 먹고 해. 버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지키는 게 더 좋지."

    "당연하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그리고 건강을 지키려면 가리지 말고 꼭꼭! 너 양파는 왜 빼는데?"

    매의 눈을 활성화하고 있는 나 원장은 그새를 못 참고 나를 챙겼다. 그녀는 다른 반찬들을 내 쌈에 억지로 집어넣었다.

    나는 고기랑 밥만 넣어 먹는 게 좋은데.

    살짝 입술이 튀어 나왔지만 여기서 투정을 버리면 진짜 나이 헛먹은 게 됐다. 나는 아무 말 안한 채 우걱우걱 쌈을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 채소가 추가됐지만 먹을 만했다.

    나 원장과 마주보며 젓가락질을 하니까 문득 생각나는 일화가 있었다.

    나는 물로 입안을 가신 채 그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나 쌤 기억나? 나 쌤이 나 젓가락질 가르쳐 준거."

    "기억나지. 어디 가서 쓸데없는 흉 듣지 말라고 내가 친히 가르쳤지. 그때 정말 힘들었다."

    "에이, 하루 만에 익혔잖아? 나도 할 땐 한다니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서 몰랐던 거지."

    "이거 은근히 스트레스에요. 저도 젓가락질을 잘 못해서 어릴 때 많이 혼났었어요."

    서 간호사도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지 입술을 쭉 내밀며 대화에 참여했다.

    나도 서간호사와 비슷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까짓 젓가락질 못하면 좀 어떻다고. 그냥 먹으면 됐지."

    "맞아요! 정 안되면 포크로 먹으면 되는데!"

    서 간호사는 젓가락질에 좀 쌓인 게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일부러 어설프게 젓가락을 쥐고 서 간호사 앞으로 내밀었다. 서 간호사도 익살스럽게 웃으며 내 행동을 받아주었다.

    "짠!"

    "어이고. 둘 다 뭐하는 거야?"

    나 원장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젓가락 크로스를 하고 있는 우리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는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말했다.

    "뭐하긴? 의기투합!"

    "얍!"

    "왜 항상 부끄러움은 내 몫이니? 적당이들 좀 하지?"

    나 원장이 손을 저으며 우리를 말렸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고 보란 듯이 젓가락을 이상하게 쥐었다.

    결국 나 원장이 한숨을 내쉬며 발동을 걸었다.

    "후……. 식사 예절이야, 예절. 매너라고. 제대로 힘을 주고 젓가락을 쥐라는 말이야. 괜히 음식을 식탁 위에 떨구지 말라고 가르치는 거야. 그리고 그건 만국 공통이야. 서양에서 테이블 매너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 우리나라 식사 예절은 무시하는 게 말이 돼?"

    일장 연설을 늘어놓은 나 원장의 모습에 나와 서 간호사는 동시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는 슬그머니 젓가락을 제대로 쥐며 꼬리를 말았다.

    "뭘 또 그렇게 말해. 그냥 장난친 거야."

    "너 그런 버릇 고쳐. 자꾸 대화를 회피하면 안 되는 거야."

    "에효. 알았습니다. 나 선생님. 그리고 누가 싫대? 나 쌤이 젓가락질 가르쳐줘도 고맙다는 말이야. 덕분에 어디 가서 수군거림 듣지 않잖아? 이제는."

    "맞아요. 사실 젓가락질 못하면 좀 눈치 보이는 것도 없지 않아 있잖아요? 젓가락질 잘하면 괜찮아 보이고. 진짜 선생님 말대로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가정교육인가 싶어요."

    은근히 나 원장이 보수적이라는 걸 알고 있는 나와 서 간호사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다행히 나 원장도 더 이상 잔소리를 늘리지 않았다. 한 마디는 조언이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의미 없는 잔소리로 변하는 법이었다.

    나 원장이 잘 읽은 제육 한 점을 다소곳이 집어 내 밥 위에 올려 주었다. 물론 그녀는 나만 챙기지 않았다. 서 간호사에게도 고기 한 점을 올려 준 뒤 미소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나도 괜히 성낸 거 같아. 많이 먹어. 그냥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랬어. 외국 문화는 진지하게 대하면서, 우리 문화는 업신여기는 거 같다는. 그런 생각이 요즘 자주 드네. 다른 허례허식보다 이런 사소한 게 더 중요한데."

    나와 서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더욱이 어릴 적 부모를 잃은 나는 더욱 공감이 되는 면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했을 때 나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야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극성인 학부모들이 일부 존재했다. 그들에게 나는 당연히 자식들의 친구 후보가 아니었다.

    "그 삐뚤어진 가정교육이라는 말이 참……. 사람을 만신창이로 만들지."

    나 원장의 말대로 허례허식이나 잘못된 관념이 문제였다. 부모가 없어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와 놀지 말라던 부모들의 아이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젓가락질을 못했다.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 건 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얼마나 역설적이고 재미있는지.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 나는 나도 모르게 쓴 웃음을 지었다.

    물론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아 사라졌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그런 역설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나 원장이 가르쳐준 대로 세 손가락을 이용하여 젓가락질을 해 그녀의 밥 위에도 고기 한 점을 올려 주었다.

    "나 원장도 많이 먹어. 그리고 고마워."

    "응. 잘 먹을게."

    확실히 나 원장은 보고 배울 게 많았다. 만약 나였다면 괜히 부끄러워 대답을 회피했을 텐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덕분에 제대로 된 대화를 하면 어떤 기분을 느낄 수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를 보며 활짝 웃어주는 나 원장의 미소를 계속 보고 싶었다.

    ========== 작품 후기 ==========

    젓가락질.

    못한다고 욕하지 말고 그냥 잘하는면 칭찬해주면 될일인데...

    가끔 주객이 전도 된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세상이 팍팍하니 별 거 아닌 일에도 충돌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우리 사회가 아직은 칭찬에 인색한 것 같기도 하고요.

    너무 이분적 사고를 하지 않고 너그러운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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