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34화 (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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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뜬금없는 임무였다.

나는 어정쩡하게 선 채로 임무창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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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직업]

+ 시험의 관에 입장하여 실력을 증명하라.

+ 임무 현황 : 0/1

+ 기본 보상 : 전용 직업

+ 전체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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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은 간단했다. 시험의 관이란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대충 일종의 시험장 개념일 것 같았다. 결국 섹스 배틀을 통한 승리가 임무 목표라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전직이라…….

뜻밖의 변화에 나는 살짝 고민이 들었다. 고민도 잠시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정쩡하게 등을 굽히고 있었던 탓에 등이 찌뿌둥했다.

"일단 자자."

김빠진 맥주 캔을 정리한 나는 침대로 직행했다. 편한 자세로 눕자 그제야 등에서 고통이 조금이나마 가셨다. 두 눈을 감으며 내일을 위해 잠을 청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도저히 이대로 잘 수 없었다.

생각이 날 듯 말 듯한 상황에 놓인 것처럼 궁금증을 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득.

"윽! 아오……."

너무 급하게 일어난 탓에 굳어 있던 등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오만상을 찡그리며 나는 다시 자리에 누워야했다. 벌써부터 나이를 먹는다는 게 서러웠다.

이제 겨우 서른인데. 만으로 하면 20대인데.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는 만 나이밖에 없잖아?

"난 20대지. 그럼. 아직 20대야."

우연이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나라처럼 만 나이만 취급했다. 단지 사람들이 헷갈려 한다고 혼용할 뿐이었다. 처음 이 사실을 알고 나는 참 웃긴 상황이라 생각했다.

"그냥 언제부터 만 나이만 씁니다. 이러면 될 걸 가지고. 아니, 이게 문제가 아니지."

또 쓸데없는 생각에 삼천포로 빠졌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이런 저런 상념이 많은 것 같았다. 진짜 삼촌 말대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은. 아주 조금은 들었다.

편안한 자세로 침대에 누운 나는 다시 전직에 대해 골똘히 고민해 보았다.

"문제는 시험장인데. 도대체 거기가 어디냐고? 면접 보러 오라고 하면 다야?"

아무리 요즘 같은 세상이라도 면접자에게 언제 어디서 시험을 보는지 통보는 해줬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이게 바로 갑이 아니라 꼴값을 떠는 것에 표본이라 할 수 있었다.

혼자 고민한다고 해답을 찾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팔을 뻗어 스마트폰을 쥐어 들었다. 이 시대에 가장 빠른 정보 수집처는 인터넷이었다.

물론 정확성과 신뢰성이 바닥이지만.

당연한 결과였지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을 집어 던졌다.

인터넷 그 어디에서도 보스 전직이라는 글이 없었다. 간혹 검색에 걸리는 글이 있었지만 내용을 보면 추측성 낚시글이었다. 실제 경험담은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에효. 그냥 자자. 시간이 되면 알게 되겠지. 그나저나 오픈 날짜 한 번 기가 막히네."

인터넷의 글들을 뒤지다보니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보스의 이식 종료 시간이 우리나라 기준으로 4월 5일 자정이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다른 나라를 기준으로하면 중구난방이었지만 괜히 내가 몽마의 성체를 깨부숴서 그런가 싶었다.

그럴 리가 있나.

말도 안 됐다. 말 그대로 망상일 뿐이었다. 보스에 대한 주체는 안타깝지만 우리 인간들이 아니라 의문의 개발자였다.

이런 저런 허황된 생각을 하다 보니 슬슬 눈이 감겼다.

갑자기 피곤함이 방학식 끝낸 초글링처럼 밀려왔다.

***

나는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사실 오랜만이라 하기는 뭐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색스러운 꿈을 꾸었다. 튜토리얼도 꿈은 꿈이었으니까.

이번 꿈도 참 진짜 같았다.

시원한 바람.

따스한 햇볕.

푹신한 감촉까지.

3박자가 모두 맞아 떨어지며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꿈이었다.

크게 숨을 들이 마시며 상쾌함을 전신에 퍼트린 나는 슬며시 눈을 뜬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꿈이네."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비현실적인 풍경은 꿈이 아니고서야 현실에서 결코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나는 지금 구름 위에 떠 있는 화려한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반투명한 천이 장식된 침대는 조금 내 취향과 거리가 멀었다. 아니, 확실히 내 취향은 아니었다. 색깔만 연했으면 핑크빛 공주님 침대 같았다.

그나마 붉은 천으로 도배를 해놔서 다행이지.

묘한 안도감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뭉글, 뭉글. 뭉글!

구름 저 편에서 작은 물방울이 날아와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단순한 물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었다. 순식간에 진짜 사람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태초의 모습으로 앉은 채 비너스의 현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비록 조개 위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물방울이 형상을 이뤄 사람이 된 다보니 자연스레 비너스가 떠올랐다. 안타깝게도 내 첫인상은 제대로 빗나갔다.

눈앞의 여신 같은 자태를 뽐내고 있는 생명체는 비너스가 아니었다.

"……몽마?"

그녀는 몽마였다.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증거가 있었다. 엑스칼리버가 벌떡 일어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고작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억겁의 세월 만에 재회한 것처럼 반가웠다. 동시에 작은 욕심도 생겼다. 나는 현실에서도 이 녀석이 일어나는 걸 보고 싶었다.

그것도 아주 강하게.

그래. 이 녀석을 위해서 그까짓 법. 좀 어겨주마. 들키면 어때? 그냥 벌금내고 벌 받으면 되지.

나는 고삐가 풀렸다. 사회 통념이 허용하지 않더라도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고 싶었다. 물론 인두겁을 벗어 던지는 일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아니었다.

아주 조금. 어떤 나라에서는 합법이고, 어떤 나라에서는 불법인. 그것까지는 허용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감격에 떨고 있는 사이 몽마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만개한 미소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몽마의 뇌쇄적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그저 작은 미소로 화답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였다.

"정말 반갑다!"

"어머, 날 아나요?"

내 눈이 크게 벌어졌다. 또렷한 목소리에는 자의식이 담겨 있었다. 눈앞의 존재는 몽마의 성체에서 상대했었던 보스몹들과 비슷했다.

놀람은 금세 사그라졌다. 몽마의 정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 물건이 다시 일어난 게 중요했다.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한 뒤 담담히 답했다.

"그게 중요한가? 반가운 게 중요하지."

내 낯 두꺼운 대답에 몽마가 꺄르르 웃었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나는 눈알이 좌우로 움직였다. 출렁거리는 탐스러운 가슴이 문제였다.

아, 몽마라 그런가? 어떻게 하나도 안쳐졌지?

사실 인간이라면 당연히 중력의 영향을 받아야했다. 그것은 가슴도 마찬가지였다. 가슴이 크면 클수록 당연히 무거웠고, 무거운 것은 자연스레 아래로 처지는 법이었다.

몽마는 달랐다. 진짜 마법이라도 부리는 것 같았다. 만화 영화 속 캐릭터가 현실로 튀어 나오면 저럴까 싶었다.

출렁거리는 몽마의 가슴을 실컷 감상한 나는 슬쩍 턱을 들었다. 올라간 턱과 달리 내 시선은 더욱 아래로 떨어졌다. 탄탄한 복부를 지나니 가지런히 정리된 음모가 나타났다.

꿀꺽.

확실했다. 눈앞의 몽마는 보스 급이었다. 보스의 계급에 따르면 왕족 계급의 몽마였다.

그 증거로 몽마의 음모는 단색이 아닌 금발이었다. 연한 금발도 있었고, 조금 진한 금발도 있었다. 하나의 색으로 통일 된 게 아닌 건 왕족밖에 없었다.

그제야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아씨. 아직 스킬 뭐 배울지 못 정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든 기술을 배우고 봐야했다. 괜히 여유를 따지다가 패배하면 돌이킬 수 없었다.

슬쩍 기술창을 열려고 했을 때였다.

눈앞의 몽마가 검지를 까딱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땡! 이미 늦었어요. 수련의 관에서는 오직 전투만. 전투만 할 수 있어요. 귀여운 참가자 씨."

"……좀 봐주면 안 될까?"

"안 돼요."

꼼수는 통하지 않았다. 몽마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고, 나는 처연하게 고개를 떨궜다. 뒤늦게 후회가 들었다.

왜 진작 잠들면 시작이라는 생각을 못했을까.

왜 진작 기술을 살펴보고 배워놓지 않았을까.

왜 진작…….

매번 후회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후회는 언제나 늦을 때 찾아왔다.

결국 나는 미련을 버렸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훌훌 미련을 털고 나자, 심적으로 안정되며 마음이 편해졌다.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몽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어요. 그리고 패배를 두려워하지 말아요. 당신들과 달리 우리는 실패에 관대하니까요."

"그거 참 부럽네. 근데 한 가지만 물어 봐도 돼?"

"네, 물론이에요. 전 참가자들에게 친절하답니다!"

네. 그러네요. 굳이 가슴을 팔로 감쌀 필요는 없는데. 정말 친절하시네요. 몽마님.

가슴을 강조하는 자세로 답하는 몽마의 모습에 나는 잠시 말을 멈춰야했다. 다행히 오래 감상하는 추태를 보이지는 않았다. 육감적인 몸매도 좋았지만, 호기심을 푸는 게 더 중요했다.

"도대체 이걸 만든 이유가 뭐야?"

"성투난무의 세상을 만든 이유가 궁금한가요?"

"궁금해. 정말 궁금해. 이런 기술력이 있는데 왜? 왜 그러는 거지?"

"으흠. 이상하네. 주인님께서는 처음 이 세상을 만들 때 거부감이 없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했는데. 이상하다?"

몽마는 내 물음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귀여운 척 검지를 입에 물고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덕분에 더욱 쇄골이 도드라지며 또 하나의 장관을 연출했다.

음, 여기가 천국인가?

내 정신이 살짝 아득해질 무렵 몽마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마치 몰랐던 사실을 깨달은 사람 같았다. 실제로도 그런 듯 보였다.

"아! 맞다! 주인님께서 그러셨어요. 당신들은 생각보다 방어 기재가 강하다고. 그래서 오류가 날수도 있다고. 당신이 바로 그 오류였군요!"

"사람 앞에 두고 오류라고 하는 거 아니다."

"앗! 죄송해요! 기분 나쁘셨어요?"

취소다. 얘는 좀 애가 덜떨어진 것 같았다. 어디 한 군데 정도가 아니라 몇 군데 나사가 풀린 여자 같았다.

아니, 어차피 몽마지.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다시 한 번 내가 바라는 답을 요구했다.

"도대체 이걸 만든 이유가 뭐냐니까?"

"에이, 왜 화를 내고 그래요? 무섭게……. 전 연약한 몽마랍니다. 아, 그걸 물어 보셨죠? 히힛!"

"하……. 너 캐릭터는 이제 어떤지 알겠으니까. 그냥 좀 말해주지 않을래?"

"어머? 벌써 저를? 흥! 아니거든요. 당신은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아, 진짜. 뭐 이런 게 다 있어?

결국 내 얼굴에 금이 갔다. 이런 대화는 익숙하지 못했다. 인내심은 이미 바닥이었다.

다행히 몽마도 딴소리하는 게 지쳤는지 드디어 내가 원하는 대답을 꺼내 놓았다.

"사실 어쩔 수 없이 만드셨어요. 약속 때문에. 아무튼 바라는 건 오직 하나에요. 그녀를 만족시킬 존재를 육성하는 것."

"육성?"

"네. 안타깝게도 주인님보다도 더 격이 높은 분이라……. 육성하지 않으면 약속을 지킬 수 없거든요. 그래서 만든 거예요."

"왜 하필 우리들을……?"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나를 혐오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이건 이성적인 판단 문제였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인간보다 눈앞의 몽마가 더 강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육체든, 정신이든. 혹은 성행위든.

그때 내 눈에 몽마의 살짝 비웃음 같은 게 잡혔다.

"에이, 온 세상에 참가자가 된 이들이 당신들뿐이겠어요? 많아요. 그것도 아주 많아요."

"……그래?"

솔직히 조금 머쓱했다.

동시에 또 하나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몽마가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들도 참가자라 할 수 있어요. 주인님께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모든 존재를 이 울타리에 밀어 넣으셨거든요. 다만 육성을 위해서 우리가 제약을 좀 받지만. 혹시 모르죠. 나중가면 제약을 풀어 주실지."

"으흠……."

이 사실이 지구에 퍼지면 난리가 날 게 분명했다. 결국 이 우주에 생명체가 우리뿐만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물론 물리적으로 접할 수 있는지는 나중 문제였다.

내가 잠시 말을 아끼자, 몽마가 불쑥 얼굴을 들이 밀었다. 그녀의 붉고 도톰한 입술이 내 입술과 닿을락 말락 거렸다.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하고 뛰었다.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해요?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말 그대로 육성을 위한 거예요. 해치지 않아요. 우리는 영체로 밖에 참여할 수 없으니까. 그건 어쩔 수 없죠, 뭐. 본체로는 성투가 아예 불가능하니까."

묘한 뉘앙스였다. 몽마는 살짝 아쉬워하는 기색이 있었다. 다만 더욱 캐묻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더 물으면 진짜 안 될 것 같은 얼굴이네.

나는 호기심을 푼 것으로 만족했다. 더 이상 의미 없는 호기심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다. 몽마의 대답을 통해 앞으로도 보스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았기에 더 이상 질문을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는 승패를 겨루면 될 뿐이었다.

나는 몽마의 이마를 검지로 밀어 내며 시작을 알렸다.

"자, 시작하자. 대답은 충분히 들었으니까."

"어? 더 궁금한 거 없어요? 막 우리가 본래 어떤 존재인지? 아니면 다른 참가자들은 어디에 있는지?"

"그거 알아서 뭐해? 어차피 걔들이랑 만날 일이 있을까?"

"음……. 아마 거의 없을 걸요? 아주. 아주 나중이라면 모를까."

"그럼 됐어."

시간은 많은 걸 바꾸니까. 고정 관념은 사양이야. 걱정도 마찬가지고.

물론 몽마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다만 그런 생각은 의미가 없었다. 거짓말을 판별할 능력은 내게 없었다.

나는 보통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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